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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대형기와 중형기는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을까 ? 단순히 음량을 크게 틀 수 있고, 사이즈가 크다는 점만은 아닐 것이다. 엄밀히 말한다면, 10평 이상이냐 이하냐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일 10평 이하의 공간이라면 대략 중형기 정도가 알맞을 것이다. 대형기라고 해도 에너지가 넘치는 쪽보다는, 차분하게 음장을 형성하면서 공격적이지 않는 음이 될 것이다. 반면 10평이 넘는다면, 이쪽으로 소리가 도달해야 한다는, 다시 말해 에너지의 문제가 중요해진다. 과거의 혼 타입 스피커들이 극장이나 콘서트 홀과 같은 어마어마하게 큰 공간을 상정해서 설계되었음을 감안하다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여기서 추측할 수 있는 것은, 같은 대형이라도 어떤 공간에 넣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전에 데이빗 윌슨하고 인터뷰할 때 이런 말을 들었다. 그랜드 슬램이나 알렉산드리아는 콜로라도에 있는 자택의 거실에 쓰이고 있는 스피커로, 그랜드 피아노가 들어가고, 75명쯤의 관람객이 서성일 정도로 크다 ! 여기서 고역의 에너지가 약하면 절대로 공간을 장악할 수 없게 된다. 즉, 단순히 음장이 좋아야 뛰어난 스피커이고, 고역의 에너지가 넘치면 밸런스가 잘못 되었다고 탓할 만한 일은 아닌 것이다. 일단 그 기준을 10평으로 한 것은, 고역의 에너지나 음장을 논할 때 하나의 척도로 이해하길 바란다.

예를 들어 베리티 오디오의 로엔그린의 경우, 이번 시청에서는 큰 이득을 보지 못했다. 워낙 공간이 크다 보니, 이쪽으로 오는 에너지에 문제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스피커 뒤쪽으로 전개되는 음장이 평소보다 희마하고, 설득력이 약했다. 만일 작은 시청실에서 이 스피커를 들었다면, 반대의 결과가 나왔을 지도 모른다.

반대로 트라이던트의 경우, 워낙 에너지가 좋고, 직진성도 훌륭해서 누구나 납득할 만한 음이 나왔다. 이 정도의 공간도 모자란 듯 쭉쭉 음이 밀려오는데, 그야말로 대형기만이 낼 수 있는 파워가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만일 이 스피커를 10평 이하의 공간에 집어넣는다면, 공룡을 새장에 집어넣은 듯한 형국이 될 것이다. 귀에서 피가 난다는 것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한 표현일까 ?

서론에서 아무튼 대형기를 갖고 싶다고 썼지만, 과연 어떤 종류의 대형기인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필자는 아무래도 크게 음장을 형성하는 아라바와 같은 스피커가 탐이 나지만, 로또에 당첨이 되거나 베스트 셀러 소설을 내서 큰 공간을 얻게 되면 당연히 트라이던트와 같은 스피커를 구입할 것이다. 즉, 같은 대형기라도 어떤 쪽을 겨냥하느냐에 따라 성격이 판이하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또 스피커와 앰프의 상성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오디오에서 매칭이라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거니와, 이런 대형기를 운용할 때는 더욱 그렇다. 시청에 동원된 그리폰 콤비는 객관적으로 무척 훌륭한 앰프이지만, 이번 시청에서는 로엔그린과 스트라디바리 오마주가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볼 때, 로엔그린은 힘으로 밀어 부치기보다는 정확하게 포인트를 집어내는 앰프가 어울리는 것 같다. 다시 말해, 램의 ML 2.1과 같이, 순수 싱글 타입의 진공관으로 18W를 내는 파워가 훨씬 매칭이 좋았던 것이다. 그런 음을 머릿속에 그리며 이번 시청평을 썼다.

또 스트라디바리 오마주로 말하면, 도쿄 오디오 쇼에서 독일의 비홀드 앰프와 연결한 음에 큰 충격을 받은 바 있고, 하이파이 클럽의 작은 시청실에서 다질 앰프와 연결되었을 때 역시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느낌을 담도록 노력했다.

어차피 짧은 시간에 이런 몬스터 클래스의 제품 5개를 리뷰한다는 발상 자체엔 무리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언제 이런 음을 한 자리에서 들어보겠는가. 예를 들어 배리 본즈, 알렉스 로드리게스, 데이빗 오티스, 알버트 퓨홀스 등이 올스타 게임 홈런 더비에 출전해서 누군 20개를 치고, 누군 5개를 쳤다고 해서 누가 누구보다 낫다는 평을 할 수는 없다. 모두 훌륭한 타자들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이번에 시청한 제품 모두 훌륭했다. 그리고 집에 와서 한 동안 후유증에 시달렸다. 과연 언제쯤 이런 스피커를 집에 들일 수 있을까 ? 어떻게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소편성이 이토록 리얼하고, 풀 사이즈 오케스트라가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나오며, 재즈의 스윙감이 흥겹게 전개될 수 있을까 ? 아마 이런 기분은 이번 시청에 참여한 다른 평론가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시금 넓은 시청실과 대형 스피커에 대한 로망을 꿈꿔 본다. 그 때 마실 와인을 상상하며, 마트에 가서 싸구려라도 하나 집어들고 와야할 것 같다.

좋은 스피커들은 민감하므로 작은 변화에도 크게 변화한다. 따라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작은 부분의 변화까지 철저하게 음미해야만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다. 더구나 이 시대를 대표하는 하이엔드 메이커의 간판 제품들을 아무 곳에나 툭 던져 놓고 한 가지 앰프나 물려서 단번에 좋은 소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오늘과 같은 비교 청취는 기준 앰프와의 상성에 크게 의존하게 마련이고 오늘 재생되는 소리에서도 그것을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스피커마다 소리를 펼쳐내는 방식(지향성)이 다르기 때문에 리스닝 룸에 따라서도 큰 차이가 났다. 예컨대 오늘 좋지 못한 소리를 낸 기기들은 양 스피커 중앙이 아닌 옆벽 쪽에 서서 들었을 때 벽의 반사음이 자극적으로 들리는 것을 느꼈다. 반면에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은 스피커의 경우에는 벽에 붙어 서도 그런 소리가 별로 들리지 않았다.

이를 통해 스피커 하나를 설치하더라도 토인이나 거리를 조절할 때 충분한 시간을 갖고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교과서적 진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시간 관계상 스피커마다 최선의 위치를 찾아보지 못한 것은 작은 아쉬움이다.

특히 스트라디바리 오마쥬와 로엔그린은 이런 청취 환경에서 크게 손해를 보았다는 느낌, 사보이와 아라바는 평균 정도의 능력은 보여준 것 같고 트라이던트는 매칭 앰프 뿐만아니라 바이앰핑이라는 점에서 확실한 이득을 보았다고 생각한다.

바이앰핑의 위력은 상당하다. 그리폰 안틸레온 시그너처와 같은 막강한 앰프가 트라이던트를 울릴 때 우퍼 네 발을 울리지 않고 가상 동축 중고역 유닛만 울리는 것을 생각해보자. 얼마나 힘이 남을까? 이 여유는 그대로 재생음에 나타났다.

오늘 시청한 스피커들은 어느 것이나 최고의 기기라는 것은 절대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어떤 앰프를 연결하고 어떤 공간에서 듣느냐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오갈 수 있다는 것. 그 편차가 크면 클수록 제대로 울렸을 때의 보람은 더욱 커질 것이다. 특히 하이엔드 오디오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과연 웅장한 스케일의 대형기 다섯종류를 너다섯시간만에 평가 할 수 있는가 . 대답은 단연코 “아니오” 이다 . 시청환경에서 전원 , 연결 시스템과의 씨름만도 수 개월은 걸리는 작업이고 단지 몇개의 타이틀로 결정지을 수 있는것도 아니다 . 단지 우리는 각각의 스피커가 가지고 있는 음의 공간을 살짝 들여다 본 것에 불과할 뿐이다 . 그 중에는 비교적 잘 어울리는 것도 있었고 아주 훌륭한 것도 있었다 .

결과는 전혀 중요치 않다 . 단지 네모다란 아파트 공간이 대한민국의 주거환경을 표준화 하게된 현실에서 보다 유연한 사고를 유도하고 또 다른 사운드의 공간에 도전할 수 있는 대형 스피커 기종들을 소개 하는 기회가 되었다는 사실이 더욱 중요한 일이다 . 대형기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은 대형기에 대한 영원한 동경과도 일치한다 .

간편함을 추구하는 현대적인 일상에 기반한 생활철학으로는 설명하기 힘들지만 그 압도적인 스케일과 밀려오는 파도와도 같은 소리의 압력은 또 다른 치열한 취미성을 자극하게 된다 . 대형기 – 오디오 애호가들이 잠시 잊고 살았던 도전의식을 활활 일깨워 주는 자극적인 화두가 여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