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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는 시저스팰리스 등 유명 호텔들이 모여있는 남북방향의 '스트립' 대로에서 동남쪽으로 걸어서 40분쯤 가면 나오는 '알렉시스 파크' 호텔에서 열렸습니다.

남캘리포니아에서는 일반적으로 볼 수 있지만, 라스베가스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리조트 호텔입니다. 나즈막한 2층짜리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있고 그 중심부로 열대풍 정원과 풀장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천리안 하이파이동에서 '오리맨'아이디로 활약하시는 곽우신님과 함께 숙소인 발리 호텔에서 40분을 걸어 여기까지 찾아올때만 해도 대중성 없는 하이파이를 취미로 삼은 자의 비애를 곱씹었었는데, 막상 들여다보니 이런 호텔이 오디오 쇼를 하기에 아주 좋은 조건을 갖고 있더군요.

방들이 서로 떨어져 있으니 소리간섭이 없고, 전기 사정도 더욱 좋을 것이구요. 수많은 사람들이 들락날락거리는데 , 방문만 열면 바로 바깥이니 공기도 아주 좋아서, 돌아다니는 것에 비해서 피로감이 덜했습니다. 서울에는 이런 호텔이 없으니, 올해 하이파이 쇼에서도 옆방의 음악소리에 신경이 거슬려가며 먼지를 먹는 일이 계속되어야겠죠..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꼬박 돌아다녀도 다 볼 수 없을만큼 많은 수의 업체들이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특징은, 하이파이와 AV의 통합이 대 주제처럼 되어있던 서울 하이파이쇼와 달리, 하이엔드 오디오 전시관에서는 하이엔드 오디오만 집중하고 AV는 별도의 전시관을 사용하고 있었던 점입니다. 제가 들렀던 알렉시스 파크 호텔은 하이엔드 오디오 전문관이었던 관계로, AV겸용 제품을 자주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AV관은 또다시 걸어서 30분쯤 떨어진, 메인 컨벤션센터 부근에 마련되어 있었다던데, 사정상 가보지 못했습니다.

원체 하드웨어에 관한 지식이 부족한데다 시간에 쫓기느라 제대로 보고듣기가 어려웠는데, 그나마 메모를 했던 종이와 업체 브로슈어 일부가 실종되는 사고가 생겼습니다. 이때문에 상당수의 내용이 사진 보여드리고 이게 무슨 회사 뭐였습니다..하는 정도에 그칠수밖에 없는 사정을 양해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소개순서에는 특별한 의미는 없으며, 대략 입구에서 가까운 곳에 부스가 마련돼 있던 곳부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먼저, 벨지움에서 만들어진 '벤처 (Venture)'의 'Reference 1' 앰프입니다. 채널당 20와트를 내는데, 자기네 스피커에 물리고, EAD (Enlightened Audio Design)의 Theater vision P 씨디피를 연결해 소리를 들려주고 있었습니다. 전형적인 진공관 앰프 소리의 느낌이었는데, 소리보다는 시각적인 면이 더 뛰어나보이는 시스템이었습니다. 나중에 다시 언급할 기회가 있겠지만 EAD의 씨어터비젼 P는 DVD와 DVDO, DTS,Dolby 등이 모두 지원되는 유니버설 플레이어입니다. 이 기계를 이용해 시스템을 구성한 부스가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다음은 슬로바키아에서 출전한 JJ 일렉트로닉스입니다.

슬로바키아에서도 하이엔드 오디오를? 하고 의아해하게 되는데, 우선은 디자인이 예술입니다. 원목의 질감을 살린 외장에, 가운데 전면에 꽂힌 두개의 관은 출력미터의 역할을 합니다. 채널당 20와트. US retail price가 페어에 3500불인 모노블럭형입니다.

다 돌고 보니 가격적인 면에서 가장 메리트가 있는 기기중 하나였던 것이 생각납니다. 레베카 피존의 스패니쉬 할렘을 틀어주고 있었는데, 균형이 잘 잡힌 좋은 소리였습니다. 2000년 CES에서는 디자인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슬로바키아에 이어, 에스토니아 (구 소련연방의 일원이었던)에서도 출전했습니다.

'AUDES'라는 회사의 Poseidon 스피커입니다. 뉴저지에 미국지사를 갖고 있다는 것을 보니 미국시장에서는 어느정도 활동을 하는 브랜드인듯 합니다. 이번 CES에서 가장 엽기적인 디자인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월레스와 그로밋 마지막 에피소드에 나오는 터미네이터 불독 '프레스턴'을 생각나게 하는 디자인인데, 소리는 의외로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세련되고 정확한 소리를 내고 있었는데 몸이 덜 풀린 것인지 원래의 한계인지는 몰라도 유연성이 좀 부족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막 문을 나설때 틀어주던 목관악기 협주의 소리가 특히 그랬습니다.

US retail price $ 10,000. 램(Lamm)의 중급 파워앰프에 물려 있었습니다.

제프롤랜드에서는 모델10과 모델12라는 새로운 파워앰프를 선보였습니다.

10은 전원부 분리형이고, 12는 전원분리에 모노블록입니다. 전작들에 비해 슬림해진 외양, 그리고 가운데 사각형이 하나 더 들어간 패널모습이 변화된 디자인의 포인트입니다. 소리도 디자인처럼 더 날렵해졌을까가 궁금했는데, 제프 부스에서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다만 몇몇 부스에서 자기네 앰프로 소리를 내고 있으니 가서 들어보시라는 안내문구만 있었습니다. 이건 패스 랩도 마찬가지였는데, 괜히 어설픈 세팅으로 소리를 내서 제살깎아먹는 격이 되지 않겠다는 심사로 보였습니다.

일부는 무명회사라 건너뛰었고, 프로악 부스에서 모델10을 연결해놓고 있었는데, 매칭의 문제였는지 모르지만 여위고 매가리없는 실망스런 소리였습니다. 이 얘긴 프로악 부스 사진을 소개할때 다시 말씀드리죠.

니르바나에서는 신제품은 아니었지만 자기네 케이블로 도배한 시스템을 들려주고 있었습니다. Wavelength의 300B 싱글과 JMLab의 미니유토피아 스피커였는데, 두께감이 좀 굵은 듯 했지만 온기감 넘치는 전형적 진공관 사운드를 내고 있었습니다. Diana Krall의 노래를 틀고 있었는데, 그녀의 음악에 딱 맞는 소리가 나더군요. 이 부스는 사진을 안찍고 나왔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잊어버려서..)

맥킨토시에서는 MC1201이라는 괴물파워앰프를 내놨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파워미터가 1200와트까지는 큰 숫자이고, 잘 안보이는 작은 수치로는 4800까지 표시돼 있습니다.

랙에 올려놓기는 몇가지 AV앰프도 소개해 놓고 있었는데 소리를 들어볼수는 없었고, 여기에 XRT-290 스피커를 물려놓고 있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그냥 라디오소리와 비슷했습니다. 풍성하기만 할뿐 고역은 답답하고...

근처 방에서는 웨스턴 일렉트릭이 WE 91c 라는 만6천불짜리 모노블럭 앰프를 선보이고 있었습니다. 소니 SCD1에 스피커는 ALON이라는 제품이었는데, 매킨토시 방보다 더한 라디오소리가 나더군요.

빈티지를 하는 분들로 보이는 한국분들이 몇분 들어와 관심을 보이셨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현대 하이엔드 오디오가 추구하는 소리와는 가는길이 완전히 달라 보였습니다.

NOVA라는 메이커에서는 금속제 인클로저를 쓴 액티브 스피커를 페어에 만5천불로 내놨습니다. 깔끔하고 정밀한 소리가 나긴 했는데, 과연 그 돈을 내고 쓸만큼 훌륭한 소리인지, 디자인도 돈값을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가 일었습니다.

나그라 전시실에서는 '역시 구관이 명관'이라는 찬탄을 하게 됐습니다.

VPA 파워, PL-P프리, 와트퍼피 6의 조합. 소스는 메리디안 500 트랜스포트에 나그라 D를 컨버터 삼아 물려놓고 있었습니다. 나그라 D는 릴 덱크로 보이는 물건도 달려있는 것으로 보아, 프로용 녹음장비로 생각됐습니다만, 다소 격이 안맞아보이는 메리디안 500의 역량을 백20% 뽑아내고 있었습니다.

풍부한 잔향과 공간감, 공기감, 해상도 등 전체 전시관 중 가장 탁월한 소리를 내 주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음악듣다가 나왔는데, 이때 별생각없이 사진에 담았던 MPA 파워라는 것이 아주 재미있는 물건이더군요.

제원은 class AB. 8옴에서 채널당 250와트, 대역은 5Hz~80kHz로, 나그라의 다른 앰프들과 달리 솔리드 스테이트인데 , 모듈화 설계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이 옵션은 'RCMI- Remote Control/ Multiple Inputs'라는 것입니다. 이걸 달면 4개의 밸런스 라인단 입력을 갖춘 초 하이엔드 인티앰프가 된다는 것이 안내책자의 설명입니다. 이 어찌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있습니까. 소리를 들어볼 수 없었던 것이 유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