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VD] 벤허 (Ben-Hur)

홈 > 이매거진 >

20세기에 가장 유명한 영화 열편을 꼽는다면 당당히 한자리를 차지할 것이 분명한 이 50년대 대작은 그러나 놀랍게도 20세기가 지나도록 DVD라는 새로운 매체의 빛을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 의해 아직도 이야기거리로 회자되고 있으며 영화를 보지 못한 사람이라도 전차경주 장면이 압권이라는 사실 정도는 상식으로 알고 있는 이 헐리우드의 간판영화가 2001년 3월 13일에 전세계에 동시 발매되었습니다. 오늘은 국내에서도 다른 지역과 동일한 사양으로 발표가 된 이 작품을 간단하게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제품정보

제작사 : 워너 브로스
화면 : 2.76:1 아나몰픽
음향 : DD 5.1, DD 스테레오
자막 : 한글, 영어, 중국어, 태국어
디스크 : 양면 더블레이어
제작년도 : 1959년
DVD발행년도 : 2001년
상영시간 : 222분
등급 : 12세이상 관람가
지역코드 : 3번
감독 : William Wyler
배우 : Charlton Heston, Stephen Boyd, Hugh Griffith, Haya Harareet, Jack Hawkins 등
영상 및 음향

영상은 제작년도를 감안했을 때 믿기 어려울 정도로 선명한 화면을 보여줍니다. 인물들의 움직임이나 배경에 따른 화질의 저하가 나타나지 않고 어두운 화면에서의 사물에 대한 식별도 명확합니다. 더구나 영화의 원래 사이즈인 2.76:1을 그대로 재현해 냄으로써 -물론 이 때문에 화면의 상당부분을 포기해야 하기는 하지만- 오리지널리티를 최대한 살려낸 점도 마음에 드는 점입니다.(하지만 무슨 일인지 표지에는 2.35:1 아나몰픽으로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물론 순간순간 잡티와 아티팩트가 나타나고 동일한 화면에서 색상의 변화가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등 최근의 작품과 동일한 선명함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제작된 지 40년이 지난 컬러 화질의 디지털 트랜스퍼가 매우 훌륭하게 이루진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평가를 하자면 5점 만점에 3.5점을 주고 싶습니다.

음향은 이 DVD제품이 지니고 있는 몇 가지 실망스러운 사안 중의 하나입니다. 돌비디지털 5.1의 채널분리는 비교적 만족스러워 배경음악이 들려 오는 리어스피커의 음질은 무난한 편입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평균적인 DVD제품들에 비해 음이 다소 낮게 설정되어 있어서 평소보다 볼륨을 조금 높이고 들어야만 하고, 박진감 넘치는 음향은 좀처럼 들려주지 못합니다. 특히 기대했던 전차경주 씬의 경우에는 음향효과에 의한 긴장감을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라서 오디오 분야에 좀더 신경을 써 줬으면 하는 아쉬움을 가지게 됩니다. 평가를 하자면 5점 만점에 2.5점을 주고 싶습니다.
영화적 완성도

팝송을 잘 모르는 사람도 『The Beatles』라는 그룹의 이름은 한번씩 들어봤듯이 영화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와 『벤허(Ben-Hur)』는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만큼 이 영화의 대중적 인지도는 상당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 세시간 삼십여분을 족히 넘어가는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하신 영화팬들은 별로 없습니다. 극장에서 상영한지 꽤 오래된 작품이고 비디오로 빌려 보기도 쉬운 영화가 아닐 뿐 아니라 텔레비젼에서도 이 긴 영화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심야시간에나 편성이 될 것이기 때문에 졸음을 참고 이 작품을 끈질기게 시청하신 분들이 그리 많을 리 없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사실도 굳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만일 DVD로 이 영화를 처음 보신 분이라면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로는 다소 실망이 앞서지 않을까 하는 우려 아닌 우려를 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이 영화는 소문과는 달리 그다지 스펙터클하지도 않고, 스토리라인이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요소도 별로 없으며, 시각효과가 뛰어나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음향효과도 DVD 자체가 그다지 받쳐 주지 않고 있기 때문에 스펙터클의 측면에서는 『글레디에이터(Gladiator)』에 뒤지고, 스토리라인에서는 『매그놀리아(Magnolia)』보다 참신하지 않으며, 시각효과에서는 『인디펜던스데이(Independence day)』와 비교불허이고, 음향효과에서는 『트위스터(Twister)』의 가장 조용한 음향효과보다 못할 듯한 이 영화에서 관객들은 별다른 재미를 느끼기 어려울 것이 분명합니다.

왜 그럴까요 ? 물론 그것은 세월의 무게 때문입니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1959년 당시 이 작품은 제작비에서 새로운 기록을 세웠고 화폐가치를 고려한 실질 제작비에서는 아직도 최고 기록을 가지고 있다는 설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다양한 특수효과 및 음향효과의 측면에서는 현재의 허접한 블록버스터 영화와 비교해 보더라도 몇 차원 뒤질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화끈한 액션과 화려한 볼거리에 치중하는 관객이라고 생각되신다면 절대로 이 작품을 - 영화사의 불후의 대작이라는 말만 믿고서 - 돈주고 사지는 마십시오.

그렇다면 영화의 완성도는 어떨까요.

일단 다양한 시각적 효과는 지금 수준에서 평가했을 때 뛰어나지 않다는 것이지 결코 당시의 수준에서 판단해 봤을 때에도 대단치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지금처럼 컴퓨터 그래픽으로 로마의 거리와 건물들을 손쉽게(?) 완성할 수 있는 시스템이 그 당시에는 없었기 때문에 모두 세트를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해상전투에서의 미니어처도 다소 부실한 티가 나기는 하지만 헛웃음이 나올 정도의 수준은 아닙니다. 아마도 그 당시 영화를 보았던 많은 관객들에게 이 영화가 보여주는 시각적 효과는 지금 우리가 『글레디에이터(Gladiator)』에서 받는 시각적 충격을 훨씬 능가했을 것임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하겠습니다.

필자는 오히려 이 영화가 보여주고 있는 스토리라인이 다소 실망스러웠습니다. 영화는 유대인의 왕자로 태어난 유다 벤허(찰튼 헤스톤)의 몰락과 부활, 그리고 복수를 중심으로 동시대를 살아갔던 예수의 모습들이 간간이 삽입됩니다.

벤허는 자신의 어릴 적 친구였던 로마인 메살라(스테판 보이드)가 호민관으로 부임하자 기쁜 마음에 그를 찾아갑니다. 하지만 어릴 적 우정은 현실적인 신분 및 민족적 문제로 결국 금이 가고 벤허는 어릴적 친구의 모함에 의해 억울한 누명을 쓴 체 함선의 노예로 전락합니다. 3년간 고생을 하던 벤허는 어느 날 우연히 집정관 아리우스(잭 호킨스)의 생명을 구해 준 것을 인연으로 그의 양아들이 되어 화려하게 부활하는데...

자신의 가족을 찾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간 벤허는 메살라에게 가족의 행방을 묻지만, 어머니와 여동생은 감옥에서 나병에 걸린 체 문둥이 계곡으로 가게 되고 벤허는 그들이 죽은 것으로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전차 경주를 통해 메살라에 대한 복수가 벌어집니다.

『글레디에이터(Gladiator)』에서 볼 수 있는 허왕된 복수극이 아니라는 점에서 현실적인 복수극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사건이 단선적이고 별다른 갈등구조가 없어 보는 이의 오금을 저리게 만드는 '재미'가 다소 떨어집니다.

또한 이 작품에는 예수의 탄생과 벤허와의 인연이 꽤 중요한 설정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우리는 동방박사와 예수의 탄생을 보게 되고, 영화의 중반부에 노예로 끌려가는 벤허에게 물을 주는 예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에 나병에 걸린 어머니와 여동생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죽음과 함께 내리는 성스러운 비와 함께, 병이 완치되는 기적을 보게 됩니다.

아마 현대의 헐리우드 영화라면 절대로 예수의 이야기를 스토리라인에 삽입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게다가 제대로 된 복수극을 꾸미고자 한다면 어머니와 딸을 죽이고 벤허의 연인인 에스더(하야 하라릿)와 메살라의 관계에 좀 더 신경을 쓴 뒤 전차경주의 복수를 끝으로 영화를 끝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감독 윌리엄 와일러는 세시간 반이 넘는 긴 시간동안 벤허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사건들을 단선적으로 배치한 뒤 그 사이사이에 예수라는 성경기반의 스토리를 삽입함으로써 21세기를 살아가는 관객들에게는 다소 낯선 영화적 흐름을 보여줍니다.

아마도 이것은 이 영화가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하여 쓰여진 작품이라는 것과 이미 이전에 두 번이나 영화화되었던 작품이라는 것에 그 원인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감독의 의도 역시 예수와 벤허의 만남이라는 사건에 꽤 큰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 이 작품을 보는 관객들에게 벤허와 예수의 만남이라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경험도 아니고, 성경영화가 아닌 바에야 굳이 이러한 설정을 끌어들인 이유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힘듭니다. 특히 그러한 설정이 관객들에게 큰 감흥을 가져다 주지 못하기 때문에 메살라에 대한 복수 이후에 발생하는 사건들은 조금 과장하자면 "왜 지금 내가 이 부분을 보고 있어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들게 할 정도입니다.

물론 이 영화가 매우 뛰어난 작품인 것 만은 분명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이 영화가 제작되었던 시기가 1959년이라는 사실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화면은 그 당시 다른 영화들이 보여주기는 어려운 것들이었으며 이를 통해 이 영화는 헐리우드의 걸작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2001년 이러한 배경을 고려하지 않고 보는 현대의 관객들에게, 빼어난 서사적 구조를 동반하지 못하는 본 작품은, 더 이상 뛰어난 영상미로 가득찬 작품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평가를 하자면 5점만점에 3.5점을 주고 싶습니다.
부록

영화는 많지는 않지만 질적으로 훌륭한 부록을 담고 있습니다.

Feature-Length Audio Commentary by Charlton Heston :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 찰튼 헤스톤의 육성 커멘터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감독은 이미 20년 전에 고인이 됐기에...)
Photo Gallery : 영화와 관련된 소품, 인물 등 몇 가지 사진 자료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Cast/Director Career Highlights : 가장 일반적인 부록인 감독과 배우의 출연작 소개입니다.
Documentary Ben-Hur: The Making of an Epic : DVD 최고의 부록인 제작 다큐멘터리입니다. 벤허와 관련된 일화 -원작, 이전에 제작된 영화- 들... 작품의 구성에 신경을 썼던 부분 등이 자세하게 설명되고 있으며 매우 기쁘게도 한글 자막이 제공되고 있습니다.
Theatrical Trailer : 영화의 극장용 광고입니다.
Screen Tests : 화면조정용 입니다. 다른 배우들이 벤허와 메살라의 연기를 맡고 있습니다.
나가며

이번 DVD의 발매는 여러모로 AV 매니아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한 사건이었지만 종합적으로 평가를 하자면 다소 실망스러운 부분들이 더 많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선 양면 듀얼레이어라는 구조는 여러모로 별다른 장점이 없는 포맷인 듯 합니다. 오히려 Two-Disc Set이 이용상의 편의성으로 보나 여러모로 더 훌륭한(?) 포맷이라고 여겨집니다. 게다가 한편의 영화를 한 사이드에 담지 못하고 영화 시청도중 한번 뒤집어 줘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유쾌하지 못한 경험입니다.

게다가 음성측면에서 이 작품은 여러모로 불만일 수밖에 없습니다. 혹시 몇 년 있다가 스페셜 에디션으로 다시 발매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면서 좀 더 충실한 내용으로 발매가 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피력해 봅니다.

사족 : 가끔 영화에 대한 글을 쓰다가 일반적인 평가와 다른 말을 써 놓으면 좀 고민이 됩니다. 『벤허(Ben-Hur)』에 대한 평가는 일반적으로 우호적이기 때문에, 설사 본 리뷰의 영화관련 이야기에 동의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으시더라도, 이 리뷰는 순전히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이며 많은 우호적 리뷰 중에서 하나의 비판적인 리뷰에 불과하다고 보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llhtml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