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원전연주계의 스타 파비오 비욘디. '사계' '조화와 영감' 등에서 파격과 카리스마로 음악애호가들을 매료시켰던 그의 새로운 면모를 볼 수 있는 실내악 음반이 수입됐습니다.
ARCANA라는 프랑스 레이블에서 수입된 비발디의 맨체스터 소나타 곡집입니다.
( Antonio Vivaldi Suonate a Violino solo, e Basso per il Cembalo
"Manuscrit de Manchester". 91년녹음,92년 발매.(시리얼넘버. AR 750))
비발디의 시대에 맨체스터라는 영국 도시가, 그의 예술적 감흥의 원천이 되었을리 만무합니다. '맨체스터 소나타'라는 이름은, 그 작품의 자필원고가 현재 맨체스터 중앙도서관에 보관되어 있기 때문에 붙은 것입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긴 사연이 있었습니다.
모두 12곡인 이 소나타곡집은 비발디가 자신의 후원자였던 피에트로 오토보니 추기경에게 헌정한 것입니다. 오토보니 추기경은 코렐리와 스카를라티, 헨델에게도 물질적 도움을 주며 음악발전에 공헌한 사람이지만, 씀씀이가 매우 헤펐습니다. 1742년, 빚잔치를 통해 비발디의 소나타곡집은 영국의 여행가 에드워드 홀즈워스에게 넘어갔습니다.
홀즈워스는 친구인 제넨스에게 이 악보를 선물했습니다. 제넨스는 헨델의 '메시아'의 대본을 쓴 사람입니다. 그의 사후 악보는 다시 사촌인 핀치 백작 가문으로 넘어가 잊혀진채 전해져 오다가 20세기초 경매에 나오게 됐습니다.
이때 소나타집을 가져가게 된 사람은 뉴만 플라워라는 헨델 전기작가였습니다. 플라워가 1964년 사망한 뒤 악보는 다른 소장품과 함께 맨체스터 시 도서관에 넘어가 또다시 잊혀졌습니다.
당시 맨체스터 도서관은 헨델 자료수집을 위해 뉴만 플라워의 컬렉션을 인수한 것이었기 때문에, 비발디의 12곡의 소나타는 10년 가까이 지난 1973년에야 음악학자들의 눈에 띄게 되어 '맨체스터 소나타'라는 이름으로 햇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소개해드리는 비욘디의 음반은 맨체스터 소나타를 제대로 녹음한 최초의 음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맨체스터 소나타는 음악사적으로 두가지의 특징을 갖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완숙단계에 이른 바로크 소나타의 형식미를 보여줍니다. 두번째로는 독주악기와 반주의 역할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첫번째 이야기를 먼저 해 보죠. 원래 바로크 소나타에는 교회소나타와 실내소나타라는 두가지 양식이 있었습니다. 교회소나타는 교회에서 주로 연주되었습니다. 대개 4악장 구조인데, 템포가 느림-빠름-느림-빠름으로 배치되며, 각각의 악장은 춤곡이 아니라는 점이 특징입니다. 교회에서 연주된 것이니까 그럴 수 밖에 없었겠지요?
실내소나타는 귀족들의 저택 안에서 연주되던 것으로, 춤곡풍이 아닌 전주곡(preludio)가 하나 먼저 나오고, 그 뒤를 4-5곡의 춤곡이 따라나오게 됩니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조곡 등 기악 조곡(suite)에 맥이 닿아있는 것이 바로 이 양식입니다.
이 두가지를 통합하기 시작한 것은 라 폴리아 등으로 유명한 바로크 바이올린 명인 코렐리였습니다.
1600년대 후반의 대 스타였던 코렐리는, 실내소나타를 교회소나타적 구조에 맞추었습니다. 그러니까 춤곡 악장들을 느림-빠름-느림-빠름의 순서로 배치하는 양식을 만든 것입니다.
코렐리를 거치면서 바로크 소나타의 춤곡 악장들은 '춤'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좀 더 독립적인 음악의 성격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4분의 4박자에 약간 빠른 악장이면서 두개의 부분으로 나뉘어 각각이 반복되는 구조를 갖고 있으면 어느것이나 '알라망드'라고 불리우게 되었습니다. 3박자의 빠른 악장은 다 꾸랑뜨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비발디의 맨체스터 소나타는 이런 소나타 형식의 발전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는 곡입니다. 트랙 리스트들을 보면 각각의 곡은 모두 4악장입니다. 非무곡인 'preludio'를 1악장으로 하고 있고, 그 뒤로 춤곡이 세개씩 이어지는데 템포는 느림-빠름-느림-빠름입니다.
춤곡 이름은 바흐의 조곡들을 통해 이미 익숙하게들 알고 계시는 '알라망드-꾸랑뜨-사라방드-지그-가보뜨'의 이탈리아어 버전입니다. 기악조곡에서와 달리 춤곡의 이런 일반적 배치순서에 구애받지 않고 있다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이번엔 위에서 '두번째 특징'으로 언급했던 독주와 반주의 역할분담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반적인 바로크 소나타에서는 각각의 악기가 다 주인공이나 마찬가집니다. 비발디의 이전 소나타들이 그렇고 바흐의 트리오소나타를 들어봐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맨체스터 소나타에서는 독주 바이올린이 선율을 맡고 나머지 저음악기들 - 저음 류트의 일종이라 할 테오르보, 첼로, 오르간, 쳄발로 등 - 은 선율을 놓고 바이올린과 경쟁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같은 음이나 음형을 반복연주하며 리듬만 맞춰주는 경우도 종종 나타납니다.
이 음반은 우리에게는 낯선 프랑스의 마이너레이블 ARCANA에서 나온 것이지만, 뒤에 OPUS111을 통해 90년대 클래식음반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킨 주역들이 고스란히 그룹으로 등장합니다.
파비오 비욘디가 바이올린을 맡고, 파올로 판돌포, 리날도 알레산드리니 등이 비욜론첼로와 건반악기군을 맡아 반주를 합니다. (판돌포와 알레산드리니는 아르모니아 문디 레이블을 통해서 바흐의 비욜과 쳄발로를 위한 소나타를 녹음한 적도 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곡의 성격상, 주인공은 당연히 주선율을 맡은 비욘디가 되겠는데,비발디 사계나 조화와 영감 등에서 보여주었던 카리스마적 개성이 여기저는 잘 절제되어 있습니다. 앙상블을 중시해야 하는 곡 특성에 충실히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팽팽한 긴장감과 화려한 음색, 싱싱한 활력 등 이후 음반들에서 화산처럼 폭발한 비욘디 개성이 잘 녹아들어 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곡 해석에 있어서도 파격적인 드라이브보다는 안정감과 짜임새를 중시하고 있습니다.
녹음도 일급입니다. 스피커 사이를 꽉 채우며 실제 연주자들 사이즈를 그대로 옮겨놓은듯한 스케일감이 수준급입니다.
다만 OPUS111에 비해 여운/잔향이 억제된 듯 하고 소리끝도 동글동글하게 다듬어진듯한 인상입니다. 하지만 생생함이 죽었다거나 그런 느낌은 아니고, 오히려 약간 따뜻한 느낌을 주어 자주 손이 가게 됩니다.
린 뉴메릭(Linn Numerik) A-D converter를 이용해 녹음했다고 하니 Linn 사운드를 잘 아시는 분들이 들어보시면 더욱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별4개 반(★★★★☆)으로 구입추천합니다. 그런데, 매우 아름다운 곡이긴 하지만,4계나 조화와 영감 등 비발디의 다른 유명작품에 비하면 귀에 쏙쏙 들어오는 인상적인 멜로디가 적은 편이어서 바로크 음악을 낯설어하시는 분이라면 별로 친숙하게 못느끼실수도 있겠습니다. (그게 이 곡이 덜 유명한 이유겠지만요.)
이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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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디의 시대에 맨체스터라는 영국 도시가, 그의 예술적 감흥의 원천이 되었을리 만무합니다. '맨체스터 소나타'라는 이름은, 그 작품의 자필원고가 현재 맨체스터 중앙도서관에 보관되어 있기 때문에 붙은 것입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긴 사연이 있었습니다.
모두 12곡인 이 소나타곡집은 비발디가 자신의 후원자였던 피에트로 오토보니 추기경에게 헌정한 것입니다. 오토보니 추기경은 코렐리와 스카를라티, 헨델에게도 물질적 도움을 주며 음악발전에 공헌한 사람이지만, 씀씀이가 매우 헤펐습니다. 1742년, 빚잔치를 통해 비발디의 소나타곡집은 영국의 여행가 에드워드 홀즈워스에게 넘어갔습니다.
홀즈워스는 친구인 제넨스에게 이 악보를 선물했습니다. 제넨스는 헨델의 '메시아'의 대본을 쓴 사람입니다. 그의 사후 악보는 다시 사촌인 핀치 백작 가문으로 넘어가 잊혀진채 전해져 오다가 20세기초 경매에 나오게 됐습니다.
이때 소나타집을 가져가게 된 사람은 뉴만 플라워라는 헨델 전기작가였습니다. 플라워가 1964년 사망한 뒤 악보는 다른 소장품과 함께 맨체스터 시 도서관에 넘어가 또다시 잊혀졌습니다.
당시 맨체스터 도서관은 헨델 자료수집을 위해 뉴만 플라워의 컬렉션을 인수한 것이었기 때문에, 비발디의 12곡의 소나타는 10년 가까이 지난 1973년에야 음악학자들의 눈에 띄게 되어 '맨체스터 소나타'라는 이름으로 햇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소개해드리는 비욘디의 음반은 맨체스터 소나타를 제대로 녹음한 최초의 음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맨체스터 소나타는 음악사적으로 두가지의 특징을 갖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완숙단계에 이른 바로크 소나타의 형식미를 보여줍니다. 두번째로는 독주악기와 반주의 역할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첫번째 이야기를 먼저 해 보죠. 원래 바로크 소나타에는 교회소나타와 실내소나타라는 두가지 양식이 있었습니다. 교회소나타는 교회에서 주로 연주되었습니다. 대개 4악장 구조인데, 템포가 느림-빠름-느림-빠름으로 배치되며, 각각의 악장은 춤곡이 아니라는 점이 특징입니다. 교회에서 연주된 것이니까 그럴 수 밖에 없었겠지요?
실내소나타는 귀족들의 저택 안에서 연주되던 것으로, 춤곡풍이 아닌 전주곡(preludio)가 하나 먼저 나오고, 그 뒤를 4-5곡의 춤곡이 따라나오게 됩니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조곡 등 기악 조곡(suite)에 맥이 닿아있는 것이 바로 이 양식입니다.
이 두가지를 통합하기 시작한 것은 라 폴리아 등으로 유명한 바로크 바이올린 명인 코렐리였습니다.
1600년대 후반의 대 스타였던 코렐리는, 실내소나타를 교회소나타적 구조에 맞추었습니다. 그러니까 춤곡 악장들을 느림-빠름-느림-빠름의 순서로 배치하는 양식을 만든 것입니다.
코렐리를 거치면서 바로크 소나타의 춤곡 악장들은 '춤'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좀 더 독립적인 음악의 성격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4분의 4박자에 약간 빠른 악장이면서 두개의 부분으로 나뉘어 각각이 반복되는 구조를 갖고 있으면 어느것이나 '알라망드'라고 불리우게 되었습니다. 3박자의 빠른 악장은 다 꾸랑뜨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비발디의 맨체스터 소나타는 이런 소나타 형식의 발전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는 곡입니다. 트랙 리스트들을 보면 각각의 곡은 모두 4악장입니다. 非무곡인 'preludio'를 1악장으로 하고 있고, 그 뒤로 춤곡이 세개씩 이어지는데 템포는 느림-빠름-느림-빠름입니다.
춤곡 이름은 바흐의 조곡들을 통해 이미 익숙하게들 알고 계시는 '알라망드-꾸랑뜨-사라방드-지그-가보뜨'의 이탈리아어 버전입니다. 기악조곡에서와 달리 춤곡의 이런 일반적 배치순서에 구애받지 않고 있다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이번엔 위에서 '두번째 특징'으로 언급했던 독주와 반주의 역할분담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반적인 바로크 소나타에서는 각각의 악기가 다 주인공이나 마찬가집니다. 비발디의 이전 소나타들이 그렇고 바흐의 트리오소나타를 들어봐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맨체스터 소나타에서는 독주 바이올린이 선율을 맡고 나머지 저음악기들 - 저음 류트의 일종이라 할 테오르보, 첼로, 오르간, 쳄발로 등 - 은 선율을 놓고 바이올린과 경쟁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같은 음이나 음형을 반복연주하며 리듬만 맞춰주는 경우도 종종 나타납니다.
이 음반은 우리에게는 낯선 프랑스의 마이너레이블 ARCANA에서 나온 것이지만, 뒤에 OPUS111을 통해 90년대 클래식음반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킨 주역들이 고스란히 그룹으로 등장합니다.
파비오 비욘디가 바이올린을 맡고, 파올로 판돌포, 리날도 알레산드리니 등이 비욜론첼로와 건반악기군을 맡아 반주를 합니다. (판돌포와 알레산드리니는 아르모니아 문디 레이블을 통해서 바흐의 비욜과 쳄발로를 위한 소나타를 녹음한 적도 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곡의 성격상, 주인공은 당연히 주선율을 맡은 비욘디가 되겠는데,비발디 사계나 조화와 영감 등에서 보여주었던 카리스마적 개성이 여기저는 잘 절제되어 있습니다. 앙상블을 중시해야 하는 곡 특성에 충실히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팽팽한 긴장감과 화려한 음색, 싱싱한 활력 등 이후 음반들에서 화산처럼 폭발한 비욘디 개성이 잘 녹아들어 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곡 해석에 있어서도 파격적인 드라이브보다는 안정감과 짜임새를 중시하고 있습니다.
녹음도 일급입니다. 스피커 사이를 꽉 채우며 실제 연주자들 사이즈를 그대로 옮겨놓은듯한 스케일감이 수준급입니다.
다만 OPUS111에 비해 여운/잔향이 억제된 듯 하고 소리끝도 동글동글하게 다듬어진듯한 인상입니다. 하지만 생생함이 죽었다거나 그런 느낌은 아니고, 오히려 약간 따뜻한 느낌을 주어 자주 손이 가게 됩니다.
린 뉴메릭(Linn Numerik) A-D converter를 이용해 녹음했다고 하니 Linn 사운드를 잘 아시는 분들이 들어보시면 더욱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별4개 반(★★★★☆)으로 구입추천합니다. 그런데, 매우 아름다운 곡이긴 하지만,4계나 조화와 영감 등 비발디의 다른 유명작품에 비하면 귀에 쏙쏙 들어오는 인상적인 멜로디가 적은 편이어서 바로크 음악을 낯설어하시는 분이라면 별로 친숙하게 못느끼실수도 있겠습니다. (그게 이 곡이 덜 유명한 이유겠지만요.)
이현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