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디오파일 숙명의 아젠다: ‘전원 플랫폼’의 알파와 오메가 ▶
최근에 서브우퍼 하나를 날려먹었다. 과정은 이랬다. 전체 시스템을 리노베이션하며서 몇 개의 기기가,
나갔고 새로운 기기가 몇 개 들어오는 나날들이었다.
따라서 기존에 사용하던 멀티탭에서 파워케이블을 뽑았다가 다시 꼽는 경우가 생겼다.
그런데 다른 모든 기기들의 메인 전원은 내렸고 멀티탭에 꼽힌 케이블들을 대 여섯 개의 전원 케이블
을 하나씩 빼기 시작했다. 그리고 각 기기마다 새롭게 전원 케이블을 연결한 후 전원 케이블을 다시
역순으로 꼽아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지막 하나를 꼽는 순간 어디선가 초저역 노이즈가 깔렸다.
상당히 거북한 험이 발생했는데 대역을 보아 서브우퍼가 분명했다. 황급히 전원 케이블을 서브우퍼에서
빼내며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다시 파워케이블을 꼽은 순간 그 초저역 험이 다시 살아나 방안
을 휘감았다. 아뿔싸.... 서브우퍼가 고장이 나버렸다. 항상 전원은 켜놓은 상태로 사용하는 서브우퍼에서
바로 파워케이블을 뺐다가 꼽으면서 액티브 서브퍼의 내장 파워앰프를 손상시킨 것이다.
저역만을 담당하는 서브우퍼 하나만 해도 전원부 설계가 부실할 경우 이런 사태가 생길 수 있다.
하물며 적게는 1··2 개, 많게는 8개 이상의 장비에 전원을 공급하는 전원장치가 제대로 된 성능을 가지지
못할 경우 어떤 불상사가 펼쳐질까 ?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단순히 기능적인 문제만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가장 중요시하는 음질적인 문제로 이어진다.
오디오파일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인 전원 플랫폼에 대한 아젠다는 대게 유사한 패턴으로 형성된다.
예를 들어 현재 B&W 의 오리널 노틸러스(Nautilus)를 운용하고 있다고 치자. 1인치 메탈돔 트위터와
2인치 메탈돔 그리고 4인치 미드레인지와 12인치 우퍼로 구성된 이 스피커는 각 유닛당 1개의 파워앰프
를 붙여 주어야한다. 이른바 멀티앰핑 시스템이 필요한 스피커다. 모든 파워앰프는 동일한 앰프로 연결
하고 채널 디바이더를 중간에 투입해 프리앰프로부터 받은 시그널을 대역별로 할당한다. 모든 세팅이
완성된 후 소리를 들어보며 세밀한 대역 밸런스를 완성했다. 그런데 무언가 부족하다. 저역이 좀 느슨
하게 느껴지면서 전체적인 음상이 좀 붕 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아무리 세팅을 바꾸고 크로스오버
세팅을 바꾸어도 해결할 수가 없다. 그런데 모든 파워앰프에 전원을 공급하는 전원장치와 파워케이블을
바꾸니 그동안 고민했던 부분들이 해결되었다.
매크로 영역이 아닌 마이크로 영역에서는 기기 자체가 아닌 조그만 악세사리나 혹은 전원 관련
플랫폼에 변화를 주는 것이 오히려 큰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전원 관련 플랫폼은 특별히 무엇이 최고라는 것이 없고 동일한 제품도 그 사용방법에 따라서 그
결과가 천차만별로 변화할 만큼 여러 악세사리 중에서도 그 변화폭이 크다.
그 이유는 하이파이라는 것도 결국은 전기라는 밥을 먹고 움직이는 것이 전자제품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참 인기가 좋았던 RGPC 라는 메이커의 440 전원 딜리버리의 경우 파워앰프에 직결하느냐
아니면 두 개를 병렬로 셋업해서 연결하느냐에 따라서도 다이내믹스에서 차이가 컸다. 여기에 AVR을
엮어 사용하면 또 다른 결과가 도출된다. 하지만 현재 이 모든 전원장치들을 뒤로 하고 초고가 멀티탭
들이 등장하고 있다. 내부의 여러 필터들이 오히려 음질적으로는 해악이 되는 경우를 경험을 통해 체득
하면서 오히려 멀티탭으로 눈을 돌리는 오디오파일이 많이 생겨난 것이다.
물론 멀티탭 하나만을 사용하기도 하며 집안 전기 사정에 따라 AVR 이나 차폐 트랜스 또는 리제너레이터
등을 함께 엮어서 사용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각 기기의 전단에는 어떤 필터도 내장되지 않은 멀티탭을
사용하는 것이 음질적으로 뛰어나다. 모든 오디오기기가 그렇듯 신호 증폭이 이루어지는 프로세스 바로
전단에서의 전원 상태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만난 베럼 어쿠스틱의 멀티탭은
나에게 여러 의미를 던져주었다. 바로 전원 때문에 골치아파하고 그 전원장치 덕에 울고 웃는 오디오파일
의 무한 반복 아젠다에서 적어도 멀티탭에 대한 고민은 많은 부분 해결해주었다는 안도감이다.
기본적으로 멀티탭 이전까지의 전원 플랫폼에서 DC 라던가 아니면 전압 불안정 등의 상황 등이 안정적
이라면 말이다. 다이내믹스의 하락, 정보량 손실로 인한 밀도감의 부족, 전원 공급이 안정화되지 못하고
병목 현상이 나타날 때의 음질적 손해는 오디오파일에게 굉장한 스트레스다. 그래서 이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면 물불 안가리던 동호인조차도 특별한 계기와 전원장치를 설치한 후 전기에 대해 안심하는 것을
보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최근에 베럼 어쿠스틱이 그런 고마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심심찮게 보인다.
※ 베럼 어쿠스틱 W-5 MK II 멀티탭 로듐 버전 ※
P-6MKII는 그런 의미에서 최고의 성능을 보여주는 멀티탭이었다.
그리고, P-6MKII 의 하위급으로 개발된 W-5MKII 는 플래그십의 설계 철학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우선 외관 하우징부터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알루미늄이나 아크릴 마감이 대부분인 최근 멀티탭의 하우징 소재가 아니다. 다음 아닌 나무를 하우징으로 썼다. 나무는 일반적으로 스피커 외 AC 와 DC 전원이 직접 흐르는 콤포넌트엔 잘 쓰이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견고하지 못해 내구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내부에 여러 보드를 설계해 장착할 경우 단단히 고정하기도 어려운 문제가 있다. 대게 알루미늄 섀시를 사용해 견고하게 설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최근 이런 나무를 사용해 전원 악세사리를 만드는 경우가 있다. 다름 아닌 스웨덴의 Entreq 라는 브랜드다. 모든 도체들이 유도하는 일종의 안테나 이펙트를 나무단자 및 하우징으로 해결한 것이다. 그라운드 전류 외 단자 표면 등에서 일어나는 여러 불필요한 전기적 이펙트를 나무라는 재료로 해결한 것인데 이것은 굉장히 특별한 케이스다.
이 회사의 대표는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목재건물을 허물어 이를 재료로 사용한 것이다. 무려 40년 이상 혹독한 기상 변화 등을 겪으며 비와 눈 그리고 바람은 물론 저온과 고온을 번갈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엄청난 강도의 나무로 숙성된 것으로 그 나무는 애초에 강도가 높은 배나무이기까지 했다. 국내/외에서의 히트는 그들의 전기에 대한 아이디어도 있었지만 나무라는 재료를 적절히 전원장치에 도입한 이상적인 예이다.
이런 면에서 W-5MKII 는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대단히 견고하면서 뛰어난 외관을 자랑한다. 손으로 두드려보니 내가 사용하고 있는 상당히 높은 퀄리티의 스피커를 만들기로 유명한 스웨덴 하이엔드 메이커 마르텐 Duke 스피커와 비스한 소리가 난다. 다만 조금 아쉬운 것은 다섯 개의 소켓이 설치된 멀티탭 치고는 좀 가볍다. 최근 상당히 두껍고 무거운 파워케이블이 많이 출시되는 것을 생각하면 무게를 좀 더 늘리거나 좌/우 폭을 넓혀 디자인했다면 물리적인 안정성과 인터페이스 측면에서 더 나을 뻔 했다.
단단한 목재 하우징 안에는 멀티탭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소켓이 장착되는데 독일 슈나이더 그룹에서 제조한 머튼(Merten) 으로 이미 해외에서 그 성능을 인정받는 소켓이 투입되었다. 중요한 것은 이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귀금속 가공 그레이드의 24K 도금 또는 로듐 도금을 해 전류의 흐름, 즉 전도율을 한 층 끌어올렸다.
소켓도 중요하지만 멀티탭에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이 소켓들의 연결인 사실. 이 부분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최종 퍼포먼스에 많은 차이가 난다. W-5MKII 내부에는 6N O.F.C 부스바를 사용한다. 일부 고가 전원장치 메이커들도 내부에 와이어를 덕지덕지 얽어서 각 소켓을 연결하는 것과 비교하면 전기의 흐름에 좋을 리 없는 접점을 최소화한 형태다. 왜냐하면 모든 하이파이 컴포넌트는 접점이 많을수록 접점 저항이 높아져 전기 흐름을 방해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대형 건물의 전력 분배 설계에서 부스바를 사용해 접점저항을 줄이고 전류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과 동일한 원리이다.
마지막으로 전류의 흐름에 있어서 진동은 바늘과 실 같은 것으로 이 부분은 앰프에서의 설계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전기로 인한 진동을 막기 위해 전원부를 플로팅하고 격벽 처리하며 레귤레이션 회로와 트랜스 등을 완벽히 분리하는 등의 설계도 차폐뿐만 아니라 이러한 진동과 관련된 이유 때문이다. W-5MKII 같은 경우 별 것 아닌 듯 보이지만 하단에 알루미늄 인슐레이터를 직접 가공해 장착했다. 또한 바닥이나 랙과 직접 접촉하는 부분엔 가죽을 덧대어 진동 소멸에 만전을 기한 모습이다.
도체의 순도, 접점 저항의 최소화를 위한 부스바 (BUS-BAR) 채용, 이 외에 전기적으로 자유로운 목재 하우징 등을 활용한 W-5MKII 는 마지막으로 진동에 관한 부분까지 섬세하게 매만지며 멀티탭으로서는 상당히 공을 들인 모델이다. 물론 기존에 사용했던 P-6MKII 의 성능이 워낙 탁월했기에 그만큼의 성능을 이끌어내진 못했지만 객관적인 성능 자체는 여전히 우수하다고 판단된다. 물론 여러 기기에 전원을 공급하는 통합 플랫폼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안정기, 즉 번인타임은 거치길 바란다.
우선 멀티탭의 변경은 전원의 움직임을 좋게 만들며 저항, 인덕턴스의 변화를 만들어낸다. 이로 인한 수치적인 uH, ohm 등까지 들먹일 수도 있겠지만 대게 접점저항과 접지저항이 낮아지면 전기의 흐름이 더욱 원활해지며 전원 공급에 있어 손실이나 왜곡 등으로 인한 음질적 열화를 방지할 수 있다.
테스트에는 에이프릴 뮤직의 AI-500iu, 린데만 뮤직북 10 dac 등이 쓰였고 마르텐 Duke 로 시청하면서 이루어졌다. 음악은 제니퍼 원스의 ‘Somewhere, Sombody', 'Way Down Deep' 외 다이애나 크롤의 ’In Case of You', 그리고 두다멜 말러 5번 교향 등 무손실 압축 음원을 사용했음을 밝힌다.
일단 노이즈에 대한 부분에서 상당히 고무적인 현상이 발생한다. 대게 전원은 그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거나 전기 내에 존재하는 노이즈 때문에 기기의 성능을 100% 이끌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파워앰프의 경우 벽체 설계가 잘 되어 있고 배전반으로부터 벽체에까지 OFC 선재로 접지와 차폐가 잘 되어 있는 경우 벽체에 연결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일반적인 가정에서 이런 공사를 하기란 쉽지 않다. 또한 내부 필터 등 액티브 소자가 설치되어 있는 경우 순간적인 전원 공급에 제한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W-5MKII 같은 경우 어떤 필터도 내장하고 있기에 구태여 벽체에 연결하지 않고 W-5MKII 로부터 전원을 공급받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보인다. 벽체에 꼽을 경우보다 배경이 좀 더 깨끗해지고 정돈된 느낌이다.
다음으로는 다이내믹스에 대한 부분을 들 수 있다. 어택 -> 디케이 -> 서스테인 -> 릴리즈로 이어지는 소리의 진행 순서에서 그 어느 곳에서도 길게 늘어지며 지져분한 배음을 만들지 않는다. 배경이 깨끗해지는 것은 물론 원활한 전원 공급 플랫폼은 소리의 완급조절, 힘의 분배가 굉장히 명확하고 빠르게 만들었다. 커다란 다이내믹 레인지가 앰프에 입력될 때 충분한 전원이 빠르게 돌입되며 작은 다이내믹 레인지 신호에서는 또 그만큼 섬세한 표현이 좋아진다. 매크로와 마이크로 양 쪽에서의 이러한 변화는 마치 앰프의 전원부를 업그레이드한 듯한 느낌과 비슷하다. 저역이 퍼진다든가 또는 특정 대역이 잘린 듯 한 현상과 함께 스피드가 느리고 속도 전환이 빠르게 이루어지지 않아 답답했던 부분들이 해소되는 광경을 확인할 수 있다.
P-6MKII 에 이어 W-5MKII를 테스트해보면서 여러 부분에 걸쳐 조명해보았고 또 테스트해보는 가운데 최근 다른 지면에서도 리뷰한 JPS, 어쿠스틱 젠 등의 케이블의 테스트도 함께 진행했다. 멀티탭의 변경으로 인한 전체 음악의 풍경이 변화하는 건 당연했는데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멀태탭에 꼽은 파워 케이블들 간의 차이도 더욱 명확해졌다는 것은 간접적으로 얻어낼 수 있는 유의미한 소득이었다.
예를 들어 케이블의 차이는 각 컴포턴트의 수준이 높아지면 질수록 그 차이가 선명해진다. 비슷한 예로 멀티탭의 경우는 그 멀티탭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멀티탭에 꼽는 파워케이블의 차이도 쉽게 구분되게 해준다.
아마도 중급 이하의 시스템에서는 W-5MKII 가 P-6MKII 와 비교해 엄청난 차이를 내주진 않을 것이다. 다만 앰프나 소스기기의 퀄리티가 높아지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소리의 창인 스피커가 하이엔드 그레이드로 올라간다면 P-6MKII 가 현격한 차이로 우세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급 이하라면 W-5MKII 즈음에서 오디오파일의 전원 플랫폼이란 아젠다에서 멀티탭에 대한 고민은 살며시 내려놓아도 될 듯하다. 오랜만에 기본이 제대로 된 멀티탭의 등장이 반갑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