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 웨스턴(Western) 케이블, 소리 통증 끝!
헤밍웨이 웨스턴(Western) 케이블, 소리 통증 끝!
- 작성자: 정한석
‘헤밍웨이 웨스턴(Western) 케이블 사전평가단 모집’이란 광고를 보자 뭔가에 홀린 것처럼 지원했다. 며칠이 지나 사전평가단에 선정됐다는 이메일을 받는다.’나도 선정될 수 있구나!’
9월 6일. 아, 어찌 내가 잊으랴! 공교롭게도 마눌님 생일과 겹친다. 마눌님과 나는 같은 직장에서 일한다. 강의를 마치고 클리닉이 있는 건물로 오니, 눈치 없는 경비 아저씨가 큰소리로 ”택배 왔어요“하며 큰 상자를 건네준다. 어디서 마눌님이 볼까 재빨리 상자를 낚아챈 후, 5층 내 동굴로 직행. 도대체 스피커 케이블을 이렇게 큰 상자에….
빨리 듣고 싶은 마음에 상자를 열어 케이블을 연결하려니 웨스턴 라보 555W에 안 들어간다. 이런, 바나나 단자다! 가뜩이나 마눌님이 상자를 봤을까 조마조마한데 단자까지 안 맞다니. 급히 작업실을 뒤져 스피커 연결 단자 4개를 찾는다. 마음이 급하고 조마조마하니 납땜도 잘 안 된다. 일단 케이블을 555W에 연결할 수 있게 만든 후 청음시작!
일단 부드럽고 밸런스가 잘 잡힌 소리다. 다른 CD를 들어보려는 순간, ‘카톡’ 하며 벨이 울린다. 마눌님이다! 헐~ 달랑 이모티콘 하나, ‘
’ 불안하다. 상자를 본 것이 틀림없다. 의심이 점점 사실이 되어간다. 후다닥, 모든 전원을 끄고 당장 집으로!
집 앞 제과점에서 생일케이크를 사고 이모티콘이 마음에 걸려 선물을 사려 해도 도대체 뭘 사야 하나? 그래, 마눌님은 뭐니 뭐니 해도 머니가 최고다! 급히 현금인출기에서 현금을 찾는다. 돌아서니 오늘 받은 스피커 케이블 상자가 마음에 걸린다. 분명히 상자 봤을 거다. 그래, 이왕 쓸 거 확실히 쓰자. 가정의 평화가 우선이다. ‘역시, 오디오 최대의 적은 마눌님이다!’
다음 날 아침, 평소보다 일찍 출근하려는데 뒤에서 들려오는 사자후. ”또 샀냐!“, ”아니!“하고 반사적으로 외치며 급히 문을 나선다.
허둥지둥 내 동굴에 도착해 비교해볼 케이블들을 찾는다. 총 4쌍의 케이블이 후보에 오른다. 1. 많이들 사용하는 점박이 웨스턴 케이블, 2. 외국 사이트에서 극찬한 16 GA 웨스턴 케이블(KS13385L-1), 3. Belden 9497 케이블, 마지막으로 4. 동호인에게 구한 아나콘다 케이블. 1~3번은 주석 선재, 4번은 구리 선재다.
*사용한 케이블들
시청할 스피커는 웨스턴 16A(복각)와 웨스턴 라보 555W로 결정한다(트위터는 혼란만 줄 것 같아 제외). 직감적으로 케이블 이름이 ‘헤밍웨이 웨스턴’이니 비오노르(독일)보단 웨스턴 16A(미국)에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일단 1~4번 케이블을 두루 들어본다. 모든 케이블이 각자의 개성에 따라 웬만한 소리는 내준다. 이젠 헤밍웨이 웨스턴 케이블 차례다. 순은 단자로(핀 단자와 바나나 단자 선택사항) 모나미 볼펜보다 좀 얇은 두께의 선이다. 자세히 보니 케이블에 방향성(화살표)이 있다. 연결 시 주의해야 한다.
*방향성(화살표) 주의!
헤밍웨이 웨스턴 케이블, 소리는 참 좋은데 뭐라 표현할 방법이 없다. 흔히들 말하는 ‘바이올린 현의 송진 가루가 날린다’, ‘기타 줄 튕기는 떨림이 보인다’, ‘깊고 탄탄한 저음이다’ 등 뭔가 표현해야 하는데 막막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오디오 잡지 볼 때 사진만 보지 말고 글도 열심히 읽을걸. 하긴 내가 리뷰를 쓰리라곤 생각도 못 했다. ‘괜히 사전평가단 신청해서 리뷰 쓴다고 했구나’라는 생각까지 든다. 그래도 들리는 소리 하난 좋다.
칼 융은 ”삶의 거의 반이 다소 무의식적인 상태에서 보내진다“라고 했다. 오디오 사용기나 자작기를 보면, ”안 들렸던 소리가 들린다“곤 하는데, 이는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처럼 평소 무관심하게 듣던 소리가 기기를 바꾸어 들으니 뭔가 찾으려는 몰입(또는 착각)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절실한 마음에 인터넷에서 남의 글이라도 참고하려는 순간. 모니터 뒤에 숨겨놓은 발렌타인 17년 병이 눈에 띈다. 바로 이거다! 헤밍웨이 웨스턴 케이블에서 나오는 소리는 다른 케이블들과 비교하여 잘 숙성된 소리다. 즉 발렌타인 17년, 21년, 그리고 30년 숙성 차이다.
이 술들은 내가 다 먹어봐서 분명한 차이점을 안다(난 소맥을 가장 좋아한다). 발렌타인의 맛은 근본적으로 다 같다. 그러나 숙성기간에 따라 마셨을 때 코 천장, 입안과 목구멍에 부드럽게 퍼지며 부담 없이 술술 넘어간다.
개인적으로 숙성이란 ‘내용물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안정되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숙성을 통해 안정되고 부드러워진 술이 입안에 좀 더 오래 머무르게 되니, 더 많은 신경이 자극되어 깊고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소리도 같은 이치다.
헤밍웨이 웨스턴 케이블에서 나오는 소리는 발렌타인 30년처럼 귀에 부담 없이 쏙쏙 들어가는 소리다. 굳이 비교하자면 1~3번은 발렌타인 17년, 4번은 21년, 그리고 헤밍웨이 웨스턴 케이블은 발렌타인 30년처럼 잘 숙성된 소리다(김치로 치면 장독대가 아닌 김치냉장고에서 딱 먹기 좋게 잘 익은 맛).
셋업 및 시청:
본격적인 시청을 위해 사용한 시스템과 음반은 다음과 같다.
*모르면 고물, 알면 보물!
사용 시스템:
턴테이블: EMT 930ST (TSD15 vdH + TMD25)
CDP: PHILIPS LHH-500
포노앰프: 자작 LCR프리(300B를 사용한 전원부, 빈티지** 엄**님 회로 제공)
버퍼앰프: 자작 버퍼앰프(WE REP 111C 사용, P&C Electronics 회로)
프리앰프: 자작 반킬프리(RE084K 사용, 모노럴 전원부, 빈티지** 김**님 회로 제공)
파워앰프: 자작 100TH 앰프(Valve‘s World 회로)
스피커: 웨스턴 16A(복각) + 웨스턴 라보 555W + 클랑필름 셀렌 전원부
*시간상 마눌님의 온갖 구박을 참아가며 수많은 거짓말을 통해 지난 20년 동안 수집한 빈티지 기기보다 현재 사용하는 기기들을 사용했다. 충분한 시간과 기회가 주어진다면 보유하고 있는 여러 빈티지 기기에 꼭 물려보고 싶다.
*위 시스템을 구성하기까지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주신 여러 동호인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1. Rebecca Pidgeon: The Raven – Spanish Harlem
가수 레베카의 목소리가 생생한 곡. 특히 뒤에서 연주하는 쉐이커의 소리가 잔잔하게 받쳐주는 곡. 쉐이커에서 나오는 소리는 마찰음이다. 따라서 수많은 알갱이가 비벼대는 다소 거친 음이 나올 수도 있다. 헤밍웨이 웨스턴 케이블은 다른 케이블과 달리 귀에 거슬리지 않고 찰진 마찰음을 들려준다.
2. Dire Straits: On Every Street – You and Your Friend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Chet Akins의 제자인 Mark Knopfler의 기타연주가 돋보이는 곡. ‘청출어람’이라는 말이 실감 나도록 기타를 맛깔스럽게 친다. 곡 중간에 연주되는 슬라이드 기타의 바이브레션(비브라토)이 공기를 헤쳐 가르는 소리가 아닌 공기에 포화하여 부드럽게 퍼진다. 왠지 숨 쉴 때 공기와 더불어 기타 소리도 폐 속에 차는듯한 기분이다.
3. Carol Kidd: Sweetest Love Songs - When I Dream
벌써 19년 전(세월 참 빠르다), 영화 ‘쉬리’에 삽입된 곡. 모든 케이블을 통해 캐롤 키드 아줌마가 나만을 위해 노래를 불러준다. 입술의 떨림과 더불어 침까지 튀는 것 같다. 아무리 노래를 잘 불러도 침이 튀면 왠지 찝찝하다. 헤밍웨이 웨스턴 케이블을 통해 캐롤 키드 아줌마가 침 튀지 않고 나를 위해 노래만 불러준다. 아, 풍성하고 감미로운 캐롤 키드 아줌마의 목소리.
4. 저음왕 2 – Go Down Moses
저음이 좋은 CD. 탄탄하고 풍성한 저음이 내 동굴 바닥에 깔린다.
* 앨범 사진은 인터넷에서 도용했습니다. 삭제를 원하시면 바로 제거하겠습니다.
5. Kari Bremnes: Svarta Bjørn - Sangen om fyret ved Tornehamn
들을 때마다 긴장감이 드는 극적인 곡. 헤밍웨이 웨스턴 케이블로 바꾸니, 누군가 나를 해치려고 쫓아오는 것이 아닌 사랑하는 연인이 뒤쫓아 오는듯한 긴장감으로 바뀐다. 나 잡아봐~라!
6. Chesky Records: The Ultimate Demonstration Disc – Ana Caram Correnteza
솔직히 말해서 커닝했다. 개발자의 인터뷰를 보니 ‘헤밍웨이 웨스턴 케이블은 자연스럽고 순도 높은 소리’라 한다. 도대체 어떤 소리를 자연스럽다고 하는 건지? 이럴 때 필요한 CD가 바로 귀 그림 CD. 11번 트랙 곡, 해설자의 설명에 따르면 자연스러움을 평가하는 곡이라 한다. 모든 케이블의 중음역이 조금씩 도드라지는 것 같다. 기분 탓인가? 뭔가 꺼림칙하다. 이에 반해 헤밍웨이 웨스턴 케이블은 전체적으로 어느 소리 하나 모나지 않고 조화를 이룬다. 모든 소리가 조화를 이루며 편안하게 들려오는 소리. 이런 소리를 ‘자연스럽다’라고 하나 보다.
7. Miles Davis: Birth of the Cool
LP 소리도 궁금해서 마일스 데이비스의 ‘Birth of the Cool’을 턴테이블에 올린다. 딱 좋게 숙성된 소리가 거리낌 없이 귀를 통해 뇌를 자극하며 마음에 퍼진다. ‘쿨의 탄생’, 간만에 쿨한 소리를 듣는다. 음악에 쿨하게 취한다.
총평:
나도 귀가 여린 편이지만 오디오 하는 분들이 대체로 귀가 여리다. 특히, 뭐가 좋다 하면 꼭 해봐야 직성이 풀린다. 물론 소리는 변한다. 그러나 ‘과연 좋은 소리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헤밍웨이 웨스턴 케이블의 소리는 잘 숙성된 소리다. 빈티지 기기 소리에 대한 기준을 들자면 난해하다. 수많은 동호인이 자신의 소리가 최고라 생각하는 자칭 ‘고수’다. 이러한 추세에 ‘헤밍웨이 웨스턴 케이블이 빈티지 스피커 케이블의 기준을 제시한다’라는 생각이다. 즉 이 케이블과 비교해가며 자신의 소리를 찾아가는 것이 빈티지 기기를 운용하는 또 다른 묘미가 될 것이다.
통증의 의학적 정의는 ‘몸에 가해지는 불유쾌한 자극이다.’ 크기나 양에 상관없이 거칠 거나 자극적인 소리도 통증이라 할 수 있다. 사전평가단에 선정되어 헤밍웨이 웨스턴 케이블을 사용한 잠시나마 소리로 인한 통증을 잊을 수 있었다.
후기:
소리를 공부하고, 사용기도 쓰는 등 좋은 경험을 했다. 구구절절 다분히 개인적인 사용기를 읽어 주신 모든 동호인에게 감사드리며, 배려해주신 주신 하이파이클럽과 헤밍웨이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린다.
강점
약점
매칭기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