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世民씨는 케임브리지로 떠났다.
◈. 옥스퍼드냐, 케임브리지냐?
◈. 며느리에게 이발 기술 전수하면서
◈. 생각 따라 달라지는 삶....
◈. 내 아들
★ 모든 사진은 클릭하면 크게 원본을 볼 수 있습니다.
4년 전 대학 졸업선물로 몽블랑에 'No return No success' 라 새겨 아들에게 주었다.
世民씨는 케임브리지로 떠났다.
마음 같아서는 공항까지 나가고 싶기도 했지만, 氏의 처가(妻家) 어른들이 나간다니 떠들썩하니 번잡한 것도 싫고 아들도 “아버님 혼자 광주 내려가실 걸 생각하면 제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습니다. ” 라 해서 광주 버스터미널에서 내 평생을 바쳐 키워온 세민씨 부부를 출국 환송했다. 아들은 엄마와 누나는 외국 여행 중이고 아빠가 오랫동안 사랑하고 의지해오던 ‘똘이’가 저 세상으로 간지 얼마 되지 않아 그 허망함을 아직도 삭히지 못하고 있는 아빠를 혼자 남겨 두고 지네들 부부만 희희낙락 출국하는 것이 맘에 걸렸나 보다.
그래서인지, 본시 효자이기도 하지만 아들은 이번에는 더욱 유별나게 나를 챙긴다.
“아빠,,, 저 없는 동안 컴퓨터나 홈페이지 관리하시는데 애로가 없을까요?
제가 뭐 도와 드릴 것이 있으면 말씀하세요? ...
컴퓨터를 최신 것으로 바꿔 드릴까요?
이거 제가 사용하던 것인데 아버님 혹시 필요하지 않으세요?”
하며 이것저것 살피더니 딸내미 컴퓨터와 무선 공유기로 연결해주고 DivX Player 를 구해 설치해주었다. 세 개의 컴퓨터가 무선 네트워크로 연결되어서 이제 우리 집은 첨단 시스템이다. 전에는 프로젝터나 HD TV으로 영화를 보려면 거실에도 별도의 컴퓨터 두고 CD로 구워서 봤는데 이제는 그것 없이도 두 컴퓨터의 하드에 있는 영상 파일을 무선으로 불러 간편하게 볼 수 있다.
또 인터넷이 되지 않은 딸내미가 내방을 수시로 들낙이며 방해하던 것도 무선 공유기덕에 각자 자기 방에서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내 컴퓨터에서 딸내미나 DivX Player의 파일의 복사 삭제가 가능하게 됐으니 참으로 편하다.
하드의 저장 용량도 셋을 합하면 1000Gb(1 테라바이트)나 되니 ..........
(결혼 전에는 아들을 군(君)으로 호칭하다가, 결혼 후로는 ‘씨’라고 존칭한다. 전통 예법에 어긋날지도 모르나 아들을 한 인간으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내 마음이므로...)
이뿐인가, 世民씨는 종일 키보드를 두드리고 앉아있는 아빠가 걱정이었던지 중고 컴퓨터 한 대 값인 명품 키보드(독일산 Cherry)와 그동안 경제적으로 도와줘서 감사하다고 몽블랑 펜을 선물로 내민다.
평소 말을 아끼는 아들인지라 다른 집 아이들 처럼 살가운 맛이 없어서 불만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잘 알고 있다.
다행히 나를 닮지 않고 제 엄마의 유전자를 이어 받았는지 어렸을 적부터 아들은 나를 뛰어 넘는 깊은 심성과 조용한 인격,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파악하고 실천하는 것은 내가 따를 수 없다는 것을....
이 몽블랑 펜을 차마 쓸 수 있겠는가?
아깝고 고마우니 소중하게 간직하다가 손주라도 생기면 넘겨 줄 생각이다. 그러나 키보드는 잘 사용하고 있다. 감촉이 매우 부드러워서 타이핑이 즐거울 정도다. 소설가 선생님의 문장 한편을 타이핑하려면 종일 또는 몇 날이 걸리는 대 이젠 편할 것 같다. 인터넷에서 보면 키보드 마니아 사이트가 있고 그 세계에는 명품도 많고 이런 저런 튜닝도 하는 것을 보고 '세상에는 이런 일도' 하는 생각으로 웃었다. 아들도 종일 키보드를 두드리는 일이라서 키보드에 여간 관심이 많은 것이 아니다. 아주 작은 것부터 큰 것 까지 몇 개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런 아들이 작년에 Cherry사의 소형 키보드를 개조해 달래서 즐거운 마음으로 며칠에 걸쳐 복잡한 link- Keyboard Tuning 을 해준 적이 있었다.
명품이 아닌들 아들의 선물이 어찌 고맙지 않을 것이냐?
애비를 생각해준 그 마음이 이미 내게는 감격스런 선물인 것을............
옥스퍼드냐, 케임브리지냐?
운이 좋아서 였지 어디 실력이 있어서 였겠나만,
말로만 들어온 명문 두 대학에 모두 합격한 아들은 어느 대학으로 가야할지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아빠, 어디로 가야 할까요?”
“세민씨가 가고 싶은 데로 가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러긴 한데요. 옥스퍼드에서는 외국인에게는 좀처럼 주지 않은 TA(teaching assistance : 조교)를 준다고 하고 칼레지도 영국 사람들도 들어가기 힘들고 클린턴도 석사과정을 다녔던 University College로 배당해 주겠다네요. TA 월급이면 등록금과 생활비를 해결할 수 있거든요. 우리 대학들의 조교와는 달리 한 과목은 강의를 해야 하는데 수업방식도 질문과 답변위주라 제 영어실력에는 버겁기는 하지만요, 옥스퍼드에서 제시한 조건들이 너무 좋은 것들이라 포기하자니 아깝고요...”
“...............”
“케임브리지는 그런 혜택이 없어서 당분간 아빠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생물학에서는 아빠도 아시는 것처럼 케임브리지가 독보적이지요. ‘진화론’의 ‘찰스 다윈’부터 저를 지도해줄 link-Sir Blundell 교수도 세계적인 석학이고요. 그렇지만 영국은 등록금이 워낙이 비싸거든요”
“이 사람아, 고민할 것이 뭐 있는가?
그렇다면 당연히 link- 케임브리지로 가야지, 이 마당에 돈이 문젠가 ...”
근대 서양 문명 원천은 영국에서 부터 라고 나는 생각한다.
오늘 세계를 싸잡고 있는 나라들은 대부분 영국의 속국 내지는 그 영향을 받았던 나라들이 아닌가. 그래서 아들을 유학 보낸다면 반드시 영국으로 보낼 생각으로 9년전 아들이 대학입학해서 첫 방학 맞았을 때 나는 달랑 영국 히드로 공항에 착륙하는 비행기 표 하나 구해서 아들의 등을 떠밀어 영국으로 배낭여행 보냈다. 한 달 후 여행에서 돌아온 아들은 얼마나 고생했는지 다시는 여행 같은 것은 하지 않겠다 했다.
이 사진은 아들이 고 1 이었을 때 딸과 함께 서울 올라가서 하룻밤은 이화여대 앞에서 또 한 밤은 서울대 앞에서 자고 내려왔다.
두 대학 캠퍼스를 놀이 삼아 한가하게 걸으며 아빠의 대학생활 추억담을 들려 주기도 하기도 하고, 매점에 들려서는 딸에게는 이대 문양이 새겨진 반지를, 아들에게는 서울대 로고가 새겨진 시계를 선물했다.
그리고 밤에는 그 대학생들이 가는 카페나 술집에 들려 그들이 마시고 떠들며 노는 모습들을 자식들에게 보여 주었다.
애써 말하지 않았지만 자식들은 아빠의 심중을 읽었을 터이고, 둘 다 재수해서라도 그 두 대학에 들어갔다.
영국 배낭여행 또한 아빠는 늘 이렇게 은근스레 소망을 전달한다는 것을 익히 아는 터라 내가 그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들은 헤아렸을 것이다. 그리고 세민씨는 언제나처럼 내 희망을 이루어 냈다. 이제 아들은 전공하는 분야의 엘리트 코스 열차에 승차했으니 그 종착역인 Post-Doctor 과정은 미국의 하버드에서 마치게 될 것을 나는 확신한다.
며느리에게 이발 기술 전수
아들이 초등학교 다니기 전 부터 내 가족들의 머리는 내가 깎아 주었다. 아들이 대학 다닐 때도 매 달 이발 기구를 챙겨 들고 서울 올라가 머리도 깎아주고 술도 함께 마시고 '신촌복집'에서 해장도 하면서 살았다. 아내 머리도 내가 잘라 준다. 그래서 아내는 평생 미장원을 가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 아들 결혼식에 첨으로 다녀와서는 맘에 들지 않았는지 차라리 당신이 손질해 줬드라면 좋았을 것이라 한다.
영국에서는 모든 물가가 비싸지만 이발 값도 턱없이 비싸다는 말을 며늘아기가 어디서 들었는지 이발하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기에 4년 만에 아들 머리를 잘라 주며 며느리에게 그 실습도 시키면서 직선적으로 세민씨 내외에게 당부했다.
“박사 학위 취득이 중요하지만 거기에만 몰두하지 말고, 내가 자네들을 그 나라로 보내는 것은 그 민족의 성격과 문화, 예술 그리고 그들의 핏줄에 흐르는 민족성이 무엇이길 레 오대양 육대주를 몇 백년간이나 지배할 수 있었는지 배우시라는 것이니 틈내어 박물관이나 공연장을 찾기 바라네.
또 영국은 여러면에서 양면성이 극명한 나라라고 생각하네, 예를들면 왕을 모시는 군주국이면서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앞선 민주주의 국가이고 그것도 성문화된 헌법도 없이 말일세, 신사도가 처음 생긴 나라이고 지금도 여행자들의 기록을 보면 그 정신이 살아 남아 있는듯 하지만 동시에 훌리건(hooligan)들의 무법적이고 야만적인 행패라든지... 그런 양면성이 어떻게 발생했고 조화를 이루어 가는지도 탐구 하시기 바라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내 부탁은 자네들은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돌아올 생각 절대 마시게....”
“아버님... 그래도 손주가 생기면 뵈드리고 인사하러 와야지요....”
“아니네. 인터넷으로 보면 되는 것 아닌가?.. 모르겠네. 자네 남편 논문이 ‘사이언스’ 나 ‘네이처’ 에 실린다면 초대하거나 내가 영국으로 가겠네.... ”
친구 K는 중앙부처 이사관이었다.
정부 장학금으로 옥스포드에서 1년간 연수를 받았고 잦은 외국 출장에서 우리나라보다 선진 외국이 보다 합리적인 세상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친구다. 그러나 아들의 외국여행은 한사코 반대다. 이유인즉, 아들이 외국 맛을 알게 되면 노년에 서로 떨어져 살 수도 있기 때문이라며 늙어 힘 빠지고 병들면 아들이 최곤데 그저 자식은 가까운데 두고 수시로 오가며 사는 것이 노년의 행복이라는 주장이다. 큰 매제는 아들 둘을 같은 아파트 단지에 두고 시도때도 없이 오가며 재미있게 살고 있다. 그 매제의 주장도 같다. 다행히 그 조카들도 착한 심성이라 부자간의 의기가 항상 투합한다.
물론 그런 희망과 삶을 내가 부러워 할 망정 비판할 생각은 없다. 그것은 각자 선택한 삶의 유형일 테고 어떤 유형의 삶을 살던 그것은 비난의 대상일 까닭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더우기 그들 모두 서로 행복해라 하고, 가족의 울타리라는 것이 본시 그런 유대감을 바탕으로 하는 것일 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유형은 그들과는 조금 다르다. 장남으로서 부모를 모시고 남루하게 살아 오다 보니 자칫하면 부모가 자식의 발전을 가로 막거나 뒤에서 밀어주지는 못할 망정, 앞으로 나가려는 자식을 붙잡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는 결코 어떤 경우에라도 자식의 앞날에 장애가 되지 않겠다는 생각을 옛적 부터 해 왔다.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 마음은 주고 받는 왕복적인 사랑이 아니라 조건없이, 이유없이 일방적으로 자식에게 헌신하는 것이 삶에서 건질 수 있는 숭고하기 까지한 행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왔다. 그 헌신이 클 수록 그래서 육신이나 경제적인 곤란이 깊어질수록 혼자 느끼는 행복감도 증폭되는 것이 아닐까?
요즘 『이청준』님의 소설을 읽어 보니, 이런 내 마음은 그 소설 속에 자주 나오는 어머니의 『손사레 짓』비슷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ㅡ 아들아, 나는 됐다. 어미 걱정일랑 하덜 말고, 너 하나 만이라도 대처에 나가 크게 성공하는 인생을 살거라 ㅡ
이런 마음 아니었겠는가?
.... 자네들은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돌아올 생각 절대 마시게....라는 나의 신신당부 또한 『이청준』님의 소설 『눈길』중 한 대목, '대덕 삼거리 정류장'에서 새벽 차로 떠나는 아들을 향해 노인이 휘젓던 손사레와 동류의 父情 일것이다.
손사레 ㅡ그것은 '가슴에 피'같은 끝간데 없는 모정의 아픔과 소망의 절규일 것이다. 피곤하고 절망적인 삶에서 아들 하나 있는 것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그 노인에겐들 없었을 것인가?, 삶이 참담할수록 도란도란 모자간의 정을 나누며 서로 기대어 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도 모를리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욕심을 한참 건너 뛰어 오히려 자식을 멀리 떼어 내 보내며 자식의 앞길을 축원하면서 한사코 휘젓은 손사레는 비통스런 심사를 반전시켜 간절한 소망, 기도, 숭고한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모정의 거룩함이 아니었겠는가? 나는 짐작한다. 그러나 그 노인은 마냥 비탄스러운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자식을 태운 버스가 시야에서 사라졌어도 한참을 그 자리에서 떠날 수 없었을테고, 되돌아 오는 십여리 길에서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서름과 눈물 속에서 그 이상의 행복함도 함께 찾아 느꼈을 것이다고 짐작한다면 ... , 문학의 文자도 모르는 놈이 엉터리 해석을 한것 같아 소설가 선생님께 송구하다.
생각 따라 달라지는 삶....
20여년을 신세진 직장의 김용수 회장님은 지금도 가끔 전화로 호방한 목소리로 나를 성원해 주신다.
얼마 전 통화에서
“자네는 財테크를 어떻게 하시는가? ”
“.........”
“얼마 전에 임대홍 회장님과 그분 친구 분들을 만났는데 90이 내일인데 그분들은 만나면 지금도 계산기를 두드리며 뭣이 돈이 될 것인지 궁리한다네... 자네도 노후를 생각해서 재산을 증식할 연구를 하시게...”
임대홍 회장은 내가 다니던 회사의 대주주였던 대산그룹, 옛날의 미원 그룹 회장이시다. 그분의 검소한 생활과 절약하며 살던 일화는 많이 들었다. 미원 초창기 함께 근무했던 직원들은 어쩌다 점심에 회사 인근 식당에서 ‘간짜장’이라도 먹고 있으면 늦게 온 임회장은 그 곁을 지내면서 “아따... 그 간짜장 맛 있것구만... ” 하면서 그 일행과 저 만큼 구석에 앉아서 예의 변함없이 그냥 짜장면을 들었다는 것이다.
존경하던 소설가 선생님을 찾아 뵐 기회가 있었다.
“어떻게 그 많은 글들을 쓰셨습니까?”
“그래요?...
앞으로도 쓴 만큼은 더 쓸려고 하는데... ”
칠순이 코 앞인 선생님의 말씀이다.
대저(大抵) 사람들은 각기 생각하고 있는 것에 따라 그 인생의 모습을 다듬어 가고 종내는 그로 부터 침전물 같은 것을 남기는 것 같다. 돈만을 생각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은 재산을 남기고, 예술만을 전념한 이들은 불후의 명작으로, 목숨을 바쳐 신앙에 매진한 사람들은 종교의 숭고함을, 인생의 깊이와 삶의 질곡을 탐구하는 문학가는 거기에서 살아 숨 쉬는 철학적 인생을, 말초신경의 달콤한 쾌감만을 쫓아간 이들은 결국은 패가망신을.
ㅡ 이렇게 사람들의 생각은 내일의 그 사람의 모습을 만드는가 보다.
자식은 평생에 걸친 예술 작품 또는 내 무덤에 세우는 비석이나 그 비문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내 작품으로 이 땅위에 남긴다.
한 때 나는 분재에 미쳤었다. 새끼들 예방주사 맞춰야 할 돈은 없어도 월출산 아래 분재의 소재 살 돈은 있었다. 온갖 정성을 퍼붓어 키운 나무가 상상하던 모습으로 커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한 일이다. 어느 누가 그 분재를 몇 배의 값으로 되팔아 돈벌 생각을 한단 말인가? - 장사치가 아닌 바에야......
나무 한 그루 키우는 마음도 그럴진데, 하물며 사람을 키우는 부모의 마음이 -내 이미 孝를 실천한 바가 없거늘- 노년에 자식의 효도를 기대하거나 늙고 병든 육신 부양의 짐을, 앞길이 창창한 자식들에게 덤터기 씌울 생각을 해서야 되겠는가? 그래서 No Return No Success 라는 영어식 표현은 이미 10년전 아들의 장래에 대한 내 뜻을 세웠고, 4년 전 아들의 졸업을 축하하고 오늘이 있기를 기대하며 행여 아들이 나태, 방심할까봐 자네는 반드시 유학가야만 하고 또 큰 뜻을 펼쳐야 한다고 미리 기정사실로 쐐기를 박아둘 작정으로 영문법에 맞는지 어쩐지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지어낸 어설픈 작어(作語)다. 나는 이 절규 역시 소설가 이청준님의 어머님의 손사레와 같을 터라는 망상도 해보는 것이다.
ㅡ 또 하나의 내 작품이었던 먼저간 '똘이'가 한없이 애달퍼서
그 명복을 빌고 애도하며 극락왕생을 간절히 빌고 있다.
10월 12일 - '49제' 마칠 때 까지는 향과 촛불로 '똘이"의
천도와 이승에서 함께 했던 추억을 회상하고 싶다.
아들 내외가 떠나고 아내는 아직도 여행중이다.
아마 내 생에 처음 있는 것 같은 나 혼자만의 시간이다.
앞으로도 15일 - 혼자라는 것은 호젓해서 좋기만 하다.
내일부터는 차마 집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러진
이방 저방 버릴 것 버리고 대청소하면서 찬찬히 내 마음도
정리, 청소해야 겠다.
절약하려고 홍콩에서 갈아타고 16시간을 비행하는
아들 내외가 걱정도 되고 잠도 오지 않는다.
좀더 주고 논스톱 티켓을 사주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시비하는 사람없어 맘껏 매실주 홀짝거리며 밤새 이 글을 썼다.
-2006.10.27
내 아들
올해도
가을 바람은
살속 깊이 파고드네
다 분해되
재 되어 날아가는
내 세포들은
온 하늘로 가득하구나
소주 몇병에
흠뻑 젖으니
내 새끼 고운 얼굴 눈앞에 있어
음주운전 비틀거리며
나, 서울 가네
잘 생긴 내 새끼
의젖한 내 아들
내 새끼 술잔에
소주잔 부딛치며
마시고 마시며 잠들어 가고
잠드니
코스모스 보이지 않네
살. 뼈. 피.
다아 쏟아 부어도
더더욱 모자라는
첫 사랑보다 애틋한
내 아들은 영원한 연인이라네
못났어도
이쁘고 듬직하기 만한 내 새끼 만지며
나, 고슴도치 돼도 좋다네
용돈 몇닢 쥐어줘도
아릿한 마음은 가시지 않지만
눈 비비며
내려오는 새벽길
고속도로 쓸어가는
가을 바람도
훈훈한 내가슴을 비켜가네
1997. 10. 9
선 우
4년 전 대학 졸업선물로 몽블랑에 'No return No success' 라 새겨 아들에게 주었다.
“아빠,,, 저 없는 동안 컴퓨터나 홈페이지 관리하시는데 애로가 없을까요?
제가 뭐 도와 드릴 것이 있으면 말씀하세요? ...
컴퓨터를 최신 것으로 바꿔 드릴까요?
이거 제가 사용하던 것인데 아버님 혹시 필요하지 않으세요?”
하며 이것저것 살피더니 딸내미 컴퓨터와 무선 공유기로 연결해주고 DivX Player 를 구해 설치해주었다. 세 개의 컴퓨터가 무선 네트워크로 연결되어서 이제 우리 집은 첨단 시스템이다. 전에는 프로젝터나 HD TV으로 영화를 보려면 거실에도 별도의 컴퓨터 두고 CD로 구워서 봤는데 이제는 그것 없이도 두 컴퓨터의 하드에 있는 영상 파일을 무선으로 불러 간편하게 볼 수 있다.
또 인터넷이 되지 않은 딸내미가 내방을 수시로 들낙이며 방해하던 것도 무선 공유기덕에 각자 자기 방에서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내 컴퓨터에서 딸내미나 DivX Player의 파일의 복사 삭제가 가능하게 됐으니 참으로 편하다.
하드의 저장 용량도 셋을 합하면 1000Gb(1 테라바이트)나 되니 ..........
(결혼 전에는 아들을 군(君)으로 호칭하다가, 결혼 후로는 ‘씨’라고 존칭한다. 전통 예법에 어긋날지도 모르나 아들을 한 인간으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내 마음이므로...)
이뿐인가, 世民씨는 종일 키보드를 두드리고 앉아있는 아빠가 걱정이었던지 중고 컴퓨터 한 대 값인 명품 키보드(독일산 Cherry)와 그동안 경제적으로 도와줘서 감사하다고 몽블랑 펜을 선물로 내민다.
평소 말을 아끼는 아들인지라 다른 집 아이들 처럼 살가운 맛이 없어서 불만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잘 알고 있다.
다행히 나를 닮지 않고 제 엄마의 유전자를 이어 받았는지 어렸을 적부터 아들은 나를 뛰어 넘는 깊은 심성과 조용한 인격,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파악하고 실천하는 것은 내가 따를 수 없다는 것을....
이 사진은 아들이 고 1 이었을 때 딸과 함께 서울 올라가서 하룻밤은 이화여대 앞에서 또 한 밤은 서울대 앞에서 자고 내려왔다.
두 대학 캠퍼스를 놀이 삼아 한가하게 걸으며 아빠의 대학생활 추억담을 들려 주기도 하기도 하고, 매점에 들려서는 딸에게는 이대 문양이 새겨진 반지를, 아들에게는 서울대 로고가 새겨진 시계를 선물했다.
그리고 밤에는 그 대학생들이 가는 카페나 술집에 들려 그들이 마시고 떠들며 노는 모습들을 자식들에게 보여 주었다.
애써 말하지 않았지만 자식들은 아빠의 심중을 읽었을 터이고, 둘 다 재수해서라도 그 두 대학에 들어갔다.
영국 배낭여행 또한 아빠는 늘 이렇게 은근스레 소망을 전달한다는 것을 익히 아는 터라 내가 그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들은 헤아렸을 것이다. 그리고 세민씨는 언제나처럼 내 희망을 이루어 냈다. 이제 아들은 전공하는 분야의 엘리트 코스 열차에 승차했으니 그 종착역인 Post-Doctor 과정은 미국의 하버드에서 마치게 될 것을 나는 확신한다.
며느리에게 이발 기술 전수
아들이 초등학교 다니기 전 부터 내 가족들의 머리는 내가 깎아 주었다. 아들이 대학 다닐 때도 매 달 이발 기구를 챙겨 들고 서울 올라가 머리도 깎아주고 술도 함께 마시고 '신촌복집'에서 해장도 하면서 살았다. 아내 머리도 내가 잘라 준다. 그래서 아내는 평생 미장원을 가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 아들 결혼식에 첨으로 다녀와서는 맘에 들지 않았는지 차라리 당신이 손질해 줬드라면 좋았을 것이라 한다.
영국에서는 모든 물가가 비싸지만 이발 값도 턱없이 비싸다는 말을 며늘아기가 어디서 들었는지 이발하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기에 4년 만에 아들 머리를 잘라 주며 며느리에게 그 실습도 시키면서 직선적으로 세민씨 내외에게 당부했다.
“박사 학위 취득이 중요하지만 거기에만 몰두하지 말고, 내가 자네들을 그 나라로 보내는 것은 그 민족의 성격과 문화, 예술 그리고 그들의 핏줄에 흐르는 민족성이 무엇이길 레 오대양 육대주를 몇 백년간이나 지배할 수 있었는지 배우시라는 것이니 틈내어 박물관이나 공연장을 찾기 바라네.
또 영국은 여러면에서 양면성이 극명한 나라라고 생각하네, 예를들면 왕을 모시는 군주국이면서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앞선 민주주의 국가이고 그것도 성문화된 헌법도 없이 말일세, 신사도가 처음 생긴 나라이고 지금도 여행자들의 기록을 보면 그 정신이 살아 남아 있는듯 하지만 동시에 훌리건(hooligan)들의 무법적이고 야만적인 행패라든지... 그런 양면성이 어떻게 발생했고 조화를 이루어 가는지도 탐구 하시기 바라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내 부탁은 자네들은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돌아올 생각 절대 마시게....”
“아버님... 그래도 손주가 생기면 뵈드리고 인사하러 와야지요....”
“아니네. 인터넷으로 보면 되는 것 아닌가?.. 모르겠네. 자네 남편 논문이 ‘사이언스’ 나 ‘네이처’ 에 실린다면 초대하거나 내가 영국으로 가겠네.... ”
친구 K는 중앙부처 이사관이었다.
정부 장학금으로 옥스포드에서 1년간 연수를 받았고 잦은 외국 출장에서 우리나라보다 선진 외국이 보다 합리적인 세상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친구다. 그러나 아들의 외국여행은 한사코 반대다. 이유인즉, 아들이 외국 맛을 알게 되면 노년에 서로 떨어져 살 수도 있기 때문이라며 늙어 힘 빠지고 병들면 아들이 최곤데 그저 자식은 가까운데 두고 수시로 오가며 사는 것이 노년의 행복이라는 주장이다. 큰 매제는 아들 둘을 같은 아파트 단지에 두고 시도때도 없이 오가며 재미있게 살고 있다. 그 매제의 주장도 같다. 다행히 그 조카들도 착한 심성이라 부자간의 의기가 항상 투합한다.
물론 그런 희망과 삶을 내가 부러워 할 망정 비판할 생각은 없다. 그것은 각자 선택한 삶의 유형일 테고 어떤 유형의 삶을 살던 그것은 비난의 대상일 까닭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더우기 그들 모두 서로 행복해라 하고, 가족의 울타리라는 것이 본시 그런 유대감을 바탕으로 하는 것일 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유형은 그들과는 조금 다르다. 장남으로서 부모를 모시고 남루하게 살아 오다 보니 자칫하면 부모가 자식의 발전을 가로 막거나 뒤에서 밀어주지는 못할 망정, 앞으로 나가려는 자식을 붙잡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는 결코 어떤 경우에라도 자식의 앞날에 장애가 되지 않겠다는 생각을 옛적 부터 해 왔다.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 마음은 주고 받는 왕복적인 사랑이 아니라 조건없이, 이유없이 일방적으로 자식에게 헌신하는 것이 삶에서 건질 수 있는 숭고하기 까지한 행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왔다. 그 헌신이 클 수록 그래서 육신이나 경제적인 곤란이 깊어질수록 혼자 느끼는 행복감도 증폭되는 것이 아닐까?
요즘 『이청준』님의 소설을 읽어 보니, 이런 내 마음은 그 소설 속에 자주 나오는 어머니의 『손사레 짓』비슷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ㅡ 아들아, 나는 됐다. 어미 걱정일랑 하덜 말고, 너 하나 만이라도 대처에 나가 크게 성공하는 인생을 살거라 ㅡ
이런 마음 아니었겠는가?
.... 자네들은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돌아올 생각 절대 마시게....라는 나의 신신당부 또한 『이청준』님의 소설 『눈길』중 한 대목, '대덕 삼거리 정류장'에서 새벽 차로 떠나는 아들을 향해 노인이 휘젓던 손사레와 동류의 父情 일것이다.
손사레 ㅡ그것은 '가슴에 피'같은 끝간데 없는 모정의 아픔과 소망의 절규일 것이다. 피곤하고 절망적인 삶에서 아들 하나 있는 것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그 노인에겐들 없었을 것인가?, 삶이 참담할수록 도란도란 모자간의 정을 나누며 서로 기대어 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도 모를리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욕심을 한참 건너 뛰어 오히려 자식을 멀리 떼어 내 보내며 자식의 앞길을 축원하면서 한사코 휘젓은 손사레는 비통스런 심사를 반전시켜 간절한 소망, 기도, 숭고한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모정의 거룩함이 아니었겠는가? 나는 짐작한다. 그러나 그 노인은 마냥 비탄스러운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자식을 태운 버스가 시야에서 사라졌어도 한참을 그 자리에서 떠날 수 없었을테고, 되돌아 오는 십여리 길에서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서름과 눈물 속에서 그 이상의 행복함도 함께 찾아 느꼈을 것이다고 짐작한다면 ... , 문학의 文자도 모르는 놈이 엉터리 해석을 한것 같아 소설가 선생님께 송구하다.
생각 따라 달라지는 삶....
20여년을 신세진 직장의 김용수 회장님은 지금도 가끔 전화로 호방한 목소리로 나를 성원해 주신다.
얼마 전 통화에서
“자네는 財테크를 어떻게 하시는가? ”
“.........”
“얼마 전에 임대홍 회장님과 그분 친구 분들을 만났는데 90이 내일인데 그분들은 만나면 지금도 계산기를 두드리며 뭣이 돈이 될 것인지 궁리한다네... 자네도 노후를 생각해서 재산을 증식할 연구를 하시게...”
임대홍 회장은 내가 다니던 회사의 대주주였던 대산그룹, 옛날의 미원 그룹 회장이시다. 그분의 검소한 생활과 절약하며 살던 일화는 많이 들었다. 미원 초창기 함께 근무했던 직원들은 어쩌다 점심에 회사 인근 식당에서 ‘간짜장’이라도 먹고 있으면 늦게 온 임회장은 그 곁을 지내면서 “아따... 그 간짜장 맛 있것구만... ” 하면서 그 일행과 저 만큼 구석에 앉아서 예의 변함없이 그냥 짜장면을 들었다는 것이다.
존경하던 소설가 선생님을 찾아 뵐 기회가 있었다.
“어떻게 그 많은 글들을 쓰셨습니까?”
“그래요?...
앞으로도 쓴 만큼은 더 쓸려고 하는데... ”
칠순이 코 앞인 선생님의 말씀이다.
대저(大抵) 사람들은 각기 생각하고 있는 것에 따라 그 인생의 모습을 다듬어 가고 종내는 그로 부터 침전물 같은 것을 남기는 것 같다. 돈만을 생각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은 재산을 남기고, 예술만을 전념한 이들은 불후의 명작으로, 목숨을 바쳐 신앙에 매진한 사람들은 종교의 숭고함을, 인생의 깊이와 삶의 질곡을 탐구하는 문학가는 거기에서 살아 숨 쉬는 철학적 인생을, 말초신경의 달콤한 쾌감만을 쫓아간 이들은 결국은 패가망신을.
ㅡ 이렇게 사람들의 생각은 내일의 그 사람의 모습을 만드는가 보다.
자식은 평생에 걸친 예술 작품 또는 내 무덤에 세우는 비석이나 그 비문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내 작품으로 이 땅위에 남긴다.
한 때 나는 분재에 미쳤었다. 새끼들 예방주사 맞춰야 할 돈은 없어도 월출산 아래 분재의 소재 살 돈은 있었다. 온갖 정성을 퍼붓어 키운 나무가 상상하던 모습으로 커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한 일이다. 어느 누가 그 분재를 몇 배의 값으로 되팔아 돈벌 생각을 한단 말인가? - 장사치가 아닌 바에야......
나무 한 그루 키우는 마음도 그럴진데, 하물며 사람을 키우는 부모의 마음이 -내 이미 孝를 실천한 바가 없거늘- 노년에 자식의 효도를 기대하거나 늙고 병든 육신 부양의 짐을, 앞길이 창창한 자식들에게 덤터기 씌울 생각을 해서야 되겠는가? 그래서 No Return No Success 라는 영어식 표현은 이미 10년전 아들의 장래에 대한 내 뜻을 세웠고, 4년 전 아들의 졸업을 축하하고 오늘이 있기를 기대하며 행여 아들이 나태, 방심할까봐 자네는 반드시 유학가야만 하고 또 큰 뜻을 펼쳐야 한다고 미리 기정사실로 쐐기를 박아둘 작정으로 영문법에 맞는지 어쩐지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지어낸 어설픈 작어(作語)다. 나는 이 절규 역시 소설가 이청준님의 어머님의 손사레와 같을 터라는 망상도 해보는 것이다.
ㅡ 또 하나의 내 작품이었던 먼저간 '똘이'가 한없이 애달퍼서
그 명복을 빌고 애도하며 극락왕생을 간절히 빌고 있다.
10월 12일 - '49제' 마칠 때 까지는 향과 촛불로 '똘이"의
천도와 이승에서 함께 했던 추억을 회상하고 싶다.
아들 내외가 떠나고 아내는 아직도 여행중이다.
아마 내 생에 처음 있는 것 같은 나 혼자만의 시간이다.
앞으로도 15일 - 혼자라는 것은 호젓해서 좋기만 하다.
내일부터는 차마 집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러진
이방 저방 버릴 것 버리고 대청소하면서 찬찬히 내 마음도
정리, 청소해야 겠다.
절약하려고 홍콩에서 갈아타고 16시간을 비행하는
아들 내외가 걱정도 되고 잠도 오지 않는다.
좀더 주고 논스톱 티켓을 사주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시비하는 사람없어 맘껏 매실주 홀짝거리며 밤새 이 글을 썼다.
-2006.10.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