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6번 비창은 표제음악적 성격이 강한 곡이라고들 합니다. 곡 전체에 물씬 풍기는 '죽음'의 분위기. "Pathetique"라는 우수에 찬 제목...
"Pathetique"라는 제목을 붙인 사람은 차이코프스키 자신이었지만 , 정작 그는 초연당시 이 제목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던 모양입니다. 1893년 10월의 초연당시 청중에게 배포된 연주회 프로그램에는 그냥 "교향곡 6번"이라고만 돼 있었다지요.
그렇지만 공연장에 있던 림스키 코르사코프가 중간 휴식때 차이코프스키를 찾아가 혹시 이거 표제 있는 곡 아니냐고 물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이 곡은 죽음을 앞둔 이의 인생 정리같은 느낌이 강합니다. 스스로의 지휘에 의한 초연 9일 뒤 갑작스레 찾아온 죽음 역시 이 곡의 그런 성격을 더욱 짙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초연은 1893년이지만 차이코프스키가 6번 교향곡의 작곡을 생각하게 된 것은 5번 교향곡 완성 다음해인 1889년.
이 곡의 첫 스케치는 1891년 미국 연주여행 과정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는 "인생(LIFE)"라는 제목으로 주제와 표제를 상정했고 몇차례 작업과 중단을 거듭하다, 1893년 봄에 이르러 곡의 틀을 완성하게 됩니다.
본인이 초기에 남긴 한 메모는 이렇게 돼 있다고 합니다.
"이 교향곡 계획의 궁극적 본질은 '삶'이다. 첫번째 파트는 충동적이고 확신에 차 있으며, 활동에 대한 갈망이 가득한 것으로 한다. 짧아야 한다.(피날레는 죽음- 붕괴의 결과이다.)
두번째 파트는 사랑이다. 세번째는 실망 : 네번째는 죽어가는 것으로 끝맺는다 (역시 짧게)."
지금 남아있는 3악장이 마지막 삶의 투지를 불태워 올리는 듯한 강렬함을 담고 있는 점을 생각하면, "인생"을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에 대한 차이코프스키의 플롯은 여러차례 변화를 겪었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6번 교향곡은 차이코프스키 자신의 인생고백적 성격이 강하고, 다소 감상적이며 대중적 정서표현이 진한 차이코프스키의 특성이 어느 작품보다도 뚜렷한 곡입니다.
이때문에 버나드 쇼는 6번교향곡의 런던 초연을 리뷰하면서 "별것도 아닌 것에 대해 비극적이고 낭만적이며 중대하게 취급하는 바이런적 성향이 강하다"고 말했다지요.
독설적이긴 하지만 차이코프스키의 성향을 잘 간파한 이런 언급으로 보아서도, 6번 교향곡의 주요 해석 포인트 중 하나는, 진폭이 큰 비장감과 환희 같은 감정들을 얼마나 집중력있게 포효하는 듯한 음향으로 쏟아내느냐가 될 것입니다.
90년대 필립스의 관현악 스타인 러시아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이런 점에서 볼때, '비극적이고 낭만적인' 이 곡의 성격을 아주 출중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연주를 맡은 상 뻬쩨르부르그 키로프 오케스트라의 역량입니다.
관현악 전문 교향악단이 아니라 오케스트라/발레 반주용 악단의 성격이 강한 키로프 오케스트라는, 세련되게 조율되어 있으면서도 포효할때는 거침없이 모든 것을 토해내며 '러시아적 사운드'를 유감없이 선보입니다.
특히 스케르초와 행진곡을 결합시킨 듯한 3악장에서 뿜어대는 금관의 폭발적인 사운드는 근래에 보기드문 호연이 아닌가 합니다. 다른 명연주 음반에 비해 트럼펫보다 조금 음역대가 낮은 트롬본이나 튜바 등이 더 활약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느낌은 드는데, 그게 감점요인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파워감을 더하고 있다는 게 제 느낌입니다.
게르기예프 지휘의 키로프 오케스트라가 므라빈스키 / 레닌그라드필이 극한까지 연마한 러시아 사운드의 적통을 잇고 있다는 호평이 나올만 합니다.
녹음도 훌륭해서 각 악기군의 위치가 잘 살아나고 있는 것은 물론, 최근 녹음 답지 않게 악기들의 음색이 농밀한데, 레코딩 엔지니어 본인이 직접 디자인한 진공관 장비를 써서 녹음했다고 합니다.
커플링된 '환상서곡 : 로미오와 줄리엣'은 듣고 있으면 연극의 주요 장면이 눈앞에 선하게 떠오르는 재미있는 작품이지요. 두 집안의 반목, 비극을 부르는 칼부림, 두 연인의 사랑, 그리고 죽음이 드라마틱하게 전개되는 이 작품은 아마도 6번 교향곡보다도 더욱 키로프 오케스트라의 본령에 속하는 곡일 것입니다.
극적인 박진감과 가슴을 저미는 비장미가 함께하는 매혹적인 연주가 일품입니다.
이 음반에는 별 4개 반을 주고 싶습니다.
게르기에프 / 키로프 오케스트라의 차이코프스키 5번은 이보다 더 완성도 높은 음반이라는 말이 있던데, 구하기가 쉽지 않은 듯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음반을 들은 뒤, 프로코피에프 <로미오와 쥴리엣> 전곡 2장짜리 (역시 게르기에프 /키로프 오케스트라/ 필립스)를 추가로 구입했습니다.
이현식.
그렇지만 공연장에 있던 림스키 코르사코프가 중간 휴식때 차이코프스키를 찾아가 혹시 이거 표제 있는 곡 아니냐고 물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이 곡은 죽음을 앞둔 이의 인생 정리같은 느낌이 강합니다. 스스로의 지휘에 의한 초연 9일 뒤 갑작스레 찾아온 죽음 역시 이 곡의 그런 성격을 더욱 짙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초연은 1893년이지만 차이코프스키가 6번 교향곡의 작곡을 생각하게 된 것은 5번 교향곡 완성 다음해인 1889년.
이 곡의 첫 스케치는 1891년 미국 연주여행 과정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는 "인생(LIFE)"라는 제목으로 주제와 표제를 상정했고 몇차례 작업과 중단을 거듭하다, 1893년 봄에 이르러 곡의 틀을 완성하게 됩니다.
본인이 초기에 남긴 한 메모는 이렇게 돼 있다고 합니다.
"이 교향곡 계획의 궁극적 본질은 '삶'이다. 첫번째 파트는 충동적이고 확신에 차 있으며, 활동에 대한 갈망이 가득한 것으로 한다. 짧아야 한다.(피날레는 죽음- 붕괴의 결과이다.)
두번째 파트는 사랑이다. 세번째는 실망 : 네번째는 죽어가는 것으로 끝맺는다 (역시 짧게)."
지금 남아있는 3악장이 마지막 삶의 투지를 불태워 올리는 듯한 강렬함을 담고 있는 점을 생각하면, "인생"을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에 대한 차이코프스키의 플롯은 여러차례 변화를 겪었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6번 교향곡은 차이코프스키 자신의 인생고백적 성격이 강하고, 다소 감상적이며 대중적 정서표현이 진한 차이코프스키의 특성이 어느 작품보다도 뚜렷한 곡입니다.
이때문에 버나드 쇼는 6번교향곡의 런던 초연을 리뷰하면서 "별것도 아닌 것에 대해 비극적이고 낭만적이며 중대하게 취급하는 바이런적 성향이 강하다"고 말했다지요.
독설적이긴 하지만 차이코프스키의 성향을 잘 간파한 이런 언급으로 보아서도, 6번 교향곡의 주요 해석 포인트 중 하나는, 진폭이 큰 비장감과 환희 같은 감정들을 얼마나 집중력있게 포효하는 듯한 음향으로 쏟아내느냐가 될 것입니다.
90년대 필립스의 관현악 스타인 러시아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이런 점에서 볼때, '비극적이고 낭만적인' 이 곡의 성격을 아주 출중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연주를 맡은 상 뻬쩨르부르그 키로프 오케스트라의 역량입니다.
관현악 전문 교향악단이 아니라 오케스트라/발레 반주용 악단의 성격이 강한 키로프 오케스트라는, 세련되게 조율되어 있으면서도 포효할때는 거침없이 모든 것을 토해내며 '러시아적 사운드'를 유감없이 선보입니다.
특히 스케르초와 행진곡을 결합시킨 듯한 3악장에서 뿜어대는 금관의 폭발적인 사운드는 근래에 보기드문 호연이 아닌가 합니다. 다른 명연주 음반에 비해 트럼펫보다 조금 음역대가 낮은 트롬본이나 튜바 등이 더 활약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느낌은 드는데, 그게 감점요인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파워감을 더하고 있다는 게 제 느낌입니다.
게르기예프 지휘의 키로프 오케스트라가 므라빈스키 / 레닌그라드필이 극한까지 연마한 러시아 사운드의 적통을 잇고 있다는 호평이 나올만 합니다.
녹음도 훌륭해서 각 악기군의 위치가 잘 살아나고 있는 것은 물론, 최근 녹음 답지 않게 악기들의 음색이 농밀한데, 레코딩 엔지니어 본인이 직접 디자인한 진공관 장비를 써서 녹음했다고 합니다.
커플링된 '환상서곡 : 로미오와 줄리엣'은 듣고 있으면 연극의 주요 장면이 눈앞에 선하게 떠오르는 재미있는 작품이지요. 두 집안의 반목, 비극을 부르는 칼부림, 두 연인의 사랑, 그리고 죽음이 드라마틱하게 전개되는 이 작품은 아마도 6번 교향곡보다도 더욱 키로프 오케스트라의 본령에 속하는 곡일 것입니다.
극적인 박진감과 가슴을 저미는 비장미가 함께하는 매혹적인 연주가 일품입니다.
이 음반에는 별 4개 반을 주고 싶습니다.
게르기에프 / 키로프 오케스트라의 차이코프스키 5번은 이보다 더 완성도 높은 음반이라는 말이 있던데, 구하기가 쉽지 않은 듯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음반을 들은 뒤, 프로코피에프 <로미오와 쥴리엣> 전곡 2장짜리 (역시 게르기에프 /키로프 오케스트라/ 필립스)를 추가로 구입했습니다.
이현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