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웨이의 극한에 도전한 얼티미트 모니터
천천히 다가가서 스피커 인클로저를 쓰다듬어 본다. 실제로 만져보면 이 스피커, 겉보기와 달리 깊이가 대단하고 또 상당한 무게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표면의 매끄러움이 놀라워 그 감촉이 손끝에 생생히 전달된다. 만일 벌레가 그 위에 앉았다면 바로 밑으로 떨어질 것 같다. 이런 가공할 만한 절삭 가공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참고로 본사를 창업한 칼 슈만이라는 분은, 비록 오디오 업계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참이지만, 오랜 기간 동안 CNC 절삭 가공 전문가로 활동한 바 있다. 특히 그가 만든 공구의 신뢰도가 높아 그쪽 분야에선 꽤 이름난 엔지이어였던 것이다. 이 제품의 인클로저 역시 그의 솜씨가 뛰어나게 녹아들어 있어, 합금 재료로 만들어진 겉 부분과 카본 파이버로 이뤄진 안 부분을 절묘하게 결합시켜 통으로 가공하고 있다. 말하자면 원 피스로 이뤄진 인클로저인 것이다. 여기에 세 개의 유닛을 결합시킨 전면 배플이 부착되는 구조다. 생각해보면 지극히 간단한 설계다.
물론 말은 쉽지만 이런 방식으로 스피커를 제작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전면 배플을 보면, 일종의 가상 동축형으로 위 아래 배치된 우퍼 사이에 일정한 원형의 홈이 파여진 트위터를 삽입한 구조인데, 일체의 낭비가 없는 완벽에 가까운 디자인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스피커든 전면 배플에 유닛을 배치하면서 남게 되는 에어리어가 문제시 된다. 그것이 2차 라디에이션을 유발하는 동기가 되고, 이를 피하기 위해 물소 가죽이나 펠트, 비단 천 등을 발라서 영향을 최대한 줄이려 한다.
하지만 여기에선 그럴 필요가 없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전면에 유닛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그 유닛이 동작하면서 생기는 회절이나 잡공진을 억제하기 위해 뒤의 인클로저에 유선형의 커브를 달았다. 음이 자연스럽게 뒤로 흘러서 빠지게 한 것이다. 또 일종의 밀폐형으로 구성되어 뒷공간과의 간섭을 배제한 점, 인클로저의 뒷길이를 최대한 늘려 음에 일정한 살집과 깊이감을 더해주는 점 등, 거의 스피커의 이상형에 가까운 포름에 도달하고 있다. 그러므로 현기증이 나도록 빠른 스피드뿐 아니라 적절한 양감도 확보한 점은 2웨이 북셀프의 강점을 극대화하면서도 그 약점을 최대한 보완한 설계라 평가하고 싶다.
따라서 극도로 투명하면서 해상력이 풍부한 음이면서도 소스에 따라선 광폭한 다이내믹 레인지에도 적극 대응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스피커는 스피커 자체만으로 동작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공간과 적극 교류하면서 리스닝 룸 전체를 활용하는 스피커라 할 만하다. 그간 수없이 다양한 스피커를 접해본 필자로서는 이 제품의 포름에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쾌감을 느꼈다. 오랜 시간 동안 스피커를 붙들어 맸던 인클로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유닛이 활약하도록 만들면서도 역으로 인클로저의 양감을 이용하는 컨셉. 복서로 치면 스피드와 펀치력을 동시에 갖췄다고 할까? 슈가 레이 레너드의 순발력과 조지 포먼의 한 방을 두루 갖춘 복서가 바로 본기, 얼티미트 모니터인 것이다.
여기서 잠시 유닛을 보면, 모두 스캔스픽제임을 알 수 있다. 두 발의 우퍼에 쓰인 유닛은 6인치(15cm)로서, 착색음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제조된 특주품이다. 얼티미트 모니터 특유의 상쾌하고 순발력이 좋은 저음은 이 유닛의 성격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또 이에 커플링되는 트위터는 네오디뮴 자석을 사용한 1.1인치(28mm) 소프트 돔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우퍼가 전면 배플의 앞면에 장착되는 것과 달리 트위터는 뒷면에 장착된다는 것이다. 또 이 모든 유닛에는 방자 처리가 되어 있어 TV나 비디오 테크 옆에 놔도 일체의 간섭을 하지 않는다.
자, 드디어 부머(The BOMB)를 부착할 시간인데, 일단 부머의 모양부터 살펴봤다. 긴 막대기처럼 생긴 이것은 철제의 단단한 인클로저가 특징이고, 그 안에는 배터리가 장착되어 있다. 그 수명은 무려 3000시간. 그도 그럴 것이, 신호가 통과할 때 약한 전류를 흐르게 해서 일종의 부스터 효과를 노리는 구조이므로 많은 전력을 소모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재생되는 음은 경천동지할 정도의 드라마틱한 효과를 드러낸다. 이 스피커의 시청을 위해 동원한 기기는 다음과 같다.
여기서 물론 부머는 프리와 파워 사이에 삽입했으며, 케이블은 주로 PAD 제품을 이용했다. 첫 곡은 안네 소피 무터가 연주하는 사라사테의 <카르멘 환상곡>. 처음부터 몰아치는 오케스트라의 파워와 약동감이 일단 놀랍다. 그간 소풍을 나갔던 더블 베이스 주자나 첼리스트가 돌아온 듯, 갑자기 저역에 힘이 붙고 전체 무대 사이즈가 커진다. 그 위를 질주하는 무터의 바이올린은 그 기교와 힘이 대단해서 그 압도적 박력에 이쪽이 주눅들 정도다. 물론 이렇게 쓰면 귀가 쏘고, 강제로 부스트시킨 저역을 연상하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말하자면 통상의 잘 만들어진 3웨이 스피커가 기분 좋게 재현하는 음이 여기서 일체의 에누리 없이 재생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한때 필자를 사로잡았던 와트 퍼피나 안드라 류가 잘 컨트롤되었을 때 실감할 수 있는 윤곽이 분명한 저역과 나긋나긋한 고역을 여기서 만끽할 수 있다. 말이 그렇지 저 조그마한 스피커에서 이런 사이즈와 양감이 가능하다는 것은 결코 실감할 수 없는 일이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다.
이어지는 윈턴 마살리스의 "Feeling of Jazz". 여기서는 게스트 보컬로 다이앤 리브스가 나오는데, 그 탁월한 성량과 흑인 특유의 감성을 실은 진한 맛이 일품이다. 역시 여기서도 시작부터 몰아치는 그녀의 다소 나른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보컬이 천천히 전개되는 가운데, 느닷없이 왼쪽 채널에서 윈턴의 트럼펫이 박격포가 터지듯 포효한다. 그 엄청난 음량에 깜짝 놀라 뒤로 움찔하면 이어서 현란한 트럼펫 연주가 전개되면서 전체 악단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장면이 순간 선명하게 포착된다. 신명나게 더블 베이스가 리듬을 타고 흐르면 그 위로 강인한 타건의 피아노가 오른쪽 채널을 메우고, 중앙에 우뚝 선 드럼은 마치 북을 부술 듯이 사정없이 두드려댄다. 그런데도 이런 개개의 악기가 정확히 위치한 가운데 서로 간섭하지 않고, 더구나 스피커는 시치미를 떼듯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는다. 놀라서 가까이 다가가 보면, 우퍼가 사정없이 앞뒤로 움직인다. 그 장면이 또 감동적이다. 멀리서 보면 아무렇지도 않은 듯싶지만 웬걸, 그야말로 중노동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나온 음은 절대로 쥐어짜거나 억지로 만든 음이 아니다.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실제 콘서트장에 온 듯하다. 어떻게 이런 사이즈로 이런 음이 가능한 것일까.
마지막으로 들은 밴 모리슨의
- 이종학 / 오디오 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