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 vs 레이
월드컵이 끝난 직후였을까.. 레이 브라운의 사망 소식에 메인 스트림의 명맥이 이젠 끊겼구나 하는 착잡함에, 오스카 피터슨과 레코딩한 버브 음반을 필두로 노익장을 과시하던 말년의 텔락 녹음까지 며칠을 꺼내 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하긴, 홍수로 뉴 올리언즈가 잠겨 많은 재즈 뮤지션들이 떠났다곤 하지만 그것이 재즈의 종언을 의미함이 아니듯 레이 브라운의 죽음으로 모던 재즈의 전통이 끊어진 것은 아닐게다. 2002년 발표된 이 음반은 그의 마지막 레코딩이다.
텔락에서
녹음했다면 의례히 클럽 라이브 녹음일거라 생각했는데 뜻밖의 스튜디오 녹음이다. 사실 드럼이 빠진 트리오 라인업을 보고 깜짝 놀랐다. 몬티
알렉산더와 러셀 말론이라니..! 그들이 누구인가? '힘'이라면 따를자가 없기로 소문난 연주자들이 아닌가? 힘이 부칠게 뻔한 노년의 레이
브라운이, 게다가 드럼도 없이 베이스가 어찌 감당하려고..?? 알만한 사람은 안다. 재즈에서 '그라운드 리듬'을 지탱해야 할 베이스 주자의
부담을. 하지만 이 음반 내내 들으면서 그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음을 발견했고 더불어 몬티 알렉산더와 러셀 말론의 거장다운 면모를 발견한
뜻밖의 즐거움을 누렸다. 결코 나서지 않으며 노년의 선배 연주자에 대한 경의에서일까? 아니다. 정교하며 절제할 줄 아는 그들의 인터플레이를
나는 또 다른 테크닉이라 생각한다. 특히 몬티의 피아노를 칭찬하고 싶다. 내가 아껴 듣는 1977년 Montreux 재즈 페스티벌 MPS
녹음부터 비교적 최근의 어네스트 랭글링과의 텔락 녹음까지 30여년간을 흐르는 그의 엄청난 콤핑을 떠올리면 다소 싱거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레이 브라운과의 작업은 그에게 노련한 재즈 테크니션에서 재즈의 참 의미를 터득한 재즈 ‘아티스트’라는 거장의 영예를 안겨다 주었을 것이다.
재즈 팬이든 아니든 그 누가 들어도 시종일관 흐르는 유쾌함과 흔들림 없는 그루브에 맘 편히 몸과 마음을 맡겨도 되겠다. 녹음은 다소 드라이하게 느껴지며 ‘Studio B’정도의 공간감이 잘 살아있고 텔락 녹음답지 않게 중역대가 살짝 살집이 잡혀 있어 각 악기의 프레이징을 명확하게 그려나가고 있다. SACD라면 공간감에 더욱 좋은 결과를 보여주었을 것 같다. 유머와 따스함이 베인 그래서 더욱 떠난 레이가 그리운 듣기 좋은 앨범이다. 사족으로, 얼마전 세상을 떠난 또 다른 Ray, 레이 찰스를 떠올린다. 약속이나 한 듯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레이 브라운 1926-2002, 레이 찰스 1930-2004) 비슷한 시기에 세상을 떠난 그들은 지금 하늘에서 무슨 일을 벌이고 있을까? 혹 지상의 추억을 담아 천국發 그들만의 듀오 앨범이라도 우리에게 선물하지 않을까? -llhtmll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