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부산의 이상동입니다.
고개 넘어 첫 동네에 살던 산골 소년이 음악이 무언지도 모르고 그냥 듣기만 했습니다. 우연히 악보를 언문처럼 읽고 쓸 줄 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매미 소리든 새 소리든 모두 눈 앞에 악보로 변환되어 보여 음악을 아주 시시해 하기도 했더랬습니다.
중학교 때 고모님이 일본에서 그럴싸한 라디오를 가지고 온 일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유선방송으로 김삿갓 북한 방랑기도 듣고, 해당화 피고 지는... 연속극도 듣고, 전설따라 삼천리도 듣던 시대였습니다. 드뷔시의 4손의 피아노를 위한 작은 모음곡 No.1을 1대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하여 편곡한 것이 전설따라 삼천리를 여는 음악이었는데, 거창한 시스템으로 원곡을 들었을 때는 왜 그리 쪼잔하게 들리던지, 후우 한숨조차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값비싼 시스템이 공짜인 가슴에 들어앉지 못한다는 믿음을 가지는 또 하나의 대목입니다만...
그 일본 라디오를 이불을 뒤집어 쓰고 듣는데, 글쎄 여자 아나운서의 입에서 침 흐르는 소리도 들리지 뭡니까. 기계라는 도깨비를 청정한 가슴 속에 들여놓게 된 첫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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빽판이라고 불렀어요.
골의 깊이가 논에 물 끌어 대는 수로보다 더 얕은 복사판 LP 말입니다. 그것을 야외 전축에 걸고 들었습니다.
닳아서 희끗희끗해질 때까지 들었습니다. 급기야는 바늘이 LP의 원주 안에서 썰매를 타는 일이 많았죠. 지우개를 몇 종류의 크기로 잘라 준비해 두고 바늘 위에 얹어 수로에서 발을 빼지 못하도록 눌러야 했습니다.
나무 한 짐을 해다 마당 가 감나무 덩걸에 부려 놓고 땀을 훔치는 시간에 대청마루에 야외전축을 내다 놓고 볼륨을 올려 듣다 보면 할머니가 김이 물씬 나는 저녁 밥상을 내 오곤 했습니다.
야외 전축의 코맹맹이 플라스틱 울림이 아직도 귀에 선하군요.
그걸로 베에토벤도 외우고, 모짜르트, 슈베르트, 멘델스존, 차이코프스키 등을 외웠습니다.
모내기를 거든 댓가로, 아니면 산판일로 돈을 조금 만지면 도시에 나가 빽판을 샀습니다.
부산 오아시스 다방 맞은 편에 있던 LP점, 향촌 다방 골목에 있던 예쁜 아줌마가 하던 LP점을 주로 찾았습니다. 꺼칠한 손으로 상하기 쉬운 LP를 만지는 것이 내내 조심스러워 부끄러웠습니다.
대각사 입구에 있던 부**악사에서 스코어도 샀었죠. 어느 날인가는 돈이 모자라 쇼팽의 어느 곡을 좀 베껴 갈 거라고 우긴 일도 있었습니다. 쥔 양반이 나를 이윽히 바라보는 그 눈길이 아직 생생하군요.
다른 아이처럼 머리 아파가면서 학교를 다닐 일이 없는 참 한가한 날들이었으므로, 농사일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음악 듣고 악보 외우고, 악보 베끼고, 션찮은 작곡도 해 보고....
지금은 암흑기로 그 때 쌓아 둔 행복을 파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 만큼 행복한 시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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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시간이 가진 것 중에서 가장 값진 것을 공간 속에 뿌려 꽃을 피우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네 인생과 음악이 가진 정서들이 하나의 탯줄에서 나온 씨 다른 아이마냥 맞닿아 있어서 음악과 인생이 길 가다가 만나면 하이파이브라도 해 줄까 봐요.
'혼자서 궁상스럽게 음악만 내애 듣고...'
하는 말을 들으면 괜히 주눅 든 얼굴을 해 보일 수 밖에 없어요. 그럴 때는 물귀신 작전을 펴죠.
'고라니 떼처럼 우루루 몰려 댕기다가 덫에 걸린뒤... 내랑 보듬고 앉아 음악이나 듣자, 응?'
ㅎㅎㅎ 농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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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만과 하이든과는 아직도 잘 친해지지 않습니다만, 드뷔시와는 좀 친한 척을 하며, 그 이외는 특히 좋아하는 작곡가가 없다고 할 정도로 두루 듣습니다.
무슨 사정으로 정들었던 LP를 눈물 흘리며 두 차례씩이나 남에게 주는 불행을 겪었습니다. 지금은 그 때의 짜안한 마음이 많이 누그러졌습니다만,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지글거리는 CD는 잘 안듣게 되는 내가 너무 못나 보여 밉습니다.
한 번 듣다 보면 그 곡을 계속 듣게 되는 버릇이 있습니다.
자동차에서 듣는 둥 마는 둥 듣는 것이 곡을 외우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강변하는 편이며, 선수학습 없이는 감동도 없다고 우기는 편입니다.
이렇게 외워 둔 음악은 천석고황인 저에게는 긴 여행 중에 자연과, 음악과, 가슴이 하나 될 때 콧등이 시큰거리는 경험을 할 때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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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기계 바꿈질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 야외전축
* 태광 에로이카
* 국내 제품 리연구소의 진공관 + 탄노이 식세스
* 마크 레빈슨(번호는 잘 외우지 못함) 시꺼먼 것 두어 종류 + B&W 801 매트릭스
* 패스 X1000 + 윌슨 와트 퍼피 + 카운터포인트
* 패스 X1000 + 윌슨 베네시 비숍 + 그리폰 미카도
이런 바꿈질이었습니다. 바꿈질이 잦은 것인지, 드문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최근 들어 좀 정성 들여 들어보려고 허접한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자칭 '늘뫼소리고방'입니다.
4.5 미터 * 7.5 미터의 공간입니다.
공진 때문에 애를 먹었습니다만, 하클 여러분들께서 많은 조언을 해 주신 덕분에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못하나 그런대로 해결은 했습니다. 우연히 계단 아래의 공간이 방 안에 있어서 그 공간을 틔웠더니 일시에 해결되는 행운을 맛보았습니다.
그리고 룸 튜닝은 사진에 보이는대로 모두 자작입니다.
특히 천정은 구멍 뚫린 석고보드로 되어 있어, 이것이 차음에는 효과가 있다고 들었습니다마는 반향이 심했었는데, 흡음재를 붙이고 나니 반향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최근에는 방 안 기계에서도 감동을 얻은 적이 있습니다.
그로페 그랜드 캐년의 일몰 장면이었는데, 각각의 악기가 제 있을 곳에 자리잡아 소리 높여 울부짖는 장면에서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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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어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마는, 그렇게 되려고 노력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