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하게 성장해온 독일 장인정신의 산물
서두를 다른 각도로 시작한 이유는 ASR 에미터 I를 보는 순간 잠시 잊고 있었던 리뷰어로서의 역할과 오디오 엔지니어로서의 의욕이 되살아났기 때문인데, 유난히 이 제품은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한 독특한 기술력과 사운드가 강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이미 잡지 등을 통해 리뷰가 이루어진 제품이지만 다른 관점에서 좀 더 살펴볼만한 흥미진진한 역작이라고 할 수 있다.
올 초 독일에 잠시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독일인들의 교육 환경과 장인들에 대한 사회적 대우와 환경에 무척이나 감명을 받은 기억이 있다. 비싼 사교육에, 입시나 취업을 위해 교육에 열중하는 우리와 달리 모든 교육 과정을 국가에서 지원하고 있다는 점과 굳이 높은 학력을 중시하지 않는다는 그들의 사회적인 풍토가 충격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기 때문에 장인정신을 기반으로 한 전문 직종의 가치가 더욱 상승되고 있는 듯했다.
필자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ASR의 제품을 보면서 독일의 사회적, 환경적인 영역에서만 탄생될 수 있는, 정말 장인정신을 바탕에 둔 제품이라는 점과 이런 모습들이 어쩌면 독일 제품들이 인정받는 경쟁력이지 않을까 하는 이유 때문이다. 동사뿐만 아니라 노이먼, EMT, 버메스터 등과 같은 독일을 대표하는 제품들을 살펴보면서 탄탄한 이론적 기반을 토대로 구체화된 개발 사양과 뛰어난 성능에 놀라울 때가 많았다.
에미터의 개발자인 프리드리히 셰퍼는 1980년 ASR 설립 이후 25년 동안 꾸준히 에미터 시리즈만을 개발하고 업그레이드시켜 오고 있는데, 잠시 그 당시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어떨까? 당사의 제품 의도로 보아서는 굉장히 놀라운 설계 방식이자 인티 앰프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규모, 그리고 음질만을 중심에 둔 개성 강하고 개발자의 고집이 느껴지는 사운드 특징은 파격 그 자체였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마치 챔피언이 새로운 타이틀을 갈아치우듯 그 자리에 머물지 않고 꾸준한 성장과 노력을 거듭하고 있으며, 현 시점에서도 여전히 경이로움이라는 단어를 불러일으킬만한 제품으로 성장해 있다. 마치 점진적으로 옵션 처리되어 결합한 듯한 보드들과 꾸준히 업그레이드된 칩 사양들이 이를 말해주는 대표적인 부분들로, 여기에 지속적으로 리비전된 시리즈의 버전을 보면 더욱 이런 부분들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제품에서 가장 눈에 뛰는 것은 별도의 전원부 및 대형 모노블록 파워 앰프 같은 엄청난 규모, 그리고 25mm 두께의 아크릴로 마감한 독특한 외관 디자인이다. 누드 타입의 색다른 경험과 블루와 옐로 색상의 LED가 아크릴을 통해 비춰져 기계적인 느낌의 독일 제품 이미지를 풍긴다. 에미터 I에서 특기할 만한 몇 가지를 살펴보면 우선 철저히 분리된 전원부를 들 수 있는데, 파워와 프리앰프부는 각각 AC 전압 공급 방식과 배터리 구동의 DC 전압 공급 방식으로 차별화되어 있다.
앰프에서 전원부의 중요성은 저역 댐핑과 대역 재생에서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는데, 특히 배터리를 사용한 DC 전압 공급 방식은 프리앰프부의 저노이즈 실현과 일정한 전압 변동을 유지시켜 고품격 사운드를 재생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고 있으며, 파워부에 사용되는 파워서플라이는 본체의 아크릴 재질과 달리 외부 노이즈와 자체 노이즈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메탈 케이스로 이루어져 있어 AC 환경에서의 저노이즈를 실현하고 있다.
다음은 분리형 제품에서 소홀해지기 쉬운 연결 케이블 부분으로 에미터는 본체와 전원부의 연결 케이블이 일반적인 사양이 아닌 Harting사의 산업용 전력 케이블을 사용하고 있으며, 유도 노이즈나 저항 손실을 줄이고 여유 있게 21A의 높은 전류까지 견딜 수 있도록 하면서도 DC 전원의 손실을 최소화하도록 유도하였으며, 케이블 연결시 안전성과 신뢰성을 높여주고 있다.
그리고 내부에 이중 실드로 처리된 커넥터 케이블은 2m 길이로 제공하여 설치 환경에 대한 제약을 고려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사운드는 마치 진공관의 자연스러움과 트랜지스터의 정교함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특징을 들려주는데, 도시바사 MOSFET을 채널당 20개 사용한 Class AB급 증폭으로 8옴 기준에서 채널당 250W 출력을 낼 수 있으며, 2옴까지 임피던스 매칭이 가능하다.
라인 입력부에 사용한 볼륨은 스텝당 1dB의 어테뉴에이터를 채용하여 채널당 정확한 밸런스를 유지시켜 주고 있다. 입력은 릴레이를 장착한 6계통의 입력 단자와 녹음 출력 1계통을 지원하고, 내부의 모든 신호선은 테플론으로 마감된 은선을 사용하였다. 이 밖에도 별도의 포노부가 설치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별도의 옵션 보드 타입으로 밸런스를 지원하도록 되어 있으며, 프로텍션 및 클리핑 제거 기능과 과열시 DC 제어 기능 등 다양한 컨트롤러 회로가 추가로 구성되어 안정적인 제품 동작을 돕고 있다.
간략히 살펴본 하드웨어적인 기반은 에미터 I의 사운드 특징을 결정짓는 중요한 부분들이며, 음악을 중심에 둔 사운드 튜닝의 결과는 작은 음량 레벨에서도 충분한 에너지감을 실감할 수 있도록 하였다.
여성 보컬 곡으로 에미 후지타가 부른 ‘Desperado’ 을 들어보면 강렬한 에미터의 사운드와 냉정한 사운드 특성이 동시에 펼쳐지면서 그녀의 목소리는 적극적이고 노련미와 공간을 가득 채워주는 양감으로 스테이지를 형성해 주고 있다. 치밀하거나 세밀한 분해력 보다는 전체적인 곡의 윤곽을 중심으로 단정한 사운드로 들려주었다.
대편성곡으로 발레리 게르기예프 지휘와 빈 필 연주의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을 들었다. 강력한 전원부를 바탕으로 한 팀파니와 금관 악기는 강렬하고 적극적인 표현으로 다가오면서 스피커 앞으로 음을 쉽게 쏟아내기보다는 경계를 긋듯 철저히 스테이지와 악기 사이 거리를 유지시켜 주었다. 특히 프리 회로의 역량이라고 할 수 있는 대역 밸런스와 스테이지의 우수함은 악기 편성이 많은 음악에서 탁월한 성능을 발휘한다.
실내악곡으로 들어본 슈베르트의 세레나데는 제품의 차가운 성향과는 달리 날카롭지 않고 철저히 완급 조절이 이루어진 섬세함과 동시에 힘 있는 길 샤함의 바이올린 선율이 느껴지는데, 괴란 쇨셔의 기타 반주는 바이올린의 소리를 잘 돋우어 주듯 한발 물러선 음상으로 반주 악기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해주었다.
비발디 사계 중 ‘겨울’을 쥴리아노 카르미뇰라의 연주와 베니스 바로크 오케스트라의 협연으로 들어보면 마치 유럽의 작은 소극장에서 공연을 듣는 듯한 느낌마저 드는데, 건축물로 비유한다면 마치 고딕 양식의 잘 정돈된 건물과 같이 정제된 사운드를 재생하면서 리스닝 공간의 환경적인 요인을 극복할 수 있는 앰프로 정확한 공간 재생을 제공해 주었다.
전체적으로 차갑고 냉정한 사운드 성향이기는 하지만, 냉정한 사운드를 다른 의미로 해석한다면 정확하고 오차가 없다고 해도 될 것인데, 이런 사운드 특징을 도이치 사운드 성향을 반영한 개성 강한 사운드로 표현한다면 어떨까? 그리고 개성이 강하기 때문에 오디오파일에 따라 찬반이 있을 수는 있지만, 진정한 도이치 사운드의 본질을 이해한다면 에미터 I를 통해 그들 사운드의 매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음악의 완성을 위해 줄기차게 달려온 노력의 결실이라는 표현이 적절한 제품으로써, 한마디로 그들이 만족할 때까지 앰프 하나만을 고집해온 장인정신을 바탕에 둔 ASR만의 오디오 설계 철학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llhtmll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