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멍청한 그러나 아름다운

작년 봄 무렵, 다시 불을 지피기 시작한 오디오질(?)이 절정을 향해 달려갈 즈음. 멀리 타국땅에서 동호회원님들의 글을 동냥해 가며 장만했던 기기들이 결국 내가 가고픈 길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데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다만 Money와 아내를 향한 나의 감언이설만 필요할 뿐… Krell 300iL과 B&W Nautilus 805와는 어려운 조합이라는 나름대로의 결론이 난 상태에서 뭐 마려운 강아지 마냥 주말이 되면 저녁을 사주겠다는 당근을 들고 아내를 꼬드겨 맨하튼에 있는 오디오 샵들을 하나씩 하나씩 뒤지기 시작했습니 다. 물론 솜털만큼 가벼운 주머니를 감안하면 결국 물건을 사겠다는 것이 아니 라, 다만 좀 들어보자~ 라는 의지가 훨씬 강한 터였지요. 10만불이 다되어가는 조합에서부터 3000불이 채 안되는 조합까지 거의 한달가까이 염치불구하고 CD 몇장 챙겨 들고 두리번 거리고 있을 무렵… “In Living Stereo”라는 Soho 근처의 오디오샵에 들렀더랬지요. 청음실이 두개로 구성된 별로 크지 않던 그곳은 청음실에 한두 손님만 받고 마음껏 음악을 듣게 하는 터라, 늦게 온 손님은 멀뚱하게 바깥에서 기다려야 하는 특이한 곳이었습니다. 복도에서 대기하는 환자도 아니고… 참… 여하튼 그렇게 입장(?)하게 된 그곳에서 만난 가게 주인은 친절하게 이것저것 설명해 주며 마음껏 음악이나 듣고 가라며 아낌없이 들려주더군요. 그래? 그렇다면. 길 샤함이 연주하는 비발디의 사계(도이치그라모폰)를 주며 “트랙 10번 겨울 1악장 틀어주세요. 바이올린 소리가 어떤지 궁금해서요.” 피아노 마감이 눈에 띄는 북쉘프 스피커, 녹색 마감이 무척이나 촌스러운 진공 관 인티 앰프와 Sim Audio의MOON Eclipse CD Player에서 들려나오는 길 사햠의 바이올린 소리 – 이것은 분명, 분명 달랐다. 곁에 있는 아내도 내 손을 꼭 쥐며 – 이거 최고다! – 라는 강렬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 아~ 나도 그래~~. 제가 갖고 있던 기기와는 너무 다른 고역이 나긋 나긋해지며 정말 바이올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숫한 고가의 기기들도 왠만하면 두손 두발 다 들었던, 아내가 그토록 지겹다던 그 음반의 기(?)가 꺽이는 순간이었 더랬습니다. “아저씨~ 이 조합 다해서 얼마에요?” “이거요? 스피커는REFERENCE 3A社 MM de Capo i – 내 살아생전 이렇게 이름이 긴 스피커는 처음이었습니다 – 로서 캐나다 꺼에요. 저렴하게 $2500. 그리고 저기 저 진공관 앰프는 미국 수제품이에요. Shindo Labs 걸루 Cortese 300B SE 파워앰프 깔끔하게 $10,000. 조기 저 CDP는 좋은거 알죠? $3000. Tax하고 어쩌고 하다보면 토럴~ $17,000. 가만 조기 프리앰프를 빼먹었네.” “음악 잘 들었습니다. Bye…”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그렇게 집으로. 그리고 무심결에 아내가 나에게 건네는 말 “설마… 아니지? (경고가 가득한 미소와 함께)” 그런데 그 다음 말이 나를 더 미치게 만들었습니다. “야~ 근데… 좋드라… 좋아…” 회사에서 일찍 나온 저녁 무렵 아내와 카네기 홀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그토록 기다리던 베를린 필과 새로운 상임지휘자 사이먼 래틀의 연주. 정적이 끝나고 난뒤… 하이든의 교향곡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순간 깨달았습니다. 제가 얼마나 바보였던가를… 그것은 분명 소리가 아니라 음악이었습니다. 파아란 가을 하늘에 복스럽게 떠가는 뭉게구름처럼, 갓난 아기의 보드라운 피부 감촉처럼… 그 촉촉한 음악을 들으며 이제 망상에서 벗어나야 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군 요. 드뷔시의 교향시 ‘바다’에서 그 웅장한 타악기들은 흔들바위 떨어지는 오디오에서 나오는 그 저음이 진정한 저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래… 한 없이 멍청한 소리를 찾아보자. 이렇게 다시 조합한 저의 Med-Fi를 부끄럽지만 동호회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1. Speakers – Meadowlark社Shearwater, Hot Rods version 2. AMP. – Mcintosh MA6500 Integrated amp. 3. Transport - Rega Planet 4. D/A Converter – Proceed DAP 5. MD player – SONY MDS-102 linked w/ D/A Converter 6. Tuner - Tandberg 3031A w/Terk FM Pro 7. Speaker Cable - Audioquest Type8 8. Power Cable – XLO Reference 2 Type 10A 9. Cable Inter – Audioquest Opal X3 & LAT International DI 20 MK II etc... 저에겐 음악 듣기에 부족함이 없고, 우선 고역이 무척 부드러워서 쓸만한 조합이 아닌가 합니다. Meadowlark의 스피커를 간간히 쓰시는 분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원래 이 회사 제품들이 대부분 진공관과 친하다고 하는데, 제가 들어 본 바로는 TR앰프 중에선 Mcintosh와 궁합이 비교적 괜찮았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배운 것은 소리의 성향은 스피커가 결정하지만 소리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앰프와 소스라는 사실을 이었고, 맥킨토시의 은은한 불빛 또한 음악을 들으면서 얻게 되는 또 하나의 기쁨 아닐지 싶습니다. 연주회를 다니면서 느낀 점은 실제 연주회장의 소리는 집에서 듣는 과다한 앰프 의 볼륨 정도의 크기도 아니었고, 소리로 흔들어 대는 저음이 아니라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스릴이 느꼈졌고, 중고역이 지극히 부드럽다는 점입니다. 현대 오디오들이 대부분 지향하는 고역의 맑고 생기 발랄함과는 차이가 있는 점이지요. 모든 기기는 Audiogon에서 중고로 구입했고, 그런 와중에 재미있는 일도 참 많았습니다. 억수로 쏟아지는 비를 맞아가며 브루클린까지 가서 스피커 업어 오던 기억... 가격 흥정하다가 웃지 못할 일도 생기고... 서울에 있으면 여러 동호회원님들 조언도 얻었을 텐데, 이렇게 외딴 섬에 나와 있으니 그것도 어렵고, 저 혼자만의 망상에 빠져 이렇게 허우적 거리고 있나 봅니다. 당분간은 스피커의 자세(?)를 교정하는데 최선을 다할 참 입니다. 올 초봄...알프레드 브렌델의 공연 후에 그 대가와 짧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와 같이 비전문가에게도 상세한 설명을 하는데 진지하면서 천진한 모습이 인상 깊었더랬습니다. CD에 사인을 받고 악수를 하는 순간 더욱 놀라운 것은 - 손가락 끝 대부분이 반창고로 칭칭 감겨있었습니다. 놀라는 저에게 연습하느라 손가락 끝이 갈려져서 그렇다고... 제가 고음 저음 따지며 소리를 듣고 있을 때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를 3번이나 녹음한 살아있는 전설은 그 손가락이 갈라져라 음악을 만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존경스럽고... 또 부끄러웠습니다. 음악은 영원하고 소리는 순간이다 라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고수님들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시스템 입니다만 이젠 한숨을 쉬어갈 때가 아닌가 합니다. 따분하고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들 건강하시고 기쁜 성탄, 연말 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