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안 재 휘

Do you like Brahms... 이건 ‘슬픔이여, 안녕’을 쓴 프랑소아즈 사강의 다른 소설 제목이다. 여기에 물음표가 아닌 마침표 세 개가 놓인 것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프랑스 사람들은 보다 감각적인 기질 때문에 브람스 음악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프랑스인들에게 브람스를 듣게 하는 것은 거의 절망적이라고 하는데, 외국인 또는 자기들끼리라도 브람스 음악이 연주되는 콘서트에 상대를 초대할 때는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 통례라고 한다. 딱히 대답을 듣고자 하기보다는 그냥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예사이기 때문인가 보다. 나도 한때 브람스 음악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먼가 안개 속에 잠긴 듯 흐리멍덩하고 명징한 메시지도 별로 안 보이고 지나치게 침잠하기만 하는 것 같은 음악이 나를 지루하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브람스 음악을 듣는 빈도가 잦아졌다. 나이 탓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활짝 웃지도, 골치 아픈 생각을 요구하지도 않고 생경한 조성이나 진보적 새로움으로 당황하게 하지도 않고 그저 관조의 세계로 담담히 이끌어 주는 브람스의 음악에 자꾸 손이 가게 된다. 그에 대한 평가가 이런 현상을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고전적인 형식에 바로크적인 전개 그리고 그 속에 낭만적인 정서를 표현’한다는...
Do you like Brahms? 이제 의문부호를 붙였다. 브람스를 좋아하십니까? 이제 내가 이즈음에 즐겨 듣는 브람스를 꺼내 볼까한다. 그것은 바로 브람스 만년의 클라리넷 곡들이다. 그의 교향곡 4곡, 협주곡 4곡도 브람스 특유의 정서가 잘 나타나 있지만 내가 이 만년의 실내악들을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그다지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내가 단순히 소편성의 음악을 더 선호한다는 이유일 뿐이다. 그리고 작곡가들의 만년의 음악이 원숙함으로 인한 대가적 난해함이나 복잡함이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는 것도 그 이유이다. 베토벤의 현악 4중주의 경우도 후기 몇몇 곡은 너무나 편안하고 관조적인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마지막 16번 Op.135의 경우는 악장수도 4악장 구조로 돌아오고, 더 단순화 되고, 더 편안한 전개를 보이고 있다. 세 번째 렌토악장의 주제와 변주는 자기 인생을 뒤돌아보는 환상이 고즈넉하게 펼쳐진다.
브람스는 어떠하였을까, 그는 마지막을 Op.122 오르간 곡 '11개의 코랄전주곡'과 Op.121 성악곡 '4개의 엄숙한 노래‘로 마감한다. 이 두 곡을 제외하고는 Op.116~119을 차지하는 피아노 독주곡과 클라리넷을 위한 4곡의 중요한 작품이 그와 마지막을 같이 하고 있다. 클라리넷곡 4곡이란 Op.114의 클라리넷 트리오, Op.115 클라리넷 5중주, 그리고 Op.120- 1/2 클라리넷 소나타 2곡이 그것이다. 브람스 음악에 있어서 실내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지만 그의 20여개에 달하는 실내악 중에, 그것도 후기에만 4곡의 클라리넷 곡을 썼다는 것은 다소 의아하기도 하다. 그것은 리하르트 뮐펠트라는 클라리넷 연주자를 만나게 된 때문이다. 현악5중주 Op.111을 마치고 1860년에 이미 그는 더 이상 창작을 할 것이 없다고 하면서 은퇴와 함께 조용한 노후를 계획한다. 그런데 1861년에 뮐펠트를 만나게 되고 그를 위해 3중주를 쓰고는 이어서 좀 더 규모가 큰 5중주를 작곡하게 되고 3년 후, 1864년에는 클라리넷 소나타 2곡을 더 쓰게 된다. 이 곡들의 클라리넷 파트는 작곡가 자신이 비올라로 연주하여도 좋다고 코멘트를 달아 놓아서 비올라로도 자주 연주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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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브람스는 피아노라는 악기의 중요성을 대단히 높이 평가하여 적용한 사람 중의 하나이다. 그의 실내악곡 26곡은 피아노가 들어 있는 곡과 없는 곡으로 분류하기까지 할 만큼 피아노를 널리 사용하였다. 피아노가 들어가지 않은 곡은 현악4중주 3곡, 현악 5중주 2곡, 현악6중주 2곡, 클라리넷 5중주 이렇게 8곡뿐이다. 이런 브람스의 만년 피아노곡 4곡은 나에게 항상 잔잔한 감동을 전해준다. Op.116 7개의 환상곡, Op.117 3개의 인터메쪼(Intermezzi), Op.118 6개의 피아노 소품(Klavierstuke), Op.119 4개의 피아노 소품...
음악이란 가슴을 두드리는 흥분과 넘치는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이렇게 잔잔하게 내 마음을 어루만지기도 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위로야말로 음악을 가까이 하는 제1의 이유이기도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요즈음 대편성의 위대한 곡들보다는 이런 소규모 편성의 실내악을 더 사랑하게 된다. 그저 가만히 틀어 놓기만 하여도 속삭이듯, 은밀한 인생의 오의(奧義)를 전하 듯, 한숨인양, 그러나 머 별게 있겠냐는 듯 달관의 헛웃음도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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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이 만년의 실내악들에 대한 음반 정보가 별로 없다. 클라리넷은 블라흐(Leopold Wlach,1902-1957)라는 명인의 연주가 좋다고 하나 접하지는 못했다. 그저 칼 라이스터, 자비네 마이어, 쉬프린, 스톨츠만 등의 이름이 들어있는 음반들이 좋아 보인다. 그의 실내악은 특별한 명연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설득력이 강하다. 누가 연주해도 좋다. 평소 브람스는 ‘나쁜 착상은 용서받을 수 있지만 나쁜 다듬기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것은 물론 창작에 임하는 자세를 말한 것이지만 연주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쩐지 구석구석의 스킬보다는 전체를 이끌어 나가는 균형 감각과 통찰력이 더 요구되는 것은 아닐지 짐작해 본다. 클라리넷 5중주는 흔히 모차르트의 것과 함께 커플링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보너스로 즐기기 좋다. 3중주는 베토벤, 모차르트와 같이 되어 있는 음반이 재미있다. 소나타는 클라리넷과 비올라로의 연주를 비교해서 들어 보아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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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부분의 오후 시간을 보내는 곳이 있다. 별스러울 것도 없는 작은 농장인데 저녁 어스름에 어김없이 브람스의 클라리넷 곡을 듣는다. 가득한 그리움을 추억 속으로 이끄는 3중주, 열정의 마지막에 선 쓸쓸함의 탄식을 듣는 듯한 5중주, 그리고 모든 것의 완결 편과도 같은 비감의 소나타 두곡이 서늘한 가을 미풍과 함께 끊길 듯 이어지고, 이어졌다가는 끊기면서 저만치 어두움 속으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