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I.

고가의 분리형 CDP를 만드는 메이커로서, 그 높은 분해력과 음악성에 탄복한 바 있는데, 그 노하우를 결집시킨 현실적인 가격대의 일체형 CDP를 마주하게 되자 기분부터 좋아진다. 사실 외관을 보면 그리 호화롭거나 세련된 인상은 아니다. 하긴 프랑스제 오디오들이 일반적으로 겉멋보다는 내실을 기하는 쪽이라, 세련된 절삭 가공이나 화려한 일루미네이션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음만 좋으면 되는 것이 아닐까? 그 점에서 이 제품은 와디아, 린, 메리디언 등 전통적인 일체형 CDP 강자들에 필적할 만한 실력기라고 추천하고 싶다. 이번 시청의 수확중 하나라면 지나친 과장일까?

일단 내부를 보면, 거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튼실한 트랜스포트부에 깜짝 놀라게 된다. 더 놀라운 것은, 3개의 단단한 고무 댐퍼로 지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아크릴을 이용한 재질도 믿음직스럽다. 일반적으로 오디오 랙에 아크릴이 쓰일 경우 진동이 발생해도 일반적인 청취 대역폭과 무관해서 음질적으로 유리하다고 하는데, 그런 점을 감안하면 모터나 외부의 진동 등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트랜스포트의 성격상 적절한 조치라 하겠다. 하긴 클리어오디오의 턴테이블에 투입된 아크릴 베이스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동원된 트랜스포트는 필립스제로 그 유명한 CDM12 PRO 2인데, v 6.8 사양이다. 여기에 메트로놈 특주의 수정이 가해져서 독자적인 방식을 구현하고 있다.

트랜스포트 뒤쪽 오른편에 있는 것이 전원부다. 그런데 그 구성이 독특하다. 큼지막한 토로이달 트랜스가 아닌, 성냥갑 크기만한 작은 트랜스 4개가 배치되어 있다. 미라(myrra)제로 45031 또는 45033의 모델명을 가진 제품들이다. 재미있는 것은 전원 입력부와 트랜스 사이에 전압 변환 스위치가 달려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이 트랜스포머는 개당 스펙을 볼 때 230V에서는 63mA, 115V에서는 125mA의 값을 갖는다. 아마도 유럽 뿐 아니라 미국과 아시아에 수출할 목적으로 제작되었기에 이런 스펙을 갖지 않았나 싶다.

트랜스 뒤쪽 왼편에 배치된 것은 DAC부. 풀 밸런스 회로로 구성된 점이나 네 개의 OP 앰프가 동원된 점 등이 회로상의 정교함을 뒷받침한다. 참고로 OP 앰프는 버 브라운사제로 A604AP라는 모델이다. DAC의 스펙은 24비트/192kHz로 비트스트림 방식이다. 요즘 유행하는 추세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사양이다.

마지막으로 뒤편에 배치된 것은 출력단으로서, 크기는 작지만 상당히 정교하게 설계된 점이 돋보인다. 가지런히 배치된 6개의 TR 출력석과 숱한 콘덴서 등이 보기에도 믿음직스럽다. 메트로놈은 CDP뿐 아니라 앰프도 제작하는 회사인 만큼, 거기에서 쌓아올린 노하우가 응축되어 있는 인상이다.

문제는 소리인데, CD 전용기로서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는 고품위한 퀄리티와 치밀한 해상력에 탄복하고 말았다. 예를 들어 무터의 바이올린을 들어보면 분명 20kHz에서 끊길 수밖에 없는 스펙임에도 불구하고 초고역에서 한없이 올라가는 듯한 인상을 준다. 개개의 악기 음에 활기가 넘치고, 젊은 무터의 기백이 살아 숨쉰다. 윈턴 마살리스는 초반부의 더블 베이스가 약동하듯 움직이는 대목도 좋을뿐더러 스틱으로 스네어의 림을 탁탁 두드리는 부분에서는 공간을 날카로운 일본도로 가르는 듯한 예리함이 기막히다. 다이앤이 부르는 다소 기름기 섞인 보컬의 맛도 고소하고, 심장이 터져라 불어제치는 윈턴의 트럼펫은 실연을 방불케 한다. 마지막으로 데이브 홀랜드를 들어보면 수많은 악기군이 서로 앞을 다퉈 주거니 받거니 연주하는 대목이 일사불란하게 포착되는 점이 훌륭하다. 심벌즈의 사뿐한 살랑거림이나 드럼의 묵직한 어택감 등이 가세해서 하이엔드적인 쾌감으로 연결됨은 물론이다.

- 이종학

II.

보졸레 누보. 매년 11월 3번째 주에 부르고뉴에서 출하하는 햇와인. 메트로놈 테크놀로지 CD3에서 풍기는 강한 향이다. 핏물 같이 진한 다른 와인들과는 달리 보졸레 누보는 상큼하고 신선하다. 심지어 해물과 함께 해도 부담스럽지 않다. 그런 맛과 향의 배경이 CD3와 뇌리 깊은 곳에서 엇갈린다. 더불어 CD3는 혀끝에 쌉싸름한 무언가를 남기어 귀족적인 풍모를 더해준다. 프랑스인들만의 블랜딩인가. 칼리스타를 통해서 그들이 추구하는 심플한 아름다움을 익히 알고 있다.

CD3의 디자인은 독창적이며 군더더기가 없다. 톱로딩을 위한 개폐의 즐거움이 있다. 손끝과 시각을 만족시키는 디자인과 금속가공의 미학은 리모콘에도 연결된다. 깊은 푸른빛의 디스플레이는 필요한 정보만을 보여주고 심지어 끌 수도 있다. 지성을 겸비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공중에 떠 있는 듯한 3점지지의 외관은 내부에도 똑같이 구현되어 있다. 신뢰성이 돋보이는 필립스 Pro2 픽업 시스템이 두터운 아크릴 구조에 앉혀져서 내부에 육중하게 떠 있다.

사운드 블랜딩의 대부분은 충실한 중역에 맞추어져 있으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저역의 표현이 쏟아져 나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고역의 끝이 달콤하게 말리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자기주장을 적극적으로 내세우지 않은 채, 섬세한 디테일을 주춤거리듯 표현한다. 다이내믹은 좋은 편이다. 중립적 음색 기반을 잘 유지하므로 매칭에 따라 애호가의 표현 한계를 확장시켜 줄 수 있는 좋은 기기이다.
모름지기 와인이란 목 깊은 곳까지 전해주는 풍미가 일품이어야 한다. 보졸레 누보의 상큼한 느낌도 좋지만, 카베르네 소비뇽의 깊은 맛을 배신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97년 나파밸리가 그만이었는데 요즘은 구하기가 쉽지 않다.

- 김성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