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곡의 독일아리아>는 1724년부터 27년 사이에 작곡되었습니다.
그 가사는 바르톨트 하인리히 브로케스(1680-1747)라는 함부르크 사람이 썼습니다. 브로케스는 헨델과 할레 대학 동창이기도 했고, 이것 말고도 헨델 작품의 가사를 여럿 제공한 인물입니다.
지난번에 제가 슈만의 크라이슬레리아나 (머레이 페라이어 연주)에 대해 쓴 글을 혹시 읽으셨던 분이라면,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세계관에 대해 적어놓은 얘기를 기억하실 지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헨델의 <9곡의 독일아리아>는 그 얘기 가운데 18세기 고전주의의 세계관과 관계가 있는 곡들입니다. (바로크 음악가에 웬 고전주의냐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문학사조에서는 17-8세기 영시가 하나의 시대로 분류되어 고전주의로 지칭됩니다.)
가사의 내용을 보면, 전부 신을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이를테면 바하의 칸타타나 수난곡에 나오는 류의 찬양과는 좀 다릅니다.
<9곡의 독일아리아>에서, 신은 자연과 우주에 완벽한 질서를 부여하여 세상을 조화롭고 기쁜 곳으로 만들고, 또 그런 섭리를 통해서 어디서나 자신을 드러내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이른바 '범신론'적 개념의 신이죠.
그래서 이 음반에서 평화로운 곡조의 노래는 "아름다운 자연과 그것을 통해 나타난 신의조화에 대한 찬미"를, 격정적인 곡조의 노래는 "그런 조화를 망각하고 탐욕이나 근심걱정에 시달리는 인간에 대한 경고"를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독일인으로서 영국에서 꽃을 피운 헨델은, 1720년경부터 영국에 상주하고 있었습니다. 이 음반에 실린 <9곡의 독일아리아>는 그가 영국에 정착한 이후에 씌어진 것들입니다. 당시는 헨델이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에 힘을 기울이던 시기였습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이 9곡의 독일 아리아는 독일어 가사로 된 헨델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헨델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즉 어떤 식으로 연주/공연될 것을 염두에 두고 작곡한 것인지가 좀 모호하다고 하는군요.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1920년대에 들어서야 처음 출판되었고, 그전에는 수고의 형태로만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노래들은 비교적 소박하면서도 대가의 작품다운 선율적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당대의 시대적 유행인 듯, 대부분의 곡이 ABA 또는 ABA'의 구조 - 그러니까 첫부분이 곡 말미에 다시 반복되는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르모니아 문디의 2000년 신보인 이 음반에서 노래를 부른 가수는 '도로테아 뢰쉬만'입니다.
비교적 신인입니다. 1995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발에서 니콜라스 아르농쿠르가 지휘한 <피가로의 결혼>에 수잔나 역으로 등장해 성공적으로 데뷔했다고 합니다. 이후 르네 야콥스, 메시아로 유명한 폴 메크리쉬 등의 지휘자들과 자주 무대에 섰다고 하네요.
그래서일까요?
노래를 부르는 느낌이 오페라 가수의 그것입니다. 이를테면, 헤레베헤의 바하 종교음악에 자주 등장하는 아그네스 멜론처럼 아주 청아하고 순수하고 고운 발성이라기 보다는, 다양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큼지막하게 뜨고 노래하는 그런 무대위 모습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멜론의 아주 청아하고 순수하고 고운 발성'과 대조하여 느낌을 적었는데, 오페라에서의 리릭 소프라노와 드라마틱 소프라노 같은 차이를 말씀드린 것이고, 기교적으로도 매우 안정이 되어 있어서 듣기에 전혀 불편하지 않습니다.
이 음반에는 텔레만의 4중주곡 (플룻, 바이올린, 첼로 ,바소콘티누오)도 두 곡 수록되어 있습니다. 텔레만의 시대, 궁정에서 음악이 갖던 중요한 사회적 기능 중 하나는 만찬의 분위기를 교양있게 하는 장식물 역할이었죠. 여기 수록된 텔레만의 4중주곡들은 그런 "식탁음악" 전통의 끝물을 장식하는 곡들이라고 합니다.
텔레만 곡들을 서양 평자들은 바하나 헨델보다 한 급 밑으로 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를 여는 창조성 또는 듣는 이를 끝없이 감탄케 하는 예술적 깊이를 지니고 있지는 못하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그렇긴 해도, 텔레만의 기악곡들은 난해하지 않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습니다.
음반으로 제작할 때 9곡의 아리아를 이어서 녹음하고, 뒤에 텔레만 곡만 한꺼번에 따로 녹음했다면 듣기에 다소 지루했을 듯 한데, 아리아 5곡 뒤에 텔레만 기악4중주 한곡 하는식으로 교차편집해서 그점을 보완한 것도 눈에 띕니다.
별 다섯개 만점에 세개 반을 주고 싶은데, 글을 쓰면서 계속 듣고 있자니 내가 좀 짠가 싶은 아쉬움을 남기는 음반입니다.
이현식.
지난번에 제가 슈만의 크라이슬레리아나 (머레이 페라이어 연주)에 대해 쓴 글을 혹시 읽으셨던 분이라면,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세계관에 대해 적어놓은 얘기를 기억하실 지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헨델의 <9곡의 독일아리아>는 그 얘기 가운데 18세기 고전주의의 세계관과 관계가 있는 곡들입니다. (바로크 음악가에 웬 고전주의냐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문학사조에서는 17-8세기 영시가 하나의 시대로 분류되어 고전주의로 지칭됩니다.)
가사의 내용을 보면, 전부 신을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이를테면 바하의 칸타타나 수난곡에 나오는 류의 찬양과는 좀 다릅니다.
<9곡의 독일아리아>에서, 신은 자연과 우주에 완벽한 질서를 부여하여 세상을 조화롭고 기쁜 곳으로 만들고, 또 그런 섭리를 통해서 어디서나 자신을 드러내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이른바 '범신론'적 개념의 신이죠.
그래서 이 음반에서 평화로운 곡조의 노래는 "아름다운 자연과 그것을 통해 나타난 신의조화에 대한 찬미"를, 격정적인 곡조의 노래는 "그런 조화를 망각하고 탐욕이나 근심걱정에 시달리는 인간에 대한 경고"를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독일인으로서 영국에서 꽃을 피운 헨델은, 1720년경부터 영국에 상주하고 있었습니다. 이 음반에 실린 <9곡의 독일아리아>는 그가 영국에 정착한 이후에 씌어진 것들입니다. 당시는 헨델이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에 힘을 기울이던 시기였습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이 9곡의 독일 아리아는 독일어 가사로 된 헨델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헨델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즉 어떤 식으로 연주/공연될 것을 염두에 두고 작곡한 것인지가 좀 모호하다고 하는군요.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1920년대에 들어서야 처음 출판되었고, 그전에는 수고의 형태로만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노래들은 비교적 소박하면서도 대가의 작품다운 선율적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당대의 시대적 유행인 듯, 대부분의 곡이 ABA 또는 ABA'의 구조 - 그러니까 첫부분이 곡 말미에 다시 반복되는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르모니아 문디의 2000년 신보인 이 음반에서 노래를 부른 가수는 '도로테아 뢰쉬만'입니다.
비교적 신인입니다. 1995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발에서 니콜라스 아르농쿠르가 지휘한 <피가로의 결혼>에 수잔나 역으로 등장해 성공적으로 데뷔했다고 합니다. 이후 르네 야콥스, 메시아로 유명한 폴 메크리쉬 등의 지휘자들과 자주 무대에 섰다고 하네요.
그래서일까요?
노래를 부르는 느낌이 오페라 가수의 그것입니다. 이를테면, 헤레베헤의 바하 종교음악에 자주 등장하는 아그네스 멜론처럼 아주 청아하고 순수하고 고운 발성이라기 보다는, 다양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큼지막하게 뜨고 노래하는 그런 무대위 모습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멜론의 아주 청아하고 순수하고 고운 발성'과 대조하여 느낌을 적었는데, 오페라에서의 리릭 소프라노와 드라마틱 소프라노 같은 차이를 말씀드린 것이고, 기교적으로도 매우 안정이 되어 있어서 듣기에 전혀 불편하지 않습니다.
이 음반에는 텔레만의 4중주곡 (플룻, 바이올린, 첼로 ,바소콘티누오)도 두 곡 수록되어 있습니다. 텔레만의 시대, 궁정에서 음악이 갖던 중요한 사회적 기능 중 하나는 만찬의 분위기를 교양있게 하는 장식물 역할이었죠. 여기 수록된 텔레만의 4중주곡들은 그런 "식탁음악" 전통의 끝물을 장식하는 곡들이라고 합니다.
텔레만 곡들을 서양 평자들은 바하나 헨델보다 한 급 밑으로 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를 여는 창조성 또는 듣는 이를 끝없이 감탄케 하는 예술적 깊이를 지니고 있지는 못하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그렇긴 해도, 텔레만의 기악곡들은 난해하지 않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습니다.
음반으로 제작할 때 9곡의 아리아를 이어서 녹음하고, 뒤에 텔레만 곡만 한꺼번에 따로 녹음했다면 듣기에 다소 지루했을 듯 한데, 아리아 5곡 뒤에 텔레만 기악4중주 한곡 하는식으로 교차편집해서 그점을 보완한 것도 눈에 띕니다.
별 다섯개 만점에 세개 반을 주고 싶은데, 글을 쓰면서 계속 듣고 있자니 내가 좀 짠가 싶은 아쉬움을 남기는 음반입니다.
이현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