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VD] 드레스드 투 킬 (Dressed to Kill)

홈 > 이매거진 >

『원초적 본능(Basic Instinct)』(1982)을 보신 분이라면 그 영화의 서스펜스적 요소 보다는 주연 배우였던 샤론 스톤(Sharon Stone)의 관능미가 더 오래 기억에 남으시지 않으셨는지요? 관객들은 영화 시청 도중 이미 이 섹시한 여주인공이 용의자라는 것을 직감하고 그 후로는 오로지 여주인공의 노출연기에만 신경을 쓰게 됩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폴 버호벤(Paul Verhoeven)의 이 에로틱 스릴러가 그다지 성공작이라고 판단되지는 않습니다.

이와 같이 에로틱한 요소와 서스펜스적 요소가 합쳐진다는 것은 보기보다 쉬운 작업은 아닙니다. 두 영화적 요소는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장르적 무기이지만 그것이 한 작품에 모두 스며들 때 성공적으로 결합하기는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브라이언 드 팔마(Brian De Palma)야 말로 이 두가지 요소를 가장 잘 융화시킬 수 있는 작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은 스릴러(thriller) 장르의 이 거장이 선보인 1980년도 작품 『드레스드 투 킬(Dressed to Kill)』을 간단히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1. 제품정보

- 제작사 : MGM
- 화면 : 2.35:1 아나몰픽
- 음향 : 영어 DD 5.1, 영어 DD 모노, 불어 DD 모노
- 자막 : 불어, 스페인어, 영어(캡션)
- 디스크 : 단면 더블레이어
- 제작년도 : 1980년
- DVD발행년도 : 2001년
- 상영시간 : 105분
- 등급 : Unrated, R-rated
- 지역코드 : 1번
- 감독 : Brian De Palma
- 배우 : Michael Caine, Angie Dickinson, Nancy Allen, Keith Gordon 등

2. 영상 및 음향

본 작품의 영상은 다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본 작품의 원본필름이나 다른 매체에서 보여주는 화질이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전반적으로 선명하지 못한 화질에 잡티나 흠짓들이 가끔 나타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나름대로 크게 흠을 잡을 만한 화질은 아니지만, 우리가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제작된 특별판에서 기대하는 영상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하겠습니다. 평가를 하자면 5점만점에 3점을 주고 싶습니다.

에로틱한 샤워씬이 첫장면을 장식합니다.

음향 면에서는 영상에 비해서는 후한 점수를 줄 수 있겠지만 특별한 음장감을 느낄 만한 요소는 그다지 없습니다. 원본 필름의 음성은 모노사운드였는데(오리지널 음성이 역시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를 5.1채널로 분리했다는 점 이상의 장점을 찾기는 어려운 사운드입니다. 대사의 전달성은 비교적 뚜렷하고, 배경음악의 처리에서 다소간 음장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일단 제작사의 성의는 느낄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하겠습니다. 평가를 하자면 5점만점에 3.5점을 주고 싶습니다.

3. 영화적 완성도

브라이언 드 팔마(Brian De Palma)가 히치콕의 추종자이며 자극적인 영상표현에 일가견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가 히치콕의 스타일을 너무나 좋아한다는 사실은 그의 영화 곳곳에서 공공연하게 사용되고 있는 히치콕 스타일의 표현방식을 보면 분명하게 드러나는 사항입니다. 때로는 그 답습방식이 너무 노골적이어서 '도대체 이 감독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만행(?)을 저지르는가'하는 우려도 하게 되지만 그의 영화를 온전히 모두 시청한다면 그런 우려는 정말 기우에 그치고 만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그에게는 다른 사람의 스타일을 모방한다는 비난을 받기에는 너무나도 독특한 자신만의 스타일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다소 충격적인 엘레베이터 살해장면

그가 자극적인 영상표현을 좋아한다는 점은 그의 이력에서 드러나는 사항입니다. 그의 아버지가 외과의사이고 어린 시절 수술장면을 너무나 많이 본 것이 좀 더 자극적인 상황에 대한 갈구를 낳았다는 사실 역시 그의 주변에서는 일반화된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보편적인 영화스타일을 선호하는 할리우드에서 그는 그다지 좋은 대접을 받고 있지 못한 감독 중에 하나입니다.

하지만 할리우드에서 그가 어떤 대접을 받건 그의 영화를 시청하는 관객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는 우리들에게 묘한 대리만족을 선사하는 몇 안 되는 감독 중에 하나입니다. 즉 그의 영화는 단지 영화를 보고 나서 '아 ! 오늘 정말 좋은 영화를 하나 봤군'이라는 감탄을 하게 만들기 보다는 영화를 보는 순간순간 '아 ! 내가 정말 원했던 바로 그 화면이다'라는 느낌을 갖게 만드는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너무나 고상하고, 예술주의 영화를 추종하는 관객이라면 그의 스타일은 그다지 환영받지 못할 요소로 가득차 있습니다. 하지만 만일 여러분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조금씩은 가지고 있을 '관음증'과 '폭력성'에 대해 호기심을 지니고 있는 관객이라면, 지금 하던 일을 멈추고 그의 영화를 시청하십시오.

영화가 시작되면 이 작품이 제작되던 전후로 해서 그의 영화 첫머리를 항상 장식하는 샤워씬이 펼쳐집니다. 이 장면이 누구의 어떤 영화를 반영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필요도 없겠죠. 이 샤워씬을 통해서 우리는 이 중년의 여성 케이트(엔지 디킨슨)가 뭔가 욕구에 가득차 있다는 점을 발견합니다. 무슨 욕구일까요 ?

그렇습니다. 케이트는 남편과의 성생활에서 그다지 만족을 얻지 못하고 있는 여성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성적 불만족에 대해 상담을 합니다. 상담을 맡은 사람은 가정을 가지고 있는 -하지만 영화상에서는 그의 가정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엘리오트 박사(마이클 케인) 입니다. 그녀는 박사에게 자신의 성적매력을 묻고 자신과 '하고 싶느냐'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나이는 조금 들었지만 비교적 매력적인 여성의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그래도 사회적 지위를 지닌 이 박사는 '물론 하고는 싶지만 자신은 사랑하는 부인이 있기에 그럴 수 없어요'라고 담담하게 질문을 피해 갑니다.

피터와 리즈는 살해범을 쫓기 시작한다.

이제 누가 이 여성의 성적 갈증을 해소시켜 줄 수 있단 말입니까? 참으로 다행히도 영화상에서는 미술관에서의 우연한 조우를 마련합니다. 이 미술관 씬은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면입니다. 한 남자가 여자의 옆에 않습니다. (여자는 물론 케이트겠죠) 여자는 남자를 곁눈질 하지만 남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이는 군요. 고전적인 수법으로 장갑도 떨어뜨려 보지만 남자는 그냥 자리를 뜹니다. 당황한 여자는 남자를 따라갑니다. 남자는 여자의 미행을 아는지 하염없이 다른 복도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홀(hall)로 나가자 남자는 없습니다. 남자는 바로 여자의 뒤에서 여자를 보고 있습니다. 남자가 다가와 여자의 어깨를 잡습니다. 여자가 놀라서 달아나죠. 하지만 남자는 여자의 장갑을 건네주기 위해서였던 듯 합니다. 그 사실을 여자는 잠시 후에야 알게 되고 낙심한 여자는 미술관을 나옵니다. 그런데 바깥에는 택시 안에서 자신의 장갑을 흔들고 있는 남자가 있습니다. 여자는 웃음을 지으며 남자에게 다가가 장갑을 건네 받으려 하죠. 하지만 남자는 장갑을 건네주는 대신 여자를 택시에 태워 이 불쌍한 여성의 성적 갈증을 채워 줍니다. 참 마음씨 좋은 아저씨죠 ?

감독은 이 길지 않은 장면에서 대사를 극도로 자제한 체 두 남녀의 밀고 당기는 상황을 간결하게 묘사합니다. (정말 이 남자는 영화상에서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잘못하면 삼류 에로영화로 바뀔 수도 있는 이 장면을 아주 세련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장면 이후로 영화는 본격적인 서스펜스 장르로 넘어갑니다. 왜냐하면 이 남자가 성병에 걸린 것을 알고 부랴부랴 남성의 아파트를 나서던 케이트는 정체 불명의 여성에게 살해를 당하고 마니까요.
그 유명한 엘리베이터 살해씬과 이를 목격하는 고급창녀 리즈(낸시 알렌)의 활약상은 직접 영화로 확인해 보십시오.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성적인 욕구로 가득한 한 여성의 일탈과 우연한 살해를 기반으로 다중인격이라는 오래된 영화적 소재를 접목시킵니다. 그의 또다른 작품인 『시스터즈(Sisters)』(1973)에서도 이와 유사한 소재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그 표현방식은 본 작품이 서너 수는 위에 있는 듯 보입니다. 면도칼의 날카로움만큼이나 관객의 숨을 조이게 만드는 감독의 표현방식은 무척이나 세련되 있어서 보통 이런 장르의 영화가 범하기 쉬운 개연성의 파괴 없이 유려하게 넘어가는 장점을 지닙니다.

감독이 애용하는 화면 분할기법

영화의 마지막 장면. 리즈는 첫 장면의 케이트처럼 샤워를 하고 있습니다. 그 때 문밖으로 살인자가 면도칼을 들고 나타나는 군요. 보통의 영화라면 암묵적인 피해자에게 몰래 다가가는 가해자의 모습을 통해 공포심을 느끼게 하겠지만, 이 감독은 화장실의 거울을 통해 피해자가 가해자를 보도록 만듭니다. 이제 피해자가 훨씬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자신을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니까요. (물론 관객은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겠죠) 피해자는 샤워부스에서 몰래 나와 가해자에게 반격을 가할 만한 도구를 찾습니다. 과연 피해자는 그 도구를 찾아 반격의 자세를 취하기까지 가해자로부터 안전한 시간을 벌 수 있을까요 ?

이제 피해자 또는 관객으로 하여금 피해자에게 다가올 위험을 미리 알림으로써 공포심을 배가시키는 방식은 너무나 흔한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브라이언 드 팔마의 영화를 볼 때 그 장면은 여전히 가슴을 졸이게 만드는 마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평가를 하자면 5점 만점에 3.5점을 주고 싶습니다.

4. 부록

본 디비디는 영상과 음향에서의 불만족스러움에 비해서는 비교적 만족스러운 부록을 수록하고 있습니다.

(Unrated or R-Rated Version): 이걸 부록이라고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영화가 시작되면 심의를 받지 않은 버전과 심의를 받은 극장용 버전을 선택하는 메뉴가 나타납니다. 후에 두 버전의 차이를 알 수 있는 또 다른 부록이 있으니 여러분은 그냥 심의를 받지 않은 버전을 보시면 됩니다. 참고로 날카로운 면도칼에 피부가 베이는 장면을 극도로 혐오하시는 분이라면 극장용 버전을 선택하십시오.

(Comparison Featurette): 위에서도 설명 드렸듯이 Unrated Version, R-rated Version 및 TV방영물과의 차이점을 비교할 수 있는 부록입니다.

(Making of thriller): 감독, 제작자, 배우들과의 인터뷰가 삽입되어 있는 40여분 짜리 제작 다큐멘터리입니다. 인터뷰로 보건대 최근에 새로 촬영된 인터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낸시 알렌의 미모는 극중 케이트의 나이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듯 합니다. (오히려 지금이 더 예쁘죠)

이 장면에 사건의 열쇠가 있습니다

(Slashing Dressed to Kill): 이 작품이 제작되던 당시 이 작품의 표현수위는 논쟁의 대상이었습니다. (물론 지금 기준으로는 당치 않은 소리겠지만요) 제작진 측과 MPAA의 등급위원회 간의 밀고 당기는 상황에 대한 12분 짜리 부록입니다.

(An Appreciaion by Keith Gordon): 저의 리뷰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살해당한 케이트의 아들 피터 역으로 나오는 키스 고든은 살해자를 찾아내는 일등공신입니다. 그가 감독과의 촬영중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합니다. 극중의 그 미소년 이미지는 온데 간데 없고 전혀 다른 사람이 앉아 있는 듯 합니다.

(Animated Photo Gallery): 저절로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스틸사진 겔러리입니다.

(Advertising Gallery): 극장용 포스터, 로비용 카드 등이 수록되어 있는 갤러리입니다.

(Original Theartrical Trailer): 극장용 예고편입니다.

5. 나가며

최근 본 감독의 작품 세편이 동시에 DVD로 미국에서 출시되었습니다. 본 작품을 비롯해서 『캐리(Carrie)』(1976)와 『필사의 추적(Blow Out)』(1981) 모두 나름대로의 재미를 느끼게 만드는 작품들입니다. 특이하게 세 작품 모두 샤워씬으로 시작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죠. 마지막 반전도 놓치기 아까운 작품들입니다.

작품성이 높은 걸작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미흡한 감이 없지 않지만 나름대로 장르 영화의 특성은 십분 발휘되어 있는 작품이므로 서스펜스류의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추천해 드리고 싶은 영화입니다. 한가지 아쉬움이라면 스페셜 에디션에 걸맞는 뛰어난 디비디 작품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가격은 저렴합니다.) 게다가 자막이 없으니 캡션이 지원되지 않는 디스플레이를 가지고 있는 분이라면 영어에 자신이 없을 때 구입을 자제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국내 출시는? 글쎄요... 적어도 Unrated Version의 출시는 상당히 어렵거나 뭔가 화학적 처리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llhtml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