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가라드 301을 구입했을때부터 양도하라고 얘기하신 선배가 계셨지요.그러마고 약속하고 무심히 지냈는데,엊그제 전화가 오더니만 "해 넘길거야?" 친분관계상 더 이상 미룰수가 없더군요. 그 선배는 턴테이블을 4대나 가지고 있는 분으로 99개 가진 부자가 1개 가진 가난뱅이의 물건을 욕심내는 격이지만 도리가 없었지요. 선배의 오디오에 대한 열정을 익히 알고있는 터이거든요.
여하간 며칠 안 남은 터라 마지막 밀월을 즐기기로 했지요. 고민끝에 고른 것이 굴드가 연주하는 바흐의 평균율! 참으로 오랫만이었지요. 2시부터 자리를 잡아 전곡을 다 듣기로 마음먹고 첫장을 플레이어위에 올리는데 앨범에 써있는 글씨가 눈에 띠더군요. 90년 여름에 지금은 아내가 되어있는 여인과 함께 산것으로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미에 적혀있는 말이... 가슴뛰며! 그래요,"가슴뛰며" 였습니다.
내게도 가슴뛰던 시절이 있었던게지요. 그 때는 살아있었던게지요. 생각느니, 가슴이 뛰지 않는다면 살아도 산게 아니겠지요.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요? 그 글을 읽는 순간 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하는겝니다.추억의 창고에서 내 젊은날의 편린을 본 순간,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당시의 꿈과 열기가 되살아나 온 몸과 마음을 휘감아 도는것이었습니다. 오욕과 회한으로 둘러싸였을 뿐이지만 그러나 부끄럽지 않은,이제는 돌이킬 수 없고 생각하면 다만 그리움뿐인 아아! 내 청춘!
3시간 30여분동안 계속 평균율을 들었지요. 오늘따라 왜 이렇게 감동적이던지요? 고백하자면,그동안 음악을 들으며 눈물지은 적이 적지않게 있었습니다만 그러나 바흐를 들으면서는 아니었어요. 수없이 바흐를 들어왔지만,또 상당히 좋다고 생각했지만 오늘처럼 가슴이 미어지지는 않았었지요.
아마 가라드의 마지막 선물이었겠지요. 그동안 사랑해준 주인에 대한 봉사를 SPU와 힘을 합쳐 이렇게 한 것이겠지요. 바흐와 굴드도 한 몫 했고 무엇보다 치기어린 나의 감상도요. 이런 날이 일년에 두어번만 있더라도 오디오는 참으로 할 만하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가라드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불끈 치밀어 올랐습니다만,그럴 수는 없는게지요. 평생 가라드를 가지고 있더라도 오늘의 음은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까요. 이제 나의 날은 갔지만 또 새 주인에게 헌신하기만을 빌 따름이지요.
올해도 거의 갔습니다. 그동안의 아쉬움일랑 모두 잊고 새해에는 매일매일 좋은 날 되시기를...
이만 총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