HIFICLUB, High-end Internet

관찰과 탐구

여러 시스템을 운용하다 보면 어떤 특정 기기나 특정 액세서리가 항상 좋을 순 없다는 걸 깨닫는다. 아무리 뛰어난 오디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질리는 것과는 별개로 동일한 기기도 어떤 시스템 사이에 적용되는가에 따라 그 품질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그래서 필자 또한 여타 국/내외 리뷰어들의 글을 많이 읽어보는 편이다.

E1 아이솔레이션 베이스

대체로 일본보다는 미국이나 유럽 리뷰어들을 좋아하는 편인데 좀 더 합리적이고 관심이 가는 제품들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어 마이클 프레머나 허브 라이케르트, 스티브 구텐버그 또는 제프 프리츠, 로버트 할리 등 상당히 많다. 과거 필자와 꽤 취향이 비슷해 많은 영향을 받았던 웨스 필립스도 기억나며 최근 몇 년간은 아트 더들리의 글도 많은 참고가 되었다. 묘하게도 두 리뷰어 모두 어느새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이들이 남겨놓은 글은 지금도 종종 검색에 걸려 좋은 참고 자료가 되어준다.

S3 아이솔레이션 베이스

대체로 많은 사람들은 그저 이들이 리뷰한 제품 자체만 보지만 그것은 사실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오류를 낳기 쉽다. 우리가 하이파이 오디오라고 부르는 것은 올인원 블루투스 스피커가 아닌 이상 하나의 컴포넌트만으로는 소리를 낼 수 없다. 따라서 각각의 리뷰는 사실 해당 시스템의 특성과 성능이 상당 부분 관여된 평가가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들의 바꿈질(?) 로드맵이 포착되기도 한다. 그렇게 지면으로나마 만나는 바다 건너 리뷰어들의 시스템과 오디오, 음악에 대한 담론은 단지 순간의 재미에서 멈추지 않는다. 어떤 컴포넌트 하나가 아닌 오디오 시스템 전체에 대한 포괄적 운용 철학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는 지표가 된다. 시스템 운용의 묘미는 바로 이런 관찰과 탐구 그리고 실전을 통한 경험에서 시작한다.

Harmonic Resolution Systems

특히 리뷰어들 사이에 인기를 끌며 동일한 브랜드를 여러 리뷰어가 사용하는 경우도 보인다. 액세서리 같은 편애가 있기도 한데 특정 브랜드 제품이 자주 애용되는 모습이 포착되곤 한다. ASC, 피니트 엘리먼트 등은 이미 오래되었고 몇 년 전부터는 스틸포인츠 그리고 바로 ‘Harmonic Resolution Systems’, 줄여서 HRS라는 브랜드의 액세서리들이다. 특히 아날로그 플래닛을 이끄는 마이클 프레머는 수억 원대 레퍼런스 시스템을 운용하면서 HRS의 오디오랙을 오랫동안 애용하고 있다. 몇 년 전 리뷰했던 독일의 턴테이블 메이커 브링크만의 경우는 아예 자사 턴테이블의 하단 베이스로 HRS를 강력 추천하고 나섰다.

HRS 댐핑 플레이트

리뷰어는 물론이며 현재 가장 신뢰할만한 아날로그 소스기기 관련 리뷰어 그리고 시중의 모터가 마음에 안 들어 직접 턴테이블 구동 모터를 만들어낼 정도로 까다로운 턴테이블 제조사가 추천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 이들이 추천한 HRS의 댐핑 플레이트는 필자의 시스템에서도 상당히 뛰어난 성능을 보여주었다. 현재도 DAC 위에 HRS 댐핑 플레이트를 사용하고 있는 이유다.

E1 그리고 S3

사실 HRS의 대표 마이클 라트비스는 하이파이 오디오 분야에서 일하던 사람이 아니다. 이런 경우 대개 장점과 단점이 확실하다. 음향, 하드웨어 관련 엔지니어의 경우 전통적인 엔지니어링에 관해 박식하지만 그만큼 매너리즘에 빠지는 경우도 많이 본다. 반대로 완전히 다른 계통에서 이 분야로 커리어가 바뀐 경우 상당히 신선한 이론을 기대할 수 있지만 반대로 오디오파일이 원하는 것을 잘 몰라 마케팅에 실패하기도 한다. HRS 대표의 경우 항공 우주 및 방위 산업 분야에서 경력을 쌓아온 엔지니어로 성공적으로 하이엔드 오디오 업계로 연착륙한 케이스다. 무엇보다 그의 경력은 아이솔레이션 설계와 관련된 여러 특허로 증명된다.

E1 아이솔레이션 베이스

S3 아이솔레이션 베이스

최근엔 HRS에서 오랜만에 새로운 아이솔레이션 액세서리를 개발해 들고 나왔다. 그중 이번에 손에 들어온 것은 두 가지. 하나는 E1 그리고 또 하나는 S3라는 제품으로 모두 기기의 하단에 받쳐서 진동을 제거하는 일종의 플랫폼이다. 우선 E1을 살펴보면 전면은 알루미늄 빌렛을 정밀 가공한 전면이 눈에 띈다. 하지만 상단과 하단은 HRS가 특수 제작한 합성수지로 만들어져있다. 공진에 강하면서도 스크래치에 대한 내구성이 뛰어난 편이다. 내부 구조를 파헤쳐 보면 꽤 흥미로운 구조를 보이는데 E1 플랫폼의 중간을 가로질러 강철판을 삽입해놓아 내구성을 높이는 동시에 하단 발을 고정시키는 기능을 하게끔 만들어놓았다.

E1 아이솔레이션 베이스 단면

S3 아이솔레이션 베이스 단면

상위 그레이드로 제작된 S3의 설계를 보면 검은 색상이라 언뜻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꽤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일단 알루미늄 빌렛을 두터운 뚜께로 가공해 둘레를 둘러싸고 있다. 상판과 하판 또한 특수 합성수지를 사용하고 있는 것도 유사하다. 하지만 E1에 적용된 아이솔레이션 베이스가 총 네 가지 서로 다른 소재를 결합해 만든 것이라면 S3는 총 일곱 가지 소재를 결합해 만든 것이다.

또한 내부를 보면 E1처럼 얇은 철판이 아니라 강화 수지와 비자성 스테인리스 강판 등으로 구성된 두터운 무공진 코어 층을 만들어놓았다. 바로 HRS의 아이솔레이션 베이스 중 최상위 제품군에 사용된 구조를 공유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아이솔레이션 구조는 레퍼런스 모델인 M3X2와 거의 유사하다.

흥미로운 건 두 아이솔레이션 베이스에 모두 적용된 네 개의 발인데 단순히 바닥으로부터 베이스를 띄우는 역할뿐 아니라 진동 전이를 막는 아이솔레이터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총 여섯 단계의 아이솔레이션 단계로 설계되어 있으며 모든 방향에서 컴포넌트에 전해지는 에너지 전이를 막아준다. 아이솔레이션이 적용되는 주파수 대역은 초저역에서 40kHz에 걸쳐 있다.

E1과 S3 모두에 일관적으로 장착된 일종의 인슐레이터는 그 적용 구간이 매우 넓어 구성이나 효과를 감안하면 사실 별도로 구입해도 될 정도의 퀄리티로 보인다. 더불어 각 모델은 얹어놓은 기기의 무게에 따라서 총 네 개 모델이 준비되어 있다. 각각 베이스 하단에 노랑, 빨강, 녹색, 파랑 등의 스티커로 구분해놓고 있는데 이는 적용한 컴포넌트의 무게를 기준으로 최적의 성능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참고로 각 모델에 부여된 최적의 무게는 상당히 중요하다. 만일 이 구간을 초과한 무게를 갖는 기기를 올려놓을 경우엔 급격히 아이솔레이션 성능이 떨어지므로 정확히 확인하고 적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셋업 & 리스닝 테스트

두 종류의 아이솔레이션 베이스를 테스트하기 위해 동원한 제품은 볼더 866 인티앰프다. 워낙 섀시 완성도가 높긴 하지만 소스기기와 앰프 등 다양한 서킷 보드가 모두 내장된 제품으로 턴테이블 다음으로 그 차이가 꽤 많이 대비될만한 제품이다. 더불어 스피커는 윌슨오디오 소피아 3를 매칭해 테스트했다. 워낙 정석 매칭으로 꾸준히 서로 어울리던 브랜드라서 위화감이 없었고 예전의 그 익숙한 윌슨 사운드가 익숙하면서 반갑기도 했다.

Alison Krauss - It doesn’t matter
Essential

HRS의 E1과 S3 두 모델을 테스트해보면 둘 다 유사한 음질적 변화를 이끌어낸다. 일단 보컬 레코딩에서 그 음질적 변화는 모두 유사한데 일단 엘리슨 크라우스의 ‘It doesn’t matter’를 들어보면 확실하다. 볼더 866을 바닥에서 E1 위로 옮기면 바닥에 놓았을 때보다 일단 음성이 맑아지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보컬의 음상은 약간 더 뒤로 빠지는데 턴테이블에도 적용하면 좋을 듯하다. S3에서는 더욱 이런 변화 양상이 커진다. 기본적인 변화의 방향은 동일하지만 그 폭이 더 크다. 배경이 더 깨끗해지며 보컬의 존재감이 더 선명해진다. 음의 두께는 약간 얇아지는데 반대로 더 예리해지면 음상이 E1 때보다 더 뒤로 빠지는 모습을 보인다.

Daft Punk - Within
Random Access Memories 

건반 악기에서 소리의 배음 그리고 엔벨로프 특성 변화가 두드러졌다. 어택이 더 간결하고 릴리즈도 빠른 편이다. 예를 들어 다프트 펑크의 ‘Within’에서 타건은 무척 단정해지는 모습으로 E1과 S3 모두 동일한 변화를 이끌어낸다. 물리적 진동으로 인한 불필요한 잔향을 제거한 느낌으로 악기 고유의 사운드가 더 명료하게 드러난다. S3에선 더 급진적인 소리 변화가 관찰된다. 더 명료해지며 중, 저역이 더 단정한 모습으로 표현되다. 아주 작은 효과음도 깨알처럼 싱싱하게 표현되면서 디테일 향상이 눈에 띈다.

Kanye West - Runaway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

강력한, 그러나 또랑또랑한 건반 음으로 시작하는 카니예웨스트의 ‘Runaway’는 매우 극명한 동적 표현력의 변화가 포착된다. E1을 적용할 경우 소리가 약간 샤프해진다. 날카롭고 건조해지진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되며 소리의 진행 양상에서 매우 날렵하게 느껴진다. 높은 음으로 올라갈때도 매우 깨끗하게 쭉 뻗어나가는 모습을 보인다. S3에서는 엔벨로프 특성의 변화가 느껴진다. 어택이 더 빠르고 선명하게 다가온다. 마치 트랜지언트 특성이 향상된 듯한 소리 변화다. 미지근하거나 온건한 느낌은 사라지고 매우 견고하면 냉정하리만큼 빠르고 선명한 소리만 남는다. 한편 E1과 S3 모두에서 저역 양감은 조금 빠지는데 디테일은 더 상승하고 단단해진 모습을 보여준다.

Eiji Oue - The great gate of kiev
Tutti!- Orchestral Sampler

역시 낮음 음계에서 변화 폭은 여타 음악에서도 증명된다. 예를 들어 [Tutti!] 샘플러에서 전람회의 그림 중 ‘The great gate of kiev’를 들어보면 총주시 저역 안정감이 두드러지며 물리적으로 단단해진 인상이다. S3의 경우 저역 강도와 안정감은 물론이며 악기 분리도도 동반 상승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이내믹스 대비 또한 더 높아져 안 그래도 상당히 커다란 스케일의 대편성 녹음인데 좀 더 박진감 넘치는 사운드를 들려준다. 아이솔레이션 베이스 하나로 만들어지는 변화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성능을 보여준다.

총평

필자 개인 시스템에서도 HRS 댐핑 플레이트를 사용하는 이유는 한번 적용한 후 빼버리면 아쉽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이런 받침대 하나가 소리에 얼마나 영향을 주겠냐고 생각하지만 실제 적용해보고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의외로 쉽게 청감으로 확인되어버린다. 물론 시작적인 즐거움도 추가된다. 일반적인 디자인의 받침보다 훨씬 더 멋있는 디자인으로 심플하면서도 보는 맛이 좋다. 동일한 기기도 HRS에 올려놓았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 음질은 물론이며 기기의 위용이 달라진다. 음질, 디자인 등 모든 면에서 HRS E1과 S3은 나의 기대에 부합했다. 마음 같아선 HRS의 SRX 같은 오디오랙을 사용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그것이 부담된다면 E1이나 S3 같은 아이솔레이션 베이스를 적용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HRS가 만든 이 두 가지 아이솔레이션 베이스를 한번 체험해본다면 이후에 당신의 오디오엔 항상 이들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게 될 것이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