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거인과 공룡의 만남
그룹의 연륜이 쌓여가면서 언젠가부터 심포닉한 분위기의 사운드로 이끌어가는 듯하더니 기어이 이번에 일(?)을 내고말았다. 하지만, 작년에 통독 10주년을 기념해서 열린 행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게 이미 복선이었음을 이제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로스트로포비치가 첼리스트만 160명을 데려다가 연주한 '윈드 오브 체인지'는 팝부문에서 통독의 분위기를 대별하는 명 크로스오버 넘버이다.
베를린 필하모니에 대해서 설명을 한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보이며,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최고의 클래식악단이라는 말로 요약한다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게르만족의 후예임을 자부하는 클래식과 록의 대표선수들이 만나서 펼친 한마당은 정말 '경기 어떠하니잇고' - 그 광경만으로도 과연 볼만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스콜피온스에게는 훌륭한 제안이었을 지 모르지만, 베를린 필의 입장에서는 대단한 모험이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컨셉의 크로스오버의 출현은 향후 세계음악시장의 진행방향을 언뜻 짚어보게 만드는 사건들이라고 본다. 역시 작년에 메탈리카가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 협연한 앨범에서 이미 그 서막이 올랐다고 보며, '뭉쳐야 산다'는 음악계의 적자생존의 철학이 투영되어 있어 목하 치열한 세계음악시장의 한 단면을 보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 드는 클래식 팬들도 있으리라 본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스콜피온스라는 밴드의 매력을 한번 만끽해보시라. '라이브에서도 원작의 스코어는 존중되어야 한다'. 마치 토스카니니와 같은 연주철학을 가진 록밴드들이 몇 있는데, 미국의 이글스와 유럽의 스콜피온스가 그 대표적인 밴드이다. 아울러 그룹의 사운드가 세월이 지났음에도 변치않는다는 점 또한 공통적인 특징이다.
이번 앨범 '모멘트 오브 글로리'는 스콜피온스를 대표하는 히트넘버 8트랙외에 2곡의 신곡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앨범타이틀곡인 '모멘트 오브 글로리'는 2000년 엑스포 주제가이다. 히트넘버로 선정된 곡들을 보면, 중기 최고걸작으로 평가받는 '록 유 라이크 어 허리케인'을 필두로 해서 그들을 세계적인 밴드로 부상시킨 최신작 '윈드 오브 체인지'와 '센드 미 언 앤젤' 그리고 동양권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얻은 발라드 '스틸 러빙 유',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스콜피온스적인 곡으로 평가하는 '빅 시티 나잇' 등 친숙한 곡들이 베를린 필의 오케스트레이션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되살아나고 있다.
무엇보다 스콜피온스의 팬들에게 가장 환영받을 앨범이고, 그 다음으로 실험적인 일단을 지켜보고싶은 베를린 필의 팬들, 그리고 크로스오버음악 매니아들 모두에게 재미있는 앨범이다. 한가지, 이 앨범의 녹음은 스콜피온스쪽이 아니라 베를린 필에 기준하고 있음 또한 장점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