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라스의 황금시대를 찾아서
올해 들어 필자가 처음으로 접한 오디오 브랜드가 적지 않은데, 그 가운데 이탈리아의 스피커 업체인 오페라가 있다. 필자는 오페라에서 내 놓은 플로어형 모델인 칼라스 디바와 디비나 등에 대한 시청 리포트를 오디오 전문지인 『월간 오디오』 7월호와 8월호에 연이어 게재한 바 있다. 이쯤 되면 필자의 입에서 이들 모델에 대하여 일도양단식의 평가가 나올 것이라고 여길 사람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게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브랜드에 대해서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이루어지는 다면(多面) 평가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오페라는 한국 오디오 시장에 대한 연착륙 가능성을 검증하는 절차를 거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필자가 칼라스 디비나에 대한 하이파이 클럽의 시청 요청을 받아들인 것은 이 스피커의 잠재력을 새로운 시스템 환경에서 다시 한 번 검증해 보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지난 8월 이 회사의 대표인 지오바니 나스타가 방한하기도 했지만, 우리나라의 애호가들에게 그리 낯익은 브랜드가 아닌 만큼 회사 소개부터
하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오페라는 1989년 나폴리 출신의 지아니 나스타가 설립한 이탈리아와 영국의 합작회사이다. 그런데 이 회사의
내력을 살피다 보면 설립자의 특이한 전력이 눈에 띈다. 오페라를 설립하기 전 그는 베네치아에서 멀지 않은 트레비소 시에서 경찰 생활을 하다가
자신의 장인인 경찰서장의 권유로 오디오 분야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오디오 산업 자체가 워낙 취미성이 강한 만큼 오디오 회사 설립자들의 전직이나
경력이 다양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그런 측면을 고려한다고 해도 나스타의 경력은 아주 독특하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그가 오디오 분야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경찰을 그만두고 디스코데크를 운영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 뒤 그는 이탈리아에서 오디오 사업을 하던 영국인인 니콜라스 그린을 만나 UKD(United Kingdom Distribution) 사를 세웠고, 베네치아 북동부에 있는 파두아 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물리학자인 마리오 본 박사를 스피커 설계자로 영입하여 오페라 브랜드를 출범했다. 따라서 이 회사의 홈페이지에 오페라의 설립 배경을 두고 이탈리아와 영국 문화의 결합 운운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정황을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페라에서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은 자사의 스피커에 유명 성악가들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이탈리아 회사들이 음악 용어나 특정 악기와 관련된 다양한 명칭을 자사의 제품에 붙인다는 점을 떠올려 보면, 크게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오페라 무대에 오르는 것이 성악가들이라면, 이 회사의 스피커에 성악가가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럽다는 느낌도 든다. 그리하여 20세기 초반 활동했던 전설적인 테너 엔리코 카루소가 이 회사에서 내 놓은 첫 번째 스피커의 주인공이 되었고, 소프라노 레나타 테발디는 현재 동사 최고 모델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럴 때 테발디와 쌍벽을 이루었던 불세출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가 오페라의 스피커 시리즈에 등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테발디 한 모델만 속해 있는 리리카(Lirica) 시리즈와 비교해 보면, 칼라스 시리즈에 총 다섯 종의 모델이 포진해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 시리즈에는 이번에 필자가 시청한 디비나에서 시작하여, 그 하위 기종인 디바와 SP 등 세 종의 플로어형 모델이 있고, 그 밑으로는 북셀프 모델인 미니가 있으며, 그 밖에도 5.1채널 재생에 필요한 센트로와 보체 등의 센터 스피커 두 종이 있다. 이렇게 보면 칼라스는 현재 오페라가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시리즈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칼라스 시리즈에서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것은 이탈리아 스피커 특유의 세련미가 흘러넘치는 뛰어난 디자인이다. 그리고 이처럼 뛰어난 디자인은
디비나에서 최고조에 달한 감이 든다. 최고급 가구를 연상케 하는 이처럼 미려한 디자인은 스피커를 음향을 토해 내는 단순한 발성기기로 보지
않고, 공학과 미학의 통합을 지향하는 우리 시대의 새로운 악기로 격상시키려는 새로운 인식을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오페라의 스피커들이 탐미주의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칼라스 시리즈의 플로어형 스피커들은 시각적 아름다움 속에 스피커 설계에서
고려해야 할 다양한 요소들을 교묘하게 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디비나는 스피커 설계의 핵심 요소들을 정확하게 수용하고 있는 스피커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디비나의 전면 배플을 덮고 있는 피혁 소재는 이 스피커 특유의 부드러운 질감을 연출하지만, 그와 동시에 배플에 장착된 유닛들의
반사음을 흡수하는 탁월한 기능도 함께 수행한다. 그리고 시간 축을 일치시키기 위하여 인클로저를 5도 정도 뒤로 기울여 설계하면서, 받침대
위에 인클로저를 띄우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은 인클로저에 가해지는 어떤 형태의 왜곡도 완벽하게 배제하겠다는 설계자의 의지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구동 형식과 관련하여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기술 내용은 이 스피커가 여섯 개에 달하는 드라이브 유닛을 사용하고 있는 대형 기종이면서도
2웨이 구동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44킬로그램의 무게, 그리고 폭이 212밀리미터, 높이가 1193밀리미터, 깊이가 486밀리미터
등의 규모를 보이는 칼라스 디비나는, 스캔스픽에서 내 놓은 6인치 구경의 미드/베이스 드라이버 네 개로 2kHz 이하의 대역을 구동하고,
그 상위 대역은 1인치 구경의 패브릭 돔 트위터 두 개를 전면 배플과 인클로저 뒷면에 설치하여 구동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칼라스 디비나는 컴팩트한 외관을 유지하면서, 그와 동시에 절제력과 명료함을 아우르는 중, 저음역, 그리고 투명한 공간감과 명료한 표정의 고음역을 깔끔하게 통합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스피커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은 이 스피커가 최소한 12인치 구경 이상의 우퍼를 채용하지 않고, 6인치 구경의 미드/베이스 드라이버 네 개를 사용하여 저음역을 구동하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오페라에서 내 놓은 보도 자료를 살펴보면 이 부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칼라스 시리즈의 목표는 각 악기나 성악가의 음악 연주 하나하나의 정확한 비율, 규모, 중량감 등을 안정되고 정확하게 제시하는 음향 무대 속에 적확하게 재창조하는 데 있습니다. 소구경 드라이브 유닛 여러 개를 고른 이유는 기계, 전기, 열처리 등에 다양한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방식을 올바르게 활용한다면, 스피커의 음향 특성을 한층 더 개선할 수 있습니다.’
이상의 설명은 ‘성악 재생이 정확하다면 악기 재생 또한 정확하다’는 오페라의 사장인 나스타의 주장과 함께 음미해야 할 대목이다. 소구경 드라이버를 여러 개 사용함으로써 스피커 구동의 안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대구경 드라이버에서 곧잘 나타나는 빅 마우스 현상을 배제하면서, 그와 동시에 정확하게 계산된 절제된 저음역, 명료한 중음역, 투명함 고음역 등을 한 점 군더더기 없이 통합하고자 하는 의지가 여기에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러나 스피커의 세팅과 관련하여 보면,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을 것 같다. 그 이유는 전면 폭이 좁은 인클로저를 채용한
스피커를 설치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고음역의 투명성과 직선성을 강화하기 위하여 인클로저 뒷면에 장착해 놓은
별도의 트위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칼라스 디비나를 제대로 세팅하기 위해서는 뒷벽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데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디바에 대한 시청 리포트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스피커의 능력을 제대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리스닝 룸의 뒷벽과 모서리에서
최소한 1.5미터 이상의 거리를 확보하여, 고음역의 직선성을 조절하고, 중음역과 고음역, 그리고 고음역과 저음역 사이의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칼라스 디비나는 어떤 음향을 만들어 내는가? 『월간 오디오』 8월호에서 필자는 유니슨 리서치의 인티그레이티드 앰프인 신포니아,
그리고 일본 파이널의 인티그레이티드 앰프인 뮤직-3과 번갈아 조합하면서 디비나의 음향 스타일과 완성도를 점검한 바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사진의 리얼리티’를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디비나 또한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번 시청 작업에서 필자가 확인한 것은 디비나를 구동하는 것이 그리 까다롭지 않았다는 점이다. 발성 자체를 강박하기보다는 술술 풀어내는 듯한 자연스러움을 기조로 하는 음향 조형이 디비나에서 살아나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구동하는 앰프 특성을 정확하게 음향에 반영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의 본성을 유지할 줄 아는 포용력을 갖춘 모습은 디비나의 또 다른 장점으로 추켜세울 만했다.”
칼라스 디비나가 보여 주는 심상치 않은 발성 능력은 필자가 레퍼런스 앰프로 사용하고 있는 파이널의 뮤직-3 인티그레이티드 앰프와의 조합에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첫 번째 음반으로 올린 조수미의 ‘바로크 시대로의 여행’ 가운데 첫 번째 트랙인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Nulla in Mundo pax sincera)와 ‘폭풍이 몰아치고’(Agitata da due venti)에 대하여 필자는 다음과 같이 썼다.
‘세상에 참 평화는 없어라’의 첫 화음이 울리는 순간, 지난달에 시청했던 칼라스 디바와는 전혀 차원을 달리하는 음향이 디비나에서 흘러나오고 있었고, 이러한 양상은 그 뒤에 시청한 다른 음반에서도 대동소이했다. 칼라스 시리즈 특유의 세련미 넘치는 음향 조형 속에서 조수미의 연주는 한결 여유가 있었고, 선율선은 적절한 긴장과 함께 광채를 담고 있었으며, 음색도 한결 깊어진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특히 디비나가 연출하는 저음역은 풍부한 음량을 무리 없이 내뱉으면서 또렷한 중음역과 예리한 고음역을 부드럽게 감싸 안고 있었다. 이럴 때 전 대역에 걸쳐 음색의 통일성이 한층 좋아지고 음향 자체에 생동감이 실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속내를 살펴보면 이들 두 모델을 관류하는 공통점은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지만, 공간감, 스케일, 심도, 다이내믹, 선율선, 음향의 윤곽 등을 드러내는 데 있어서 양자의 등급 차이를 확연하게 드러내는 음향이 디비나에서 살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만한 평가가 나왔다면 디비나의 전모를 밝힌 것이 아니냐고 할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디바와 디비나를 연속하여 시청하는 과정에서 못내 아쉬운 점이 남아 있었던 것이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그것은 이들 모델을 구동한 앰프들이 진공관 앰프 일색이었다는 점이다. 유니슨 리서치의 하이엔드 인티그레이티드 앰프인 퍼포먼스(KT88 푸쉬풀, 출력 40와트)와 신포니아(KT88 푸쉬풀, 출력 30와트), 그리고 필자의 레퍼런스 앰프인 파이널의 뮤직-3(6CA7 푸쉬풀, 출력 25와트) 등과 같은 진공관 앰프와 조합한 결과는 충분히 확인한 셈이지만, 막상 트랜지스터 앰프와의 상성은 확인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고, 기왕이면 이른바 슈퍼 하이엔드 앰프와의 조합으로 디비나에서 최고의 음향을 이끌어 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에 대하여 필자는 『월간 오디오』 8월호에서 필자는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파이널 조합에서는 칼라스 시리즈 특유의 명료함, 투명함 속에 온화한 색채, 매끄러운 선율미, 유연한 다이내믹 등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음향이 살아나고 있다면, 유니슨 리서치의 조합에서는 음악 표현은 명료해지면서 공간감이 약해지고 포르티시모에서 고음역이 다소 경질로 흐르는
기미를 보이기는 하지만, 음향 전체에 중량감과 명쾌함이 아연 실리면서, 절도가 살아 있는 중후함을 기반으로 한 도회적 세련미가 손에 잡힐
듯한 표정으로 떠오른다.
이들 가운데 어느 조합에 손을 들어주어야 할까? 선율선, 다이내믹의 유연성과 탐미적인 색채 표현을 중시하는 필자 개인의 취향으로 보면 파이널이라고
하고 싶은데, 체급 차이가 워낙 큰 까닭에 이 앰프를 디비나의 짝으로 맺어 주기는 힘들 것 같다. 그러나 현대 음향 특유의 투명함, 예리함,
절도 등이 넘치는 세련미를 선호하는 애호가라면, 유니슨 리서치 같은 앰프도 그 나름의 대안이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보면 이러한 희망 사항을 충족시켜 준 곳이 바로 하이파이 클럽인 셈이다. 하이파이 클럽에서는 최근 전 세계의 오디오파일 사이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다질의 NHB-18NS?NHB-108 모델1 앰프 세트와 린데만의 820 SACD/CD 플레이어를 조합한 시스템으로 디비나를 구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감생심이라더니! 다질 앰프 세트에 린데만의 플레이어라! 현재의 상황에서 디비나의 능력을 확인하는 데 있어서 이보다 더 좋은 대안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렇다면 새로운 시스템 환경에서 디비나는 어떤 음향을 연출했는가? 기본 성향을 살펴본다면, 디비나는 이전의 조합에서 필자가 얻었던 음향,
그러니까 무엇 하나 애매함도 없고 모호함도 없이 음향 무대를 깔끔하게 제시하는 밝은 색조의 음향 무대를 바탕에 깔고, 그 무대 위에 절제된
저음역, 명료한 중음역, 화려한 고음역 등을 말끔하게 제시하는 모습에서는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그러나 린데만, 다질 조합에서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폭 넓게 펼쳐진 음향 무대를 배경으로 하여 들숨과 날숨이 자연스럽게 교차하는
유연하면서도 적극적인 발성 속에서 떠오르는 명료함, 투명함, 화려함의 세계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린데만, 다질 조합은 어느 한 구석 애매함도
없고 모호함도 없는 명쾌한 선율선, 유연하지만 절도를 잃지 않는 깔끔한 리듬, 음악의 표정을 정확하게 포착해 내는 정교한 다이내믹, 그리고
어떤 국면에서도 흐려지는 법이 없는 명도 높은 색채 표현 등을 삼삼하게, 그리고 유려하게 통합해 내는 모습을 칼라스 디비나에서 이끌어 내고
있었다.
그러나 이 조합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명료함과 화려함을 추구하는 시스템이 흔히 보여주는 음향 특성 위주의 경직된 음향 조형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다소 가늘고 얇은 경향을 보이는 고음역의 선율선과 텍스추어 등에 대하여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고, 전향적인 발성의 영향으로
나타나는 그리 깊지 않은 심도, 음색에 대해서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린데만, 다질 조합에서 가장 눈여겨볼 부분은 전 대역에 걸쳐
음향 자체에 불필요한 무게를 싣지 않는, 사뿐함과 절제력을 아우르는 자연스러운 음향 조형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이럴 때 선율선과 다이내믹이 자연스럽게 일체를 이루면서, 음악의 표정이 한결 나긋하면서도 상냥한 경향을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음악 표현의 중심 대역에서 이 조합이 연출하는 투명한 이탈감과 자연스러운 확산감은 유니슨 리서치 조합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유니슨 리서치 조합과 비교해 보면 해상도와 절제력이 다소 떨어지지만, 다질 조합은 칼라스 디비나의 음향을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옮겨 놓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절제력과 유연성의 절묘한 조화를 이끌어 내는 생동감 넘치는 저음역은 이 조합에서
가장 눈여겨볼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이 조합은 린데만, 다질 앰프 세트가 연출하는 안정된 템포(페이스)와 정연한 대역 밸런스 위에서 펼쳐지는 우아함과 세련미의
행복한 만남이 무엇인지 보여 주는 듯했다. 명쾌하지만 섬세함을 잃지 않고, 투명하지만 은은함이 살아 있으며, 화려하지만 야해지지 않는 음향이
린데만, 다질, 칼라스 디비나 조합에서 손에 잡힐 듯한 모습으로 떠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필자는 이탈리아 회사인 오페라에서 내 놓은 칼라스 시리즈의 최고 모델인 디비나의 이모저모를 살펴보았다. 지난 7월에 이은 두 번째
시청인 만큼, 시청 작업에 대한 부담감이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이 스피커에 잠재된 새로운 능력을 탐구하는 데 있어서 이번 시청보다 더
좋은 기회가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지난 두 번의 시청에서 필자가 느꼈던 아쉬움, 그러니까 트랜지스터 앰프로 이 스피커를 구동해
보지 못했다는 아쉬움, 그리고 최고의 하이엔드 앰프 세트와 플레이어를 가지고 재생 능력의 한계 수준까지 이 스피커를 구동해 보지 못한 아쉬움을
이번 시청에서 단번에 해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시청한 다질 앰프 조합까지 포함하여, 지금까지 세 종의 앰프로 구동한 결과를 정리해 보면, 디비나는 이탈리아 스피커 특유의 화려함,
명쾌함, 절도 등을 깔끔하게 통합하는 데 초점을 맞춘 스피커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밝고 투명한 음향 무대, 일체의 번짐을 허용하지 않는
반듯한 음색, 경쾌함과 명쾌함을 아우르는 또렷한 선율선, 절도와 명쾌함을 겸비한 다이내믹 등을 정연한 이미지로 통합하는 현대적 음향을 선호하는
애호가에게 디비나는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이처럼 세련미를 지향하면서도 구동과 발성에 그리 까다로움을 부리지 않는 모습은 이
스피커의 또 다른 장점으로 꼽아도 좋을 것 같다.
그러나 관점을 바꾸어 보면 지금까지 언급한 이상의 음향 특성들은 양날의 칼이라는 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중후함, 은은함,
유장함 등을 선호하는 애호가를, 그리고 중, 고음역의 섬세한 연출력을 원하는 애호가를 디비나가 완벽하게 설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번 시청에서 필자가 접한 린데만, 다질 조합은, 칼라스 디비나가 연출하는 이탈리아 스타일의 고혹적인 관능미에 은은함이 감도는 온화한 색채와 삼삼한 선율미를 사뿐하게 실어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린데만, 다질, 디비나 조합이 연출하는 이러한 스타일을 두고 우아한 관능미라고 하면 제격일 것 같은데, 필자 개인의 취향을 기준으로 한다면, 바로 이 지점에서 1960년대에 칼라스가 누렸던 황금시대의 한 자락을 엿보았다는 느낌이 어렴풋이 든다. 60년대 EMI 녹음에 담긴 음울함을 벗어던진 칼라스의 고혹적인 자태 말이다.
- 박 성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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