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비슷한 논리적 배경에 의거해서 가끔 복각이라는 이름으로 소위 명기라는 제품들이 복제되고 있는 듯하다. 오리지널의 마무리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크게 저렴한 가격으로 제작되므로, 재미삼아 참여하고 소유의 즐거움을 충족하는 사람들도 많다. 어차피 오디오라는 것은 주관적 특성이 강한 취미이므로 성능과 가격에 대한 상관관계는 개개인의 인터프리테이션에 따라서 평가될 것이다. 같은, 적어도 비슷한 성능의 부품과 설계치수를 놓고 제작하는 것이므로, 게다가 스피커와 같은 경우는 비교적 적은 수의 부품이 투입되므로 디자인상의 차이는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된다는 생각이 배경에 깔려 있는 듯하다.

필자는 평소에 작고 야무진 인티 앰프에 물린 탄탄한 북셀프가 울려대는 고즈넉한 실내악 - 공간을 걱정할 필요도 없고 자칫 허리를 다칠 지도 모르는 무거운 기기도 없는 그런 좋은 세상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만만히 돌아가지를 않는다. 그래서 필자는 여전히 수십 킬로그램씩의 앰프와 스피커짝을 끼고 살아가고 있다. 적어도 오늘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단단해 보이는 북셀프 스피커를 만나게 되면 혹 꿈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기대를 하게 된다.

일년 전쯤, 일산의 오디오샵 ‘카잘스’를 찾았을 때 그는 네트워크가 주렁주렁 달린 인클로저를 바라보며 심란해하고 있었다. 오디오에 있어서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은 반드시 적용된다. 다시 말해 소발에 쥐 잡히는 일은 결코 없다는 것이다. 모든 조정점은 서로 연속되어 무한개의 경우의 수가 발생하므로, 제작자의 철학과 블랜딩이 그 제품의 품성을 결정하게 된다. 그 이후 두어 달에 한 번씩 방문할 때마다 고뇌하는 그의 모습과 함께 그 스피커의 소릿결이 달라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물론 여기서 ‘그’는 클라라의 제작자인 최상균 사장. 필자는 그 후 완성품을 보지 못한 채 바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때의 프로토타입이 완성되었다고 했다. 이미 완제품은 작년 가을 대중에 선보였다고 했으나 이런저런 일로 인해 심각하게 제품을 테스트할 기회를 갖지 못했고 단지 애호가들에게서 호평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소문으로 전해졌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필자의 눈앞에 바로 그 제품이 배달되어 왔다. 우선 훌륭한 마감과 아주 튼실한 단자가 눈에 띈다. 카다스제 로듐 단자. 단단하고 그로시한 투명 우레탄 마감은 제품을 우아하게 받쳐 준다. 질 좋은 스탠드에 올려놓으면 인테리어 측면에서도 아주 그만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인클로저 디자인이 심상치 않다. 유선형으로 한 번에 뽑아 낸 것 같은 날렵한 디자인에 우퍼와 트위터가 보기 좋게 박혀 있다. 그런데 어디에도 덕트가 보이지 않는다. 효율을 낮추어 가며 밀폐형으로 만들어 낸 소형 북셀프 - 통 내부에서 생기는 간섭을 블랜딩으로 잡아 냈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제작자의 하늘을 찌르는 듯한 도도함이 엿보이는 구석이다. 200만원대 중반이라는 가격에 대한 해석은 난감하다. 신생 브랜드 - 그것도 국산 제품으로 싸다고 해야 할지 비싸다고 해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필자는 대형기를 좋아한다. 사실 취향이 대형기 위주의 스피커로 가게 된 대표적인 이유는 운용하기가 비교적 수월하기 때문이었다. 스윗 스팟이 넓고 어느 정도의 앰프만 매칭해주면 나머지는 알아서 채워 주는 넉넉함이 대형기에는 깃들여 있다. 그러나 북셀프는 머리가 아프다. 스피커의 위치와 주변상황을 정리해야 함은 물론 주장하는 음악 장르에 따라 앰프와 소스의 선택이 많은 변수를 야기하게 된다. 필자는 북셀프는 절대로 편하게 대충 쓸 수 있는 물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욱이 밀폐형임에야….

일단 기본적인 실력을 가늠해보자. 주로 사용하는 대출력 TR 앰프를 써 본다. 케이블에도 신경을 써서 일단 하이엔드의 대우를 충분히 해주고 어느 수준인지 판단해보는 게 좋겠다. 첫번째 시도는 마크레빈슨 335와 390을 직결하고 킴버 셀렉트로 클라라를 울려 보기로 했다. 낮은 음량으로 두어 시간을 밋밋하게 틀어 놓은 뒤 비로소 게인을 서서히 올려 보았다. 보사, 재즈, 록, 실내악, 보컬, 심포니까지 주로 비교시청에 쓰이는 고음질 음반들을 중심으로 폭 넓은 시청이 수 시간 계속되었다.

시청을 계속하면서 뇌리에 떠오르는 끊임없는 의문은 작명에 대한 제작자의 의도이다. 도대체 왜 클라라인가. 하고많은 이름 중에 왜 하필이면 여성의 이름을 붙였을까. 이 제품은 결코 여성스럽지 않다. 풀어내는 소리의 윤곽은 뚜렷하고 채도 강한 임프린트를 우려낸다. 화려한 다이내믹 레인지는 통상적인 북셀프에서 차용하는 그런 대역의 부풀림이 아니다. 직진성이 강한 고역은 자기 주장을 분명히 하며 딴딴한 저역은 인클로저 사이즈를 의심케 만든다. 소릿결에 날이 서 있다. 자신의 출생이 분명한 하이엔드임을 확실히 마킹하는 것이다. 비슷한 크기의 다른 북셀프 스피커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는 대목이다. 절대로 이름에 현혹되어 달콤한 소리를 기대하지 말 것 - 클라라를 사용할 때 반드시 주의해야 할 점이다.

필자는 어찌어찌해서 투명하고 따스한 아침햇살이 비스듬히 비추어 들어올 때 어디선가 작은 새들이 지저귀는 그런 빈 공간을 갖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그 공간을 볼 때마다 이 곳에 작고 아담한 시스템을 꾸며놓고 하이든과 함께 휴일 아침의 느긋함을 느껴 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불행히도 가지고 있는 오디오 시스템들은 단 1~2미터를 옮기기도 휘청거리는 판. 음질도 좋으면서 쉽게 옮길 수 있는 북셀프와 인티 앰프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클라라의 기본실력은 이미 레퍼런스 시스템에서 검증되었으므로 비교적 소박한 인티 앰프와는 어떨 것인가 너무도 궁금했다. 결국 카잘스에 전화를 했다. 질 좋은 인티 앰프를 한대 보내주시오….

한참 후 인티 앰프가 도착했다. 인티 앰프치고는 상자가 좀 크다. 음, 그리고 무겁다. 이게 아닌데…. 그러나 어쩌겠는가. 아픈 옆구리를 어루만지며 기기를 꺼내 놓았다. 멜로디 밸브의 H88A 시그너처 진공관 인티 앰프는 푸시풀로 채널당 50W를 내어 주며, 하이엔드 성향의 음질 특성으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30kg에 좀 못 미치는 무게인데 실제 느낌은 훨씬 더 무겁게 느껴진다. 앰프와 스피커, 각종 케이블류와 CDP를 이층으로 옮겨 갔다. 성장한 아들이 조금씩 대견하고 유용하게 여겨지는 대목이다. 빈방은 넓지는 않으나 각종 쿠션들로 채워져 있고 대칭구조로 되어 있어 어쿠스틱스의 측면에서 유리하다. 기기들을 설치해놓으니 제법 아늑한 분위기가 나고 발그스름한 KT88관의 분위기도 한몫 거든다.

거실에서 듣던 음반들을 하나씩 다시 재현해보기로 했다. 제니퍼 원즈의 목소리가 그윽하게 들려온다. 볼륨을 올리지 않아도 기분이 좋다. 대출력 TR 앰프에 비해서 다소 스테이지가 작아지지만 양 스피커의 중앙 뒤쪽에 명확히 그려지는 스테이징은 변함이 없다. 뽀얗게 떠오르는 홀로그램 속에서 각각의 악기를 집어 낼 수 있다. 실내악은 행복하고 귀족적인 선율을 뽑아 낸다. 본래 현대적 해석의 실내악을 좋아해서 린지와 모자이크의 음반들을 선호하는 편인데, 비로소 제짝을 만나 흥겹게 연주하는 광경이 그려진다. 정갈하게 모여 앉은 네 사람의 악사들은 마치 궁중 연주자들과 같이 우아하고 맛깔스러운 분위기를 살려 낸다. 에릭 빕의 기타와 노래에는 탄력이 붙어 음반을 다 듣는 동안에도 지루한 줄을 몰랐다.

기술과 품성을 동시에 갖추어야 비로소 공정한 소비자의 대접을 받게 되는 오디오의 특성에 기인해서, 우리는 그 동안 몇몇 국산 스피커 브랜드의 부침을 지켜보았다. 클라라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 운명을 미리 점쳐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할지라도 이 북셀프 스피커가 던져 주는 여러 가지 의미는 비단 이 제품 자체를 떠나서 국산 오디오를 바라보는 여러 애호가들에게 희망을 갖게 한다. 필자가 알기로도 클라라는 기본적인 구조설계가 끝난 후에 일 년 이상의 튜닝을 거친 제품이다. 클라라는 그 제작과정을 돌이켜 보건대, 수많은 종류의 음악에서 저마다 까다롭고 유별난 오디오파일들의 독설을 들어가며 자기 개성을 찾아간 아주 드문 케이스의 스피커라고 생각한다.

클라라의 뒷면에는 소박한 스티커가 붙어 있다. 다른 스피커에서 번쩍거리는 황동판이나 알루미늄판에 레이저로 이름을 새긴 것과는 다르다. 하지만 모양을 내기 위한 황동이나 알루미늄 판재가 인클로저에 완벽하게 부착되지 않아서 강력한 유닛의 진동에 따라 소음을 내는 경우를 본 적이 있으므로 이것은 제작자의 결벽증이라고 생각한다. 클라라에 채용된 유닛과 네트워크, 견고하면서도 음향공학적으로 유리하게 설계된 인클로저와 마감재, 10회의 우레탄 코팅과 단자, 그리고 내부 배선재 등은 모두 하이엔드 클래스의 고급 자재들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제품에 깃들여 있는 제작자의 설계사상과 클라라만이 가지고 있는 유니크한 개성과 성품에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이다.

김성건 / 오디오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