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V Receiver : AVC-A1S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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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논, 플래그십의 덕목을 알려주다

여기에 소개하는 데논 AVC-A1SR은 발매된 지 1년도 지난 모델이다. 가뜩이나 동호인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플래그십 모델인데다 시간도 충분했기 때문에 이미 알려질 만한 것들은 모두 알려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출시 된 이후로 줄곧 당대 최고라는 타이틀을 놓치지 않고 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며, 이런 제품이라면 시간을 할애해 한번 더 꼼꼼히 살펴볼 만한 가치도 충분할 것이다. 이 모델은 어느 모로 보나 플래그십이라는 타이틀이 부끄럽지 않은 제품이다.

스펙과 실제 성능, 사용된 부품과 만듦새 어디 한구석 처지는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데논 A1SR을 가장 플래그십 모델답게 만들어주는 따로 그것은 바로 이 제품 속에 응축되어 있는 좋은 소리를 향한 집요한 욕망이다. 이런 욕망이야말로 A1SR의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이자 개발의 원동력인 것이다. 실제로 A1SR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과연 가전 제품에 이 정도의 부품들이 필요한가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거대한 전해 콘덴서나 투박한 트랜지스터들을 보면 이것은 마치 가전제품도 전문장비도 아닌, 산업용 장비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이렇게까지 해가면서 데논이 얻고자 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순도 높은 신호이다. 본체 내부는 기능별로 최대한 분리되고 격리되어 있으며, 부정적인 요소는 최대한 억제하고 긍정적인 요소는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아낌없는 물량이 투입되었다. 이런 노력들은 퓨어 다이렉트 모드를 비롯한 다양한 기능과 기술을 통해 애초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소리를 들려준다. 그럼 일단 외모부터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하자.

A1SR의 외모는 한마디로 점잖고 간결하다. 하단의 컨트롤 박스에 숨겨진 스무 개의 버튼들이 모두 드러난 상태에서도 이런 이미지는 무너지지 않는다. 이는 또한 공격적인 내부 설계와 극적으로 대비되는데, 마치 쓰디쓴 약을 달콤하게 감싸 놓은 당의정과도 같은 인상이다.

한편 전면의 우측 하단에 새겨진 'Surround Reference' 라는 문구에서 느껴지는 담담한 자신감은 제품 자체의 크기와도 무관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크다고 느껴지는 앰프라도 그 높이가 17cm 안 팎인 반면, A1SR의 높이는 21,6cm나 된다. 기껏해야 3, 4cm 정도의 차이라고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한번이라도 실물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시각적 포만감을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빈 깡통을 놓고 높이만 높인 것은 아니다. 후면에 빼곡이 정렬된 각종 단자들을 보면 제품의 단면적이 오히려 좁게만 느껴진다. 특히 다양한 입출력단 중에서도 두 세트의 8채널 입력단이 마련되어 있다는 사실은 상당히 만족스럽다. 그러나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컴퓨터나 네트워크 관련 장비에서나 볼 수 있는 RJ45 규격의 랜 포트이다. 그렇다고 A1SR을 네트워크에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고, 이것은 어디까지나 데논의 독자적인 디지털 인터페이스인 데논링크를 위해 마련된 단자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데논링크를 지원하는 플레이어는 동사의 최상위 모델인 DVD-A1뿐인데 이 모델은 SACD를 지원하지 않는다.

또한 데논링크는 복제 방지된 DVD 오디오 타이틀에 대한 디지털 전송도 허락하지 않는다(불행하게도 워너에서 출시하는 모든 DVD오디오 타이틀에는 이런 복제 방지 기술이 적용되어 있다), 비록 상용화된 스펙만을 비교해볼 때 경쟁사에서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IEEE1394에 비해 수치상으로 앞서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데논 링크에서는 불가능한 일들이 IEEE1394에서는 이미 구현되고 있다. 플래그십 모델만을 위한 프리미엄 서비스로서의 데논 링크라면 모를까, 그 이상의 의미를 원하는 걸이라면 데논링크가 나아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다고 하겠다.

힘과 깊이를 보여주는 설계

이쯤에서 눈길을 돌려 제품의 내부를 들여다보자. 일단 따로 분리되는 상하좌우의 커버들을 벗겨보면, 후면에서 느껴졌던 비좁음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도대체 빈틈이라고는 없는 것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아무래도 중앙에 있는 초대형의 메인 트랜스포머와 2개의 전해콘덴서인데, 시간당 720w의 전력을 소모해가면서 7채널을 통해 각각 8Ω에서 170w의 정격 출력을 가능케 하
는 든든한 배후가 바로 이들이다. 넉넉하다기보다는 넘칠 것만 같은 파워는 결과적으로 안정된 소리를 들려주게 된다. 한편 메인 트랜스포머를 중앙에 위치시킨 것은 매우 훌륭한 발상이었다.

이는 전기적으로 유발될 수 있는 진동을 억제하는데 효과적이며, 좌우의 파워 앰프부를 위한 방열판을 이용해 보다 적극적으로 격리시킴으로써 전자기적 노이즈의 혼입도 막을 수 있다. 또한 방열판을 식혀 주기 위한 냉각팬을 공유함으로써 효과적인 방열이 가능해져서 일석삼조의 효과를 보는 것이다. 한편 좌우 방열판에 하나씩 달려 있는 80mm 팬은 지능적으로 제어되며, 소리로 그 존재를 드러내는 일은 없다.

이번에는 제품의 측면을 보도록 하자.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제품의 좌우 측면에는 각 방향의 채널을 담당하는 아날로그 파워 앰프 기판이 자리하고 있다(센터 채널은 오른쪽 기판에 포함된다). 이 부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하단에 일렬로 자리한 큼직한 트랜지스터들이다. 폭이 3,4cm는 족히 되어 보이는 이들의 크기는 소형 가전제품에 사용되는 반원기둥 형태의 손톱 만한 트랜지스터와 그 체급부터 다르다. 이들은 히타치의 MN1715와 Mp1715 트랜지스터로, 각 채널마다 한쌍을 이루어 푸시풀 방식으로 작동함으로써 예의 강력한 출력을 구현한다. 강력한 출력은 스피커에 대한 강력한 장악력으로 직결되며, 결과적으로 안정된 소리를 들려주게 되는 것이다. 물론 넉넉한 용량의 레귤레이터를 채용함으로써 안정된 에너지를 확보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번에는 제품을 뒤집어서 A1SR의 배면을 보도록 하자.

여기에는 배면을 가득 채우는 디지털 파트의 기판이 위치해 있다. 특히 많은 관심을 끌었던 DSP 파트는 도터보드 형태로 부착되어 있는데, 2개의 DSP와 각각71 대한 64Mb의 SD램 등이 장착되어 있다. 사용된 DSP는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아날로그 디바이스의 샤크 (SHARC, Super Harvard Architecture)이다. 사실 샤크에는 여러 가지 버전이 있는데, 여기에 사용된 샤크의 품번은 ADSP-21161N이며, 해머헤드(귀상어)라는 별명으로도 알려져 있다. 물론 전작인 AISE에 사용된 DSP 역시 샤크 시리즈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때 사용된 ADSP-21061과 비교하자면 동작 속도는 2배, 연산 능력은 무려 4배나 증가한 제품이다.

이는 50MHz로 작동하는 펜티엄 CPU를 능가하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A1SR은 2대의 펜티엄 컴퓨터를 놓고 한 대는 DD/DTS 디코딩 전용으로, 한 대는 THX를 포함한 음장 전용으로 사용하는 것과 같은 능력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듯 훌륭한 처리능력도 입출력 되는 신호의 품질이 확보되지 않는 한 모두 무의미해진다. 이를 알고 있는 데논은 아날로그 입력단에는 192kHz/24비트의 A/D 컨버터를, 아날로그 출력단에는 마찬가지로 192kHz/24비트의 D/A 컨버터를 사용했다. 특히 출력단에는 채널당 2개의 DAC가 할당되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전작인 AISE에서는 ADC와 DAC 모두 아날로그 디바이스의 제품들이 사용되었으며, 아날로그 입력단에서는 96kHz/24비트까지만 지원했었으나, A1SR로 오면서 TI에 인수된 버 브라운의 제품으로 모두 교체되었다. 이것은 오히려 DBP의 업그레이드보다도 더 비중 있게 보아야 할 변화이다. 입력단에 대한 분해능력의 증가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버 브라운의 제품이라면 최고 수준의 품질이 보증되기 때문이다.

한편 아날로그 멀티채널로 입력된 신호를 디지털로 변환함으로써 앞서 소개한 샤크를 이용해 다운믹스나 베이스 매니지먼트 등의 설정을 적용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심지어 THX 프로세싱도 가능하다. 만약 이런 식의 조작을 원하지 않는다면 퓨어 다이렉트 모드를 선택함으로써 디지털 파트의 전원이 모두 차단된, 순수한 아날로그 파워 앰프로만 사용할 수도 있다. 한편 A1SR은 A/B 두 조의 서라운드 스피커를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데, 각각에 대한 설정이 따로 저장되므로 영화와 음악을 위한 최적의 설정을 독립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기본적인 음질 경향

그럼 이제부터는 실제로 A1SR이 보여주는 능력을 확인해보도록 하자. 일단 A1SR의 음질 경향을 간단히 파악하자면,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유연하다. 부드러움과 과감함이 공존하는 고역과 투명한 중역, 그리고 힘과 깊이를 고루 갖춘 단정한 저역이 고른 균형을 이룬 소리이다. 재생되는 모든 소리는 그 크기와 상관없이 명확하게 전달되며 투명하고 선명한 공간을 형성한다.

가장 먼저 재생해본 타이틀은 1995년 작품인 영화 (히트)이다. 이 영화에서는 아무래도 저 유명한 도심 총격전을 빼놓을 수 없는데, 다큐멘터리를 연상시킬 정도로 사실적인 연출도 연출이지만 그 실감나는 사운드는 지금 봐도 독보적이기 때문이다. 그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탄피가 구르는 소리마저 자연스럽고 섬세하게 살려내는 사운드는 매트릭스의 로비 총격전보다도 한수 앞선 오리지널의 느낌을 준다. 특히 A1SR의 폭넓은 다이내믹 레인지는 큰 소리를 큰 소리대로, 작은 소리는 작은 소리대로 명확하게 살려준다. 총탄에 맞아 깨지는 자동차의 안전유리는 단지 쨍그랑하고 깨지고 마는 것이 아니라, 차의 내부와 아스팔트 바닥에 차르륵하고 쏟아진다. 또한 넘치는 파워와 꾹꾹 눌러 담은 듯한 소리로 표현되는 총성은 빠르면서도 육중해서 '탕' 하며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빡 하며 고막에 직접 전달된다. 게다가 5.1채널을 7.1채널로 확장시켜 주는 THX 울트라2 시네마 모드는 건물과 건물 사이에서 메아리치며 멀어지는 총성을 더더욱 멀리까지 날려보낸다. 녹음에 많은 공을 들인 것이 사실이지만, 데논이 밝히듯이 소프트 제작자의 의도를 충실히 살려내는 방향으로 개발된 제품이라는 점에 있어서도 의심할 여지는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최고의 영상과 사운드를 보여주는 타이틀인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 확장판을 재생해봤다. 이 영화에서는 반드시 확인하게 되는 장면이 바로 프를로그에서의 전투 장면이다. 특히 사우론이 소멸되는 순간, 카메라가 멀찌감치 물러나면서 전장의 한복판을 잡아내지만 그 순간의 충격파는 카메라보다도 더 빠르게 중앙으로부터 후방으로 퍼져간다. 이때 들려주는 소리가 매우 인상적인데, 단순하게 표현되는 저역이 단단하다 혹은 밀도감이 느껴진다 정도가 아니다. 마치 끈적하면서도 미끈거리는, 그리고 시커멓게 번들거리는, 커다랗고 깊은 원유 구덩이에 돌을 던져서 생기는 동심원의 파동과도 같은 질감의 소리이다. A1SR은 또한 소리뿐 만이 아니라 영상에 대해서도 믿음직한 성능을 보여준다.

프로도가 책을 읽고 있는 숲의 싱그러운 초록색이나, 리차드 기어와 위노나 라이더 주연의 (뉴욕의 가을)에서 보여주는 센트럴파크의 붉은 단풍은 플레이어로부터 전달 받은 영상신호를 고스란히 살려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A1SR의 비디오 파트는 풀 스펙의 HD 규격을 커버할 수 있도록 제작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콤포지트와 5-video를 콤포넌트로 스위칭할 수 있기 때문에 다수의 소스기기들을 만족스럽게 통제할 수 있다.

디테일이 살아 있는 스테이지

한편 음악에 있어서도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는데, 여죄수 락 밴드의 탈옥기를 그리고 있는 (밴디트)와 같이 음악이 전면에 나서는 영화는 소리가 달라진 만큼 보는 재미도 달라진다.

보다 본격적인 음악 타이틀로 넘어와서 스웨덴 라디오 합창단과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협연으로 열린 카라얀 10주기 추모 연주회 (레퀴엠)(아트하우스 뮤직,100037)에서는 특히 모든 소리들이 잘츠부르크 대성당에 깊이 스며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디테일이 살아있는 선명한 스테이지를 형성함으로써 제한된 시청 공간을 대성당 규모로 확장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악기와 음성이 자장되게 부풀어오르는 일 없이 딱 그만큼의 무게, 그만큼의 질감으로 살아난다.

한편 DVD 오디오와 스테레오 CD로 넘어와서는 퓨어 다이렉트 모드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퓨어 다이렉트 모드에서는 명확한 스테이지의 경계가 살짝 희미해지면서 한결 부드럽게 나타난다. 음색은 디지털 파트를 거친 소리에 비해 살짝 건조하고 푹신해지는데, 변화의 폭은 크지 않지만 분위기는 매우 달라진다. 양쪽 모두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으므로 기분에 따라 번갈아 들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이다.

퓨어 다이렉트 모드로 듣는 퀸의 Al SR의 전반적인 음질 경향은 대체로 차분하고 유연하다. 고역은 부드럽고 힘이 있으며, 중역은 투명하고, 저역은 단정하여 하이파이용으로도 손색이 없다. (A night at the opera)에서는 살짝 밝아진 음색으로 한올한올 살아나는 소리가 분명한 초점을 두고 모여든다. 가벼운 소리는 더욱 가볍게 찰랑거리고, 무거운 소리는 더욱 무겁게 밀고 들어온다. 이것은 마치 날을 세우지 않은 예도와 같은 인상이다. 본래의 공격성은 그대로 간직한 채, 위험한 날카로움 대신 품위를 선택한 소리이기 때문이다. 데논으로서는 고민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임에 분명하다.

후속기종의 보급형 모델을 미리 내놓고 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최상위 모델을 발매하는 데논의 관례를 볼 때, 올해 안으로 A1SR의 후속기종을 내놓기란 힘들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A1SR이 훌륭한 모델인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경쟁사들과의 치열한 플래그십 전쟁에서 2년이 넘도록 최고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가능할까? 그렇다고 의미 없는 후속기종을 발표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AIS 시리즈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분리형 모델을 앞세워 정면돌파를 시도할런지도 모른다. 발매 여부에 대해서는 쉬쉬하고 있지만, 프리-파워 분리형 앰프를 개발 중이라는 것은 데논도 인정한 사실이다. 마란츠에 이어 최근 매킨토시마저 한 지붕 밑으로 끌어들인 데논이기에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관심을 끈다.

본 리뷰는 "Stereophile & Home Theater" 제5호(2003년 5월호)에 게제된 기사입니다. "Stereophile & Home Theater"의 정기구독을 원하시면 여기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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