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형 부럽지 않은 일체형 리시버의 미덕
더위가 막바지 기승을 부리는 요즘, 필자는 밤에 주로 추리 소설을 읽고 있다. 데니스 루헤인, 조지 펠레카노스 등 신세대 하드보일드를 필두로, 제임스 엘로이, 미야베 미유키 등을 열심히 읽고 있다. 기시 유스케, 기리노 나쓰오, 미키 스필레인 등은 사놓고 아직 손도 대지 못하고 있으며, 로렌스 블록의 원서를 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사실 여름에 집중해서 음악을 듣기는 힘들다. 듣는다고 해도 대곡보다는 소편성이나 재즈 등이 주류가 될 수밖에 없다. 메이저 리그의 가을 잔치엔 아직 시간이 남았고, 프리미어 리그는 이제 막 시작했으니, 연말쯤 되어야 윤곽이 나올 것이다. 다시 말해 크게 관심을 둘 분야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즈음 읽는 추리 소설은 그야말로 꿀맛이다.
문제는 이런 소설을 읽고 있을 때, 일종의 백그라운드 뮤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독서에 집중하려면 적막강산이 최고지만, 무슨 입시나 취업 준비하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킬링 타임의 의미도 강해서 너무 조용하면 이상하기는 하다. 그렇다고 본격적인 오디오 시스템을 켜자니, 전기세가 아까워 아무래도 음악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의 뇌는 하나라서, 도저히 책과 음악 두 가지에 몰두할 수는 없는 법. 있는 듯 없는 듯 BGM으로서의 음악이 이때 필요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오라 노트가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담이지만, 오로지 디자인에 반해 구입한 오라의 인티 앰프는, 한때 6개월 정도 강남의 오피스텔에 기거할 무렵 좋은 동반자가 되었다. 로저스의 스튜디오 원과 물려 클래식이며 재즈, 록 등을 고상하게 재생하던 이 앰프는, 가끔 방문하는 사람들이 한번쯤은 쓰다듬고 한 마디씩 하게 만드는 마력을 갖고 있었다. 본기 역시 그런 디자인의 연장선상에 있어서, 엘락 스피커와 매칭되었을 때 받는 시각적인 만족도도 상당했다. 음도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나중에 이 제품이 실은 에이프릴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물론 디자인은 오리지널 오라 인티 앰프를 설계한 케네스 그렌지에 의뢰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상업 디자인에서 영국을 대표하는 한 명이고, 이미 B&W의 노틸러스 스피커를 디자인한 경력도 있다. 이런 거장의 작품인 만큼, 오라에서 내뿜는 포스가 남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물론 이 대목에서 시중에 흔히 볼 수 있는 시스템 컴포넌트를 떠올리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많은 대규모 메이커에서 일종의 물량 공세로 CDP, 튜너, 카세트 데크, 앰프, 스피커 등을 한 데 모아 저렴한 가격에 경쟁적으로 공급하고 있는데, 개중에는 인상적인 제품도 있다. 그러나 어차피 이런 제품들의 한계는 눈에 보이듯 뻔하다. 아무리 튜닝이나 에이징을 한다고 해도 유저가 음을 만드는 데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선이 존재한다. 그러나 오라 노트는 기본적으로 하이파이 컴포넌트인데다가 수려한 디자인까지 갖추고 있어, 제품으로서의 격이 달라도 한참 다르다. 아무튼 원고를 쓰거나 웹 서핑을 하거나 하루에 적어도 두 세 시간은 컴퓨터 앞에 앉는 편이라, 이런 인터넷 방송은 꽤 유용하다. 또 좋은 곡이 있으면 바로 곡명을 확인할 수 있으니, 꽤 공부도 된다. 문제는 오라 노트와 PC를 연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갑자기 소프트웨어의 어마어마한 신천지가 열린 느낌이다. 그것도 공짜로!
대개 필자는 오디오 제품을 평할 때, 전문적인 시청실을 사용하는 편이다. 특히, 하이파이클럽의 시청실엔 좋은 기기도 많고, 음향적인 처리도 잘 되어 있어서 스피커건 앰프건 최대한의 성능을 끌어낼 수 있다. 그러나 오라 노트만큼은 집에서 시청하기로 했다. 좀 더 가까이 곁에 두고, 아침이고 저녁이고 지켜보면서 버튼을 눌러보기도 하고, FM 기능도 살피고, CD도 걸어보면서 한 동안 살림을 차리고 싶어서다. 또 진공관 앰프를 사용하는 필자로서는, 여름용 오디오가 따로 없어서 본 기의 성능에 기대하고 싶은 생각도 간절했다. 역시 그 예상이 적중해서, 당초 BGM 정도로 사용하려던 것이 어느새 메인으로 자리잡고 말았다. 필자는 북셀프 스피커를 여러 기종 갖고 있기 때문에 본 기의 배필을 구하는 데엔 그리 어렵지 않다. 다만, 집이 작은 관계로 기존의 시스템과 적절히 융화시키는 것이 문제였다. 결국 북셀프라는 명칭에 걸맞게 스피커를 책장에 넣고, 길게 스피커 케이블을 연결해서 TV 옆에 본 기를 배치했다. 그리고 CD의 음을 집중적으로 체크했는데, 결과는 매우 만족할 만했다. 아니, 깜짝 놀랄 만큼 음질이 뛰어났다. 처음 엘락과 연결되었을 때 받은 인상이 결코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문제는 앰프나 스피커에 있는 것이 아니라 CDP에 있다. 대개 100만원 안팎 심지어 50만원이하의 제품으로 CDP를 충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예산 배분상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이 가격대에 추천할 만한 CDP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혹 있다고 해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일단 음의 출구부터 문제투성이라서, 결국 전체 시스템의 퀄리티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최초의 제품을 CDP로 시작한 에이프릴의 노하우가 결집된 본기의 CDP 성능은 상당히 추천할 만하다. 고역이 사납거나, 저역이 부스트되는 경향도 없고, 중역대엔 적절한 살집을 갖춘 미음이 나온다. 앰프는 비록 8옴에 50와트밖에 내지 않는 출력이지만, 적절한 북셀프만 갖춘다면 어정쩡하게 분리형으로 꾸미는 시스템보다는 훨씬 소리가 좋다. 말하자면 CDP~인티 앰프로 이어지는 라인업의 수준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본기가 가진 놀라운 잠재력이 아닐까 한다.
사실 하루가 멀다하고 고가의 제품이 출현하는 하이엔드 오디오계는, 이제 오로지 오디오가 좋아서 시작한 사람들이 함부로 다가설 수 없는 세계가 되어버렸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좀 저축을 하고 아끼면 손에 넣을 수 있는 수준의 제품이 이제는 집을 줄이거나, 부동산을 팔거나, 주식을 잔뜩 부풀려야만 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필자는 가끔 로또 복권을 사기도 하는데, 당첨은 요원하기만 하다. 그런 점에서 본기가 갖는 미덕은 훌륭하기까지 한다. 진정한 행복은 과욕을 버리고 실리를 추구하는 데에 있는 것 같다. 솔직히 이 정도 기기로 다양하게 CD도 듣고, FM도 듣고, MP3도 듣고, 인터넷 라디오도 들으면 족하지 않은가? 만일 돈이 남는다면, CD를 왕창 사서 라이브러리를 꽉꽉 채우는 것도 현명한 처사일 것이다. 그건 그렇고, 일단 이 작은 거인으로 재미가 쏠쏠하니, 앞으로 좋은 배필을 구하는 데 신경을 쓰며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고 싶다. 벌써 머릿속엔 필자를 거쳐 간 수많은 북셀프 스피커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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