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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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소문만 무성하던 에소테릭의 새로운 제품이 정체를 드러냈다. 과연 생김새부터 다르다. 시험 삼아 하나를 들어봤더니 허리에 콱 힘을 줘야 할 정도다. 두 제품 공히 27kg의 무게다. 합치면 60kg에 가까운 무게이니 어안이 벙벙하다. CD 한 장 듣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반감도 일지만, CD속에 수록된 어마어마한 정보량을 하나도 빠짐없이 읽고 처리하려면 이런 접근법도 필요하겠다고 수긍할 수밖에 없다.

우선 P03부터 보자. 상급기 P01에 채용된 VRDS-NEO 메커니즘을 그대로 수용한 것은 상당한 강점이다. 이것은 신개발된 세라믹 볼 베어링을 이용한 것으로 저속에서부터 고속에 이르는 회전의 제어를 완벽하게 이룩하고 있다. 또 CD 혹은 SACD가 들어왔을 때 동일한 크기의 검정색 스틸 패널이 완벽하게 디스크를 감싸 일체의 반사나 간섭을 피하고 있다. 거의 밀봉에 가까운 정교함이 돋보인다. 숱한 트랜스포트를 구경했지만 이처럼 철저하게 대응한 것은 본기가 처음이 아닐까 싶다.

흥미로운 것은 CD의 PCM 신호를 업 컨버트해서 DSD 출력 신호로 변환하는 대목이다. 게다가 DAC가 채널당 1개씩 있으므로, 처음부터 출력을 두 개의 선으로 나눠서 내보내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이런 듀얼 DSD 방식의 음이 주는 충격은 대단해서 CD는 처음부터 LP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라고 믿는 아날로그 골수파들에게도 꼭 들려주고 싶을 정도다.

한편 D03을 보면, 완전 모노럴 사양의 D01 설계 사상을 그대로 이어받아 전원부와 아날로그부 회로 등의 구성이 L/R가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는 점이 대단하다. 또 여기에 투입된 물량도 엄청나서 얼핏 보면 무슨 인티 앰프나 파워 앰프를 연상할 정도다. 특히 전원부와 아날로그부 사이를 스틸로 갈라서 각각의 챔버를 구성한 것은 설계상 대단한 성과가 아닐까 한다. 스틸은 자성을 띠고 있으므로 각각의 파트에서 나오는 자성을 일정하게 흡수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비자성체인 알루미늄 새시 안에 이런 자성체를 실드 처리로 사용하는 것은 요즘의 추세이기도 하다. 다음에 나오는 바이스 역시 이런 방식으로 실드 처리하고 있음을 아울러 밝힌다.

DAC 디바이스는 DSD/PCM 공히 대응하는 AD 1955를 썼다. 다만 디지털 필터 off 기능을 탑재해서 좋아하는 곡에 따라 On/Off를 선택하게 한 점은 본기의 취미성을 한층 향상시킨 대목이다. 그밖에도 워낙 많은 기술력이 투입되어 일일이 열거하자면 원고지 100매도 모자랄 정도다. 따라서 이 역시 나중에 자세한 리포트가 별도로 작성되어야 할 듯싶다.

문제는 음인데, 역시 듀얼 DSD의 놀라운 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퀄리티라 하겠다. 무슨 말인가 하면, 분명 CD를 집어넣었는데도 나오는 음은 마치 SACD처럼 고역과 저역이 한층 더 신장된 듯한 느낌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무터의 경우, 바이올린의 초고역이 한없이 치솟는 가운데 그 두께감도 동일하게 유지하는 점은 경이롭기만 하다. CDP로서 들었을 때의 음과 너무나 다른 개방감에 기가 질릴 정도다. 저역 역시 마찬가지여서 악단에 더블 베이스 주자가 한 두 명은 더 가세한 듯한 양감을 준다. 윈턴 마살리스? 초반의 더블 베이스의 깊게 떨어지는 저역 표현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 다만 다이앤의 보컬에서 좀 더 육질감이 나왔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은 있다. 이 대목에서 호불호가 갈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데이브 홀랜드는 저 방대한 빅 밴드의 구석구석을 현미경으로 살펴보는 듯한 소름끼치는 해상력에 두 손을 들 수밖에 없다. 정치하고 예리한 분석력은 일품이지만 다소 차가운 인상이다. 재즈의 열기란 점만 빼놓으면 약점을 찾을 수 없는 음으로 그 높은 퀄리티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 이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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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후장대하다. 위용만으로 애호가의 소유욕을 불러일으킨다. 거대한 두 개의 금속 덩어리. 어느 한 군데 날카로운 곳이 없이 완만하게 깎아 내었다. 현존하는 디지털 기기 가운데 가장 신뢰성이 확보되었을 듯한 외관이다. 에소테릭의 간판 기술인 VRDS가 더욱 진화한 VRDS-Neo. 픽업 메커니즘에 관한 한 최고의 자부심이 보이는 대목이다. 로더의 움직임은 아주 신중해서 약간의 인내심을 요구한다. 외부 캐비닛의 3점지지와 스태빌라이저는 확고한 불요진동의 배제를 상징한다. 트랜스포트와 DAC 내부는 더욱 튼튼하게 챙겨져 있다. 엄청난 물량과 고도의 절삭기술은 기계적 진동과 전기적 간섭의 원천봉쇄를 이루어냈다.

소리에 대한 첫인상에서 에소테릭의 전통을 잇는 뼈대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굳은 심지는 대역의 이동이나 다이내믹의 변화에 미동도 하지 않는다. CD의 재생이나 SACD의 재생이나, 든든히 자신의 위치를 자리잡고 전체 시스템을 진두지휘한다. 프리나 파워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소스의 변화에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단단한 저역의 파워는 기대를 훨씬 넘어선다. 고역은 그 한계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의 확장을 보여준다. <헌터>에서 흘러나오는 각종 어쿠스틱 악기와 신서사이징 이펙트는 그 어떤 CDP에서보다도 강력한 탄력과 에너지를 표현한다.

그러나 호사다마인가. 저 깊은 곳에서 삐죽이 일어나는 의구심을 참을 수 없다. 그 위용과 설계와 힘과 다이내믹의 수준에 ‘음악성’이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는다. P01/D01의 간략화에서 생략된 부분인가, 아니면 소장가에게 맡겨진 마지막 부분의 완성도의 유보인가. 애호가의 도전의식을 불사르는 대목이다. 최후의 튜닝에 검을 뽑아듦으로 디지털 오디오의 한 장을 완벽히 마감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서서히 소유와 정복의 유혹이 덮쳐오기 시작했다.

P03와 D03는 프로기기 수준의 신뢰성과 정밀도를 제공하는 에소티릭 기술의 결정판이다. 이 두 개의 기기는 iLINK에서 Dual XLR까지 대단히 많은 디지털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며, 내부배선과 단자류 등에 초호화판의 신기술을 집대성해 놓았다. 두 개의 전원케이블과 두개의 XLR 디지털 케이블이 필요하다. 이 장비로 인해 애호가는 향후 10년간의 디지털 소스 기기에 대해서는 걱정을 접어놓아도 될 것이다. 또한 그 10년간 이 장비의 성능을 최대한 뽑아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가득 가득 채워져 있는 하이테크기술을 모두 뽑아내어 내 것으로 만들기가 그리 만만히 보이지 않음에 시름이 쌓인다.

- 김성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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