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음반은 아마 하이파이 동호인들보다는 일반인들이 더 많이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워낙 방송을 많이 탄 음반이거든요. 그런데 대부분의 방송은 3번곡 "황혼"만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해금과 첼로, 피아노가 나오는 국악'풍'의 곡인데, 들으면 다들 '아하 이거였구나 ' 하실겁니다.
최근 음반시장에 재미있는 기획으로 눈길이 가는 음반을 많이 선보이고 있는 국내음반사 굿 인터내셔널이 기획제작한 이 음반의 주인공은 해금과 첼로입니다. 음악의 컨셉은 '옹헤야'의 재즈편곡 등으로 잘 알려진 독일계 재즈그룹 살타 첼로가 맡았습니다.
워낙 3번곡만 집중적으로 틀어주면서 팔다보니 전곡이 다 그런 분위기일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동서양이 아주 재미있게 어우러진 한장의 좋은 '앨범'으로, 맛깔스런 한 코스의 퓨전요리를 먹는 듯 합니다.
트랙별로 살펴보죠.
1번트랙은 첼로와 쳄발로가 나옵니다. 라임의 산뜻함을 담고 있습니다.
2번트랙은 첼로와 피아노입니다. 라틴풍 '사랑의 슬픔', 가볍게 정제된 사랑의 슬픔입니다. 피아노이긴 한데..음색이 클래식용 스타인웨이류가 아니고 팝에 쓰는 업라이트 피아노같은 느낌을 줍니다.
위에서도 언급한 3번곡 "황혼"입니다. 해금이 고음을, 첼로가 저음을, 피아노가 반주를 수놓는 트리오구성입니다. 한국정서인데 묘하게 탈색되고 서양화되어, 한국사람에게도 더 편하게 들린다고나 할까요.
서양인이 해석해낸 한국정서라는게 이런 모습을 띠는구나 싶어 재미있기도 하고, 뭣보다 보편화되어 있어 어디 걸리는 구석 없이 술술 넘어가는게 재미있습니다. 한국의 리듬은 빼고 선율만 차용한 셈인데, 해금의 애절함은 역시 첼로보다 한급 위입니다. 애절함이라는 정서의 표현에 국악기는 아주 강력한 도구입니다. 이 음반에 나오는 악기는 아니지만, 아쟁이 그렇고 향피리가 그렇습니다.
4번은 탱고풍의 곡인 "Don't get excited"입니다. 경쾌한 템포로, 오히려 흥분을 바라는 듯한 곡입니다. 아코디언같은 음색의 악기가 등장하는데, 반도네온 (어코디언 비슷하지만 탱고 전용의 아르헨티나 악기. 피아졸라의 음반에 자주 등장)인지 아코디언인지, 아니면 또다른 악기인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5번트랙 'Broken'은 드뷔시의 음화(音畵)를 보는 듯한느낌입니다. 파편화된 소리들로 공감각적 이미지를 형성시키는 실험적 색채의 곡입니다.
6번은 이 음반의 타이틀이기도 한 '바위 돌 그리고 나무'입니다. 역시 다소 어둡고 격동적인 색채의 곡입니다. 첼로 피아노 소프라노의 구성(독일의 오페라 가수 하이케 수잔느 다움)입니다.
국적이 짐작가지 않는 분위기인데 나중에 CD의 설명을 보니 '우리네 아리랑처럼 세계에 널리 알려진 일본민요 황성의 달에 워즈워드의 곡을 붙인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피상적으로조차 일본의 이미지가 떠오르지는 않습니다. 일본인이 들으면 어떨지 모르지만요. 3번과 어떤 의미에서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7번트랙에 이르면 된장냄새가 확 납니다. 귀에 익은 해금의 고음이 들려옵니다. 같은 퓨전이라도 국악인의 퓨전과 독일 재즈인의 퓨전은 이렇게 다르군...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해금연주자인 김영재가 이번 앨범을 위해 헌정했다는 작품으로. 서구적 뉘앙스와 한국적 뉘앙스가 반반 정도 됩니다. 아까의 3번 '황혼'은 글쎄..6대 4로 서구뉘앙스가 더 진하다고 할까요?
8번 '탱고리아'는 제목처럼 탱고'풍'입니다. 추적거리는 가을비를 맞으며 낙엽위를 걷는 느낌입니다. 첼로가 주로 활약합니다.
9번트랙 '탬버린'. 중국풍에 한국풍이 약간 가미된 짜장면같은 느낌의 곡입니다. 첼로 쳄발로와 함께 해금 비슷한 느낌의 악기가 나옵니다. '해금일까 얼후일까?'하는 궁금증이 일어납니다. 해금에 걸고 싶긴 하지만.
이 음반속지 해설에는 '해금 외에 중국의 2현금인 얼후의 소리가 있다. 얼후는 바이올린보다도 풍부하고 따스한 음색을 지닌 중국의 악기. 중후한 첼로와 어울려 신비감을 연출한다.'라고 씌여있는데, 문제는 그게 어느 곡에서 그렇다는 것인지를 알기 어렵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10번.' Dreaming with the Twilight.박명 (薄明).'
크리스티나 로제티의 영시를 가사로 하는 곡입니다. 해금류의 2현악기가 애절한 반주를 하는 가운데 소프라노의 영어노래가 흐릅니다. 그런데도 별로 이질적인 느낌을 받을 수 없다는 게 특이합니다.
그 후로도 딱히 어느나라 것인지 가리기는 어렵지만 귀에 친숙한 느낌의 음악이 계속됩니다. 14번에 이르면 나중에서야 씨디 자켓을 보고 원곡이 모짜르트 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놀라게 됩니다.
'그러고보니 멜로디는 모짜르트야..하지만 음악은 완전히 한국의 드라마 음악인걸. 게다가 해금으로 모짜르트를?' 하는 뒷북을 치게 됩니다.
만일 누군가 해금으로 그냥 모짜르트를 연주하려 들었다면 매우 생경한 느낌을 주었거나 우습게 들리기가 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곡에서는 모짜르트적 정서나 고전음악 특유의 리듬감,화성 이런 것은 전부 포기해 버리고 그냥 모짜르트의 선율적 모티프만 따왔습니다. 이런 과감한 '버리기'로 인해 역설적으로 새로운 퓨전작품의 탄생이 성공적으로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16번 '나나', 17번 '적막' 등으로 가면 이런 분위기가 하나의 틀로 굳어지는 것을 벗어나는 신선한 파격이 느껴집니다. 예전에 리뷰했던 "Russian Soul"씨디에서 아쉬웠던 것도 전체 음반 편집에 있어서의 이런 구성감각 같은 것이었지요.
얼후 이야기에서도 말씀드린 문제이지만, '상세한 설명의 부재'는 다소 아쉬운 점입니다. 해설지에는 Celesta와 Harmonium이 등장한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celesta는 종소리와 같은 소리를 내는 피아노 비슷한 악기이니 어디서 이 소리가 나는지 추정이 되는데, reed organ의 일종이라는 harmonium은 어디서 어떤 식으로 나오는 것인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또, 각각의 곡마다 연주자가 전부 다르다면 몇번곡은 누구누구, 다음곡은 또 누구누구가 어떤 악기를 연주했는지 알 수 있게 표기하는 것은 상식이자 기본자세가 아닐런지요. 멋진 사진으로 표지를 장식하는 것은 그다음의 일이겠지요.
이에 더하여, 96/24포맷으로 만들었다고 광고할 정도면 레코딩엔지니어는 누구고 어떤 장비로 녹음했는지 등을 밝히는 것이 충실한 서비스가 아닐까 합니다만 이 음반에는 그런 정보가 부재합니다.
대개의 국내 음반제작사들이 그렇듯, 음반만드는 자세가 여전히 철저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녹음 자체는 좋은 편입니다. 음색의 선연함이 다소 아쉽긴 하지만, 악기간 공간감이나 앞뒤 단층감이 좋고, 음상도 도톰한 입체로 형성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해금 등 악기의 질감도 잘 묘사돼 있는 편입니다.
오디오 테스트용은 아니지만, 듣는 재미가 있습니다. 퓨전 요리가 주식은 아니지만 가끔 먹으러 가면 기분전환이 되듯, 이 음반도 그런 이유로 자주 손이 갑니다.
별 4개입니다.
이현식 .
.jpg)
트랙별로 살펴보죠.
1번트랙은 첼로와 쳄발로가 나옵니다. 라임의 산뜻함을 담고 있습니다.
2번트랙은 첼로와 피아노입니다. 라틴풍 '사랑의 슬픔', 가볍게 정제된 사랑의 슬픔입니다. 피아노이긴 한데..음색이 클래식용 스타인웨이류가 아니고 팝에 쓰는 업라이트 피아노같은 느낌을 줍니다.
위에서도 언급한 3번곡 "황혼"입니다. 해금이 고음을, 첼로가 저음을, 피아노가 반주를 수놓는 트리오구성입니다. 한국정서인데 묘하게 탈색되고 서양화되어, 한국사람에게도 더 편하게 들린다고나 할까요.
서양인이 해석해낸 한국정서라는게 이런 모습을 띠는구나 싶어 재미있기도 하고, 뭣보다 보편화되어 있어 어디 걸리는 구석 없이 술술 넘어가는게 재미있습니다. 한국의 리듬은 빼고 선율만 차용한 셈인데, 해금의 애절함은 역시 첼로보다 한급 위입니다. 애절함이라는 정서의 표현에 국악기는 아주 강력한 도구입니다. 이 음반에 나오는 악기는 아니지만, 아쟁이 그렇고 향피리가 그렇습니다.
4번은 탱고풍의 곡인 "Don't get excited"입니다. 경쾌한 템포로, 오히려 흥분을 바라는 듯한 곡입니다. 아코디언같은 음색의 악기가 등장하는데, 반도네온 (어코디언 비슷하지만 탱고 전용의 아르헨티나 악기. 피아졸라의 음반에 자주 등장)인지 아코디언인지, 아니면 또다른 악기인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5번트랙 'Broken'은 드뷔시의 음화(音畵)를 보는 듯한느낌입니다. 파편화된 소리들로 공감각적 이미지를 형성시키는 실험적 색채의 곡입니다.
6번은 이 음반의 타이틀이기도 한 '바위 돌 그리고 나무'입니다. 역시 다소 어둡고 격동적인 색채의 곡입니다. 첼로 피아노 소프라노의 구성(독일의 오페라 가수 하이케 수잔느 다움)입니다.
국적이 짐작가지 않는 분위기인데 나중에 CD의 설명을 보니 '우리네 아리랑처럼 세계에 널리 알려진 일본민요 황성의 달에 워즈워드의 곡을 붙인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피상적으로조차 일본의 이미지가 떠오르지는 않습니다. 일본인이 들으면 어떨지 모르지만요. 3번과 어떤 의미에서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7번트랙에 이르면 된장냄새가 확 납니다. 귀에 익은 해금의 고음이 들려옵니다. 같은 퓨전이라도 국악인의 퓨전과 독일 재즈인의 퓨전은 이렇게 다르군...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해금연주자인 김영재가 이번 앨범을 위해 헌정했다는 작품으로. 서구적 뉘앙스와 한국적 뉘앙스가 반반 정도 됩니다. 아까의 3번 '황혼'은 글쎄..6대 4로 서구뉘앙스가 더 진하다고 할까요?
8번 '탱고리아'는 제목처럼 탱고'풍'입니다. 추적거리는 가을비를 맞으며 낙엽위를 걷는 느낌입니다. 첼로가 주로 활약합니다.
9번트랙 '탬버린'. 중국풍에 한국풍이 약간 가미된 짜장면같은 느낌의 곡입니다. 첼로 쳄발로와 함께 해금 비슷한 느낌의 악기가 나옵니다. '해금일까 얼후일까?'하는 궁금증이 일어납니다. 해금에 걸고 싶긴 하지만.
이 음반속지 해설에는 '해금 외에 중국의 2현금인 얼후의 소리가 있다. 얼후는 바이올린보다도 풍부하고 따스한 음색을 지닌 중국의 악기. 중후한 첼로와 어울려 신비감을 연출한다.'라고 씌여있는데, 문제는 그게 어느 곡에서 그렇다는 것인지를 알기 어렵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10번.' Dreaming with the Twilight.박명 (薄明).'
크리스티나 로제티의 영시를 가사로 하는 곡입니다. 해금류의 2현악기가 애절한 반주를 하는 가운데 소프라노의 영어노래가 흐릅니다. 그런데도 별로 이질적인 느낌을 받을 수 없다는 게 특이합니다.
그 후로도 딱히 어느나라 것인지 가리기는 어렵지만 귀에 친숙한 느낌의 음악이 계속됩니다. 14번에 이르면 나중에서야 씨디 자켓을 보고 원곡이 모짜르트 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놀라게 됩니다.
'그러고보니 멜로디는 모짜르트야..하지만 음악은 완전히 한국의 드라마 음악인걸. 게다가 해금으로 모짜르트를?' 하는 뒷북을 치게 됩니다.
만일 누군가 해금으로 그냥 모짜르트를 연주하려 들었다면 매우 생경한 느낌을 주었거나 우습게 들리기가 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곡에서는 모짜르트적 정서나 고전음악 특유의 리듬감,화성 이런 것은 전부 포기해 버리고 그냥 모짜르트의 선율적 모티프만 따왔습니다. 이런 과감한 '버리기'로 인해 역설적으로 새로운 퓨전작품의 탄생이 성공적으로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16번 '나나', 17번 '적막' 등으로 가면 이런 분위기가 하나의 틀로 굳어지는 것을 벗어나는 신선한 파격이 느껴집니다. 예전에 리뷰했던 "Russian Soul"씨디에서 아쉬웠던 것도 전체 음반 편집에 있어서의 이런 구성감각 같은 것이었지요.
얼후 이야기에서도 말씀드린 문제이지만, '상세한 설명의 부재'는 다소 아쉬운 점입니다. 해설지에는 Celesta와 Harmonium이 등장한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celesta는 종소리와 같은 소리를 내는 피아노 비슷한 악기이니 어디서 이 소리가 나는지 추정이 되는데, reed organ의 일종이라는 harmonium은 어디서 어떤 식으로 나오는 것인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또, 각각의 곡마다 연주자가 전부 다르다면 몇번곡은 누구누구, 다음곡은 또 누구누구가 어떤 악기를 연주했는지 알 수 있게 표기하는 것은 상식이자 기본자세가 아닐런지요. 멋진 사진으로 표지를 장식하는 것은 그다음의 일이겠지요.
이에 더하여, 96/24포맷으로 만들었다고 광고할 정도면 레코딩엔지니어는 누구고 어떤 장비로 녹음했는지 등을 밝히는 것이 충실한 서비스가 아닐까 합니다만 이 음반에는 그런 정보가 부재합니다.
대개의 국내 음반제작사들이 그렇듯, 음반만드는 자세가 여전히 철저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녹음 자체는 좋은 편입니다. 음색의 선연함이 다소 아쉽긴 하지만, 악기간 공간감이나 앞뒤 단층감이 좋고, 음상도 도톰한 입체로 형성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해금 등 악기의 질감도 잘 묘사돼 있는 편입니다.
오디오 테스트용은 아니지만, 듣는 재미가 있습니다. 퓨전 요리가 주식은 아니지만 가끔 먹으러 가면 기분전환이 되듯, 이 음반도 그런 이유로 자주 손이 갑니다.
별 4개입니다.
이현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