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서상범님께서 쓰신 글로 웹진의 컬럼에 있기에 많은 분들이 읽었으리라고
생각됩니다만 빈티지 모임란의 자료 취합 측면에서 제가 퍼왔습니다. 저자의 허락은 아직 못받았습니다.
빈티지의 흥망과 몰락
이제는 빈티지의 열풍이 지나간 것 같다. 십 여년 전 진공관의 화려한 부활과 더불어 시작되었던 한바탕의 소란은 IMF가 오기 전에 이미 그 정점을 지났고 이제는 불타버린 들판에 간혹 튀어나는 불씨마냥 잔해만은 남기고 있다.
한편에는 하이엔드의 끝을 향해 질주하는 현대파들이 있고 다른 끝에는 침향에서 나오는 추억을 머금은 낭만파들이 섞여있는 소리바라기의 무리들 가운데서 한 도도한 물결이 지나감을 느끼는 지금이야말로 빈티지를 다시 돌아보기 적당한 시점이 아닌가 한다.
빈티지가 거세게 밀어닥치던 10년 전쯤에는 빈티지 중의 빈티지는 아무래도 탄노이가 아니었을까 싶다. 오토그라프를 최고봉으로 골드, 실버, 레드 등등 각종 모니터 시리즈는 많은 팬들이 열망을 자극하는 단어였고 화려한 무늬목을 붙인 탄노이의 인클로져는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파트리샨의 당당함. 젠센의 우아함. JBL프로젝트 시리즈. 이런 미제와 영국제 -앵글로 색슨의 빈티지가 판세를 좌우할 때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독일제를 보았을 때 그 충격은 실로 대단하였다. 독일이 통일되고 난 뒤 구동독지역에서 썩어가고 있었을 히틀러시대의 앰프와 스피커가 등장했을 때가 빈티지의 최전성기였고 또 쇠퇴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당시 수백만원 선에서 머물렀던 빈티지의 단가가 독일제의 등장으로 단위가 한자리 올라갔다. 그리고 몰락을 시작되었다.
불과 1년 아니 2년 정도였던가! 1000만원 대를 호가하던 텔레풍겐 스피커가 백수십만원대까지 추락한 것이! 클랑필름, 자이스 이콘, 필립스 등등 신흥 독일 빈티지의 몰락은 내게 있어서 오디오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계기도 되었다. 95년 그 길고도 무덥던 여름 그 여름이 쓸고 가버린 자리에 더 이상 위풍당당했던 빈티지의 모습은 다시 볼 수 없었다.
그 폐허 위에 빈티지의 자리를 굳히고 있는 것은 의외로 알텍과 웨스턴이 아닌가 싶다. 10년전만 해도 쏘는 스피커, 귀가 따거운 스피커, 집에서는 못쓸 물건 취급을 받고 오직 소수의 추종자의 전유물이었던 알텍이 다른 강자들이 떠나간 빈 자리에 여전히 버티고 있다. 빈티지의 하이엔드라고 할 수 있는 웨스턴은 꿈속에서나 볼 수 있는 아니면 책에서나 볼 수 있는 기기라는 이미지가 강했지만 요즘은 웨스턴을 탐미하는 빈티지파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물론 거대한 웨스턴 혼을 가정으로 들여놓을 수 있는 사람의 수는 과거나 지금이나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으나 가정용으로 쓸 수 있는 작은 통에 유니트를 박아넣고 웨스턴의 진공관을 사용하여 자작품을 만든다거나 기존제품에 관과 교체하여 일종의 하이브리드(웨스턴 + 비웨스턴)식으로 웨스턴의 사운드를 체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 여기 이 시점에서 우리는 빈티지가 왜 재발견되었고 많은 애호가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는지 또 사라져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우리가 음악을 듣는 것과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음악이라는 것이 아무래도 인간의 감성을 풍부하게 해주어 삭막한 현대의 생활을 영위해나가는데 힘이 되어주고 있고 오디오는 그러한 음악을 들려주는 기기일 뿐만 아니라기기를 하나 하나 모은 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수집욕을 채워주고 또 다른 기기를 찾아 헤메는 설레임을 준다.
빈티지와 진공관이 재발견된 이유는 아마도 10여년전의 오디오에서 들려주지 못하였던 따뜻하고 정겨운 소리를 내어준다는 것, 그 소리가 어렸을때 극장이나 곡마단, 연극 등등 공공장소에서 많은 사람이 즐겼던 때 소리라는 것 또 하나 무시할 수 없는 것은 고물이라는 이유에서 저렴하였고 가격에 비해 덩치가 있었기 때문에 큰 것을 좋아하는 우리의 성격에 잘 맞았기 때문이 아니었나 한다.
주먹보다 약간 큰 유니트가 박혀있는 라면상자보다 작은 스피커가 수백만원 을 호가하는데 15인치 유니트가 수납되어 있는 5단 서랍장만한 스피커가 200만원 안밖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납득하기가 쉽지 않았을까?
우리들에게는 예전부터 전해져 오는 뜨거운 피를 속일 수 있는 재간은 아직은 없는 것 같다.삼국지 위지동이전에 우리를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민족이라는 설명이 있다고 한다. 예전에 잡기에 빠져 가산을 탕진했다는 조상을 한둘은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 남자들은 한가지에 몰두하는 달리 말해서 중독성이 강한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빈티지도 그런 식으로 하는 사람이 많았다. 오디오를 좋아하는 것은 죽음만이 치유할 수 병입네 하면서 젊잖은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늦은 시간도 마다않고 순례의 행진을 계속한다. 열정을 가진 사람은 많고 빈티지라고 할 수 있는 기기는 아무래도 제한되어있으니까 몇년이 지나니까 웬만큼 빈티지를 하는 사람이라면 예전에 오디오평론가나 가게주인이 가진 지식보다도 더 많은 것을 알게되었다.
오디오좋아하는 사람의 직업이 얼마나 다양한가? 해외 출장가서 일은 번개같이 처리하고 남는 시간이 오디오가게를 뒤지고 컴맹이라는 사람들도 인터넷에 들어가면 좋은 물건을 값싸게 구할 수 있다는 일념에 웹서핑을 배우고 ...
그렇게 해서 장만한 기계를 여러 동호인한테 자랑스럽게 내세웠다가 참담한 평을 듣고는 낙심해 한 적이 얼마이던가! 또 전자, 기계를 전공하거나 현장에서 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각종 측정기를 들이대어서 특성을 명명 백백하게 밝혀낸다. 나 혼자만 알고 있을 수는 없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가 아닌가! 만나는 사람마다 이야기를 하고 이를 들은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을 만나면 말을 전하고....
이렇게 10여년이 지나다 보니 요즘은 빈티지도 서열구별이 명확히 되어버렸다 내가 93년에 구입하여 한동안 잘들었던 알텍 1568앰프. el34를 출력관으로 40와트의 출력을 뽑아낸 내 첫번째 진공관 앰프... 당시 150만원을 주고 사서 AEG관을 구해서 갈고 입력트랜스 15095가 빠져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알텍 본사에 팩스를 넣어서 재고 있느냐고 물었었다. 친절하게 답장이 왔는데 여의도에 있는 동화음향이 한국대리점이니 그곳에 주문하라고 했다.
동화음향에서 알텍을 담당하던 사람이 원차장이란 분이었는데 이 양반을 들들 볶아서 결국 몇달만에 15095를 구해서 달았다. 프리아웃을 입력트랜스에 연결하니 당연히 승압이 되어서 같은 볼륨에도 소리가 커지는 것이었지만 그런 것을 몰랐던 당시는 그게 신기해서 역시 오리지날이 좋다는 소리를 하면서 우쭐대었다. 나중에 원차장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기한테는 원수가 3명이 있는데 부사장(성이 부씨였다) 영등포 서윤전자 김형택씨 그리고 나였단다.
15095사건 하나로 끝난 것이 아니였으니까. 진동판 달라 카다로그 달라 뭐달라 뭐달라..... 내가 생각해보아도 참 무모한 짓이였다. 수십년전에 생산중단된 제품의 자료와 부품을 이역인 서울에서 구해달라는 일이였으니...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1568도 물론 지금 내 수중에 없다. 오디오가게에도 1568을 찾기 힘들다. 10년동안 어느 정도 수준의 물건인지 정체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저역이 부족하고 소리를 쭉~ 벋어주는 성향이고 무엇보다 음악성이 부족한 앰프라는 것이 정평이다. 벙벙한 소리를 내어주는 탄노이같은 스피커와는 매칭이 괜찮으나 여타 혼스피커와는 상성이 좋지 않는다. 대충 이런 평을 받고 있다. 가격도 폭락해서 깨끗한 것을 100만원 수준이면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길을 걸은 앰프가 알텍 1570이다. 출력 165와트라는 진공관으로서는 엄청한 출력을 뿜어주는 괴물인데 90년초에는 350만원대를 가던 것이 요즘은 200만원 안쪽이면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찾지 않는 앰프가 되어버렸다. 역시 거칠고 음악성이 부족한 것이란다. 반면 알텍 127, 1520같은 앰프는 가격이 2배이상 올랐고 잘 보이지도 않는다.
웨스턴은 풍향이 더했다. 한때 111C라는 1:1라인트랜스를 구할려고 줄을 서다시피 했다. cd플레이어 출력단에 이 트랜스를 달아서 프리에 연결하면 아주 기막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한데 써보니 싸구려 CDP에서는 효과가 좋았지만 고급CDP로 가면 갈 수록 소리가 탁해져서 트랜스를 안거치니만 못한 결과를 주었다. 트랜스의 말로는 비참했다. 그렇게 구하려고 몸부림치던 사람들이 일제히 던져버렸고 가격도 반값으로 폭락하였다. 보급형 CDP에 물리면 좋은 결과가 나오건만 한번 사람에게 외면당하니까 왕따는 순식간
이렇게 되니까 깨끗하고 평판이 좋은 기기의 값은 천장부지로 뛰어버렸다. 이제는 빈티지를 제대로 하려면 하이엔드를 하는 사람이 지불해야될 만큼 듣다. 그나마 하이엔드는 돈만 있으면 물건은 얼마든지 구하지 빈티지는 돈이 있다고 해도 쉽사리 구할 수 없는 물건이 많다.
이런 사정으로 95년 여름을 정점으로 빈티지의 물결은 지나가버렸다. 이제 그 폐허 위에 널리 알려진 사실들을 엮어서 자신에게 알맞은 좋은 기기를 구하여 음악의 길로 매진한다 라고 좀 더 오디오파일다운 방향을 잡아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