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커의 이상형을 추구한 Rockport사의 야심작 MIRA
과연 1억원짜리 턴테이블을 만드는 회사가 내놓은 스피커에서 어떤 소리가 날까? 오디에계에선 가끔 상식을 초월한 제품이 나오기도 하고, 가끔 그 중에 설득력이 있는 소리로 애호가들의 탄성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시리어스라는 이름의 턴테이블은 좀 너무했다. 그러므로 1억짜리 턴테이블을 만드는 회사인 락포트(Rockport)라는 회사에서 미라(Mira)라는 이름이 붙여진 본기를 대할 때 속으로 반감이 앞선 게 사실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 방 먹었다. 일단 가격을 납득할 만한 퀄리티가 있고, 앰프나 케이블 등에 투자를 계속해서 추구한다면 훨씬 좋은 효과도 기대할 수 있는 제품이다.
그럼 구체적으로 미라의 설계 방향을 점검해보자. 우선 피아노 마감으로 이뤄진 자태가 그리 나쁘지 않다. 전면 배플은 좁고 긴 대신, 측면에 우퍼를 수납한 챔버가 밑으로 있다. 이것은 구조적으로 장단점이 있는 설계다. 우선 우퍼를 전면에 배치한다고 하면 당연히 우퍼의 용적에 맞는 챔버를 구성해야 하고, 그럴 경우 전면 배플의 면적이 넓어지게 된다. 음의 회절이나 반사에서 당연히 불리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 저음 반사 포트를 밑으로 하느냐 앞으로 하느냐 뒤로 하느냐에 따라 스피커 세팅의 표준이 달라진다. 아무튼 맑고 명료한 중고역의 디테일을 중시한다면 이렇게 우퍼의 배치를 옆으로 하는 것은 의미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고, 맑고 명료한 저음을 얻기 위한 다각도의 매칭과 세팅이 대기하고 있다. 이 부분은 워낙 미묘해서 뭐라 말하기 힘들지만, 결국 세팅에 따라 낯을 가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그것은 액수에 상관없는 일로, 이를테면 200W급의 인티 앰프로 매우 훌륭한 결과를 냈다면 과연 믿을 수 있겠는가? 실제로 그렇다.
여기서 잠깐 전면 배플을 살펴보면, 상단에 트위터와 우퍼를 수납한 챔버가 있고, 밑으로 쭉 뻗어 있는 가운데, 가장자리에 일정한 각을 준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아발론이나 에오스 등의 스피커에서 볼 수 있는 낯익은 형태다. 이것 역시 음의 회절이나 반사를 막기 위한 조치로 각이 진 상자형 디자인보다 훨씬 스무스한 중고역을 얻을 수 있다. 특히, 일정한 각도로 뒤를 기울이면 자연스럽게 스피커 뒤편에 깊이 있는 무대를 형성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 물론 앞으로 달려들 듯 쏟아지는 중고역의 어택감은 약하지만, 현대 스피커에서 스테레오 이미지가 주는 쾌감을 생각한다면 적절한 설계 방침이 아닐까 싶다.
전면 배플에 위아래 나란히 배치된 중고역 유닛을 보면, 우선 미드레인지를 담당하는 것은 덴마크의 오디오 테크놀리지사에 특주한 5.25인치 콘이다. 그런데 단순히 폴리 계열로 제작한 것이 아니라 여기에 미네랄 성분을 함유시켜서 표면을 매끈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질감이 우수하고, 청량감이 있는 중역이 재생된다. 이 미드레인지는 아마 록포트만의 독자적인 노하우가 아닐까 싶은데, 실제로 동사에서 생산되는 상급 모델들에도 역시 같은 제품이 쓰이고 있다. 트위터나 우퍼는 모델에 따라 다르지만, 중역에는 이 회사의 제품이 늘 활약하고 있는 것이다.
트위터를 보면 스캔스픽사의 1인치 직경의 레벨레이터이다. 상급기에선 다인오디오의 에소타를 쓴 반면 여기서는 레벨레이터를 쓰고 있는 점이 미묘한데, 그것은 미드레인지의 직경과 무관하지 않을 듯싶다.
플래그쉽 모델인 하이페리온에서는 6인치 구경이 두 발 들어가 있고, 그 밑의 메락 2에선 7인치 구경이 한 발 들어가 있다. 즉, 에소타 특유의 음색과 에너지를 커버하려면 최소 6인치 이상의 미드레인지가 동원되어야 하고, 그 이하라면 레벨레이터가 차라리 궁합이 맞다는 데이터 결과인 것이다. 스피커 자작에 흥미가 있는 분들이라면 이런 결과에 주목해도 좋을 듯싶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2차 라디에이션을 피하기 위한 조치로, 중고역 유닛이 수납된 전면 배플을 펠트천으로 마감했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그 펠트천은 스타인웨이 & 선이라는 피아노 회사에서 사용하는 제품이다. 개인적으로는 전면 배플에 반사가 심한 재질보다는 이런 펠트천이나 물소 가죽 등으로 마무리하는 게 유리하다고 본다. 소너스 파베르, 베리티 오디오, 피크 컨설트 등 이런 수법을 쓰는 회사들이 의외로 많은 데에 주목하기 바란다.
이어서 문제의 우퍼. 유닛을 보니 비파사의 10인치가 쓰였다. 5.25인치의 미드레인지라면 10인치는 사이즈 상으로 적당하다고 여겨지지만, 역시 배치에는 신경이 쓰인다. 과연 어떻게 중고역의 투명하면서 상쾌한 디테일을 손상하지 않고 저역을 구동하느냐가 본기를 운용하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인클로저를 보면, 전면은 75mm 두께의 고강도 MDF를 사용했고, 측면은 37mm의 두께의 MDF가 동원되었다.
상급기들이 파이버보드 두 장에다 그 사이에 에폭시 코어 계통의 물질을 첨가하는 방식과는 다르지만, 강도나 밀도 면에서 결코 뒤진다고 할 수는 없다. 한편 여기에 12mm 두께의 콜타르계 댐핑제를 마감으로 썼다. 피아노 피니슁을 위해 역시 스타인웨이 & 선사의 도장법을 따라 무려 11번이나 도장 처리했다고 하니, 가히 피아노 제작의 열의만큼이나 공을 들였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입력 감도 88dB, 무게 67kg, 높이 1미터 14센티 크기의 본기가 탄생한 것이다.
그럼 구체적으로 소리의 경향은 어떨까? 전술했듯 매칭에 따라 다른 결과를 초래했는데, 잘 매칭된 시스템으로 들어보면 우선 중고역이 매우 산뜻한 데 놀라게 된다. 주로 매칭하여 들었던 골드문트 330 인티앰프와의 조합에서 노라 존스의 목소리는 너무나 청아해 20대 처녀의 풋풋함으로 가슴이 설렐 지경이고, 무터의 바이올린 연주에선 면도칼로 공간을 가르는 듯한 예리함이 돋보인다.
소니 롤린스의 색소폰은 잘못 울리면 중후장대하기만 해서 때론 느끼하기만 한데, 여기서는 롤린스가 20대 청년의 기백으로 불어 젖힌, 그 나이에 걸맞는 활력과 생기가 충만하다. 야신타? 너무나 발음이 달콤하고 또 세밀하게 묘사되어 그저 만사를 잊고 음악에 푹 잠기게 한다. 거기다 잘 컨트롤된 저역이 보강될 경우 그 효과는 극적이다. 재즈에서 더블 베이스의 탄력적인 울림이나 킥 드럼의 어택감이 동반되어 그 열기가 배가되고, 클래식에서는 풀 사이즈의 오케스트라가 눈앞에 펼쳐진다. 총주시의 펀치력엔 정신이 아찔할 지경이다. 즉, 이때부터는 마술의 경지로 들어서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매칭 문제인데, 앰프의 매칭에 따라서 어떤 앰프와는 너무 미끈한 음이 빠져나오는 구동이 잘 되지 않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다른 앰프와 매칭에서는 다소 경직됨과 활기가 떨어진 심심한 음이 나오기도 한다.
이런 결과에 당황해서 이런저런 앰프를 물려보다 우연찮게 골드문트의 330이라는 인티 앰프를 물려보곤 경악하고 말았다. 갑자기 음에 생동감이 생기고 활기가 넘친다. 기분 좋은 어쿠스틱 베이스의 울림이 약동감으로 다가오고, 여성 보컬의 발성은 말 그대로 스위트 하며, 어떤 소스를 걸어도 음악적인 생기발랄함과 깊이가 연출된다. 가격적으로는 다소 무리가 있는 매칭이지만 이런 상쾌한 음의 향연은 매우 인상적이다.
아무튼 미라는 매칭되는 앰프를 잘 만나면, 메이커측의 주장대로 정전형의 상쾌함과 밀폐형의 다이내믹을 두루 즐길 수 있는 음을 꾸밀 수 있다. 한 두 종의 앰프를 물려보고 포기해버리는 오류는 제발 범하지 말았으면 싶다. 락포트 미라는 노련한 유저의 손길을 기다리는 만만찮은 제품인 것이다.
- 이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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