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l.

발매된지 몇 년이 흘렀지만 이 제품의 인기는 아직도 식을 줄 모른다. CD와 SACD 복합기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양쪽 포맷 모두를 일정한 수준 이상으로 재현한다는 점이 우선 놀랍고, 기계적인 완성도나 내구성 등을 논하자면 두 손을 들 수밖에 없는 설계 방식이다. 게다가 아날로그 볼륨단을 채용해서 파워 앰프와 직결할 수 있게 한 구조는, 어지간한 프리앰프는 끼어들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를 담고 있다. 실제로 직결했을 때의 음 조성이 주는 매력도 남달라서 음의 세세한 부분까지 현미경으로 살펴보는 듯한 아기자기함에다 음악적 뉘앙스를 풍부하게 살려 이전에 이런 방식으로 나왔던 제품들의 성능을 또 한 단계 넘어서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런 다기능에도 불구하고 그 퀄리티에 비해 다소 저렴(?)한 제품이 아닐까 한다.

내부를 보면 전면 중앙에 튼실한 트랜스포트부가 자리잡고 있다. 메트로놈이나 오디오 리서치가 상판에 슬라이딩 도어 방식을 채택한 데 반해, 이것은 전통적인 프론트 로딩이다. 트랜스포트는 소니제로서 OM4다. 참고로 요즘 컴퓨터 CD롬이나 DVD롬을 많이 채용하는 추세인데, 개인적으로는 이런 메이커제를 쓰는 쪽이 더 신뢰가 간다. 그런 면에서 일단 합격. 렌즈는 듀얼 레이저 시스템을 채용하고 있는데, 그것은 겸용기인지라 어쩔 수 없는 노릇이고 다만 렌즈 보호를 위해 정교하게 코팅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여기서 두 포맷의 주파수 대역폭을 보면 우선 CD(PCM)의 경우 0.5Hz～20kHz를 포괄하고, SACD(DSD)의 경우 0.5Hz～40kHz를 포괄한다. 저역부가 상당히 정교하게 확장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 스펙이다. 그 결과 다이내믹 레인지가 PCM은 125dB, DSD는 144dB에 이르고 있다.

본기의 장점 중 하나는 강력한 전원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오디오에서 전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음을 실감하는 요즘, 본기의 조치는 무척 적절하게 보인다. 일단 왼편에 위치한 큼지막한 전원 트랜스는 외부 전원 코드와 연결된 것으로 CD 트랜스포트부를 위한 파트다. 반면 오른쪽에 위치한 DAC와 출력단 등은 외부의 전원부로 연결되어 구동된다. 이렇게 따로 외부 전원부를 둔 이유는 아무래도 민감한 부분을 처리하는 DAC부의 성격상 각종 노이즈나 미세 전류의 유입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 환영할 만한 대목이라 하겠다.

시청에서는 CD 위주로 했는데, 그것은 여러 제품의 성격을 비교하기 위한 조치여서 어쩔 수 없었음을 밝힌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따로 SACD의 실력을 검증하도록 하겠다. 이 점은 역시 겸용기인 에소테릭의 P03-D03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먼저 청취한 무터의 바이올린은 고역의 끝이 좀 아쉽다는 점만 빼놓고 특별히 나무랄 데가 없다.

윈턴 마살리스는 재즈적인 열기나 파워감보다는 지성적인 맛이 더 강하게 어필해온다. 다이앤의 노래나 윈턴의 트럼펫 등이 조금은 거리를 두고 울리는 인상이며, 따라서 보다 분석적으로 듣게 된다. 하지만 이런 느낌도 나쁘지 않다. 데이브 홀랜드는 저역의 양이 좀 준 듯한 인상이지만 전체적인 윤곽이 또렷해서 집중해서 들으면 베이스 주자의 손놀림이 보일 정도이고, 숱하게 얽혀 있는 각종 타악기, 관악기 등의 움직임이 일목요연하게 읽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다만 열기라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남으며, 그런 면에서 록이나 재즈보다는 클래식의 고품위한 재생에 더 적합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 이종학

ll.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기기 - 린데만 820 SACD이다. 이미 출시된 지 2년이 되었으나 일체형 SACD 플레이어의 독보적 자리 매김을 양보하지 않고 있다. 소니의 SCD1기반에서 태어났으나, 부품과 블랜딩은 털끝만큼도 관계가 없다는 필자의 오디오 철학을 대변해주는 좋은 사례의 SACD 플레이어다. 같은 독일 출신이지만 MBL의 사상과도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 밝고 치밀한 음색과 정돈되고 폭넓은 관용도는 첨단기술이 가미된 하이엔드의 새로운 지침을 표시한다.

린데만 820을 듣고 있으면 품위 있는 식당에서 정장을 하고 식사를 하는 기분이 든다. 교양 있는 웨이터의 시중을 받으며, 게걸스럽지 않게 조금씩 다가오는 포만감을 즐기는 그런 분위기. 반짝이는 접시, 정갈한 식탁보와 냅킨 그리고 거울 같은 식기들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어야 한다. 사소한 것에도 만찬이 망쳐질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820을 사용하는데 있어서도 준비해야 할 것들이 좀 있다. 이 특별한 기기는 두개의 파워 케이블을 요구한다. 각각의 파워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에 따로 전원을 공급하게 된다. 별도의 아날로그용 전원장치는 부속된 케이블을 통해 전원을 본체에 공급한다. 그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명기에 대한 대접을 충분히 하고 그 대가를 기대하는 것이 마땅하다.

캐롤 킹의 빛나는 선물인 <태피스트리> 앨범은 SACD 전용으로 나와 있다. LP로도 가지고 있는 이 음반은 SACD 포맷에 의구심을 가지게 하는 원인을 제공했었다. 린데만 820이 비로소 그 의구심을 해결해준다. 피아노의 광채는 찬란하고, 약간 새된 목소리의 캐롤 킹의 매력에는 에너지와 지성이 엿보인다. 좋은 SACD 플레이어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심각하게 들었다. 린데만 820은 아이러니하게도 가격대 성능비가 대단히 좋다. CD 재생 성능까지 고려하면 대단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셈인데, 여전히 비싼 물건이므로 대중적인 보급은 힘들다고 보여진다. 하이엔드의 필수 요건을 모두 갖춘 보기 드문 소스 기기인 것이다.

실용성을 겸비한 고급기. SACD의 향방과 차세대 디지털 포맷의 이야기가 분분한 때에 SACD 플레이어에 선뜻 투자하기가 힘든 시기라면, 출중한 CD 재생만을 위해서라도 도입을 고려할 가치가 충분한 물건이다.

- 김성건

- 주요 메뉴 기능 설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