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B&W 그리고 클라세

하이파이 오디오, 넓게 보면 IT/음향기기를 수시로 리뷰하고 음질과 관련된 이슈들, 음반과 관련된 정보들을 다루다 보니 다양한 일들을 하게 된다. 글은 가장 정확하고 정교한 정보와 테스트 결과를 반영하는 것은 변함이 없지만, 유튜브나 SNS에서 사진으로 소통하곤 한다. 하드웨어뿐만 아니다. 음악 관련 책을 내니 여기저기서 테스트를 요청하는 일이 많아졌다. 예를 들어 최종 마스터링이 끝난 디지털 음원을 검청 해달라는 부탁이다. 또는 아날로그의 부활을 증명이나 하듯 테스트 프레싱 엘피를 검청 해달라는 요청도 종종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음악을 다루는 스튜디오나 마스터 커팅 엔지니어, 즉 마스터링 엔지니어에 따른 음질적 특징들에 균질한 특성이 포착된다는 점이다. 일단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엔지니어도 사람인지라 음질에 대한 그 사람만의 기준이 음원에서 드러난다. 그다음으로 사용하는 모니터링 시스템도 그 결과에 영향을 주어서 균형 잡힌 시스템이 그 결과물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새삼 놀라울 때가 있다.

애비로드 스튜디오 1의 컨트롤 룸에는 B&W 800D3 스피커에 클라세 앰프가 매칭되어 있다.

1965년경 존 바워스와 로이 윌킨스가 본격적으로 출발시킨 B&W의 경우 수많은 레코딩 스튜디오의 클래식 모니터 스피커로 활약해오고 있다. 도이치 그라모폰부터 데카 등 전 세계 최고 수준의 스튜디오들이 B&W의 주요 고객이었고 애비로드 스튜디오나 미국의 사운드미러 그리고 국내 사운드미러 코리아까지 B&W가 점령하고 있다. 더불어 애비로드는 클라세 앰프를 매칭해 사용한다.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 사용하고 있으니 절대적으로 뛰어난 스피커나 앰프라는 것은 아니다. 그런 뻔한 이야기는 흥미롭지 않다. 그들 간의 암묵적인 이해관계도 있을뿐더러 약속된 사운드의 표준이라는 것에서 공감대가 높았을 뿐이다. 그리고 스튜디오용과 가정용은 엄밀히 그 선택 기준이 다르다. 

클라세의 전성시대

클라세의 경우는 특히 애비로드 스튜디오 같은 곳에서 사용하기 이전에 이미 첫 번째 전성기가 있었다. 지금 들으면 의아해할지 모르겠지만 클라세는 1980년대 클래스 A 앰프의 수호신 같은 존재였다.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는 패스랩스 그리고 크렐을 나와 독립한 댄 다고스티노, 마크 레빈슨 등과 함께 하이엔드 증폭의 알파와 오메가 같은 존재 중 하나가 클라세였다. DR 시리즈는 그중에서도 필자도 사용해봤을 만큼 유명했다. 수모 9이나 패스 알레프, 포르테 등과 함께 저출력 A 클래스 앰프 중에선 그나마 적은 비용으로 고음질을 즐길 수 있었던 앰프였다.

그들의 전성기는 CA101, CA201, CA301, CA401 그리고 오메가, 오미크론까지 이어지는 대장정의 그 어디엔가 존재했다. 음질은 좋았지만, 태생적으로 과도한 발열과 내구성 덕분에 DR 시리즈 이후 클라세는 변신을 시도했고 대출력 AB 클래스 앰프들은 오디오파일들의 기대에 충분히 부응했다. 이 당시부터 B&W와 클라세의 밀월관계는 가속화되었다. 코드 일렉트로닉스 같은 앰프들과 함께 B&W와 가장 좋은 매칭을 이루는 브랜드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특히 최상위 오메가 라인업은 그 80년대부터 이어져온 클라세 사운드의 분수령이었다. 그야말로 북미의 마크 레빈슨이라고 해도 될 만한 성과였다. 당시 오미크론을 못 들어본 것이 아직도 아쉬운 기억 중 하나로 남아 있다. 

클라세의 못다 한 꿈

오메가 시리즈 이후 클라세는 다시금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는 기회를 얻었다. 2천 년대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커다란 시장 장악력을 갖추었던 B&W 그룹이 클라세에 투자하기 시작한 것. 애비로드 스튜디오에 B&W와 클라세가 함께 세팅된 것과 무관하지 않은 사건이었다. 이 당시 마크 레빈슨 브랜드를 거느린 마드리갈랩 그리고 린(Linn)의 우수한 인재들이 클라세로 이직했고 클라세는 또 한 번 하이엔드 메이커로 약진하는 전환점을 맞이했다.

클라세의 브랜드 디렉터 - 데이빗 노버(Dave Nauber)

당시 북미의 마크 레빈슨이라고 표현할 만도 한 것이 당시 부사장으로 영입한 데이빗 노버의 경우 마크 레빈슨, 프로시드, 레벨 등 마드리갈랩 산하 브랜드를 책임졌던 인물이다. 게다가 델타 시리즈 디자인 팀에서 설계를 맡은 엔지니어는 톰 카탈라유드는 코네티컷 대학 출신으로 IBM을 거쳐 마드리갈랩에서 마크 레빈슨의 No.380 등 거의 모든 앰프와 소스기기 개발에 참여한 출중한 엔지니어였다.

디자이너 모튼 워렌(Morten Warren)

뿐만 아니다. 린에서 CD12 등 디지털 기기를 개발했던 앨런 클락 등이 모두 클라세에 영입되어 드림 팀을 구성했었다. 마지막으로 델타 시리즈의 디자인은 그 유명한 모튼 워렌의 디자인이다. B&W의 디자이너로 근무했던 시절 노틸러스 800 시리즈를 디자인한 바로 그 디자이너가 클라세의 델타 시리즈를 디자인한 장본인이다.

B&W 그룹의 커다란 투자 아래 각국에서 모여든 석학급 엔지니어와 톱클래스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의 결합은 델타 시리즈를 낳았다. 그리고 델타 시리즈는 2천 년대 클라세를 대표하는 상징처럼 자리 잡았고 꽤 성공했다. 하지만 클라세는 이후 별다른 성과를 이뤄내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그마 시리즈로 재기를 꿈꾸었으나 델타 시리즈로 황금기의 막이 내리는 듯 보였다. 그리고 문을 닫은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다시금 클라세는 천운 같은 기회를 잡았다. 미국의 거대 그룹 사운드 유나이티드가 손을 내민 것. 그리고 그들은 다시 클라세의 가장 마지막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들의 못다 한 꿈 델타 시리즈 부활의 서막이었다. 

델타 프리 & 모노

이번 테스트는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새로운 델타 시리즈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최상위 모델인 프리앰프 및 모노블럭 파워앰프다. 우선 프리앰프는 단순한 아날로그 프리앰프가 아니다. 고전적인 형태에서 더 나아가 여러 디지털 입력단을 추가해놓고 있다. 일단 DAC를 내장해 USB, AES/EBU, 광, 동축 입력에 모두 대응한다. 게다가 이더넷 입력을 통해 네트워크 스트리밍 재생도 가능한 일종의 스트리밍 프리앰프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입력에서 DSD까지 재생 가능한 이유다.

하지만 아날로그 프리앰프로서 델타 시리즈의 전통을 잇고 있는 모습이다. 무척 다양한 RCA/XLR 입력 및 출력이 가능하며 패스 스루, 즉 바이패스 입력도 가능해 AV 시스템과 연동도 가능하다. 아마도 프리앰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볼륨 부분은 짚고 넘어갈 만하다. 무려 0.25dB 간격으로 –93dB에서 +14dB까지 조정되는 정밀 볼륨이다. 실제 사용해보면 답답할 정도로 굉장히 미세한 간격의 볼륨 조정이 가능해 근거리 시청에서도 사용하기 좋은 프리앰프임을 알 수 있다. 더불어 MM 및 MC 카트리지에 대응하는 포노단이 기본 제공되고 MC의 경우 7.5옴부터 1K옴까지 로딩 임피던스 조정이 가능해 턴테이블 사용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이 외에도 다양한 EQ 및 톤 컨트롤 기능 등, 편의 기능을 다양하게 구비해놓고 있는 모습이다.

파워앰프로 눈을 돌리면 일단 커다란 레벨미터가 시선을 앗아간다. 이는 단순히 시각적인 즐거움을 위해 만들어놓은 것이 아니다. 대개 레벨미터라고 하면 매킨토시, 아큐페이즈 등을 연상하지만 클라세는 애초에 설계 자체를 달리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VU, 즉 음량 단위를 실시간으로 포착해 로그 스케일로 정밀하게 계산해 표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화려하진 않지만 확실한 음량을 표기해주며 정갈한 아날로그 시계 같은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다.

그 크기를 보면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겠지만 클라세 모노 파워앰프는 풀 아날로그 대출력 증폭을 그 목표로 하고 있다. 대용량 트랜스포머를 중심으로 215,000uF 용량의 거대한 커패시터 뱅크를 구축해놓은 것에서부터 눈치챌 수 있다. 부품 또한 독일 문도르프 커패시터 등이 눈에 띈다. 출력단의 경우 기존 델타 시리즈가 바이폴라를 사용했다면 이번 모노블럭 앰프엔 MOSFET을 사용한 것이 큰 차이점이다. 채널당 무려 16개를 채용했는데 이로써 8Ω 기준 채널당 300 와트 대출력을 얻어내고 있다. 특히 4Ω에선 600 와트, 2Ω에서 1000 와트 등 거의 선형적인 출력 특성을 보여준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청음

필자가 경험해본 클라세는 델타 이전 세대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이번 시청은 10년 이상의 시간차를 두고 만나는 클라세였다. 그만큼 과거 클라세의 소리와 간극이 꽤 있었다. 이번 시청에서 함께 짝을 이룬 B&W 800D3 그리고 MSB 프리미어 DAC는 그동안 몰라보게 변모한 클라세 사운드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어주었다. 테스트는 하이파이클럽에서 이루어졌는데 일단 최근 메머드급 하이엔드 앰프에서나 마주칠 수 있었던 압도적인 위용을 뽐냈다.

Anne Sofie Von Otter Meets Elvis Costello - Baby Plays Around
For The Stars

하지만 실제 테스트해보면 외관에서 풍기는 풍만하고 선 굵은 사운드가 아니라 매우 세련되고 조용하며 세밀한 소릿결을 보여주었다. 일단 안네 소피 폰 오터의 ‘Baby plays around’를 들어보면 무척 깨끗한 무대 위에 곱지만 뭉개지지 않는 섬세하고 상쾌한 보컬 톤이 들려온다. 마치 북미의 약간 서늘하면서 맑은 하늘을 떠올리는데 대역 밸런스도 모범적이어서도 흠잡을 곳이 좀처럼 없어보였다. 참고로 볼륨 같은 경우 0.25dB 간격으로 매우 세밀하게 움직여 근거리 시청에서도 섬세한 음량 조정이 가능하다. 게인은 높은 편이 아니어서 802D3와 달리 800D3에선 꽤 높이 올려야 했다.

Dvorak Busch Trio
Piano Trios Op.65 & 90 'Dumky'

부시 트리오가 연주하는 드보르작 피아노 삼중주 ‘Dumky’는 지난번 오렌더 N30 테스트시 요긴하게 사용했었는데 이번에도 좋은 교보재가 되어 주었다. 800D3의 특성을 클라세 분리형은 매우 안정적으로 보좌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토널 밸런스를 왜곡하지 않으며 전체적인 대역에 대해 균형과 조화를 이룬다. 음조 자체는 밝은 편이지만 과거 클라세에 비하면 무대 전면으로 과하게 쏟아지지 않고 오히려 점잖게 약간 뒤로 물러나 전/후 거리감을 충실히 반영해준다. 기본적으로 아주 맑고 조용하며 특히 고역은 볼륨을 올려도 지나치게 뻗치거나 갈라지지 않아 피로감 없이 편안한 촉감을 준다.

Muse - Hysteria
Absolution

물리적인 촉감은 물기가 제거되어 잘 마른 옷감처럼 기분 좋은 느낌을 준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건조하고 딱딱하진 않아서 다행인데 무엇보다 입자가 상당히 곱고 세부 다이내믹 컨트라스트가 매우 넓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일단 모범적인 밸런스 위에 역동적인 특성도 겸비해 비트가 빠른 팝, 록 음악도 이질감 없이 잘 재생해낸다. 빠른 완급 조절 능력은 뮤즈의 ‘Hysteria’ 같은 곡에서 유독 빛난다. 과도 응답 특성이 뛰어난 앰프에서 보여주는 빠르고 날렵한 어택은 마치 부드럽고 빠르게 질주하는 세단을 연상시킨다. 볼륨 레벨을 –10까지 올려도 다이내믹스가 무너지지 않은 안정적인 모습이다.

Shostakovich Barber
The Pittsburgh Symphony Orchestra, Manfred Honeck  Shostakovich: Symphony No. 5 / Barber: Adagio

이번 시청에서 함께 사용한 MSB의 제품들도 그렇지만 다이내믹레인지와 SN비 등 최고의 수준에 오른 제품들에서 한결같이 느낄 수 있는 공통점은 다이내믹스 표현이다. 대개 높은 게인을 통해 대폭 과장시킨 음이 부유하면서 작은 지척임까지 세밀한 표현을 가능케 하는 마이크로 다이내믹스는 손실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맨프레드 호넥 지휘로 듣는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4악장에서 이 레코딩의 풀 다이내믹스를 거의 모두 쉽게 핸들링 하는 모습이다. 복잡한 악곡에서도 패시지가 엉키지 않고 정교하게 분해된 강/약 대비 능력은 실체감을 북돋운다. 자꾸만 볼륨을 높이게 만드는 이유다.

Ólafur Arnalds
Found Songs

다시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올라퍼 아르날즈의 ‘Found songs’를 들어보면서 청음을 마쳤다. 열 곡 이상의 레코딩을 들어보면서 새삼 느낀 것은 아주 작은 음악적 뉘앙스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섬세하게 증폭, 가감 없이 표현해준다는 것이다. 무대 또한 전면으로 쏟아지지 않고 전/후 거리감을 충분히 조망해주면 악기들이 빽빽한 느낌을 주지 않고 거리를 두고 홀 톤을 만들어준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음정, 또렷한 타건과 충분한 배음 정보 그리고 잔향의 시간까지 소스 기기로부터 전달받은 시그널을 순수하게 확대, 전송한 듯한 소리다.

총평

21세기 이후 그 이전 세대의 펼쳐놓은 하이엔드 오디오의 설계 철학 위에 여러 다양한 레시피가 선보여 왔다. 하지만 가끔 여러 히어로들이 군웅할거하던 당시 브랜드의 신제품이 출시되면 뭔가 아련한 감상에 젖곤 한다. 때론 여러 진화를 이루며 또 다른 경지에 오른 브랜드도 있지만, 자본에 팔려나가면 그 색채가 바랜 경우도 있다. 클라세의 경우 B&W와 함께 한 시대를 빛낸 브랜드로써 다시 부활했고 그 모습은 최전성기의 그것을 그대로 이어나가고 있다. 린과 마크 레빈슨의 엔지니어들이 닦아놓은 기반 그리고 모튼 워렌의 디자인한 그것까지 오롯이 담고 스트리밍 DAC까지 합체해 태어났다. 말로는 ‘순수한 원음’을 더욱 강조하면서도 갈수록 더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오디오파일의 이율배반 속에서 클라세는 시계를 되돌려 순수한 아날로그 증폭의 벨 에포크 시대를 되뇌게 한다. 이번 프리 및 모노블럭 파워앰프는 그 중심에 섰던 클라세가 던지는 부활의 신호탄이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