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참 요즘 레코드 숍을 보기가 힘들어졌다. 과연 내가 CD를 구매한 적이 얼마 전일까? 물론 온라인이나 중고 장터를 통해, 클릭 한 번으로 손쉽게 구매는 하지만, 직접 숍에 가서 음반을 구경하고 고른 적이 꽤 되는 것 같다. 요즘 오디오 못지 않게 음반 산업이 급속도로 기우는 가운데, 나 역시 일조하고 있지 않나 반성해본다.

 

하지만 외국에 가면 꼭 들리는 곳이 레코드 점이다. 뭘 사야겠다고 마음먹고 들리지는 않고, 시간이 나면 그냥 눈요기라도 할 겸, 근처에 있으면 들린다. 가끔 사진도 찍고, 주인과 환담도 나눈다. 그러므로 작은 숍이 좋다. 전문적인 아이템을 취급할수록 집중력도 높아지고, 배우는 것도 있다. 도쿄로 치면 오차노미즈나 시부야가 그렇고, 바르셀로나도 괜찮다.

 

하지만 이런 전문 숍이 아니더라도, 그냥 어슬렁거리며 구경하기에 좋은 곳이 의외로 많다. 독일에서 나는 주로 자툰(Saturn)이라는 체인점을 다니는데, 이곳은 정식 음반 취급점은 아니다. 그보다는 더 광범위해서 TV나 게임기를 비롯, 컴퓨터, 디카 등 이른바 홈 엔터테인먼트에 관계된 전자 제품은 다 커버한다. 그 여파로 블루 레이와 DVD 그리고 CD도 다루는 것이다.

 

아무튼 프랑크푸르트의 괴테 하우스 근방에 있는 자툰은 내게 일종의 테마 파크다. 여기서 세일 음반을 구하기도 하고, 새로 나온 디카를 만지작거리며, 컴퓨터 관련 제품을 구매하기도 한다. 사실 USB 포트라던가 마우스 등 살면서 꼭 필요한 물품인데 의외로 품질 불량이 많은 경우라, 적어도 여기서 사는 제품들은 “메이드 인 저머니”는 심리적인 안도감을 준다.

이런 와중에 독일의 재즈 씬에도 주목하게 되었다. 사실 내 취향은 5~60년대 미국 재즈, 이른바 모던쪽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지만, 유럽 특히 독일을 자주 다니다 보니 이런 지역에서 실제 연주하는 재즈에도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꼭 ECM과 같은 레이블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아무튼 현대 재즈의 큰 축의 하나가 독일임은 부인할 수 없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독일어권 지역으로, 그 범위는 독일-오스트리아에 스위스 일부가 포함된다. 북구와 체코와 헝가리까지 보다 범위를 넓힐 수도 있다. 당연히 A급 스타는 아니더라도 실력파 뮤지션이 즐비한 바, 그중 이번에 소개할 울리히 드렉슬러(Ulrich Drechsler)는 실제 독일의 음반 숍에서 만난 경우도 있고, 유투브로 공연 장면도 본 적이 있어서, 이번 기회에 본격적으로 소개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친구를 어떻게 정리해서 알려야 할지 좀 난감하기는 하다. 많은 유러피언 재즈 뮤지션들은 클래식을 바탕으로 해서, 여기에 민속 음악이랄지 프리 재즈, 아방 가르드 등을 섞는 스타일로 발전한다. 심지어 테크노나 하우스 뮤직 등을 믹스하기도 하고, 아예 인도나 티벳으로 건너가는 도인(?)도 있다.

 

한데 울리히로 말하면, 이런 다양한 경향이나 취향이 한데 어우러져, 이른바 다중인격자의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다. 좀 심하게 말하면 정신분열증이라고 할까? 아니, 음악 자체가 난삽하고, 산만해서 어떤 아이덴티티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은, 그가 다루는 베이스 클라리넷이 좀 낯설기는 해도(우리에게는 에릭 돌피로 좀 알려져 있기는 하다), 기본 어법은 모던 재즈와 멀지 않아 처음부터 겁을 왈칵 먹고 고개를 돌릴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다만 추구하는 스타일이 다양한 것이다.

 

여기서 잠깐 그의 경력을 살펴보면 왜 이런 말을 쓰는지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는 9살 때부터 군악대 비슷한 곳에서 클라리넷을 연주했다고 한다. 이런 악기는 결국 음대~오케스트라로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야 기본은 하니, 그 역시 슈투트가르트의 오페라 하우스에서 열심히 클라리넷을 개인 교습 받았다.

 

하지만 오스트리아에 있는 그라츠의 예술 대학에 입학하면서 조금씩 삐딱선을 타기 시작한다. 한 마디로 정형화되고, 딱딱한 클래식에 인생을 바치기엔 뭔가 답답했던 것이다. 그보다 자신의 창조력을 한껏 살릴 수 있고, 음악적인 깊이를 표현할 수 있는 즉흥 음악에 관심이 가서 결국 재즈를 연주하기에 이른다.

 

자, 여기까지 쓰면 모던~ 컨템포러리 재즈로 이어지는 전통을 흡수하고, 미국을 들락날락거리며 각종 페스티벌에 초대되고, 전문 재즈 레이블에서 음반을 내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먹고 살기 위해 대학 강의는 기본. 그러나 이 친구는 또 그렇지 않다. 아예 악기를 베이스 클라리넷으로 고정시킨 채, 재즈의 본고장인 뉴욕이 아닌 비엔나에 터를 잡았다. 그리고 운명처럼 중요한 파트너를 만난다.

 

그 한 명은 베이스를 연주하는 올리버 슈테거이고, 또 한 명은 드러머 요르그 미쿨라이다. 두 사람과는 숱한 프로젝트 그룹에 함께 혹은 각각 인연을 맺어 왕성한 그의 호기심을 충족시켰으니, 이른바 소울메이트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아무튼 예술 대학을 졸업하고 비엔나에 터를 잡기 시작한 1999년부터 그의 열정적인 활동이 시작된다. 제일 유명한 것으로는 《트리오 카페 드렉슬러》가 있고, 클래시컬한 음악을 다뤘던 《포에시스》도 빼놓을 수 없다. 또 델로니우스 몽크를 존경해서 그의 음악 어법을 재해석한 《더 몽크 인 올 오브 어스》도 참신하다. 미국에 그렇게 뮤지션이 많아도 워낙 몽크가 특이해서 공식적인 후계자는 스티브 레이시 정도에 그친 점을 보면(그런 면에서 몽크의 연주는 MLB로 치면 너클 볼이라고나 할까?), 난 데 없는 드렉슬러의 몽크 타령은 분명 신선하고 또 주목할 만하다.

 

그밖에도 너무나 활동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므로, 이번에 소개할 《콘시너티 Concinnity》만 다루기로 하겠다. 이 단어는 자주 쓰이지 않기에 생소하게 여기는 분들이 많을 텐데,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첫째는 조화를 뜻하고, 둘째는 문체에 있어서 우아함을 뜻한다. 아마도 맥락을 봐서 첫번째를 의미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그룹의 제목이 《울리히 드렉슬러 첼로 쿼텟》임을 미뤄볼 때 첼로가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 짐작이 간다. 처음 이 음반을 보고 드렉슬러가 클래식을 열심히 공부한 첼리스트로 착각할 만도 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베이스 클라리넷을 불고, 드럼이 리듬 섹션을 커버하며, 무려 두 대의 첼로가 동원된다. 그 한 명은 오른쪽 채널에 나오는 리나 카치나리라는 여류 연주자이고, 그 반대편은 크리스토프 운터베르거라는 남성이다.

 

사실 첼로는 재즈 캄보에서 쓰이는 더블 베이스만큼 깊은 저역을 내지는 못하는 대신, 어느 정도 솔로 악기로서의 쓰임새가 있다. 바로 이런 점에 착안해서 본 앨범이 기획되지 않았을까 싶고, 그 내용을 보면 꽤 신선하고 또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프닝을 장식한 첫 곡 《Eternal》을 들으면, 이 밴드가 어떤 음악을 지향하는지 극명하게 드러난다. 포 비트 재즈의 기분좋은 리듬감을 바탕으로 천의무봉, 테크닉과 감성 양쪽에서 능수능란한 드렉슬러의 솔로가 이어진다. 이렇게 듣고 보니, 베이스 클라리넷이란 악기의 가능성이 상당함을 알 수 있다. 주로 저역 악기로만 알았는데, 고역부의 가능성도 높아 얼핏 들으면 알토 색소폰 정도의 대역을 듣는 듯하다. 기본적으로 환각적이고, 서정적인 맛이 있어서 쉽게 귀에 다가온다.

 

그런데 귀를 기울이면, 오른쪽 채널에서 더블 베이스의 역할을 첼로가 하고 있다. 가볍게 둥둥 뜯으며 리듬을 맞추고 있는데, 상당히 대역이 깊고, 차분하다. 또 한 대의 첼로는 주로 왼쪽 채널에서 솔로를 담당하는 바, 어떤 순간에는 드렉슬러의 위치를 점하기도 한다. 즉, 첼로를 담당한 크리스토프와 드렉슬러의 이중주와 같은 느낌이다. 또 첼로가 주가 될 땐 어딘지 모르게 현대 음악의 요소가 짙어, 이 부분이 또 신선하다.

 

이어지는 《See with Your Ears, Hear》를 들으면, 처음부터 두 대의 첼로가 부각되어 다소 난해한 멜로디 라인을 선보인다. 이 부분이 어딘가 코다이를 연상케도 한다. 하지만 드럼과 베이스 클라리넷이 가세한 순간 극적으로 리듬은 탱고가 되어, 구슬프고 비장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사실 탱고에는 아코디언이 필수지만, 이런 구성으로도 얼마든지 맛을 낼 수 있다. 점차 속도가 빨라져 클라이맥스로 이어질 때의 멋진 드렉슬러의 솔로는 막힌 체증을 뚫어버릴 정도로 시원스럽다.

 

한편 《Living Now》는, 각각 뜯고 긁고 하는 첼로들 사이로 쑤욱 바리톤 클라리넷이 돌출하는 바, 다소 산만하게 이런저런 악상을 이어가는데, 그 음들이 공간 여기저기를 아기자기하게 수놓는다. 상당히 신경 쓴 녹음인 것이다. 이윽고 차분하게 본격 연주에 들어가면 서정적이면서 따스한 느낌이 듣는 쪽을 릴렉스하게 만든다. 일종의 실내악과 같은 기분으로 만든 작품인 것 같다.

 

이런 구성으로 좀 더 빠른 템포로 연주한 《Trance》도 귀에 남는다. 서로 질세라 질주하는 관악기와 현악기의 앙상블도 흥미롭고, 그 바탕을 모던 재즈로 하되 클래식의 감각이 절묘하게 섞여서 듣는 이로 하여금 약간의 이질감을 느끼게 하는 대목도 유니크하다.  

 

 

그렇다. 어찌 보면 전형적인 쿼텟 콤보에서 더블 베이스를 첼로가 또 피아노나 기타를 첼로가 대신하는 아이디어인데, 바로 이런 대체만 갖고도 곡 자체가 럭셔리하고, 품위있게 다가온다. 또한 이 모든 세션을 이끄는 드렉슬러의 노련함과 내공은 역시 이 시대를 대표하는 재즈 뮤지션 중 한 명임을 절실히 깨닫게 한다. 여태 이런 형태의 재즈가 없었고, 그 내용에 있어서 충분히 설득력이 있으니 기회가 되면 꼭 들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