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의 별처럼 아름다운 스피커 록포트
Rockport Technologies
미국에는 하이엔드 스피커 제조사들이 많다. 전통의 JBL을 비롯해서 윌슨 오디오, 아발론, 틸 등을 지나 최신의 매지코, YG 어쿠스틱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밤잠을 설치게 하는 회사들이 멋지게 은하수를 이루고 있다. 그중 록포트(Rockport)라는 회사는, 그간 쌓아올린 성과와 내용에 비해 국내에서 다소 저평가를 받는 브랜드라 하겠다. 이번 기회에 자세히 이 회사에 대한 소개를 해보겠다.
우선 록포트의 위치를 보면, 동해안의 북쪽 끝, 바로 캐나다 접경 지역에 있는 메인주에 있다. 정확히는 사우스 토마스톤이라는 지역으로, 대서양쪽으로 돌출된 반도인데, 당연히 인구가 적고, 조용하며, 쾌적한 환경을 자랑한다. 겨울에 춥기는 하지만, 오히려 이런 기후의 특성이 한 곳에 앉아 집중해서 연구하고, 테스팅하는 데 적합하지 않은가 생각도 된다. 하긴 많은 나라의 공업 지대가 북부의 추운 곳에 위치해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 록포트사가 위치한 메인주의 사우스 토마스톤 인근의 록포트 도시
여기서 지도를 살피다가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다. 바로 동사의 공장 지역 근처에 록포트라는 도시가 따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런 것으로 미뤄봐 이 회사의 브랜드 명은 아주 심플하게 그 도시의 이름에서 따오지 않았을까 싶다.
록포트가 세간의 주목을 끌게 된 것은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부터 20년도 더 전의 일로, 뜬금 없이 1억이 넘는 시리우스(Sirius)라는 턴테이블을 발표했던 것이다. 당시만 해도 아날로그쪽은 쇠퇴 일로여서, 세계 유수의 턴테이블 회사와 카트리지 메이커들이 도산 지경에 달하고 있었다. 그런데 1억짜리 제품이 나오다니 어디 말이 되는가?
그런데 기적처럼 이 도박은 대성공을 거뒀다. 스테레오파일이 선정한 A 플러스 평점은 기본이고, 나중엔 소니/CBS 방송국의 레퍼런스 시스템에 편입되기에 이른다. 어쨌든 시리우스 3로 진화하면서 한 시대를 상징하는 제품으로 자리잡았는데, 아쉽게도 현재는 생산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 대신 더 멋진 선물이 나왔다. 바로 스피커다.
아니 턴테이블 만들다가 무슨 스피커? 그러나 만만치 않은 만듦새와 성능을 가진 이 제품들은 이내 미국 유수의 메이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고속 성장을 거듭해왔다. 사실 오디오라는 것은, 특히 하이엔드 분야는 전자, 기계 공학은 물론이요 각종 첨단 물리학에 복합 소재 공학까지, 아무튼 R&D가 엄청나서 한 가지 부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턴테이블뿐 아니라 스피커에서 이런 업적을 낸 경우는 여태껏 한번도 없으므로, 자연스럽게 그 주재자인 앤디 페이어(Andy Payor)라는 인물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 록포트사의 주재자인 앤디 페이어(Andy Payor)
대체 앤디는 어떤 사람인가? 우선 눈에 띠는 것은 앤디의 가족 내력이다. 무슨 음악적 재능이 유전이라도 되는지, 이쪽에 관련된 일을 많이 하고 있다. 일단 부친을 보면 클라리넷 연주자로 재즈계에서 이름을 올리고 있고, 모친은 피아노 전공자로 학생을 가르칠 정도라고 한다.
또 앤디의 아내 역시 피아니스트이고, 아들은 테너 색소폰을 분다고 한다. 아마 좀 더 뒤져보면 음악적 소양이 풍부한 인물이 더 나올 것 같다. 당연히 앤디의 몸속에 이런 DNA가 있을 듯 싶고, 그것이 오디오 제작이라는 형태로 자연스럽게 드러났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오디오는 그에게 천직인 것이다.
최근에 정명훈씨가 모 인터뷰에서 흥미로운 말을 했다. 이제 겨우 11개월이 된 손자가 있는데, 베토벤 5번 교향곡이 나오면 “따다라 란!”이라는 테마를 자연스럽게 흥얼거린다는 것이다. 아직 걸음마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의 입에서 이런 멜로디가 나온다는 것은 정말 놀랍지 않은가? 앤디의 경우도 이런 사례에 속한다고 하겠다.
앤디가 오디오계에 들어온 것은 1984년으로, 이때는 페이어 어쿠스틱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당시엔 주로 컨설팅을 많이 해서, MIT, 트랜스페어런트와 같은 케이블 회사부터 웰 템퍼드, 리스폰스 스피커, 아르테미스, 크로스비 오디오 등 턴테이블 및 스피커 관련 회사와 주로 작업했다.
그러다가 1991년에 록포트를 이름을 바꾼 다음 시리우스라는 턴테이블을 내놓은 것은,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턴테이블의 판도 자체를 바꾼 이 제품의 등장은, 향후 1억대 이상의 제품들이 쏟아지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으니, 클리어오디오, 트랜스로터, 컨티늄, 베이시스 등 우리가 아는 굵직굵직한 메이커들이 이쪽 시장에 들어오게 만들었다. 물론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실은 이 정도 물량 투입을 해야 LP의 소리를 극한으로 들을 수 있다는 기준을 마련한 점이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 같다.
바로 이런 기준을 앤디는 스피커에 접목시킨다. 그가 스피커에서 제일 중요시 여기는 것은 인클로저다. 물론 유닛이나 크로스오버 다 중요하지만, 메이커의 노하우는 사실 인클로저에 있다. 이 부분에 대한 그의 생각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만일 스피커의 형태를 나눈다면 두 가지로 요약된다고 본다. 하나는 기타나 바이올린처럼 악기로 생각하는 쪽이다. 소너스 파베르, 탄노이, 하베스 등 많은 회사들이 이런 흐름을 대표한다. 또 하나는 철저하게 소스의 음을 변환하는 도구로 보는 시각이다. 윌슨, B&W, 아발론, 틸 등이 이에 속하고, 록포트도 마찬가지다. 그런 록포트가 본격적으로 스피커를 만든 20년 정도의 기간 동안 제일 중요시한 것이 인클로저인 것이다.
“이상적인 스피커는 드라이버에서 재생되는 음향이 정확히 스피커에 입력되는 신호 그 자체여야 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디스토션으로, 특히 캐비닛의 공진에 유의해야 한다. 그러므로 경도(stiffness)와 댐핑에 신경 써야 한다.”
인클로저의 중요한 요소로 경도와 댐핑을 꼽고 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드라이버의 뒤쪽에서 나오는 음에 문제가 있다. 인클로저를 짜는 첫 번째 이유이기도 하다.
둘째, 드라이버가 제대로 설치되어야 콘에서만 나오는 음을 얻을 수 있다.
셋째, 대역이 아무리 넓어져도 캐비닛의 공진이 발생하면 안된다. 특히 저역에서.
넷째, 댐핑이 좋으면 캐비닛의 공진이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여기서 록포트의 제품군이 크게 두 개의 라인으로 이뤄져 있음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하나는 전통적인 MDF 소재를 사용해서 만든 것들이고, 또 하나는 폴리우레탄을 성형한 쪽이다. 당연히 후자 쪽이 비쌀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MDF를 무시하면 안된다. 그럼 MDF에 대한 앤디의 생각은 어떤가?
“일단 비용이 적게 들고, 가공이 편합니다. 또 자체 댐핑도 좋은 편이죠. 마지막으로 스프레이 코팅을 할 때 편합니다. 반면 공진의 폭이 넓어서 핸들하기가 힘들고, 경도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섹션을 잘 나누고, 안쪽에 보강재를 적절하게 대야하며, 댐핑제를 바르는 것도 중요하다. 즉, 상당히 미세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만져줘야 MDF라는 소재를 잘 살릴 수 있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록포트의 제품들이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이유가 있다. 스타인웨이 & 선즈의 피아노 제작처럼 똑같이 무려 11회에 걸친 코팅 작업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록포트의 공장 내부 사진을 보면, 무슨 첨단 제품을 생산하는 곳처럼 보인다. 일단 기본적인 R&D 분야를 보면 다양한 소재 연구부터 art ED, 3D CAD 모델링, 선형 회로 분석 등이 이뤄지고 있다. 또 여기에 스피커의 구조, 진동, 음향 분석 등이 결합되어, 어느 연구소 못지 않은 방대한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다.
이를 위해 완벽한 리스닝 룸 구축은 필수. 덕분에 무려 10인치 두께의 콘크리트 벽으로 만든 음향실을 따로 건립했고, 그 내부도 다양한 흡음재 및 반사재를 넣어 최적의 음향 조건을 완성했다. 이래서 추구하는 최종 내용은 완벽하게 중립적인 음이다. 왜 중립적이어야 할까? 스피커는 바로 녹음이 행해진 그 곳, 이를테면 공연장이던 스튜디오던 아무튼 그곳에 듣는 이를 데려가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최상의 음질을 가진 스피커로 음악을 듣는다고 하면, 정말 최고의 경지는 눈을 지그시 감았을 때 홀연히 무대가 떠오르고, 연주자가 보여야 한다. 말하자면 공간과 시간 이동을 통해 녹음 당시의 상황으로 가는 것이다. 당연히 중립성은 스피커 메이커가 성취해야할 최종적인 목표인 것이다.
참고로 록포트의 스피커들은 이름이 참 재미있다. 그런데 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는데, 최근에 자료 검색으로 알게 되었다. 모두 별자리와 관계된 것이다.
이를테면 미라의 경우 고래자리에 있는 적색 거성이고, 아퀼리는 독수리자리며, 알테어는 독수리자리에서 가장 빛나는 별이고, 안카는 피닉스자리를 뜻한다. 메인주의 맑은 공기와 무공해 환경을 생각하면 아마도 앤디는 작품을 구상하다가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봤을 터이고, 거기에서 환하게 빛나는 별을 보며 여러 가지 영감을 얻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게 바로 제품명으로 연결되었으리라.
11살에 가라드 턴테이블을 사서 음악에 매료된 이후 지금까지 줄곧 음악과 오디오로 살아온 그에게 스피커라는 분야는 계속 도전할 만한 가치를 지닌 예술품일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토록 완성도가 높고, 공이 많이 드는 제품을 생산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엄청난 양의 제품을 생산하지 않습니다. 특별하게 마케팅을 정해서 강하게 압박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자기 집에서 쓸 제품을 생산하듯 만듭니다. 그래서 최고의 부품과 고성능 유닛, 무공진 캐비닛, 완벽한 크로스오버 설계, 최상의 R&D 등을 투입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시장에서 록포트의 제품은 아무 곳에서 아무 때나 볼 수 없다. 정말 운이 좋아야 찾을 수 있고, 더 운이 좋으면 집에서 쓸 수도 있다. 그럼 왜 앤디 페이어가 평생을 바쳐 스피커 제조에 헌신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고, 감사하는 마음도 들 것이다.
마지막으로 현행 록포트에서 생산하는 제품 라인업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모두 다섯 기종이 올라와 있으며, 알파벳 A로 시작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제일 막내인 알리아(Alya)는 2웨이 톨보이 타입이다. 저렴하게 록포트를 만날 수 있는 제품이다. 그 위로 아트리아(Atria)가 있는데, 본격 3웨이 톨보이로, 이 정도면 어느 가정에서도 무난하게 쓸 수 있는 모델이다.
▲ Alya
▲ Atria
한편 3웨이 구성에 더블 우퍼 사양한 아비어(Avior)부터는 하이엔드 라인에 넣어도 좋지 않을까 싶을 만큼 놀라운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그 위로 알테어(Altair)는 한 술 더 떠서 4웨이 구성에, 흥미롭게도 옆구리에 커다란 우퍼 한 발이 장착되어 있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하이엔드 스피커 회사의 최상급에도 뒤지지 않는 내용을 갖고 있다고 하겠다.
▲ Avior
▲ Altair
마지막으로 짚고 넘어갈 것이 동사의 플래그쉽인 아라키스(Arrakis). 과연 최상급답게 곳곳에 물량 투입과 완벽주의가 돋보인다. 일단 가운데 트위터 챔버를 중심으로 위아래 챔버가 결합, 총 3개의 부분으로 나뉜 점을 들 수 있다. 트위터 주변으로 미드레인지, 미드베이스 유닛을 위 아래로 박아서 일종의 가상동축형을 꾀했다.
▲ Arrakis
또 위 아래 챔버에 각각 15인치 우퍼 한 발씩을 장착함으로서, 정말 놀라운 저역 재현력을 보여준다. 아마 이 정도 사이즈와 스케일을 들려주는 제품은 흔치 않지만, 그에 따른 일정한 크기의 리스닝 룸 확보는 필수다.
아무튼 호주머니 사정에 맞게 다양한 제품군을 라인업하고 있는데, 앞으로 국내 시장에 차례로 상륙하리라 예상된다. 시청회 공지가 뜨면 절대 놓치지 말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