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필, 브루크너 9번
선용이가 클래식기타를 치기 시작한지 벌써 6년이 훌쩍 넘었네요.
악기를 공부하려면 음악을 많이 들어야지...핑계김에 함께 공연을 다니기 시작한지도 5년쯤 됩니다.
한해에 적어도 4~50번은 다닌 것 같습니다.
초반에는 주로 클래식 공연에 다녔지만, 점점 아이의 취향에 맞춰 주로 대중음악쪽으로 방향을 선회했지요.
클래식기타를 치면서도 오히려 대중음악에 관심이 더 많습니다.
공연 그리고 집에서 듣는 음악도 80프로 정도는 대중음악입니다.
행인지 불행인지 덕분에 저도 대중음악을 조금 들을 수 있게 되었지요.
간혹 강렬한 록을 들으며, 이건 이대로 맛이 있네... 느끼기도 합니다.
규순이와 보승이의 무시무시한 질타에도 끄떡없던 제가 이 지경(?)까지 되었으니, 새끼란 참 무서운 존재입니다.
선용이가 학교에 다니지 않은지도 거의 5년이 되었습니다.
5년동안 뭐했냐? 물으시면, 참 단순한 대답이 나옵니다.
기타치고, 음악듣고, 공연가고, 영화보고, 책읽고.병원다니고.
또래들이 하는 학과공부는 전.혀. 한적이 없지요.
아직 고졸검정고시도 안보았느니, 대단한 아들입니다.
저도 대놓고 방조했느니 할말이 없긴 합니다만...
여튼 내년이면 열아홉! 본인도 부모도 조금씩 걱정이 됩니다.
한달전, 가족회의를 했습니다.
"친구들은 내년에 고3인데, 너는 어쩔래?"
"한예종 음악원에 시험을 볼래요."
한예종, 한국예술종합학교. 쉽지않다 들었지요.
아내와 함께 타일렀습니다.
"네 체력으론 연습량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 말자."
"그래도 한 번 해볼래요."
"좋다. 그러면 딱 한번만이야."
"콜!"
앞으로 일년, 대중음악을 끊고(?) 클래식 음악 위주로 듣기로 했습니다.
당연히 공연 레파토리도 바뀌었습니다.
11월에 예매한 공연이 모두 7개인데, 1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클래식 공연이니까요.
어제는 세종에서 베를린필의 브루크너 9번을 들었습니다.
저는 84년 캬라얀 내한공연 후 두번째이고 선용이는 첫번째입니다.
귀가길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고, 선용이 나름의 감상평을 아래에 제가 정리했습니다.
당연히 제 의견은 배제했습니다.
* 음악이 시작되자마자 헉! 소리가 났다. 이건 진짜구나...
지난달의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세종) 그리고 며칠전의 모스크바필(예당)과는 사운드가 완전 다르다.
* 첫곡인 라벨 - 어릿광대의 아침노래는 노다메에서 들은 곡인데, 원곡인 피아노보다 더 마음에 든다.
* 호른 협주곡 '꽃피는 순간'은 처음 들어 본 곡인데 가장 좋았다.
예전에 여러 타악기들을 공부해 본 적이 있어 그렇겠지만 다양하게 나오는 타악기들은 최고였다.
중간에 나오는 바람소리와 소방차의 삐뽀 비슷한~소리때문에 무척 심란했다.
바로 옆에 있는 세종 체임버홀에서 외부의 시끄러운 소리가 유입된 것을 많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결국 소음은 아닌 것 같아 안심했지만 MR인지, 악기로 표현한 음악인지는 아직도 궁금하다.
* 브루크너 9번은 좀 아쉽다.
오케스트라는 정말 대단했다. 고도로 정밀한 기계같다. 관중도 키스 자렛 내한공연때 만큼이나 훌륭했다.
며칠전의 모스크바필 공연에서는 바이올린 협주곡 1악장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었다.
또한 공연도중에 핸드폰 불빛을 보지 않은 기억이 별로 없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전혀 보이질 않았다.
암보로 지휘한 사이먼 래틀도 일류인 것 같긴 한데, 나와는 뭔가 안맞는 느낌이다. 맹숭맹숭하다.
내가 이해하기엔 좀 어려운 곡 같은 느낌도 들고, 아님 예습삼아 들은 오이겐 요훔을 지나치게 많이 들었던가...
* 앵콜은 없었다. 당연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조금 억울하다.
지난 일요일 모스크바필공연때 지하철 막차시간때문에 앵콜을 한 곡만 듣고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나중에 들으니 무려 6~7곡이나 앵콜을 했다고 한다.ㅠㅠ
토,일요일은 지하철이 한시간씩 일찍 끊어지는데, 일요일 공연이 8시에 시작하는 것은 심하다.
저는 84년 카라얀 때가 더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때는 마음이 왈칵 흔들렸는데, 어젠 살랑살랑 했거든요.
그들이 변했는제, 제가 변했는지... 참 오랜 세월입니다.
오늘 밤 아람음악당에서 미샤 마이스키 공연이 있습니다.
선용이와 함께 가기로 했지만, 오랜만의 정모가 있는 날인데 총무가 빠짐 되냐고 하 원성이 자자하야...
저는 취소하고 선용이만 보내기로 했습니다.
오시는 분들 이따 뵙겠습니다.
사족; 제목은 거창하게 베를린필 어쩌구~인데 쓰고나서 함 읽어보니 어째 귀빼고 X뺀 당나귀 꼴입니다 그려~
혜량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