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을 넘어선 앤드라III의 새로운 도전
앤드라III 인터뷰
1990년대 중반, 당대 최고의 스피커는 당연히 윌슨 오디오의 와트 퍼피 시리즈 5였다. 이는 곧 5.1로 진화해, 모든 이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별로 적수가 없어 보일 만큼, 이 스피커가 그려내는 리얼한 음상과 칼과 같은 정위감은, 과연 현대 하이엔드 스피커의 표준으로 삼을 만했다.
그럴 즈음, 전혀 처음 듣는 회사에서 혜성과 같은 스피커가 나타났다. 크기는 와트 퍼피와 대동소이했지만, 컨셉은 전혀 달랐다. 두 개의 미드레인지를 일체의 크로스오버를 거치지 않은 채 음을 낸다는 신선한 발상과 다이내믹한 저역, 생동감 넘치는 고역이 어우러져 일약 신데렐라로 발돋움한 것이다. 이 스피커의 이름은 앤드라(Andra)이고, 개발자는 에글스톤 (Eggleston)이라는 신인이었다.
당시 와트 퍼피냐 앤드라냐 두 파가 갈릴 만큼 호불호가 갈렸고, 일본 잡지에서는 이례적으로 이 두 기기의 비교 테스트도 실시한 바 있다. 모두 꿈의 스피커임에는 분명하지만, 윌슨이 지속적인 업그레이드를 통해 시리즈 8로 진화한 데 비해, 한동안 앤드라에 대한 소식이 뜸했다. 물론 2002년도에 개량형 앤드라 2가 출시되긴 했지만, 처녀작이 준 충격만은 못했다. 여러모로 울리기 수월해지고, 풍부한 뉘앙스를 가졌음에도 단지 오리지널 설계자가 떠났다는 이유로 외면당한 것이다. 제품의 진가나 퀄리티보다는 이런 외적인 이유로 폄하당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억울하고 또 슬픈 일이다.
다행히 이번에 앤드라 3가 세계 최초로 서울에서 시청회를 염과 동시에 실질적인 에글스톤 웍스(Eggleston Works)의 오너이며 설계자인 짐 톰슨을 만날 기회가 주어졌다. 그 덕분에 그간의 사정을 들어보고 신제품의 개발 동기나 내용 등을 파악할 수 있었다. 시종일관 흥미로운 인터뷰가 될 것임을 필자는 확신했다.
참고로 필자는 추리소설을 무척 좋아하는데,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과 일본에서 꽤 인정을 받고 있는 작가가 바로 짐 톰슨이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그의 열렬한 팬이라면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곧 한국에도 그의 걸작 <킬러 인사이드 미>가 번역된다니 꽤 기대가 되는데, 이 즈음에 동명이인을 만난 다는 것이 꽤나 묘한 우연이라고 느꼈다.
짐 톰슨(추리작가 말고)이 태어나서 자라고 또 현재 에글스톤 공장을 운영하는 곳이 바로 미국 테네시주의 멤피스다. 엘비스의 저택이자 기념관이 된 그레이스랜드가 있는 곳이다. 선 레코드가 있는 록큰롤의 발생지로 유명하다. 그래서 당연한 듯 컨츄리 음악을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극구 부정한다. 인근 2시간 거리에 내쉬빌이 있으므로, 어림짐작한 것인데 전혀 아니란다. 비록 2시간이지만, 멤피스와 테네시는 미국과 L.A.만큼이나 다른 도시라고 한다.
오히려 그의 취향은 블루스와 재즈, 그리고 클래식! 처음 앤드라는 블루스 장르를 구현하는데 최강이라는 찬사를 들은 바 있는데, 신작을 들어보면 이러한 전통을 느낄 수 있는 면이 분명 존재한다. 비록 오리지널과 최신 버전의 설계자는 다르지만, 앤드라의 DNA속에는 이런 음악 취향이 녹아들어있는 것 같고, 그런 면에서 이번에 발표한 앤드라 3가 갖는 잠재력을 한껏 기대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스피커로부터 전달된 사운드를 들으면 재즈와 블루스에서 과연 피가 끓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었다. 물론 클래식도 좋지만…
인터뷰어 : 이종학
인터뷰이 : 짐 톰슨
앤드라 스피커 하면, 최초의 설계자 에글스톤의 이미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데, 최근회사에 많은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부분부터 설명해주시죠.
짐 : 에글스톤 웍스는 크게 세 개의 시기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1992년에 설립해서 에글스톤이 직접 관여한 시기가 첫 번째라면, 그가 회사를 떠난 후 마이크 세이버가 경영권을 이양받은 98년도가 두 번째 시기라 하겠죠. 이후 제가 2003년에 인수해서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오너가 바뀐 만큼 회사 전체의 역사는 어떤 면에서 각 시기마다 성격이 다를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떻습니까?
짐 :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 회사의 모토는 창업부터 뮤직의 에센스와 감성을 최대한 스피커를 통해 전달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나온 저희 회사의 제품 모두는 하나의 정책으로 일관되어 만들어져온 것이죠.
에글스톤과의 관계가 궁금합니다. 또 그가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도 알고 싶군요.
짐 : 저는 1997년에 이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에 에글스톤이 떠났죠. 원래 그는 영화광으로 자신의 영화를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므로 스피커 제작을 통해 영화 제작비를 염출하려고 했죠. 회사를 떠난 후 첼로에서 프로젝트를 맡아 움직였지만, 곧 첼로가 도산하면서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아직까지 저는 그가 어떤 영화든 한 편이라도 만들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대신 새로 스피커 회사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죠.
저도 영화쪽 일을 한 터라, 그의 작품을 보고 싶은데 찾을 수가 없더군요. 아무튼 실질적으로 에글스톤과 개인적으로 친분을 갖거나 설계상의 영향을 받은 부분은 없다고 봐야겠군요.
짐 : 그렇습니다. 또 입사 당시 저는 엔지니어 파트가 아니었으므로, 더욱 이런 일에 관여할 부분이 없었죠. 하긴 그의 머릿속엔 늘 영화가 있었으므로, 저에게 기술적인 영향을 심어줄 겨를도 없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짐 자신에 대해 여쭤봐야겠습니다. 어떤 배경을 갖고 이쪽 회사에 입사해서 현재에 이르렀는지 궁금합니다.
짐 : 저는 멤피스에서 출생했습니다. 어릴 적에 부친이 음악 애호가인데다가 악기상을 했으므로 일찍부터 음악과 친숙한 환경에서 지낼 수 있었습니다.
악기상이라 ... 그렇다면 연주할 수 있는 악기가 하나라도 있을 것 같은데요 ?
짐 : 피아노와 올갠을 조금 칩니다. 주위에서 강하게 권해서 배웠지만, 별 재주가 없는지 도중에 그만뒀습니다. (웃음)
오디오에 대한 부분이 궁금합니다. 최초로 접한 오디오가 뭐였는지 기억합니까?
짐 : 부친이 소유한 아주 오래된 장전축입니다. 울리처라는 회사의 제품으로 상당히 컸습니다. 이것을 컴퍼넌트로 따로 나눠서 새롭게 조립해서 쓴 기억이 납니다. 앰프는 앰프대로 나누고, 턴테이블은 턴테이블대로, 스피커는 스피커대로 …
그럼 본인이 본격적으로 소유하게 된 오디오 시스템은 뭐죠?
짐 : 전 대학에서 두 개의 전공을 했습니다. 하나는 문학이고, 하나는 경영 어카운팅이죠. 물론 문학이 주류로, 많은 소설을 접했습니다. 그러나 취업을 위해선 경영학을 도외시할 수 없었죠. 본격적인 오디오 시스템은 졸업 후에 구하게 됩니다. 소닉 프론티어의 앰프에 같은 소닉 프론티어의 프로세서 3 DAC에 마크 레빈슨 31 트랜스포트 등에다 JBL, KLH와 같은 스피커를 물려서 들었습니다. 스피커는 약간 오래된 제품으로 기억합니다. 이후, 취업을 위해 경영학 전공의 경력을 살려 여러 군데에 오퍼를 냈는데, 이때 에글스톤 웍스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인터뷰를 위해 방문을 했는데, 먼저 공장을 보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클로저를 만들고, 유닛을 만지고, 완제품을 테스팅하는 모습에 그만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이 직장을 선택함으로써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것이죠.
참 흥미롭군요. 대부분의 오디오 설계자들은 모두 어릴 적부터 뭔가를 만지작거린 경험이 있고, 대학에서도 전자 공학을 공부한 것이 일종의 FM이거든요. 그렇다면 이런 배경을 가진 분이 어떻게 해서 스피커 설계에 이르게 되었는지 참 궁금합니다.
짐 : 에글스톤에 있으면서 저는 두 명의 스승(멘토)를 만나게 됩니다. 두 사람 모두 베트남인으로, 전기 엔지니어들입니다. 이치라는 분과 황이라는 분이었는데, 그들에게서 체계적으로 교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개인 지도로 남들이 대학에서 배울 것을 배운 셈이군요.
짐 : 그렇습니다. 이후 에글스톤 웍스의 넘버 9을 필두로 사보이, 아이비, 앤드라 2 등을 설계하면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럼 앤드라 3에 대해 좀 물어보겠습니다. 이전 작품들과 무엇이 달라진 것입니까?
짐 : 우선 저역의 챔버를 늘렸습니다. 높이도 높아졌죠. 8인치 정도 더 커졌다고 보면 됩니다. 전작들의 크로스오버를 보면, 중역대를 바이패스 시키기 때문에 고역과 저역의 연결 부분에 약간의 오버랩이 있었습니다. 그 부분을 개선해서 맑고 명료하게 음이 나올 수 있게 했습니다. 입력 감도도 높여서 89dB에 이르게 된 것도 주요 포인트라 하겠습니다. 물론 유닛도 바뀌고, 프런트 패널의 디자인 역시 다르게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고역에 리본 타입의 트위터를 썼군요. 돔 트위터 대신 이런 타입을 쓴 데엔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짐 : 3년 전 전세계에서 15개 정도의 리본을 모아 테스트한 적이 있습니다. 이론적으로 보면 리본은 돔 타입보다 네 배나 스피드가 빠릅니다. 그러면서 에너지가 있는 제품을 고르다 보니 이번에 채용한 문도르프 제품이 되었습니다. 단, 이것은 방사각이 다른 것들보다 좀 좁습니다. 스위트 스폿 역시 좁아지지만, 성능이 워낙 뛰어나 채용하게 되었습니다.
미드레인지는 어떻습니까? 역시 모렐사의 제품입니까?
짐 : 예. 모렐사의 MW 166이란 모델을 썼는데, 문제는 빨라진 트위터 스피드에 어떻게 맞추는가였습니다. 다행히 모렐에서는 2년 전에 생산 라인을 대폭 개선해서 훨씬 성능이 뛰어난 제품을 내놨습니다. 그러므로 충분히 트위터의 스피드에 맞출 수 있는 유닛이 나온 것이죠. 덧붙여 우퍼는 다인오디오. 30W100X2라는 모델입니다. 내부에 동일한 우퍼가 하나 더 있어서, 아이소배릭 방식으로 움직입니다.
밀폐형으로 스피커를 만들면 장단점이 극명한데, 실제 소리를 들어보면 매우 개방적이고, 시원스런 소리가 나옵니다. 역시 에글스톤 웍스의 노우 하우가 아닐까 짐작됩니다. 참고로 크로스오버 주파수를 볼까요?
짐 : 고역의 커팅 포인트는 처음에는 2.5KHz로 잡았습니다. 그러나 약간 문제가 있어서 미세 조정한 결과 2.25KHz 정도에서 잡았습니다. 위로는 24KHz까지 뻗는데, 어차피 귀로 들을 수 있는 범위가 아니어서 크게 의미를 둘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저역의 경우 여러 가지로 애를 먹었습니다. 미드레인지가 200Hz에서 롤 오프를 시작하기 때문이었죠. 그러다 150에서 75Hz 사이에 포인트를 잡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고심 끝에 75Hz에서 끊었습니다. 저역의 최저 주파수는 18Hz입니다.
버전 3를 보니 무엇보다 앞 부분이 대폭 바뀐 느낌입니다. 알루미늄 패널을 설치했는데, 따로 이유가 있습니까?
짐 : 트위터를 문도르프로 바꾸면서 테스트해보니, 일반적인 형태의 인클로저에 수납할 경우 트위터 주변으로 음이 퍼지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모아줄 필요가 있던 것이죠. 그래서 이렇게 혼처럼 약간의 두께가 있는 패널을 부착하게 된 것입니다. 중역, 저역 역시 이런 혼과 같은 효과를 조금은 볼 거라고 생각합니다.
뒷부분을 보니 스피커 터미널이 바이 와이어링으로 바뀌었군요.
짐 : 네. 이전에는 싱글 와이어링이었는데, 이번에 바꿨습니다. 카다스제를 사용했습니다.
마감은 이 외에 다른 옵션이 있습니까?
짐 : 실버 마감을 제공합니다. 그 외에 한 두 가지 다른 색을 고려중입니다. 도장은 자동차를 도색할 때와 같은 공정으로 통상 5~6회 정도 칠합니다.
현재 공장에 몇 명의 인원이 있습니까?
짐 : 저희 생산 라인에는 총 12명이 종사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세일즈로 두 명이 더 있죠. 이번에 함께 온 존 캘러리는 미국 담당입니다.
확실히 이번 모델은 과거와 다른, 매우 현대적이고, 스피드하며, 뉘앙스가 풍부한 음이 나옵니다. 과거보다 울리기도 훨씬 쉬워졌고요. 정말로 애호가들의 반응이 기대되는 제품이라 생각합니다.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줘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