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브라보! 마술피리-2014.10.31(금)
대구국제오페라축제의 대미를 환상과 동화의 세계로 마무리한다.
‘마탄의 사수’, ‘헨젤과 그레텔’과 함께 독일 대중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오페라가 바로 이 ‘마술피리’라고 한다. 특히 모차르트의 몇 안되는 독일어 대본에 의한 징슈필이라 더욱 그러한 모양이다. 드라마트루기도 어디선가 한번쯤은 들어보았음 직한 전개이다 보니 어쩐지 더 친숙하다.
이제 벌써 대구 국제 오페라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할 오페라가 다가왔다. 하루 종일 가을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오페라하우스는 다시 분주해졌다. 오페라의 성격이 성격이니만큼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온 관객들이 많이 눈에 띈다. 매우 고무적인 일임과 동시에 내심 조금 걱정도 되기 시작한다. 지인들과의 반가운 인사를 뒤로 하고 자리에 앉았다.
2층 두 번째열 한가운데!
기가 막히게 좋은 자리다. 그런데 예의 그 아이들이 내 뒤로 포진하고 앉아있다.
막에 그려진 추상적인 그림과 무대 맨 앞의 소품을 보니 예감이 좋다. 지휘자가 입장하고 서곡이 연주되기 시작한다. 막이 오르고, 몇 사람의 연기자가 마임으로 무언가를 얘기하는 것 같은데 내용은 잘 모르겠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그다지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건 빈 필이나 유럽 유수의 악단과의 비교이니 반드시 공정하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이제 우리도 그들과 경쟁하고 비교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가 되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미 그들과 이렇게 비교할 수 있는 위치에까지 와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하다.
나는 대구 오페라하우스에서 칼스루에 오페라단을 세 번 만났다. 그 중에서 오늘이 최고이다. 오늘 울리히 페터스의 ‘마술피리’는 어디에 내어 놓아도 뒤지지 않을 프로덕션이라 생각한다. 막을 둥글게 또는 양쪽이 둥근 장방형 등으로 만들어 마치 인형극처럼 연출하여 이 오페라의 동화적 환상의 분위기를 더욱 고취시키고 있다. 그리고 무대 곳곳에 대담한 기하학적 면 분할로 녹색, 코발트색 등의 원색으로 이러한 분위기를 이어간다. 마치 유영국 화백의 초기 추상화를 보는 듯하다. 이것은 진정 미술이란 예술의 개가가 아닌가 한다.
그리고 파파게노의 새장하나를 무대 왼쪽에 위치시키고 그 속에서 사람도 드나들고 파파게노의 자살용 밧줄도 나오고, 또 이윽고 파파게나도 거기로부터 등장한다.
이런 콤펙트하고 다소 미니멀리즘적인 무대는 현대 오페라 연출에 잘 부합하고 있으며 관객들의 흥미를 이끌어 내기에 매우 효과적이다.
오늘 나는 장황하게 ‘마술피리’를 중언부언하지 않을 작정이다. 널리 알려진 오페라이기도 하지만 공허하게 인터넷적인 지식을 늘어놓을 만큼 이 지면이 넉넉치가 않은 것이다.
대부분 출연자들의 가창도 훌륭하다. 밤의 여왕으로 분한 배희라와 자라스트로를 연기한 콘스탄틴 고르니의 압도적인 노래는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파파게노의 노래는 그의 기가막힌 해학적인 연기에 가려 오히려 주목을 덜 받고 있다.
브라보! 브라보!
물론 그들의 노래가 세계 일류라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디아나 담라우, 게르하허, 베찰라, 뢰슈만, 르네 파페, 마티 살미넨... 이들을 당해낼 도리가 있겠는가.
그러나 그들은 분명 그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마술피리’를 소화해 내었다. 즉, 인형극 무대와 같이 연출한 그 개념으로 한층 톤 다운된 소박한 ‘마술피리’를 연기한 것이다. 어쩌면 모차르트가 생각했던 ‘마술피리’가 이런 모습은 아니었던가. 우리를 마치 독일 어느 네모난 돌들이 깔려있는 골목길 저자거리의 서민 극장으로 데려다 놓은 것 같은 정취를 느끼게 한다.
아마 이건 분명해 보인다.
오케스트라의 소리도, 또 출연 가수들의 소리도 오디오 기기의 볼륨을 평소보다 20~30% 줄여서 듣는 것과 같다. 여기에서 오케스트라가 더 강력하게 연주한다거나 가수가 보다 더 내지른다면 그 발란스는 무너져 버렸을 것이다. 적절한 볼륨을 시종 콘트롤하고 있는 마에스트로 다니엘레 스케오의 공로가 빛을 발한다.
그러나 역시 이 오페라의 성공은 연출가에게 돌려야 마땅할 것이다. 이제 세계 오페라는 바야흐로 연출가의 오페라가 된 지 오래이다. 더 이상 관객들은 삼단치마에 장대한 무대를 선호하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의 ‘마술피리’는 성공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내가 공연시 주변 소음이나 움직임에 유독 민감한 점도 있지만, 내 뒤를 점령하고 있는 아이들의 산만함이 옥의 티였다. 그들의 관람은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할 일이지만 그에 상응하는 공연예절 교육도 반드시 따라야 할 것이다. 공연 내내 이야기를 나누고, 부스럭 거리고, 계속해서 리플렛으로 소음을 내는 것이 참기 어려워서 결국 주의를 주고야만다.
그러고 나서는 스스로 신경이 쓰여 몇 분간은 또 공연에 집중하지 못한다. 그래도 끊임없는 방해를 계속 참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인터미션 시간에 해명과 함께 또 간단하게 예절 이야기를 한다. 그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아저씨의 잔소리 쯤으로 들었겠지만 그들이 작은 소리, 작은 움직임이라 생각되는 것들이 얼마나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이게 하는지 알려 주어야만 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오늘의 공연에 박수를 보낸다.
나는 오페라 관계자도 아니고, 시청에 속해있는 공무원도 아니다. 나는 그저 일개 음악 애호가이고, 음악 소비자에 불과하다. 이 백면서생은 창작 오페라에 대한 관심도 별로 없고, 완성도가 떨어지는 오페라에 격려의 박수를 한정없이 보낼 수도 없다. 오히려 나는 일반 대중들과 함께 저간의 사정을 양해해 주지 않는 악역을 자임한다. 따라서 이 강팍한 기호에 기존의 오페라의 완성도 확보와 창작 오페라 등의 노작들을 각고의 노력으로 이끌어 주기를 이기적으로 바랄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