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개
글 제목 그대로 이 '피아노 그랜드'는 피아노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한 공연의 기록입니다. 미국 스미소니안(Smithsonian) 박물관은 지난해 한 공영방송국 (Maryland Public Television)과 함께 피아노 탄생 300년을 기념하는 대형 공연을 열었습니다.
이 행사가 미국전역을 커버하는 공영방송 PBS를 통해 방송되었습니다. 무대 네 개를 오가며 벌어진 꽤 근사한 공연이었고 HDTV 방식으로 녹화되었는데, 이것이 DVD로 출시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TV 녹화방송을 보는 셈입니다.
쇼 호스트는 'Piano Man' 빌리 조엘.
등장하는 음악은 클래식과 팝,록,재즈를 망라하는 것입니다. 미국 방송의 시각에서, 피아노 전체를 포괄적으로 다루어보려고 시도한 것입니다. 정통 클래식물은 아니지만 전편의 기획이 상당히 짜임새있고 흥미진진합니다. 등장인물도 호화판입니다. 팝쪽에서는 'DIVA'같은 DVD가 한자리에 많은 스타들을 모아서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이 DVD는 그 이상입니다.
2. 공연 내용
본막의 시작은 장 이브 티보데 (Jean-Yves Thibaudet)가 엽니다. 최근 재즈음반을 내면서 대중적 인지도가 높아진 장 이브 티보데는 10여년전만 해도 출중한 외모와 연주력으로 차세대 클래식음악계 스타가 될 것으로 각광을 받았던 젊은이였습니다. 혹시 '음악동아'를 열심히 보시던 분이라면 피아니스트 핸드북에 수록되었던 티보데의 사진을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이를 먹은 티보데는 코만 컸지 예전같은 미청년의 모습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가 연주하는 그리그의 피아노협주곡 1악장은 기교와 음악적 흐름 모두 매우 뛰어난 연주였습니다.
문제는 오케스트라인데, 반주를 맡은 스미소니안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허걱' 소리가 나게 만드는 트럼펫군과 첼로/베이스군, 음악의 흐름을 처지게 하는 플룻 등 한마디로 B급입니다. 행사의 성격상 이해를 해줘야 할 부분이기는 합니다만.
다음으로는 제리 리 류이스가 등장합니다. 반세기전 피아노를 가지고 '당시로서는 미친 짓'을 하면서 록큰롤의 부흥을 일궜던 그사람인데, 호호백발 할아버지가 되어 정장에 나비넥타이를 매고 나옵니다. 그래도 박력과 기백은 예전 그대로입니다. 카메라 워크는 한국의 가요순위 프로그램 못지 않은 변화무쌍한 화면으로 음악을 뒷받침합니다.
'When I look in your eyes' 등 음질도 좋고 분위기도 좋은 음반들로 많은 사랑을 받은 다이아나 크롤은 드럼,기타,베이스의 트리오를 이끌고 나와 'Let's Fall in Love'를 부릅니다. 물론 자신이 피아노를 치죠. 감상은..음반 재킷이 속칭 '사진빨이었다'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여기서 잠깐 모짜르트와 베토벤 시대의 피아노에 대한 미니 다큐멘타리가 등장합니다. 이 부분의 나레이터는 로버트 레빈입니다. 미국의 피아니스트로 우리나라에선 지명도가 낮은 편이지만 실력파입니다. 존 엘리어트 가디너 지휘 혁명과 낭만의 오케스트라 협연으로 내놓은 베토벤 피아노협주곡집이 있는데, 일청할 만한 연주입니다.
이 DVD에서도 그가 연주하는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5번이 등장하는데, 독주는 좋지만 역시 오케스트라의 뒷받침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실감케 해 줍니다.
아무튼, 레빈의 해설로 등장하는 골동품 피아노들의 모습은 정말 예술입니다. 당시의 피아노포르테와 바로크 현악기로 하이든의 피아노 트리오를 한악장 연주하기도 합니다.
연주자들을 인종적으로 균형잡히게 선택하려는 노력도 돋보입니다. 우선 싸이러스 체스넛(Cyrus Chesnut)이 눈길을 끕니다. 알라딘에 나오는 지니같은 둥그스럼한 거구의 흑인 재즈 피아니스틉니다. 그런데 생긴 것과는 전혀 안 어울려 보이는 부드러운 클래식적 터치를 구사합니다.
그의 연주곡은 'Baroque Impression'. 바흐의 음악과 재즈의 화법이 교묘하게 하나로 어우러져 있고, 음악의 흐름에 따른 약음에서 강음까지의 다이내믹 스펙트럼도 폭넓은 수준높은 크로스오버 곡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DVD를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이 싸이러스 체스넛을 알게 된 것이라 말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또한명의 흑인은 마커스 로버츠(Marcus Roberts)입니다. 역시 재즈 피아니스트이고, 사이러스 체스넛이 비교적 백인 액센트에 가까운 영어를 하는데 반해, 마커스 로버츠는 정통(?) 흑인영어로 말을 합니다. 화면으로 보아서는 맹인인 듯 합니다. 스콧 조플린의 'the Entertainer' 등 세 곡의 메들리를 들려줍니다.
강렬한 리듬의 라틴 음악은 엘리안 엘리아스(Eliane Elias)라는 여자피아니스트가 선보입니다. 두셋트의 드럼과 함께 등장해 라틴뮤직과 재즈를 결합한 생동감 넘치는 음악을 선사합니다.
피아노 듀엣 (두대의 피아노 연주)으로 세계적 지명도를 쌓은 라베크 자매(카티아/마리아 라베크)도 등장합니다. 장 이브 티보데처럼 젊을때는 상당한 미모였는데, 지금의 모습은 마귀 할머니 비슷해져서 조금 안타깝습니다. 치렁치렁한 머리탓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라벨의 '어미거위 조곡'과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중의 '아메리카' 연주는 역시 명불허전입니다.
동양인으로는 일본인인 토시코 아키요시와 한국인 주형기(Hyung-ki Joo)가 등장합니다. 토시코 아키요시는 'It was a very good year'라는 재즈넘버를 연주합니다.
주형기는 저로서는 처음 보는 피아니스트이나, 이 DVD를 봐서는 빌리 조엘이 키우는 재즈 피아니스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중간 중간 삽입된 '등장 피아니스트들과의 인터뷰'에 꼭 빌리조엘과 같이 나올 뿐 아니라, 연주곡도 빌리 조엘의 자작곡입니다.
'일단 클래식을 떠나고 나니 클래식으로 돌아가기가 참 어렵더라'는 빌리조엘과의 대화 뒤에 나오는 클래식한 분위기의 곡인데, 들어볼 만 합니다. 이 곡은 이날 공연의 대미를 장식한 라스트 곡이었습니다.
3. 총평
재미있는 쇼를 만드는데는 세계최고의 재능을 가진 미국인들의 공연물인지라, 두어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만든 짜임새있는 구성이 돋보입니다. 우선 곡 배치가 그렇습니다.
빌리 조엘의 'Piano Man', 라베크 자매의 'West Side Story'로 시끌시끌하게 만든 뒤 마커스 로버츠가 분위기를 잡고, 장 이브 티보데가 쇼팽 녹턴을, 데이브 브루벡이 'Thank you'라는 쇼팽에 대한 잔잔한 헌정곡을 연주해 분위기를 잡으면 다시 제리 리 류이스가 무대를 발칵 뒤집는 식입니다.
중간중간에는 피아노에 대한 이들의 생각을 인터뷰한 화면을 편집해 넣기도 하고, 스누피 친구인 슈로더 애니메이션이 나와 잔잔한 웃음을 주기도 합니다.
음악 성격에 맞는 세련된 카메라 워크와 뛰어난 화질도 이 DVD의 가장 큰 장점 가운데 하납니다. 다만 음질은 조금 불만의 여지가 있습니다. 매우 선명하고 디테일도 잘 살아있긴 하지만 전체적인 밸런스가 약간 위로 쏠린 감이 있습니다.
아무리 HD방송이었다고는 하지만 어차피 방송프로그램을 DVD화한 것이니 별도의 부록 프로그램이 수록되었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입니다. 그러나 등장인물들의 면면을 소개하는 텍스트 정보나 소책자(booklet)조차 없는 점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전체적인 평점은 별 네개 반(★★★★☆)을 주고자 합니다.
본막의 시작은 장 이브 티보데 (Jean-Yves Thibaudet)가 엽니다. 최근 재즈음반을 내면서 대중적 인지도가 높아진 장 이브 티보데는 10여년전만 해도 출중한 외모와 연주력으로 차세대 클래식음악계 스타가 될 것으로 각광을 받았던 젊은이였습니다. 혹시 '음악동아'를 열심히 보시던 분이라면 피아니스트 핸드북에 수록되었던 티보데의 사진을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이를 먹은 티보데는 코만 컸지 예전같은 미청년의 모습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가 연주하는 그리그의 피아노협주곡 1악장은 기교와 음악적 흐름 모두 매우 뛰어난 연주였습니다.
문제는 오케스트라인데, 반주를 맡은 스미소니안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허걱' 소리가 나게 만드는 트럼펫군과 첼로/베이스군, 음악의 흐름을 처지게 하는 플룻 등 한마디로 B급입니다. 행사의 성격상 이해를 해줘야 할 부분이기는 합니다만.
다음으로는 제리 리 류이스가 등장합니다. 반세기전 피아노를 가지고 '당시로서는 미친 짓'을 하면서 록큰롤의 부흥을 일궜던 그사람인데, 호호백발 할아버지가 되어 정장에 나비넥타이를 매고 나옵니다. 그래도 박력과 기백은 예전 그대로입니다. 카메라 워크는 한국의 가요순위 프로그램 못지 않은 변화무쌍한 화면으로 음악을 뒷받침합니다.
'When I look in your eyes' 등 음질도 좋고 분위기도 좋은 음반들로 많은 사랑을 받은 다이아나 크롤은 드럼,기타,베이스의 트리오를 이끌고 나와 'Let's Fall in Love'를 부릅니다. 물론 자신이 피아노를 치죠. 감상은..음반 재킷이 속칭 '사진빨이었다'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여기서 잠깐 모짜르트와 베토벤 시대의 피아노에 대한 미니 다큐멘타리가 등장합니다. 이 부분의 나레이터는 로버트 레빈입니다. 미국의 피아니스트로 우리나라에선 지명도가 낮은 편이지만 실력파입니다. 존 엘리어트 가디너 지휘 혁명과 낭만의 오케스트라 협연으로 내놓은 베토벤 피아노협주곡집이 있는데, 일청할 만한 연주입니다.
이 DVD에서도 그가 연주하는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5번이 등장하는데, 독주는 좋지만 역시 오케스트라의 뒷받침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실감케 해 줍니다.
아무튼, 레빈의 해설로 등장하는 골동품 피아노들의 모습은 정말 예술입니다. 당시의 피아노포르테와 바로크 현악기로 하이든의 피아노 트리오를 한악장 연주하기도 합니다.
연주자들을 인종적으로 균형잡히게 선택하려는 노력도 돋보입니다. 우선 싸이러스 체스넛(Cyrus Chesnut)이 눈길을 끕니다. 알라딘에 나오는 지니같은 둥그스럼한 거구의 흑인 재즈 피아니스틉니다. 그런데 생긴 것과는 전혀 안 어울려 보이는 부드러운 클래식적 터치를 구사합니다.
그의 연주곡은 'Baroque Impression'. 바흐의 음악과 재즈의 화법이 교묘하게 하나로 어우러져 있고, 음악의 흐름에 따른 약음에서 강음까지의 다이내믹 스펙트럼도 폭넓은 수준높은 크로스오버 곡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DVD를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이 싸이러스 체스넛을 알게 된 것이라 말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또한명의 흑인은 마커스 로버츠(Marcus Roberts)입니다. 역시 재즈 피아니스트이고, 사이러스 체스넛이 비교적 백인 액센트에 가까운 영어를 하는데 반해, 마커스 로버츠는 정통(?) 흑인영어로 말을 합니다. 화면으로 보아서는 맹인인 듯 합니다. 스콧 조플린의 'the Entertainer' 등 세 곡의 메들리를 들려줍니다.
강렬한 리듬의 라틴 음악은 엘리안 엘리아스(Eliane Elias)라는 여자피아니스트가 선보입니다. 두셋트의 드럼과 함께 등장해 라틴뮤직과 재즈를 결합한 생동감 넘치는 음악을 선사합니다.
피아노 듀엣 (두대의 피아노 연주)으로 세계적 지명도를 쌓은 라베크 자매(카티아/마리아 라베크)도 등장합니다. 장 이브 티보데처럼 젊을때는 상당한 미모였는데, 지금의 모습은 마귀 할머니 비슷해져서 조금 안타깝습니다. 치렁치렁한 머리탓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라벨의 '어미거위 조곡'과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중의 '아메리카' 연주는 역시 명불허전입니다.
동양인으로는 일본인인 토시코 아키요시와 한국인 주형기(Hyung-ki Joo)가 등장합니다. 토시코 아키요시는 'It was a very good year'라는 재즈넘버를 연주합니다.
주형기는 저로서는 처음 보는 피아니스트이나, 이 DVD를 봐서는 빌리 조엘이 키우는 재즈 피아니스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중간 중간 삽입된 '등장 피아니스트들과의 인터뷰'에 꼭 빌리조엘과 같이 나올 뿐 아니라, 연주곡도 빌리 조엘의 자작곡입니다.
'일단 클래식을 떠나고 나니 클래식으로 돌아가기가 참 어렵더라'는 빌리조엘과의 대화 뒤에 나오는 클래식한 분위기의 곡인데, 들어볼 만 합니다. 이 곡은 이날 공연의 대미를 장식한 라스트 곡이었습니다.
3. 총평
재미있는 쇼를 만드는데는 세계최고의 재능을 가진 미국인들의 공연물인지라, 두어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만든 짜임새있는 구성이 돋보입니다. 우선 곡 배치가 그렇습니다.
빌리 조엘의 'Piano Man', 라베크 자매의 'West Side Story'로 시끌시끌하게 만든 뒤 마커스 로버츠가 분위기를 잡고, 장 이브 티보데가 쇼팽 녹턴을, 데이브 브루벡이 'Thank you'라는 쇼팽에 대한 잔잔한 헌정곡을 연주해 분위기를 잡으면 다시 제리 리 류이스가 무대를 발칵 뒤집는 식입니다.
중간중간에는 피아노에 대한 이들의 생각을 인터뷰한 화면을 편집해 넣기도 하고, 스누피 친구인 슈로더 애니메이션이 나와 잔잔한 웃음을 주기도 합니다.
음악 성격에 맞는 세련된 카메라 워크와 뛰어난 화질도 이 DVD의 가장 큰 장점 가운데 하납니다. 다만 음질은 조금 불만의 여지가 있습니다. 매우 선명하고 디테일도 잘 살아있긴 하지만 전체적인 밸런스가 약간 위로 쏠린 감이 있습니다.
아무리 HD방송이었다고는 하지만 어차피 방송프로그램을 DVD화한 것이니 별도의 부록 프로그램이 수록되었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입니다. 그러나 등장인물들의 면면을 소개하는 텍스트 정보나 소책자(booklet)조차 없는 점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전체적인 평점은 별 네개 반(★★★★☆)을 주고자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