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VD] 와호장룡 (臥虎藏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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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계 감독으로 헐리우드에서 성공을 거둔 사람을 들자면 오우삼과 이안을 들 수 있을 겁니다. 오우삼 감독이 자신의 장기인 액션 영화를 줄곧 만들어 내는데 반해서 이안 감독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다양한 장르에 담아 내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의외로 중국대륙을 무대로 하는 무협영화를 내놓음으로써 헐리우드에서는 다소 낯선 시도를 하였는데 일단 그의 실험은 성공적인 것으로 보여집니다. (실제로 『인생은 아름다워』가 가지고 있는 외국영화 관객 동원 기록을 깨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이 시간에는 미국보다 먼저 국내에 소개된 『와호장룡』을 간단하게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제품정보

제작사 : 콜롬비아
화면 : 2.35:1 아나몰픽
음향 : 만다린어 DD 5.1, 북경어 DD 서라운드, 태국어 DD 서라운드, 영어 DD 5.1
자막 : 한글, 영어, 태국어, 중국어
디스크 : 단면 더블레이어
제작년도 : 2000년
DVD발행년도 : 2000년
상영시간 : 119분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지역코드 : 3번
감독 : 리안
출연 : 주윤발, 양자경, 장즈이, 장진 등
영상 및 음향

영상은 최근의 작품치고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일부 스튜디오와 야외촬영 장면에서 뿌연 막같은 것이 끼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들고 일부 장면이기는 하지만 초반의 몇 장면은 한 십년쯤 된 필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선명하지 못한 화면을 보여줍니다. 물론 그 외에 대나무 숲에서의 결투장면이나 야간을 배경으로한 화면 등에서 나름대로 흠잡을 데 없는 화면을 보여주고 있고 전체적으로 판단해 봤을 때에도 크게 시청에 지장을 줄 만한 화질을 아니지만 디지털적인 화질이라고 하기에는 매우 미흡하다고 판단됩니다. (필자의 무지 탓에 일부로 이런 효과를 준 것일지도 모릅니다. 작년에 만든 영화이고 콜롬비아에서 출시된 것을 감안한다면 성의부족으로 이런 영상이 나왔을 가능성은 사실 적습니다.) 평가를 하자면 5점 만점에 3.5점을 주고 싶습니다.

음향은 비교적 만족스럽지만 영화가 보여지는 동안 들려지는 음향효과가 그리 특출 나지는 않습니다. 채널분리는 확실하게 이루어져 있고 과장되지 않은 음향이 자연스럽습니다. 청명검을 뺄 때의 울림이 청아하게 들리지만 울림의 깊이는 조금 아쉽다고 하겠습니다. 우퍼의 이용빈도가 조금 떨어지고 입체적인 음향효과가 빛을 발하지 못하는 점도 감점 요인이 되겠습니다. 평가를 하자면 5점 만점에 3.5점을 주고 싶습니다.
영화적 완성도

이안 감독은 중원을 배경으로 한 무협영화를 완성했지만 영화의 구도는 기존의 무협영화와 크게 다릅니다. 영화는 뚜렷한 선악구조를 보여주지 않고 인물들의 심리상태를 쫓아 들어갑니다. 그들은 때로 칼을 휘두르고 상대방의 목숨을 노리지만 그러한 무술은 영화의 중심에서 비켜나 있고 그 검법도 그리 화려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기존의 화려한 홍콩 무협영화에 길들여진 관객들에게 영화는 낯설고 지루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청나라 말기를 배경으로 강호의 절대고수 이목백(주윤발)과 그의 사매 수련(양자경) 그리고 귀족의 딸로 태어나 중원의 자유를 갈구하는 소룡(장즈이)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중심인물입니다. (극장에서는 이목백을 이무바이로 번역했지만 이 글에서는 DVD에서의 번역과 같이 모든 이름을 한문으로 통일했습니다. 단 출연자의 실제이름 중 주윤발과 양자경이 한문이름으로 너무나도 깊게 각인되어 있는 데 반해 장즈이는 이 중국식 이름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기에 그냥 장즈이라고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목백은 무당파의 계승자로서 자신의 스승을 살해 한 푸른여우에 대한 복수를 필생의 사명으로 삼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푸른여우는 세상으로부터 종적을 감춘지 오래고 그는 어느덧 중원의 덧없음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지녀 온 무당파의 보검 청명검을 버림으로써 자신의 평생을 지탱해 온 무술과 강호로부터 떠나려 합니다.

수련은 이목백의 무술동지로써 쌍검의 고수이고 강호의 생리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강한 여성입니다. 그는 사형 이목백을 사모하지만 이목백의 친구이자 무술동지였던, 그리고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옛 연인에 대한 정 때문에 쉽게 이목백에게 다가가지 못합니다.

소룡은 고위 관리의 딸로 태어나 잠시 후면 정략결혼에 의해 혼인을 해야 할 운명에 처해 있지만 그녀의 관심은 양가집 규수로서의 생활이라기 보다는 자유로운 협객으로서의 삶입니다. 게다가 그녀는 타고난 무예의 기질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이목백의 원수인 푸른여우로부터 무술을 사사받아 이미 그 경지가 스승을 뛰어넘은 재기어린 여인입니다.

이 세 사람의 인연은 영화 초반 이목백이 버리려 하는 청명검으로부터 맺어 집니다.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후 이목백이 버리려 하는 청명검을 소룡은 도둑질합니다. 청명검을 버림으로써 강호의 모든 번뇌에서 벗어나려는 이목백의 의도는 청명검을 통해 강호의 자유를 얻으려 하는 소룡의 의도에 의해 깨어집니다. 수련은 사라진 청명검의 행방이 소룡에게 향해 있음을 직감하지만 쉽사리 그녀에게 다가가지 못합니다.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소룡의 검에 대한 집착은 자신의 삶에 대한 그녀의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영화의 중반에 사막에서 만나는 연인 소호(장진)는 빗에 대한 그녀의 집착에 의해 맺어지는 인연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결정되는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자신의 무술에 대한 재능과 청명검의 소유로 강호에서의 자유로운 삶을 꿈꿉니다.

이목백은 철없는 소룡의 치기 어린 행동에서 그녀의 순수함을 읽고 자신의 후계자로 그녀를 택합니다. 대나무 숲에서 펼쳐지는 이목백과 소룡의 대결은 두 사람의 위치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이목백은 자신을 잊고 모든 것을 버릴 때 참된 자유가 가능할 것임을 소룡에게 알려줍니다. 하지만 소룡은 이목백의 선문답 같은 설교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그를 꺾을 생각만을 하고 있습니다. 한 손은 뒷짐을 지고 한 손만으로 싸우는 이목백은 휘어지는 대나무 위에서도 자유롭습니다. 하지만 소룡은 줄곧 자신의 중심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지기만 할 뿐입니다. 자유로운 절대 경지에 오른 이목백과 상대방을 꺾을 욕심에 사로잡혀 무예의 기교만을 부리고 있는 소룡의 모습은 불안정한 대나무 위에서 완벽하게 차이를 드러냅니다.

그렇다면 영화는 이러한 두 사람의 모습 속에서 무엇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일까요 ?

영화는 무협물이라는 겉모습에도 불구하고 시종 일관 한편의 시와 같은 화면을 선사합니다. 이목백이 보여주는 초월의 경지는 현실과는 상관없는 고승의 선문답처럼 들리고 소룡의 감정변화는 너무 거칠어서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영화의 중간에 삽입되는 소호와 소룡의 만남은 마치 다른 영화 한편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부자연스럽고 기실 소호의 영화속 역할도 자유에 대한 소룡의 갈망을 일으키는 촉매제 역할을 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게다가 영화 속에서 고통스럽게(?) 보여지는 와이어를 이용한 공중부양은 이제 우리에게는 너무나 낡은 유물이 아닙니까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많은 영화애호가들에게 호평을 받는 이유는(심지어 타임지는 이 영화를 올해의 영화로 선정했으며 골든글러브는 감독상과 외국어영화상을 이안에게 수여했는데...) 감독이 보여주려는 영원한 자유에 대한 의지가 극명하게 표출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 우리는 사랑하는 소호를 옆에 두고 전설 속의 소년처럼 끝없이 추락하는 소룡의 모습에서 영원한 자유를 얻으려 하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녀가 그러한 추락을 통해 영원한 자유를 얻게 되는가의 여부는 관객의 몫으로 남겠지만 치열한 생존경쟁에 허욱적대는 현대인들의 삶 속에서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듯한 이목백과 소룡의 모습은 묘한 대리만족을 선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속세로부터 떠나려 하지만 쉽게 떠날 수 없는 이목백과 그를 통해 참된 자유의 경지를 어렴풋이 깨닫는 소룡의 모습에서 우리는 어느 정도 자유에 대한 동경을 스스로 얻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심연 속으로 사라지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평가를 하자면 5점 만점에 3.5점을 주고 싶습니다.
나가며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로는 이 영화는 좀 과대 평가된 면이 없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특히 소룡의 감정변화를 잡아내는 영화속 장면들은 매우 어색해서 그녀가 귀족으로서의 자신의 운명을 버리고 스스로 협객으로서의 생을 개척하려는 참된 의지가 과연 있었는지 없었는지 확실치 않고 자신의 무공을 함부로 사용하는 심리상태도 자연스럽게 설명되지 않습니다. 특히나 미향에서 깨어난 그녀는 죽어 가는 이목백의 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자유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일까요 ?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안이 보여주는 강호의 세계는 기존의 것과는 차별화 되어 있고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자유로운 경지는 우리에게 환상을 심어 줍니다. 그의 화면은 홍콩의 무협스타일이나 헐리우드의 스타일과도 일정부분 거리를 둠으로써 자신만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선물을 관객들에게 선사하는 미덕을 보여줍니다.

이제 자신의 삶이 수많은 욕심들로 가득 차 있고 이를 위해 발버둥침으로써 수많은 부자유의 굴레에 둘러싸여 있다고 생각되시는 분들이라면 지금 바로 『와호장룡』을 시청하십시오.

- 손을 쥐고 있을 때 그 곳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손을 펼치면 그 곳에 모든 것이 있다.

-llhtml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