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B 케이블 음질차, 정말 있을까요?
해외에서 몇년만에 다시 소리에 빠져 다양한 기기를 들이고 내치면서 음악을 들어보고 있습니다.
본래 철저한 가격대비 성능 추종자였고, 케이블 같은 액세서리에 입문용 기기값만큼의 금액을 쓰는 걸 '돈지랄'이라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일찍부터 스피커케이블이나 인터의 차이는 하늘과 땅차이라는 걸 절감했기에 아날로그 영역의 케이블에는 최소한의 투자를 하고 있지만, 디지털은 스펙에만 맞으면 그놈이 그놈이라고 봅니다.
특히 각종 디지털 케이블에 고가 제품이 늘어서있는 걸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부터 하는데요, 물론 디지털의 완결성을 신봉하는 입장도 아니기에 지터라든지 에러정정 체계의 미비로 인한 미미한 차이는 인정하지만 거의 의미없는 수준이라고 봤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장 한심하게 생각한 아이템이 수십만원짜리 USB 케이블과 SATA케이블이었죠.
헌데, 어제 오늘 DAC 바꿈질 도중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USB 케이블의 차이를 경험했기에 이러한 차이가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지 여러 자료를 뒤지며 고민 중이지만 도저히 그럴 만한 자료를 찾을 수가 없네요.
사단이 난 전후 상황은 이렇습니다.
그동안 잘 쓰던 스텔로 DAC의 한계를 느끼고 200만원 이하 DAC를 물색하던 중 NAD M51과 BMC PureDAC을 놓고
저울질 하다가 유독 한국에서 값이 싼 M51로 낙점해서 한국에서 공수해왔습니다. 여기서 중고로 팔아도 돈이 남겠더군요 ㅎㅎ
근데 여러모로 장점이 많은 DAC이나 뭔가 밋밋한 느낌이 아쉬워 결국 PureDAC을 다시 들였습니다.
사실 스텔로의 적극적인
사운드에 익숙해진 상황이라 완벽에 가까운 밸런스라든지, 정보량이 많으면서도 자극적이지 않은 특성 등 장점이 많지만, 오히려 너무 모범생 같은
소리에 큰 매력을 못느낀거죠.
여담이지만, PureDAC을 구입하기 전에 이곳 오디오 딜러를 통해서 Ayre QB-9을 비롯해
U$5,000 이하의 DAC 중고 제품을 여러개 들여다 홈오디션을 해봤지만, 모두 M51에 패해 나가떨어졌습니다. 이 물건들을 가져온
딜러도 매번 패배를 인정하더군요. 대역밸런스부터가 급이 다르다며. Weiss DAC을 들고 오겠다길래 손사래치고 BMC로 마음을 잡았습니다.
밸런스나 매끄러운 느낌은 못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이곳에 BMC 딜러가 있긴 하지만 거의 구멍가게 수준이라 제대로 연락이 안됐다는 게 M51을 먼저 구입한 원인이기도 했는데요, 우여곡절
끝에 BMC 딜러와 연락이 닿아 15% 할인도 해주고 직접 집까지 갖다준다길래 그러라 했는데, 이 딜러가 BMC의 Pure 1이라는 5미터짜리
USB 케이블을 던져주고 가더군요.
M51에 꽂혀있는 3미터짜리 강원전자 케이블(M51에 덤으로 딸려옴)을 보고는 그냥 빌려줄테니
테스트해보고 맘에 들면 사라는 겁니다.
가격은 원화로 약 45만원(이런 미친..)이나 할인해 주겠다는 말과 함께.
속으로 "이 인도녀석이 어디서 약을 팔아.. 본체를 할인해서 잡고는 이걸로 본전을 찾겠다는 거군!"하고 거절하려고 했는데, "정말 아무
부담 없이 써봐라.. 네 시스템 보니 케이블 땜에 진면목을 못볼 것 같아서 그런다. 이건 세계에서 유일한 Active Noise
Canceling 케이블이고 그야말로 Night & Day의 차이를 보여준다. 써보면 5분만에 나한테 사겠다고 메시지 보낼거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디지털 고가케이블의 허상을 직접 확인해 보고자 받아서 꽂았는데요, 딜러 보내고 일이 있어서 나가기 전까지 잠깐 비교해 본 결과는
그게 그거였습니다.
중간에 달린 커다란 필터같은 물건의 속을 한 번 뜯어보고 싶더군요. 설마 빈통은 아니겠지... 하면서.
내일 통쾌하게 둘다 똑같더라고 외칠 생각을 하고 밤에 돌아와서 다시 들어보니.. 음.. 뚜띠 심포니 모음을 종일 돌려놔서 그런가 뻣뻣하던
PureDAC 소리가 좀 유연해져 있더라고요. 첫 인상은 리뷰에서 듣던대로 다이나믹이나 또렷한 음상은 좋은데, 나긋나긋해야 할 부분에서도 너무
표현이 강하다는 감이 있었는데, 더 이상 그런 생각이 안드는 겁니다. 오히려 M51의 빼어난 밸런스와 얌전한 매력을 떠올려봐도 되려 더
나아졌다는 느낌.
NAD M51은 열흘동안 죽어라 틀어도 아주 서서히 풀어졌던 거 생각하면 Break-in이 참 빠르다 싶었죠.
그러다 BMC 케이블이 꽂혀있다는 게 생각나서 포장해서 챙겨두려고 강원전자 케이블로 갈아끼웠는데, 어라! 소리가 다른 겁니다.
좀 더 자세히 써보죠.
M51도 아주 훌륭한 기기였지만 너무 모범적이고 뒤로 물러선 소리 때문에 좀 특색이 있다는 PureDAC을 들인 건데 그 음질의 차이는 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눈에 띈 것은 Gain을 무리없이 올려줄 수가 있어서 음량이 작은 소스에서 앰프 볼륨을 올리는 것보다 만족감이 높았다라는 점입니다.
M51의 0dB과 PureDAC의 58이 비슷한 음량이라고 느꼈는데, M51은 +3dB만 돼도 소리가 일그러지기 시작해서 앰프 볼륨을 올려야 했지만, PureDAC은 66까지 아무 무리가 없었고 58과 66의 음량 차이는 엄청납니다.
안그래도 며칠 전 스피커를 바꾸려고 B&W 매장에서 804D를 들어보고 왔는데, 저를 절망케 한 건 스피커가 아니라 그 데모 시스템이었죠. 제가 들은 것은 B&W 스피커 소리가 아니라 클라쎄 모노블럭과 프리앰프, 메리디언의 레퍼런스 CDP, 그리고 내 팔뚝보다 두꺼운 JPS의 케이블.. 이놈들이 내는 소리였거든요.
집에 와서 같은 음반(Eagles의 Hell Freezes Over의 Hotel California)을 물려놓고 잠시 듣다가 꺼버렸죠. 이건 음질은 그렇다 치고 음량이 작아서 아무리 볼륨을 높여도 데모 시스템 같은 현장감을 느낄 수가 없는 겁니다. 급수의 차이를 절감했달까..
PureDAC은 가변출력을 높여서 들으면 그 기억 속의 현장감에 어느 정도 접근한 분위기를 내줄 수 있었던 겁니다.
물론 본질적 음질이 아니라 음압의 차이에 따른 체감 상의 차이라는 걸 알지만, 잠시나마 그 데모시스템보다 못할 것 없다라는 자기암시가 먹히는 순간이었기에 이 곡을 몇번이나 반복해서 들었고, 그러다가 케이블 갖다주려고 기존 케이블로 바꿔끼운 겁니다.
그런데 케이블을 바꾸고 다시 틀어보니 소리가 탁해졌다는 게 확연히 느껴지더군요.
하이햇이나 심벌은 신경질적인 느낌에 중저역도 무언가
텁텁해진 느낌이 강하고 무언가 시장통에 있는 것처럼 생동감은 있을지언정, 원래는 없던 잡신호가 영향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래서 끝까지 듣고 다시 케이블을 바꿔봤는데(이 한 곡 다 듣기가 버겁더군요), 분명히 소리가 다른 겁니다.
깜짝 놀라서 여러번
케이블을 바꿔끼우고 옆에서 자고 있던 M51을 깨워서 케이블질을 해봤는데, 일부러 저 스스로가 헷갈리도록 무작위로 DAC와 케이블을 바꿔가면서
듣고 웹서핑을 하거나 딴 짓을 하면서 듣기도 했는데 분명히 케이블의 차이를 짚어낼 수 있었고, 나쁜 소리를 듣고 확인해 보면 강원전자케이블이
물려있는 겁니다.
BMC 케이블을 물렸을 때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매끄러운데다 더 맑고 깨끗한 느낌, 본래의 소리 외의 다른 무언가가 배제된 느낌이었는데요, 이런 걸 보고 "배경이 정숙해졌다" 라고 하나 봅니다.
저는 이 표현을 정말 싫어합니다. 앰프 밑에 고가의 목재나 고강도 금속제 콘을 물렸더니, 전원케이블을 수십만원짜리 XX로 바꿨더니, 케이블 단자를 뭘로 바꿨더니 "배경이 정숙해졌다"라는 약파는 듯한 리뷰를 숱하게 봐왔고 그때마다 "놀고 있네.. 할 말이 없으면 배경타령이냐?" 라고 비웃었던 저였기에..
본래 M51을 계속 쓰느냐 아니면 PureDAC을 되파느냐고 고민해야 할 이 때에 엉뚱하게 케이블 때문에 고민입니다.
케이블의 영향이 사실이라면 그동안의 M51에 대한 테스트 결과도 객관적인 게 아닌 게 되므로...
글쎄요. 저는 정말 심각합니다. 디지털 케이블에서 이정도의 차이를 느끼는 건 Audiophilia라는, 약도 없는 중병을 앓는
이들에게서나 보이는 증상이라 믿어왔기에, 제가 그 병에 걸린 게 아닌가 하고 저 스스로의 감각을 의심하게 됐거든요.
지금 이 딜러에게 케이블을 돌려줄지 그냥 쓸 지 고민 중인데, 그걸 결정하기에 앞서서 이런 USB 케이블의 차이가 실제로 존재할 수 있는지, 그걸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를 알고 싶습니다.
참고가 될만한 문헌이나 사례가 있을까요?
예전에 스피커 케이블에 따른 소리의 차이가 있을 수 없다는 논문 수준의 리포트와 여러 하이엔드 메이커들의 발표도 꼼꼼히 봤지만, 실제로 큰 차이를 느꼈기에 제 주관을 따르고 있습니다.
디지털에서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똑같은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