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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야심차게 선보인 푸치니의 ‘라 보엠’ 프로덕션은 여러 면에 있어서 흥미로움을 더한다. 우선 주연 성악진과 지휘자 라인업에 있어서 어딘지 이국적인 성향을 보여준다. 로돌포역으로는 한국 출신의 테너 박지민, 미미역으로는 미국 출신의 소프라노로서 최근 베르디 가수로 각광받고 있는 타케샤 메쉬 키자르트, 지휘는 중국출신의 샤오치아 류가 맡았기 때문이다. 음반을 통해 음악만 듣는다면 이러한 측면은 그다지 고려의 대상은 아니지만, 영상을 통해 감상한다면 19세기 프랑스 파리(이 무대에서는 2차대전 직전의 베를린)를 배경으로 한 무대에서 이러한 다인종의 출연은 어쩔 수 없이 눈에 띄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그저 에조틱한 느낌만 나는 평범한 무대일까? 이 영상물의 음악과 연출의 완성도는 기존 발매물들과 비교하기에 충분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

 

가장 먼저 테너 박지민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최근 세계무대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테너로서 2011년 라 스칼라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된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주역으로 기용된 바 있다. 작년 다니엘 바렌보임과 웨스트-디반 오케스트라와의 베토벤 교향곡 9번에 등장한 것 외에, 영국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시작했으며 올해 봄에는 시드니 수상 오페라 무대에서 ‘라 트라비아타’ 주역을 맡았다. 한국인으로서 대단히 고급스러운 리릭 테너로서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고 평가받고 있는데, 그는 서울대 시절 강병운 교수를 사사하며 음악 외에 서양적인 제스추어와 사실적인 연기를 연마하여 세계 오페라 무대에서 동양인 주역으로 선발될 수 있는 조건을 충분히 갖추었다. 이러한 그의 목소리와 연기를 감상할 수 있는 최초의 음반으로서 이 영상물의 가치는 매우 높다고 말할 수 있다.

 

모든 대화와 모든 아리아마다 아름답고 서정적인 목소리로 청중을 압도하는 박지민의 상대역을 맡은 시카고 출신의 흑인 소프라노인 타케샤 메쉬 키자르트는 연기와 노래, 미모, 이렇게 오페라 히로인을 위한 3박자 모두가 놀랍다. 특히 1막 아리아 ‘내 이름은 미미’는 전성기 시절의 레온타인 프라이스를 연상시키는 듯한 넓은 음역과 두터운 음색이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고, 4막에서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미미의 애절함을 더해주는 가창과 연기 모두 너무도 리얼하다. 가창에 있어서 얼마간의 아쉬움을 남긴 무제타 역의 테이린 피빅은 연출의도에 어울리는 훌륭한 연기로 극에 탄력과 균형감을 불어넣었고, 마르첼로역을 맡은 호세 카르보는 적극적인 연기와 순발력 높은 노래를 보여주었지만 큰 인상을 남겨주진 못했다.

 

최근 급격히 높아진 오페라 영상물의 DTS-HD 음향 퀄리티 때문에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의 음향과 오케스트라 앙상블의 단점까지도 모두 적나라하게 나타나긴 하지만 지휘자 샤오치아 류의 성실하면서도 근면한 지휘는 중간 중간 긴장감으로 인해 빨라지려고 하는 성악가들의 템포를 차분하게 누그러뜨리는 한편 적시적소에 적절한 에너지를 배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화면 퀄리티 또한 HD급으로서 실내와 밤으로만 설정된 무대의 어두운 색감의 섬세한 채도와 색농도의 대비가 잘 포착되어 있어 자칫 답답할 수 있는 ‘라 보엠’ 무대에 또렷한 개방감을 실어준다. 한편 이 영상물은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가 자체 레이블로 발매한 첫 제작품으로서, 앞으로 꾸준한 발매를 통해 이곳의 위상과 음악적 완성도가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

 

연출의 측면에 있어서 연출을 맡은 게일 에드워드의 감수성 또한 남다르다. 그녀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무대감독으로서 TV와 영화를 오가며 많은 작품을 남겼고 로얄 세익스피어 컴퍼니와 세익스피커 씨어터 컴퍼니를 이끈 바 있고, 현재에는 시드시 씨어터 컴퍼니와 오페라를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녀의 연출의도는 되도록 현실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텐데, 제페렐리와 같은 연극적이고 극단적인 리얼리티보다는 드라마적이고 가정적인 리얼리티에 가깝다. 이렇게 ‘라 보엠’은 오페라로서의 웅장함보다는 보다 편안한 친화력을 띈 에피소드로 재구성되었다.

 

1막에서 다락방의 높이를 상회하는 크고 높은 유화그림과 궁전과 같은 창문은 전체적인 컨셉에서 바라보았을 때 조금 과도한 듯하지만 극장의 크기와 공간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이 막에서의 이채로운 대목은 주인공 둘이서 열쇄를 찾는 장면이다. 일반적으로 로돌포가 먼저 미미가 모르게 처리하는 반면, 여기에서는 넉살 좋게 못찾았다고 유머러스한 미소를 보내고 이에 미미 또한 웃으면서 애교스럽게 이해해 주는 상황으로 처리했다. 이는 마지막 4막에서 재회한 이 두 연인이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과 직결되며 나름대로 현대적인 설득력을 부여한다.

 

2막은 이 프로덕션의 하이라이트다. 일반적인 레스토랑이라기보다는 꼬마전구와 댄서들이 득실대는 베를린 캬바레의 분위기를 보여주며 퇴폐적이고 향락적인 크리스마스 이브를 만들어냈다. 이를 배경으로 무제타 또한 이 극장의 무희의 복장을 입고나와 마이크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무제타가 왈츠를 부르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제공한 셈이다. 상의를 탈의하거나 아예 입지 않은 야한 분위기의 무희들이 발코니 석에 앉아 마치 TV 드라마를 감상하듯 손님들(주인공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모습 또한 의미심장하다.

 

전체적으로 영화 ‘신 시티’와 같은 분위기를 보여주려는 듯 3막은 철망으로 둘러싸인 검문소다. 이렇게 장소가 캬바레 무대에서 야외로 옮겨지며 보다 음산한 관료주의적인 분위기를 강조하여 눈내리는 새벽의 아름다움보다는 암울한 시대로의 진입을 보여준다. 4막에서는 시대의 암울함을 반영하듯 미미는 거리에서 삶을 영위했던 것을 암시하는 듯한 복장을 입고 등장한다. 물론 죽음을 향한 미미역을 맡은 키자르트의 열연과 안타까움을 토해내는 로돌포역을 맡은 박지민의 탁월한 연기력과 가창력에 더욱 많은 박수를 보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