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상의 편견을 무너뜨린 깊이감과 풍부한 울림이 돋보여
Crystal Cable
첫인상의 편견을 무너뜨린 깊이감과 풍부한 울림이 돋보여
오디오를 하는 데 있어 케이블은 필수 요소 중 하나다. 물론 무선으로 연결되는 기기도 최근 속속 개발되고 있지만 오디오파일에게는 요원한 일이다. 최근 들어, 케이블은 단순히 기기 간을 연결하는 역할을 뛰어넘어 예전보다 훨씬 더 중요한 오디오 컴포넌트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필자는 케이블을 좋아하기 때문에 갖가지 케이블들이 보기 좋게 얽혀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오디오 사이트에 올리기도 하고, 컴퓨터 바탕화면으로 올려놓기도 하고, 친한 분들한테 보여주기도 한다. 오디오를 하는 분들은 이해하지만, 오디오를 잘 모르는 분들은 ‘선이 지저분하다, 내가 집에다 오디오를 꾸미면 무선으로 할 거다, 선 없이는 안 되냐?’ 이런 반응들이 많다.
실제로 오디오를 하는 분들이 집에서 겪는 적잖은 고통은 가족의 생활공간을 어질러 놓는다고 타박 받는 일이다. 스피커나 기기를 고를 때 소리도 중요하지만, 모양새가 가족의 맘에 들어야 ‘OK 사인’이 떨어지는 것이다. 이번에 리뷰하게 된 크리스털 케이블 정도라면 적어도 모양새에 대한 딴지나 타박을 절대 받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국내의 모 오디오숍에 전시되어 있는 은빛 찬란한 인터커넥터를 보면서 군침을 삼켰던 적이 있었다. 'Crystal connect micro'라는 RCA 인터커넥터였는데, 그 럭셔리한 모양에 어떤 소리일까를 상상해보았던 적이 있다.
그런데 바로 그 크리스털 케이블이 필자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이다. 그것도 레퍼런스급으로, 동일한 모양의 파워 케이블까지 동봉되어서 말이다. 크리스털 케이블의 모양을 보면 필자가 보았던 어떤 케이블보다 얇고 럭셔리하다. 순은 심선의 공극을 순금으로 매운 구조의 심선을 켑톤으로 절연하고 그 위에 은도금선으로 쉴드하고 테플론으로 마무리한 케이블의 총 외경이라고 해봤자 불과 몇 밀리미터 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소리를 들어 보면 생긴 모양과는 전혀 딴판의 소리가 나는 것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보통 컨트롤이 안 되는 저역을 줄이기 위해서 얇은 케이블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크리스털 케이블은 그런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케이블이 아니다. 풍성하게 터져 나오는 저역에 두께에 대한 생각이 무색해진다. 그 이유인즉 케이블의 외경은 얇되 그 도체의 굵기는 결코 얇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 제작자의 변이다.
흔히 케이블의 소재로는 동과 은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데, 은선이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네덜란드 케이블 브랜드인 실텍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실텍은 은선 케이블의 대명사처럼 사용되었었다.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는 은선과 금선을 섞어서 튜닝하는 그들만의 방법을 제시했었다.
크리스털 케이블도 네덜란드 태생으로, 케이블 소재에 금과 은을 섞어서 쓴 것을 보면 실텍과 어떤 연관 관계가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알아보니 실텍 사장의 부인이 크리스털 케이블 사장이라고 한다. 금과 은을 섞어서 쓰는 방식은 금심선과 은심선을 합쳐서 쓰는것이 아니라 은도체 결정사이에 금을 채워 넣는 야금(metallurgy) 기술을 사용해서 일반적인 도체에 비해서 같은 구경일 경우 훨씬 더 많은 양의 신호와 흐름을 전송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음질이다. 요즘 오디오 튜닝을 할 때 가장 많이 듣고 있는 음반 중 하나인
첫 번째 곡인 'Desperado'에서 약간 음상이 커지면서 후지타 에미의 목소리가 도톰해짐을 금세 감지할 수 있다. 중역이 도톰해지면서 약간 더 허스키 보이스 쪽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샤우팅할 때의 에너지감도 좋다. 보통 중역이 두터워지는 튜닝을 하면 고역의 롤오프가 느껴진다거나 고역이 답답하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많은데, 크리스털 케이블은 중역의 두께감을 쉽게 가져오면서도 고역이 후련하게 개방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두 번째 곡인 에바 케시디의 'Fields of Gold'에서도 개방감은 그대로 유지되며 바탕으로 깔리는 시스 노이즈가 비가 오는 듯 자연스럽게 깔린다. 보통 고역이 열려 있지 않으면 이곡에서 시스 노이즈가 거의 들리지 않게 된다. 리듬감을 체크할 때 많이 듣는 'Better be home soon'과 지나 로드윅의 'Do that to me one more time'도 저역이 늘어짐 없이 거침없이 치고 나간다. 중역대가 적극적인 스타일이어서 약간 거친 맛은 있지만 소리가 밝은 스타일은 아니어서 소리의 뉘앙스를 놓치지 않는다.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에서 Jean Frye Sidwell의 목소리에서 쓸쓸함이 느껴진다. 보통 시스템이 밝거나 다이내믹스만 강조하다 보면 이 곡에서 쓸쓸함이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객지에 나와서 고향을 그리는 쓸쓸한 느낌 말이다. 크리스털 케이블에 금이 포함되어 있는데, 보통 금으로 튜닝을 하면 금 특유의 빤짝거림이 소리에도 묻어나오기 마련이다.
즉 소리가 더 화려해지고 소리의 두께감이 좋아지며 맑은 소리보다는 약간 진해지는 쪽으로 변하는 것이 보통의 변화다. 여기에서 우려되는 점은 밝고 명랑하고 화려하고 다이내믹해지지만 혹시 슬픔이나 쓸쓸함을 잘 표현하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하지만 크리스털 케이블에서는 그런 버릇이 발견되지 않았다.
자넷 린드스트롬 & 스티브 도브로고스의 'Both Sides Now'에서는 힘찬 피아노 타건과 공간을 타고 울리는 목소리의 잔향감이 돋보였고, 레이 찰스 OST 음반에서는 그 특유의 술렁술렁하는 무대 분위기가 그대로 전달되어진다.
LP쪽 음질을 체크하기 위해 레오니드 코간의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LP로 올려본다. 바이올린 소리의 울림이 풍부해져서 듣는 청취자를 긴장시키지 않고 유려하게 연주되는 모습이다. 코간의 바이올린 소리는 자칫 차갑거나 냉정하게 튜닝되는 경우가 있는데, 적당한 온도감을 유지해준다는 것이 또 이 케이블의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케이블이 겉모습과는 전혀 다른 소리 경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재미있는 일이겠지만 한편으로는 마케팅에서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두툼한 소리를 찾는 애호가가 크리스털 케이블을 선뜻 집기가 어려울 거라는 우려가 있다.
뿐만 아니라 케이블의 이름처럼 크리스털처럼 맑고 투명한 소리를 추구해서 이 케이블을 구입한다면 이름과 전혀 다른 소리 경향에 또 한 번 놀라게 될 것이다. 이 케이블은 생긴 모양과도 반대, 케이블의 이름과도 반대 경향의 소리를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된다.
크리스털 케이블의 소리 성향을 특징적으로 표현하자면 무게감과 에너지감 그리고 두께감이다. 케이블의 외관은 얇되 소리의 두께감은 상당히 두툼하게 표현한다. 어떤 케이블보다도 라이브 음악에서 느낄 수 있는 그러한 두께감이 좋다.
그리고 두께감이 좋으면서 속이 비어있는 느낌이 아니라 속이 꽉 차 있는 솔리드한 느낌이다. 이런 성향은 파워 케이블, 인터커넥터, 스피커 케이블에서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오디오 재생에 있어서 두께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고 있는 지금 시점에 크리스털 케이블의 튜닝 포인트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인터커넥터의 경우 에너지감이 좋고 무대의 폭이 매우 크게 형성되고 음의 윤곽이 선명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피어오른다. 금 특유의 광채가 살짝 묻어 있어 화려함도 돋보였다. 디테일도 수준급이고 가격을 생각한다면 내어주는 소리는 황홀할 정도로 뛰어나다.
파워 케이블의 경우 무대의 깊이감을 더 잘 표현해주는 성향이었고, 선명하게 엣지를 드러내는 호방한 스타일이다. 부드럽게 연마하는 듯한 소리에 식상한 분들의 선택이 될 수 있겠다. 저역을 깊게 움켜쥐는 스타일은 아닌 듯했다.
스피커 케이블은 무대 안쪽의 깊이감과 잔향감이 인상적이었고, 유려한 바이올린 소리가 돋보였다. 두께감이 있으면서도 차분히 정제된 그러면서도 언뜻언뜻 금의 화려함을 표출하는 느낌이었다.
크리스털 케이블은 단자 처리를 위해서 스위스에서 제작된 전용 기기를 사용한다고 밝히고 있는데 그 접속 방식이 케이블 중간에 고품질 어댑터와 스플리터를 이용하여 단자의 종류와 길이, 싱글와이어링과 바이와이어링 등 사용자의 요구에 맞게 즉각 대응할 수 있는 방식을 취한다는 점은 다른 케이블들과는 다른 독특한 시스템이다. 일반적인 케이블 뿐 아니라 BNC나 USB 단자를 접속한 케이블도 조합이 가능하고, 아이팟을 위한 케이블도 발매한 것을 보면 최신의 흐름에도 발 빠르게 대응하는 면모를 보이고 있다.
고음질 레코딩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체스키레코드, MA 레코드, STS digital에서 녹음 스튜디오용으로 크리스털 케이블이 사용된다고 하니, 그 실력은 이미 검증이 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앞으로 star configuration 구조를 가지는 전원 아웃렛 즉 6구 짜리 멀티탭도 제작중이라 하니 오디오의 젖줄이라고 할 수 있는 멀티탭이 나오면 다시 한 번 리뷰해보고 싶은 생각이다. 이제 필자에게 크리스털 케이블은 아주 호감이 가는 회사로 머릿속에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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