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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파와 플러터 에코

자기만의 리스닝 룸을 갖는다는 것, 오디오 애호가들의 로망이다. 자유로운 기기 세팅과 최적 볼륨 확보를 통해 오디오 기기가 내줄 수 있는 최선의 음을 듣고 싶은 까닭이다. 하지만 리스닝 룸의 숙명 같은 것이 있으니 바로 정재파(Standing Wave)와 플러터 에코(Flutter Echo)다. 말은 어렵지만 이는 누구나 알고 있는 ‘방이 내는 불편한 소리’다. 속이 메스꺼워지는 부밍, 귀가 아픈 고역의 비명, 특정 악기 대역의 실종, 이런 것. 

플러터 에코는 딱딱한 표면의 두 면이 서로 평행하게 마주 보고 있을 때 그 두 면 사이에서 계속해서 발생하는 에코, 즉 울림이다. 에너지가 약해지긴 하지만 1차 반사음에 이어 2차, 3차, 4차 반사음이 계속된다는 얘기다. ‘플러터’라는 단어 자체가 ‘심한 진동’을 뜻한다. 이러한 플러터 에코 상황에서는 음이 깨끗해질 수가 없다. 

정재파는 직접음이 반사음과 만나 중첩(peak)되거나 소멸(dip)되는 현상이다. 두 파동의 산과 산이 만나면 피크이고, 산과 골이 만나면 딥이다. 그러나 모든 직접음이 정재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스피커가 놓여진 공간의 크기에 따라 정재파를 일으키는 특정 주파수가 정해져 있다. 즉, 양 벽면(스피커가 놓여진 전면 벽과 반대편 벽)의 거리에 따라 이미 운명적으로 정재파 주파수가 정해져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정재파의 파장은 두 벽면 사이 거리의 2배이기 때문에 주로 저역 주파수에서 발생한다. 왜냐하면 고역 주파수는 두 벽면 사이 거리의 반도 안 되는 짧은 파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예를 들어 40Hz라는 저주파수는 파장이 8.5m이기 때문에 두 벽면 사이의 거리가 4.25m만 돼도 발생한다. 

다행히 정재파 주파수를 알아내는 공식이 있다. 공기의 속도(340m/s)를 두 벽면 사이의 거리(L)의 2배로 나누면 된다(정재파 주파수(f) = 340 / 2 x L). 하지만 정재파가 딱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값은 최저 정재파 주파수이고 이후 2배, 3배, 4배 등 정수배 주파수도 정재파를 일으킨다. 물론 배수가 높아질수록 에너지는 약해진다. 예를 들어 두 벽면 사이의 거리가 4m이면, 정재파 주파수는 42.5Hz, 85Hz, 127.5Hz 등이 되고, 5m이면, 34Hz, 68Hz, 102Hz, 10m이면, 17Hz, 34Hz, 51Hz 등이 된다. 

핵심은 두 가지다. 정재파는 주로 저역 주파수에서 발생하고, 리스닝 룸이 커질수록 일어나기 힘들어진다. 피크를 이룬 정재파를 우리 몸이 느낄 때 흔히 ‘저역 과다 = 부밍(booming)’이라고 부르고, 좁은 방일수록 정재파의 피크와 딥 문제가 심각해지는 이유다. 이에 비해 고역 주파수는 파장이 아주 짧기 때문에 현실의 리스닝 룸에서 정재파를 일으키기는 힘들다. 예를 들어 5kHz 파동이 정재파를 일으키려면 양 벽면 사이가 0.034m, 즉 3.4cm여야 한다. 방 크기가 그냥 큼지막한 주사위 사이즈여야 한다는 얘기다.

이러한 플러터 에코와 정재파를 없애기 위해 등장한 것이 음향판(Acoustic Panel)이다. 음향판은 크게 2종류다. 불필요한 음을 빨아들여 소멸시키는 흡음판(Absorber), 직접음을 난반사시켜 반사음의 폐해를 막는 분산판(Diffuser)이다. 이들 음향판은 녹음이나 믹싱 스튜디오, 리스닝 룸에서는 거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고, 음향 환경이 좋은 그 넓은 콘서트홀에서도 플러터 에코를 막으려면 음향판은 어쩔 수 없이 도입해야 한다. 공간이 넓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AGS-FS1, AGS-FL1, AGS-MN1
기본 팩트 체크

최근 하이파이클럽 시청실에서 특이하게 생긴 음향판을 보고 들었다. 일본 니혼 온쿄 엔지니어링(Nihon Onkyo Engineering)에서 나온 AGS(Acoustic Grove Systems)라는 제품 3가지다. 시청실에 스피커처럼 세워두는 AGS-FS1, 바닥에 놓는 AGS-FL1, 기기나 랙 위, 아니면 디스플레이 앞에 놓는 작은 AGS-MN1이다. 서로 다른 굵기의 여러 나무 봉을 여러 개 박아놓았는데, 직접 세어보니 AGS-FS1이 10개, AGS-FL1이 14개, AGS-MN1이 11개다. 위아래와 가운데 굵기도 서로 다르다. 

생김새와 설치 위치로 봐서는 흡음판과 분산판,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음향 액세서리로 보인다. ‘분산판은 그렇다 쳐도, 흡음판은 안에 스펀지가 가득 들어있거나, 미세한 구멍이 수백, 수천 개 뚫린 패널이어야 하는 것 아니가?’라고 의아해하실 수도 있겠다. 하지만 흡음은 스펀지처럼 ‘압력’을 흡수해서도 이뤄지고, 미세 천공처럼 ‘속도’를 누그려뜨려도 이뤄지기 때문에 서로 다른 직경의 여러 원기둥 모여있는 디자인만으로도 흡음 역시 어느 정도 이뤄질 것으로 짐작된다. 

일단 이들 3개 제품에 대한 제작사의 설명과 스펙부터 확인해 봤다. 

AGS-FS1

AGS-FS1 : 원하는 위치에 자유롭게 세워놓을 수 있는(free-standing) 음향판이다. 그래서 ‘FS’다. 다양한 굵기의 나무 봉이 독특한 패턴으로 박혀있는데, 이는 자연스러운 분산 효과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1개나 2개만 설치해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하지만, 제작사가 공개한 세팅 도면을 보면 직접음이 처음 만나는 측면 벽 2개 지점(A)과 앞 벽 2개 지점(B), 소위 베이스 트랩을 설치하는 4개 코너 지점(C)이 권장 설치 지점이다. 높이는 140cm인데, 테스트를 위해 이 제품을 들어 올리려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무게가 무려 24kg이나 나간다.

AGS-FL1

AGS-FL1 : 바닥(floor), 특히 스피커 앞에 놓는 음향판이다. 그래서 ‘FL’이다. 제작사에 따르면 강력한 스피커 반사음을 줄여주기 때문에 사운드 이미지가 정교해지고 다이내믹스는 높아진다. 바닥 반사음을 줄이기 위해 통상 두툼한 카펫을 깔곤 하는데, 개인적인 경험상 카펫은 룸 사운드를 너무 데드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있다. 이에 비해 AGS-FL1은 분산에 보다 포커싱을 둔 액세서리로 보인다. 가로 세로가 60cm인 정사각형 모양이며 높이는 12cm, 무게는 8kg을 보인다. 

AGS-MN1

AGS-MN1 : 가로폭이 66cm, 안길이가 11cm, 높이가 30cm로 컴팩트한데다 무게가 2.5kg이어서 설치가 보다 용이한 음향판이다. ‘MN’은 제작사에서 따로 설명은 없지만 미니 사이즈에서 착안 것이 거의 확실하다. FS-1이 세로 방향으로 나무 봉이 박힌 것과는 달리, MN1과 FL1은 가로 방향으로 박혀 있다. 권장 설치 위치는 오디오 랙 상단이나 모니터 앞 등이며, 사운드스테이지의 깊이와 폭을 넓혀주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삼나무 숲의 소리를 들어라”

필자의 궁금증은 제작사에서 음향판 디자인을 왜 이런 식으로 디자인했을까 하는 점이다. 그리고 제품 이름에 ‘숲’을 뜻하는 ‘그로브(grove)’가 들어간 점도 궁금했는데, 제작사의 연혁과 AGS 탄생 히스토리 등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 배경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니혼 온쿄 엔지니어링(NOE), 우리말로 일본 음향 엔지니어링은 1972년에 설립됐다. 레코딩 스튜디오나 프로덕션, 스튜디오, 콘서트홀, 극장 등의 설계 시공이 주요 업무인데, 이들의 손길이 미친 곳은 일본 킹 레코드, 소니 뮤직엔터테인먼트, 폴리도 스튜디오 등 녹음 스튜디오가 50여 곳, TBS TV, TV 아사히, 후지텔레비전 등 방송사가 150여 곳에 이른다. 이미 프로 세계에서 인정을 받고 검증을 끝낸 제작사라는 얘기다. 

AGS는 제작사의 음향 엔지니어링 노하우와 기술을 홈 오디오에도 활용키 위해 탄생했다. 개발 아이디어는 설립자 시게타 토시아키 씨가 20여 년 전부터 제창해온 ‘숲의 음향 환경 연구’에서 비롯됐다. 교토 교외에 펼쳐진 삼나무 숲에서 ‘숲의 소리’에 감동을 받은 후, 스튜디오 등의 실내 공간에서도 이 ‘숲의 소리’를 재현하기 위해 AGS를 개발했다고 한다. 

그러다 2008년 일본 NHK의 HD520 스튜디오 리뉴얼 작업에 참여하게 된 것이 기폭제가 되었다. 스튜디오 벽면의 음향판 구조를 교토 북쪽 삼나무 숲을 본따 수많은 나무 봉들로 채운 것. 그것도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직경이 굵어지게끔 배치를 했다. 이 결과 일반 흡음판이나 분산판에 비해 훨씬 명료한 저역과 자연스러운 중고역의 울림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HD520 스튜디오 리뉴얼 작업의 결과물이 세간에 큰 화제를 모았고 이를 소형화한 AGS 유닛이 2010년 무렵에 상용제품으로 나오게 됐다. 그리고 AGS 기술은 2011년에 일본 음향협회(The Acoustical Soiciety of Japan)로부터 제19회 기술 개발상(Technological Development Prize)을 수상했다. 

한편 당시 일본 잡지에 실린 AGS 유닛을 보면, 현행 AGS-FS1을 빼닮은 실반(Sylvan)과 AGS-MN1을 빼닮은 앙크3(ANKH-III), 그리고 실반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벽면을 따라 여러 개 설치하는 앙크1(ANKH-I) 등이 눈길을 끈다. 방 위아래 코너에 설치하는 앙크4(ANKH-IV)도 있다. 이후 라인업을 정리하며 최근 리론칭한 제품들이 이번 AGS-FS1, FL1, MN1이다.

숲 음향의 이론적 근거와 수치

이들 제품은 단순하게 생긴 나무 원기둥이 늘어선 것처럼 보이지만, 각 나무의 재질과 굵기, 조립 방법, 심지어 도료나 도장 방법 등에서 차이가 있다고 한다. 물론 이는 수많은 컴퓨터 시뮬레이션 작업을 통해 얻어진 결과이며, 그중 어느 하나라도 바뀌게 되면 AGS 효과는 크게 줄어든다고 한다. 

NOE에 따르면 숲은 태생적으로 노이즈 저감 효과가 있다. 숲을 이루는 대지와 나무들은 기본적으로 흡음 효과(sound-absorption effect)가 있으며, 거의 무작위하게 펼쳐진 각종 나무들은 특별한 분산 특성(special behavior of sound waves diffusion)을 갖고 있다는 것. AGS는 바로 이러한 숲의 음향효과를 일반 리스닝 룸이나 스튜디오에서도 체험할 수 있도록 한 연구 결과물이다. 

따라서 AGS 유닛들은 1) 저역 주파수의 정재파를 억누르고, 2) 반사음의 폐해를 누그러뜨리며, 3) 설치 위치에 따라서는 흡음 효과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NOE의 설명이다. NOE는 그러면서 몇 가지 그래프를 제시하고 있는데 굳이 AGS 제품을 구입하지 않더라도 일반 룸 음향 특성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참고할 만하다. 

위는 AGS 유닛 설치 전후를 비교한 그래프다. 장축 거리가 7.1m, 높이가 5.0m인 방인데, 자세히 보면 오른쪽 방 뒷벽에 AGS 유닛이 설치된 것을 알 수 있다. 사운드 에너지를 나타내는 붉은색이 왼쪽 그래프에서는 왼쪽 직접음과 뒷벽이 일으킨 오른쪽 반사음에 집중되고 있으며, 이들이 만나 일으킨 가운데 딥과 양쪽 피크의 형상이 뚜렷한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비해 오른쪽 그래프에서는 왼쪽 직접음 외에는 별다른 사운드 에너지가 관찰되지 않는다. AGS 유닛 설치로 인해 정재파가 분산된 것이다. 

이번에는 반사음의 저감 효과를 나타내는 비교 그래프다. 왼쪽이 일반 벽에 직접음이 부딪힐 때, 오른쪽이 AGS 유닛이 설치된 벽에 직접음이 부딪힐 때를 나타낸다. 일반 벽은 거의 비슷한 양의 에너지를 가진 반사음을 튕겨내는 데 비해, AGS 유닛 설치 벽은 신기할 정도로 반사음이 거의 증발 수준으로 약해진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일반 흡음판과는 달리 사운드 에너지의 급격한 손실이 없어서 보다 자연스러우면서도 깨끗한 소리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끝으로 플러터 에코 비교 그래프다. 가로축이 시간, 세로축이 음압(SPL)이며, 위가 일반 벽, 아래가 AGS 유닛이 설치된 벽이다. 자세히 보면 일반 벽에서는 직접음(direct) 이후에 1차 반사음(1st reflected sound)이 -6dB 낮은 상태에서 나타난 후, 2차,  3차, 4차 반사음이 이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전형적인 플러터 에코인 것이다. 이에 비해 AGS 유닛이 설치된 벽에서는 1차 반사음이 직접 반사음에 비해 -20dB나 에너지가 약해졌고 디케이(decay) 특성도 좋아졌으며, 2, 3, 4차 반사음 또한 사라진 것을 알 수 있다. 직접음을 보다 선명하게 들을 수 있다는 얘기다. 

시청

AGS-FS1, FL1, MN1 시청은 하이파이클럽 제1시청실에서 이뤄졌다. AGS-FS1을 두 포칼 마에스트로 유토피아 EVO 스피커와 옆면 벽 사이에, AGS-FL1을 스피커 바로 앞 바닥면에 놓았다. AGS-MN1은 가운데 오디오랙 상단에 올려놓았다. 시청은 총 5번에 걸쳐 진행했다. 1) 이들 제품을 모두 투입한 상태에서 들어보고, 2) 전부 다 빼버린 상태에서 똑같은 곡들을 들어본 후, 3) AGS-MN1만 투입했을 때, 4) AGS-FL1을 추가 투입했을 때, 5), AGS-FS1까지 모두 투입했을 때 음질 변화를 조심스럽게 추적했다.    

Diana Krall - California Dreamin
Wallflower

먼저 완전체로 들어보면, 평상시보다 재생음의 디테일과 편안한 소리라는 인상이 도드라진다. 공간감과 온기도 늘어난 것 같지만, 이 모든 것들이 반드시 AGS 유닛들 투입 때문이라고는 말하기 힘들다. 오차와 오류가 있을지라도 AB 테스트를 해야 하는 이유다. 액세서리 투입 전후를 ‘세게’ 비교하기 위해 AGS 유닛을 모두 시청실 밖으로 옮겨놓은 후 재시청에 들어갔다. 가장 큰 변화는 원근감의 소실. 무대가 평면적으로 그리고 밋밋하게 바뀌었다. 좌우폭이 감소해진 점도 느껴진다. 그러나 이들 유닛을 뺐을 때 음의 촉감 자체가 오히려 촉촉해진 것은 의외다. 첨단 월-인-월(Wall-In-Wall) 공법 등 시공 때부터 룸 튜닝에 적극 대처한 하클 제1시청실의 위력이 아닐까 싶다. 

이어 가장 가벼운 AGS-MN1을 랙 위에 투입했다. 보컬이 선명하고 생기가 돌며 SN비가 높아지는데, 이는 중고역 분산 효과로 보인다. AGS-FL1을 스피커 앞 바닥에 놓자 음의 입자감이 곱고 깨끗해지며 무대가 투명해진다. 반주음이 보다 생생히 들리고 무대의 위아래 폭이 늘어난 것도 특징. 역시 시청실 바닥은 애호가들이 간과하기 쉬운 룸 튜닝 포인트임이 분명하다. 끝으로 AGS-FS1까지 투입하자, 무대가 보다 3D 화면으로 바뀌고 음들은 저마다 정갈해진다. 특히 좌우 벽면에서 음원이 출발한 듯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AGS-FS1을 필자 쪽으로 50cm 앞으로 끌어당겨 설치하면 예상했던 대로 무대 뒷공간이 보다 크게 열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ric Clapton - Wonderfult Tonight
24 Nights

AGS 모든 유닛을 제 자리에 놓은 상태에서 들어보면, 이 곡 특유의 광활한 공간감과 탁 트인 무대가 첫 음부터 잘 느껴진다. 소릿결이 평소보다 소프트해진 점이 얼핏 파악된다. 이어 AGS 모든 유닛을 다 빼버린 상태에서 들어보면, ‘캘리포니아 드리밍’ 때와 마찬가지로 무대가 평면적으로 디고 스케일 역시 줄어든 모습이 확연하다. 현장 느낌은 줄고 소리 자체가 얌전해졌다. AGS-MN1을 투입하면 ‘이 정도였나?’ 싶을 만큼 별의별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특히 차임 소리가 두드러진다. 연주자들의 표정까지 보이는 듯한데, 이는 MN1이 주로 사운드 이미지메이킹에 키를 쥐고 있는 중고역 주파수를 효과적으로 분산시킨 덕으로 보인다. FL1을 추가하면 박수 소리가 바닥에서 피어오르는 듯하고 차임 소리는 더욱 생생히 들린다. 확실히 FL1은 무대의 높이를 키우는 특효약이다. 끝으로 FS1까지 보태면, 3D 안경을 끼고 라이브 현장을 보는 듯하다. 서라운드 효과가 장난이 아니다.  

Dave Brubeck Quartet - Take Five
Time Out

그동안의 학습효과 때문일까. AGS 유닛 완전체로 들어보면, 차분하고 깨끗하며 정리 정돈이 잘 된 음이 넓은 무대에서 솟구친다. 가뜩이나 룸 튜닝이 잘 된 시청실이었는데 그 순도를 더욱 높인 것 같다. AGS 유닛을 다 뺀 상태에서 다시 들어보면, 갑자기 오디오 볼륨을 줄인 것처럼 드럼의 타격감이 줄고 음들이 대부분 동글동글해진다. 색소폰 소리도 은근히 야윈 듯하다. MN1을 투입하면, 좌우폭이 넓어지고 현장감이 늘어나며 색소폰의 양감도 풍부해진다. 전체적으로 투명하고 선명해진다. 이 상태에서 FL1까지 투입하면, 드럼과 피아노가 아까보다 왼쪽으로 이동한 것 같고, 색소폰은 보다 맑은 고음을 내준다. FL1이 전반적으로 아주 선전을 하고 있는데, 이처럼 고음역대를 활짝 열리게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끝으로 FS1을 보태면, 왼쪽에서 등장한 드럼이 FS1이 놓여진 위치까지 이동한 상태에서 연주를 하는 듯했다. 전체적으로 음상이 원래 있어야 할 곳에 맺히고 약음에 대한 디테일이 늘어난 것 같다. 

Leonard Bernstein, New York Philharmonic Orchestra
Mahler Symphony No.2
Mahler 2

이 곡은 평소 하클 제1시청실에서 제법 많이 들었다. AGS 유닛이 투입된 상태에서 들어본 첫인상은 1악장 어디에도 음들이 상처를 받지 않았다는 것. 음의 윤곽선에서 색 번짐이 없고, 저역은 깔끔하다는 것이 그 증거다. 청량해서 기분까지 좋아지는 음과 무대다. AGS 유닛을 모두 빼버린 상태로 들어보면, 무대의 좌우 폭이 좁아져 오케스트라가 마치 미니어처처럼 등장한다. 재생음들 역시 얌전하고 너무 수더분하다는 인상. 저역의 에너지감도 확연히 줄어들었다. MN1을 투입하면, 1악장 초반 첼로 무리들의 음끝이 살아나고, 바이올린의 약음이 생생해진다. 배경이 보다 딥 블랙으로 펼쳐지는 것도 큰 변화다. 이 상태에서 FL1을 투입하면 누워있던 음들이 마침내 벌떡 일어나 신나가 돌아다닌다. 윤곽선 역시 보다 선명해졌다. 참고로 이 곡은 필자의 실수로 FS1을 추가 투입한 상태에서 비청을 하지 못했다.

Lamb of God - Ashes of the Wake
Ahses of the Wake

역시 탄력적이고 말쑥하며 선명한 음들이 처음부터 난무한다. 하여간 AGS 세 유닛이 완전체를 이루면 ‘색 번짐, 눅눅, 흐릿, 매캐, 물컹, 흐물흐물, 갑갑’ 이런 촉감과는 거리가 멀다. 의외인 것은 음의 리퀴드함이나 매끄러움은 오히려 이들 유닛을 다 빼버리고 원래 룸 튜닝 상태에서 늘어난다는 것. 전반적으로 AGS 유닛들이 투입됐을 때 소릿결이 약간 건조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무대가 좁아지고 재생 음악의 리듬감이 약해지며, 무대 가운데에서 음들이 상대적으로 뭉치는 모습 등 AGS 유닛의 빈자리가 너무나 크다. MN1을 투입하면 음량과 기세에서는 큰 변화가 없지만 드럼 림 플레이가 보다 선명해지고, FL1을 추가 투입하면 무대의 깊이가 늘어나고 음들이 보다 쫄깃쫄깃 해진다. 끝으로 FS1을 추가 투입하면, 좌우 벽을 뚫고 음들이 솟구쳐 나오는 믿기 힘든 풍경이 펼쳐진다. 누구나 알아챌 수 있을 만큼, 그 사운드스테이지의 변화가 생각보다 컸다.   

총평

필자는 현재 부푼 꿈에 젖어있다. 조만간 전용 리스닝 룸이 생길 것 같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토록 갖고 싶었던 ‘인생 스피커’도 들여놓을 예정. 오디오 애호가 생활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스피커 뒷벽과 옆벽 사이의 거리를 최소 1m 이상, 충분히 벌려놓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게다가 룸 사이즈가 10평 정도 되기 때문에 그 지긋지긋한 저역 부밍과 창문 유리창 떨림소리도 ‘이젠 안녕’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와 설렘은 이번 AGS-FS1, FL1, MM1 시청으로 다시 궁지에 몰리게 됐다. 아니, 사실 '궁지'라기보다는 '행복한 고민'이다. 정재파라는 것은 직육면체 공간에서 어김없이 유령처럼 배회할 것이며, 콘크리트 벽면을 그냥 생얼로 놔두기에는 이번 ‘삼나무 숲’ 간접 체험 효과가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면 또다시 룸 튜닝의 오묘하지만 복잡한 수렁에 빠지게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 가장 효과가 강렬하고 종합점수가 높았던 것은 AGS-FS1이다. 가격대가 그리 만만치는 않지만 2개의 FS1을 스피커 뒷벽 모서리나 이번 시청에서처럼 옆벽 제1차 반사 지점에 놓고 싶다. 음들이 쫄깃쫄깃 해지는 FL1도 탐나지만, 바닥면에 놓아야 한다는 비주얼이 마음에 걸린다. 앞벽에 대형 TV를 놓은 애호가라면 MN1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진지한 일청을 권한다. 

by 김편 오디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