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케이블 공장 탐방기
그간 참 많은 오디오 메이커를 찾아 다녔던 것 같다. 나라로 치면, 미국, 일본, 중국, 독일,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영국, 이태리 등이 떠오르고, 여행에 따른 각종 에피소드는 일일이 기억하기 힘들 정도다. 그런데 늘 머리 한 구석에는 이런 아쉬움이 있었다. 왜 우리나라는 안될까?
사실 저 먼 노르웨이니 미국 북동부 쪽이니 다니면서 바로 코앞에 있는 한국에 그렇게도 방문할 가치가 있는 업체가 없단 말인가? 갑자기 애국심 운운하고자 하는 말은 아니지만, 뭔가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갈망은 이번에 헤밍웨이를 탐방하면서 어느 정도 달래게 되었다.
헤밍웨이? 아직 낯설게 느끼는 분들도 꽤 될 것이다. 또 케이블 회사라고 하면, 무슨 공방 수준을 생각할 법도 하다. 충분히 이해한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원래 케이블 회사의 경우, 공장 내부를 보여주지 않는다. 만일 보여준다 하더라도 극히 일부분만 공개한다. 왜냐하면 바로 카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잘 아는 외국의 케이블 회사들이 있는데, 탐방 운운하면 그냥 놀러 오라고 웃는 경우도 있다. 그런 세계인 것이다.
물론 이번 헤밍웨이의 탐방도 기업 비밀에 해당하는 것들은 어쩔 수 없이 숨겼다. 그 부분은 아무리 평론가고 프레스라고 해도 절대로 파헤쳐선 안 되는 영역이다. 그러나 이 정도까지 공개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 말하고 싶다. 솔직히 정리하면서 이런 부분까지 다 써도 될까 내 자신이 의아했으니까.
안양 공장 사무실 입구.
헤밍웨이 케이블 제조 및 연구는 논현동 사옥과 안양의 공장, 두군데서 이루어진다.
이번 탐방은 안양에 위치한 시그마 빌딩내에 공장을 탐방한 것이다.
시그마 빌딩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 내리면 입구가 나온다.
"헤밍웨이" 마크가 새겨진 플래그를 통해 회사의 위치가 확인되었다. 참고로 공장은 같은 건물의 2층에 있다.
이번 탐방을 통해 얻은 소득이 있다면, 헤밍웨이의 수준 높은 제조 환경이다. 이것은 단순히 공장의 사이즈가 크다거나, 거창한 기기가 가득하다거나 하는 부분이 아니다. 실제로 많은 하이엔드 오디오 회사들은 규모가 크지 않다. 대부분의 주요 부품은 외부에서 조달하며, 내부에선 어셈블리 및 테스팅 정도를 한다. 그래도 퀄리티 컨트롤(QC)이 잘 되어 있으면, 전세계 어디를 보내도 충분히 실력을 발휘하는 상품이 나온다. 그게 바로 하이엔드인 것이다.
헤밍웨이 안양 공장내부 일부 사진 촬영
헤밍웨이의 경우, 전세계 각지에서 최고의 부품을 공급받아 제작하는 것은 기본이고, 여기에 자체 제작한 각종 단자류의 퀄리티에 놀랐다. 이 부분부터 이례적이다. 또 최초로 선재에 쉴드를 하거나 혹은 여러 개의 선을 함께 엮기 위해 고안된 기기류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시청실은 또 어떤가? 내가 그동안 방문한 숱한 오디오 회사들 중 최고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자타가 공인할 수 있는 기본기를 충분히 갖추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이런 부분은 기사를 통해 하나씩 점검하면서 넘어가기로 하자.
참고로 헤밍웨이의 모태가 되는 시그마 전자는 1993년에 창업했다. 주로 통신 계통의 제조업을 한 곳으로, 여기에서 얻어진 여러 노하우가 헤밍웨이의 공장 운용에 큰 도움이 되었으리라 짐작이 된다. 한편 본격적으로 케이블 제조에 뛰어들어 연구를 시작한 것이 2000년이라고 하니, 지난 13년간 R&D와 각종 연구에 쏟아 부은 자금과 정성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하겠다.
시그마전자 안양사옥 한켠에 마련되어 있는 시청실.
새롭게 개발된 케이블은 물론 완성된 케이블 들도 일일이 이곳 시청실에서 청음테스트를 한다.
시청실에서 테스트 중인 각종 케이블들.
시청실에 비치된 각종 스피커 및 앰프 등. 주로 에어 앰프에 JBL M9500을 비롯, 쿼드 스피커, TDL 등 다양한 형태의 스피커들이 눈에 띈다. 사실 하나의 케이블을 완성하기 위해선 수많은 시스템에 걸어봐야 한다. 여기서 테스팅한 후 통과한 시제품은 다시 정도용 사장댁에서 숱한 매칭에 투입된다. 그것도 모자라 숨은 고수들이 갖고 있는 케이블들과 한판 승부도 심심치 않게 벌인다. 어쨌든 오디오는 매칭이라는 엄청난 변수가 개재하기에 이렇게 실제 걸어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다. 이것은 비단 케이블뿐 아니라, 앰프, 스피커 등 모든 컴포넌트에 해당한다. 이 부분이 일단 탄탄한 것이다.
이제 2층에 내려가 본격 탐방에 임했다. 매우 세부적인 공정들이 많이 있어서 놀랐지만 지면상 대표되는 공정 몇가지만 추려 보았다. 처음 본 것은 케이블에 1차 쉴드를 하는 작업이다. 37개의 얇은 선을 꼬아서 만든 도체에 하얀색 테잎으로 1차 쉴딩을 하는데, 그 과정이 흥미롭다. 도체를 빙글비글 돌려서 자연스럽게 테잎이 감기게 했다.
1차 쉴드 작업.
모델별로 특주된 테프론을 각 케이블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감아주고 있다.
동영상 1. 위의 플레이버튼을 누르면 재생됩니다.
케이블에 쉴드를 감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담아보았다.
아래 보이는 사진은 스피커 케이블을 만들기 위한 기기다. 현재는 5파장 케이블을 만들기 위해 7개의 선재를 꼬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사실 겉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무척이나 세밀한 연산이 투입되어 있다. 제일 중요한 7개의 선을 꼬는 작업과는 별도로 각각의 선들은 그 반대 방향으로 회전한다. 그러면서 일정하게 꼬는 속도를 조절해서 원하는 결과물이 얻어질 때까지 여러 회전 운동이 지속되어야 한다. 실제로는 총 31개의 선을 이런 식으로 꼴 수 있게 제작되었다. 무려 2억 이상의 자금이 투입된 기기란다.
스피커케이블에 꼬임을 주어 헤밍웨이만의 케이블 구조를 만들어주는 스피커케이블 전용 생산기계
선제 하나하나의 꼬임과 전체꼬임을 반대로 해주는 헤밍웨이 스피커케이블 만의 구조를
만들어주는 독특한 구조의 기계로 순수 개발비만 2억이 넘게 들었다고 한다.
케이블을 걸기위한 결선작업도 매우 까다로워서
두 사람이 20분간 작업을 해야 케이블 꼬임을 주기위한 준비를 할 수 있다.
동영상 2. 위의 플레이버튼을 누르면 재생됩니다.
동영상을 보면 이 스피커케이블 제작기계가 얼마나 독특한 원리로 스피커케이블의 꼬임을 주는지 알 수 있다.
2차 쉴드재
2차 쉴드는 헤밍웨이 케이블만의 특허로 자기장 콘트롤을 위해 중간중간에 구멍이 뚫려 있다.
3차 쉴드재
헤밍웨이 케이블은 총 6개의 쉴딩으로 이뤄지는데, 위의 사진은 3차 쉴드재이다.
그 각각에 구멍이 나 있고, 그 위치도 제각기 다르다. 그것은 오랜 연구 끝에 얻어진 결과물이다.
그 이후로 여러단계에 거쳐 철저하게 계산된 공식과 정확한 타공 등을 통해
헤밍웨이만의 고해상도의 자연스로운 음을 내주는 케이블이 완성되어가고 있다.
실딩된 케이블은 발포 처리되어 5차 피복을 이루고, 그 위에 마지막 외피를 씌운다.
그러나 여기서 케이블 제조 공정이 모두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극저온 처리
완성된 케이블은 극저온 처리 기기에 들어간다.
특이한 점은 케이블 전체를 통째로 기기를 넣지 않고, 중간중간 두 부분만 처리한다.
이것도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얻어진 것이다.
극저온 처리는 무조건 케이블을 냉장고에 통째로 넣는다고 좋아지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고 한다.
펀칭기 및 단자 링 삽입기
무슨 현미경처럼 생긴 이 기기는, 단자와 케이블을 연결한 후, 그 주변을 링처럼 감싸는 단계에서 쓰인다.
대충 손으로 감아서 누르는 식으로는 음질에 큰 손상을 줄 수 있으므로, 이렇게 정밀한 기기를 동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일정 부분에 자기장의 영향을 없애는 알루미늄 캡슐을 두 개 삽입하는 것으로 모든 공정이 완료된다.
참고로 스피커 케이블의 경우, 3명의 인원이 꼬박 하루를 바쳐야 겨우 하나를 만들고,
얼티미트 시리즈의 인터 커넥터도 마찬가지. 그 정도로 제조 과정이 지난하고 또 복잡한 것이다.
각종 단자류 사진
놀랍게도 케이블 회사로는 이례적으로 단자를 직접 만든다.
아마 이렇게 단자까지 직접 만드는 하이엔드 메이커는 헤밍웨이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그 단자들을 한군데 모아서 촬영했다.
IEC 단자의 경우 금형만 수천만원의 개발비가 들었다고 한다.
단자류와 부품함 일부 (중요 부품류는 요청에 의해 촬영을 못하였다.)
한쪽 벽에 빼곡한 부품함. 여기에 있는 수많은 부품들은 그간 연구를 하면서 일일이 체크한 것이다.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현재의 케이블이 만들어지는 셈.
완성된 여러 개의 케이블들이 보인다. 모두 꼬임이 다르고, 쓰임새도 다르다.
이렇게 원하는 스펙으로 케이블이 특주되지 않으면, 절대로 헤밍웨이의 음을 낼 수 없다.
각종 계측 장비
제조 전 그리고 제조 후 정확한 계측은 필수가 아닌가.
통신기기 전문회사 답게 매우 다양한 종류의 계측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물론 모두 케이블 연구 및 제조용이다.
MAX 2
약간 독특한 모양의 기기가 있어 찍어보았다.
이것은 완성된 케이블의 내부를 살피는 기기다. 어떻게 배열되었고, 상태는 올바른가 등을 점검할 때 쓴다.
PERKIN ELMER, GeneAmp PCR System 9600
각종 단자를 점검하는 기기. 분자의 배열 구조나 형태를 꼼꼼하게 체크할 때 쓴다.
Genomic Solution
완성된 케이블을 통째로 집어넣어 마치 X-Ray를 찍듯이 살펴볼 수 있는 기기다. 제노믹 솔루션사의 젠택이라는 제품이다.
불량난 케이블 더미
이것은 그간 숱한 시행착오를 거친 결과물이다.
말하자면 원하는 퀄리티가 나오지 않아 불합격한 제품으로,
정식 제품으로 채택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제품들이 만들어졌나 이 더미를 통해 알 수 있다.
불량제품은 커팅기에 의해 모두 절단되어 폐기처분 된다고 한다.
이 종학 (Johnny L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