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렌스 TD-125MK2 테이블에 SME 3009 Series2 Improved 암을 오랫동안
사용해왔는데 디테일도 좋고 잔향감도 잘 사는데다 보기도 좋고 값도 저렴해서
SME 3009 series2 에 아주 만족한 사용자입니다.
그러다 언젠가 외국에서 Moerch 암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단번에 저의 관심을
끌었지만 값이 제법 비싼데다 (당시 $1,200 정도) 주변 기기들이 워낙 좋은
것들이여서 저 정도 구성이면 당연히 소리가 좋겠지 하는 생각으로
마음을 달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얼마전 ebay 에서 Moerch UP-4 중고암을 구해 SME 대신
사용하게 되었는데 음질에 상당한 차이가 있어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Moerch UP-4 암은 덴마크 Moerch 사의 Unipivot 암인데 이름이 말해주듯
강화철로 만든 뾰족한 암축이 오목하게 파인 연마된 사파이어 위에 얹혀있는
구조로 상상할 수 있듯이 암축이 측면의 지지없이 서있기 때문에
중심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암의 수평 방향 밸런스는 원형이지만 중심보다 약간 바깥쪽에 구멍이 뚫려있는
무게 추를 좌우로 돌려 수평을 유지하는 형태입니다.
따라서 암을 손으로 잡으면 전후좌우로 크게 흔들려 암이 마치 실에 매달린 것처럼,
또는 축이 부러진 것처럼 보입니다만, 그만큼 좌우, 위아래 방향의 마찰력이
거의 없어 카트리지의 바늘 끝이 LP 골을 따라가는게 아니고 마치 암대 자체가
골을 여유있게 따라 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한마디로 암의 움직임에 제약이 없어 부드럽고 재빠르게 움질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Pivot 과 사파이어 받이가 만나는 부분은 주변이 우물처럼 생겨서 점도 높은
실리콘 오일을 채워 댐핑을 주는데 이 오일 댐핑으로 인해 축받이에서 나는
미세한 진동과 잡음을 없앨 수 있으며 좌우 밸런스도 더 안정됩니다.
VTA 는 SME 와 비슷하게 육각렌치를 사용해 암축의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게 되어
있으며 Anti-skating은 가느다란 스프링이 암축에 감겨있고 스프링의 장력 크기를
레버로 조절할 수 있어 연주를 들으면서 힘의 크기를 바꿀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만듦새, 모양 및 크롬 도금 상태는 가희 예술품이라 할 정도로 뛰어납니다.
카트리지 종류에 따라 암대의 종류를 바꿀 수 있어 Effective Mass 선택이
가능하므로 사용할 카트리지 종류를 먼저 정하고 암을 구매하셔야 합니다.
Effective Mass 는 암축 윗부분에 찍혀있는 둥근 점의 색깔로 구분할수 있으며
green=Light(4g), red=Medium(6g), yellow=Heavy(8g), blue=Extra Heavy(14g)
입니다.
Linn Basik - 13g, Rega RB 300 - 12g, SME 3009 Series2 Improved - 12.5g,
Linn Ittok LVII - 11g, Fidelity FR 64 - 23g 인 것을 생각하면 일반적인 암에 비해
Moerch 암이 상대적으로 매우 경량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High Compliance 카트리지와의 상성이 좋을 것이며
Low Compliance 카트리지인 경우에는 카트리지 자체의 무게가 제법있는 것들과
대체로 상성이 좋을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는데 가장 정확한 방법은
아래와 같이 카트리지-암의 공진주파수를 구해보는 것이다.
Resonance Frequency = 159/SQRT((MC+MA)xC)
(MC=카트리지 무게, MA=암의 Effective Mass, C=카트리지의 Compliance).
제가 구입한 것은 Yellow 이고 사용중인 카트리지는 고에츠 실버그라도인데
불행히도 고에츠는 Compliance 수치를 알려주지 않습니다.
HiFi News Test LP 를 통해 공진주파수를 실제로 들어보면 8Hz 근처에서 공진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다행히 8~12 Hz 사이가 되도록 하는게 좋다는 일반적인
권고 범위에 들어가며 거꾸로 실버그라도의 Compliance 를 구해보면
20 x 10-6 cm/dyne 정도로 추정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턴테이블 셋업이 Moerch의 경우에는 정말 어려운 것 같습니다.
특히 좌우 수평을 잡는 것은 아주 힘든 일입니다. 뒷 부분의 무게 추 중 하나를
좌우로 미세하게 돌려 안정시 수평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헤드쉘 분리는 불가능하며 카트리지 고정 부분이 매우 좁고 납작한 금속 조각에
불과하므로 카트리지 고정도 쉽지 않습니다.
잘 셋업되었더라도 손으로 암대를 들어 올리면 암축 부분이 헐겁기 때문에
카트리지가 수평인채로 들려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손으로 원하는 트랙 위에 바늘을 직접 올려 놓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하고
업다운 레버를 올린 후, 암대를 원하는 위치로 가져가서 레버를 내려야만 하는데
좌우 수평이 잘 맞아도 카트리지가 똑바로 내려오지 않을 수 있어
정확한 트랙 선정은 포기하고 삽니다.
VTA 및 좌우 수평도 눈으로만 확인 가능하기 때문에 잘 맞았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 항상 신경이 쓰입니다.
SME 3009 사용 때는 이런 것들을 작은 공기방울 수평계를 올려 놓고
측정할 수 있어 편리해서 좋았지요.
턴테이블을 셋업하면서 이런 불편을 겪으면서까지 이 암을 꼭 써야만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첫번째 곡을 재생 하자마자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현악기의 미세함이나 부드러움이 SME 와 비교해서 조금 과장하면
좁쌀과 밀가루의 차이로 느껴질만큼 훨씬 나아졌기 때문입니다.
음량을 많이 키워도 전혀 시끄럽다는 느낌이 없이 그저
자연스러움과 부드러움이 온몸을 휘감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Low 및 Mid Bass의 크기는 전체적으로 약간 작아진 듯 합니다만
깊이 내려가는 맛은 SME 보다 조금더 나은 것 같기도 합니다.
Bass 쪽 음량이 조금만 컸으면 하는 아쉬움은 분명히 있지만, 그렇다고
상대적으로 고음이 강하게 느껴지지 않고, Pace 가 좋아 흥을 잃지 않게 합니다.
보컬은 두툼한 느낌이 조금 얇아진 듯 하지만, 전체적인 무대가 커졌고
악기와 마찬가지로 더 자연스럽게 들려 사실감은 더해졌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달라진 것은 Surface Noise 가 확 줄었다는 것 입니다.
언젠가 일본 잡지에서 어느 평론가가 노팅검 아날로그의 "The Interface" 테이블에
대해 "이 턴테이블로 들으면 왜 지직 거리는 레코드 잡음이 줄어드는 것일까"
라고 쓴 글이 마음에 확 와 닿습니다.
전에 많이 들어서 상태가 약간 안 좋아진 LP들도 배경이 아주 조용해졌으니
그저 신기하기만 합니다.
마치 오래전에 값싼 카트리지를 쓰다가 라일라 헬리콘을 처음 사서 들었을 때,
섬세해진 고음보다도 지직거리는 Surface Noise가 줄어든게 가장 맘에 들고
신기해 하던 그 기분이었습니다.
고에츠가 SME와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는데 암이 바뀌니
또 다른 차원의 음을 들려주는군요.
리모콘으로 LP의 이전 트랙을 다시 들을 수만 있다면 하는 엉뚱한 생각과 함께
요즘 계속 LP에만 손이 갑니다.
(PS)
토렌스 125 테이블에 달려있는 SME 용 암보드에는 Moerch 암 장착이 어려웠는데
수원에 있는 "목인"이라는 공방의 주인이신 백용규님께서 흑단으로
Moerch 에 맞는 암보드를 정성스럽게 만들어주셨습니다.
댐핑용 실리콘오일은 박재상님이 나누어 주신 점도 100,000cs 짜리를 Unipivot 댐핑용으로, 톤암 업다운용은 300,000cs 짜리를 www.turntablebasics.com 에서 구입해서 사용중입니다.
두분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