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새로운 인물, 새로운 기기의 등장은 언제나 가슴 설레는 것 같습니다. 2020년 새해 첫 번째로 열린 제305회 하이파이클럽 시청회에는 요즘 큰 화제를 모으고 있는 인티앰프가 등판해 애호가들의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이미 지난해 가을부터 예약판매 형식으로 선을 보인 웨이버사 시스템즈(Waversa Systems)의 초박형 네트워크 올인원 인티앰프 WSlim Lite(W슬림 라이트)입니다. 

워낙 입소문이 크게 난 터라 이날 시청회에는 평소보다 많은 회원 30여 분이 참석해서 두께 2cm의 인티앰프가 스피커 4종을 주무르듯 드라이빙하는 광경을 숨죽이며 지켜보셨습니다. 시청회는 1, 2부로 나뉘어 진행됐는데 1부는 W슬림 라이트에 대한 기기 소개 및 작동법, B&W 802 D3 구동 테스트, 2부는 다인오디오 Contour 20, 로저스 LS3/5A Classic, 펜오디오 Charisma Signature 구동 테스트 순으로 진행됐습니다. 특히 W슬림 라이트가 울린 스피커 4종에 대한 선호도 조사가 즉석에서 이뤄져 흥미로운 결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시청회 세팅

W슬림 라이트가 네트워크 렌더러까지 품에 안은 올인원 인티앰프라서 시청회 매칭 기기는 비교적 심플했습니다. 웨이버사의 W Smart Hub와 돌아가며 소리를 들려준 스피커 4종이었습니다. 눈길을 끈 것은 스피커케이블인데, 사전에 W슬림 라이트와 스피커들을 일일이 매칭한 끝에 선택된 중저가 모델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날 시청회에서 빠짐없이 좋은 소리가 나왔던 것을 보면 역시 오디오 기기 자체의 됨됨이와 매칭이 중요함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각 스피커와 W슬림 라이트를 연결한 스피커케이블은 다음과 같습니다. 

B&W 802 D3 Prestige Edition : 오디오퀘스트 Rocket 22(바이와이어링)

다인오디오 Contour 20 : 카다스 Parsec

펜오디오 Charisma Signature : 헤밍웨이 Western

로저스 LS3/5A Classic : 헤밍웨이 Western

웨이버사 WSlim Lite,

80W 출력의 네트워크 올인원 풀 디지털 인티앰프

W슬림 라이트는 80W 출력을 내는 풀 디지털 인티앰프이자, 룬 레디(Roon Ready) 네트워크 플레이어, FM 튜너(88~108MHz)입니다. 블루투스 4.0 apt-X와 DLNA, WNDR, 에어플레이도 지원합니다. 아날로그 입력단은 없지만 동축과 광, USB 입력단을 갖춰 최대 24비트, 384kHz(USB) PCM 음원까지 제대로 재생할 수 있습니다(동축은 192kHz, 광은 96kHz). 전원부는 외장 SMPS로부터 DC 24V를 끌어다 씁니다.

알루미늄 모노코크 구조의 외관은 그야말로 슬림하고 라이트합니다. 가로폭은 300mm, 높이는 20mm, 안길이는 190mm, 무게는 4.5kg에 불과합니다. 섀시 앞쪽에는 자그마한 표시창이 비스듬히 누워있고, 그 양옆에는 리모컨 수신 센서 창이 2개 달려있습니다. 오른쪽 상판에는 6개 버튼이 있는데,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전원 온 오프, 입력 선택, 볼륨 업, 볼륨 다운, 부가기능 1, 부가기능 2 버튼입니다. 후면은 양옆에 스피커 커넥터, 가운데에 이더넷 포트, USB-A, USB-B, 동축, 광 입력단자, DC 24V 입력 잭, 블루투스 안테나 잭, FM 안테나 잭이 있습니다. 

W슬림 라이트는 채널당 5W 출력의 디지털 앰프 8개를 PPBTL(Parallel Parallel Bridge Tied Load) 방식으로 결합해 80W를 냅니다. 브릿지 방식은 2개의 앰프가 하나의 스피커를 울리는 것인데, 핵심은 1개의 앰프에는 정위상의 신호가, 다른 1개의 앰프에는 역위상의 신호가 입력돼 한 스피커의 +단자와 -단자에 각각 물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 패럴렐 방식은 출력 임피던스가 반으로 줄어드는 이점이 있습니다. 결국 W슬림 라이트의 PPBTL 출력단은 채널당 앰프 4개를 병렬연결해 출력 임피던스를 대폭 낮춘 상태에서 이를 다시 브릿지로 결합해(8개) 출력을 최대 4배로 높인 설계로 보입니다. 

W슬림 라이트에서 짚고 넘어갈 만한 것은 웨이버사 풀 디지털 앰프나 DAC에서 꼭 빠지지 않고 투입되는 WAP(Waversa Audio Processor) 칩입니다. 웨이버사가 FPGA로 자체 설계한 이 WAP 칩은 고해상도 업샘플링 및 클럭 교통정리, 원본 신호 추정 등 다양한 역할을 합니다. W슬림 라이트에는 기존 WAP 칩 말고도 진공관 음색을 내주는  WAP/X(eXtension) 칩이 투입됐습니다. 

B&W 802 D3 Prestige Edition 매칭 테스트

Hans Zimmer & James Newton Howard

Aggressive Expansion

The Dark Knight: Original Motion Picture Soundtrack

우선 B&W 802 D3 프레스티지 에디션 스피커와 매칭 테스트를 해봤습니다. 영화 '다크나이트'의 메인 테마곡인 'Aggressive Expansion'을 들어보니, W슬림 라이트가 802 D3의 우퍼 2발을 확실하게 댐핑하는 모습이 확연합니다. 힘이 있으면서도 아주 정갈한 음이 나왔으며, 80W짜리 풀 디지털 앰프가 802 D3 내부를 팍팍 긁어서 소리를 내주는 듯합니다. 큰 음량에서도 음들이 찌그러지지 않는 점도 대단합니다. 낮은 출력 임피던스를 통한 화끈한 구동력만큼은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Anne-Sophie Mutter

Theme from Schindler's List

이어 안네 소피 무터가 연주한 영화 '쉰들러 리스트' 테마곡(Live from The Club Album Yellow Lounge)을 들어보면, 바이올린 연주는 충분히 야들야들하고 매끄러우며 입자가 곱습니다. 고음을 끝까지 그리고 단단하게 밀어주네요. 클래스 D 앰프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는 점도 마음에 듭니다. 소리가 투명한 것은 마치 300B 앰프를 듣는 것 같은데, 이는 진공관 애호가인 웨이버사의 신준호 대표가 신경을 써서 만든 WAP/X 칩 덕분으로 보입니다. 즉석에서 WAP/X 칩 기능을 오프시켜보니 음들이 약간 굵어지더군요. 그리고 다시 온 시키자 음의 끝자락을 잘 붙잡고 가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Rebecca Pidgeon - Spanish Harlem

The Raven

레베카 피전의 'Spanish Harlem'(The Raven)에서는 보컬의 잔향감, 퍼커션의 실체감, 음의 밀도감이 눈에 띄었습니다. 인티앰프치고는 무대가 넓게 그려지는 점도 대단했습니다. 무대가 확 트였고 음들이 시원시원하게 뛰쳐나오는 모습도 인상적이네요. 신청곡으로 게임 '파이널 판타지'의 테마곡 'One-Winged Angel'(Distant Worlds: Music From Final Fantasy)를 들어봤는데, W슬림 라이트가 802 D3 유닛을 시원시원하게 울려줬습니다. 유닛에 묻어있던 모든 먼지들이 다 떨어지는 듯한 쾌감이 들었습니다. 한마디로 정신이 번쩍 나는 음, 스피드가 빠른 음이었습니다. 오디오퀘스트의 바이와이어링 케이블인 로켓 22도 이 같은 음과 무대를 만드는데 크게 기여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스피커 4종 집중 비교

이어 802 D3 프레스티지 에디션을 비롯해 다인오디오 컨투어 20, 로저스 LS3/5A 클래식, 펜오디오 카리스마 시그니처 스피커에 대한 매칭 테스트를 본격적으로 해봤습니다. 2곡을 정해 연이어 스피커를 바꿔가며 W슬림 라이트의 구동력이라든가 스피커와의 궁합 등을 살펴본 것이죠. 시연곡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Thomas Newman 'Dead Already'(American Beauty)

Sebastian Bru & Stefan Stroissnig 'Elegie'(A Deux)

1. B&W 802 D3 Prestige Edition

먼저 'Dead Already'를 들어보면, 선명한 음들이 따박따박 나온다는 느낌입니다. 배음이 풍성한데도 음의 윤곽선에서 일절 색 번짐이 없는 점이 눈에 띄네요. W슬림 라이트의 해상력과 분해능, 스피커로부터 풍성한 저음을 이끌어내는 능력은 두고두고 칭찬할 만합니다. 'Elegie'에서는 첼로의 깊은 저역과 피아노의 단아한 음색이 단연 돋보입니다. 음의 밀도가 상당이 높고, 음수가 많으면서도 지저분하지 않은 점이 두드러집니다. 빌리 아일리시의 'Bad Guy'(When We All Fall Asleep, Where Do We Go?'에서는 심장을 가격해오는 저역의 양감에 깜짝 놀랐습니다. 

2. Dynaudio Contour 20

'Dead Already'를 들어보면 광대역 특성에서는 802 D3에 비해 밀리지만 음을 보다 안정적으로 밀어낸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대역 밸런스도 확실히 더 잘 잡혀있네요. 음이 보다 보드라워진 점도 특징입니다. 'Elegie'에서는 피아노 소리가 더 선명하게 잘 들렸고, 바이올린은 더 그윽한 음을 내줍니다. 신경질을 부리는 일 없이 아주 편안한 재생음이라 할 만합니다. 'Bad Guy'에서는 타이트한 음상과 함께 빽빽한 음수가 돋보였습니다. 이 곡에서는 무엇보다 802 D3 때보다 W슬림 라이트가 스피커를 보다 수월하게 구동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3. Rogers LS3/5A Classic

대역이 좁은 것은 맞지만 의외로 빠릿빠릿한 음을 들려줍니다. 하지만 앞서 들은 802 D3나 컨투어 20에 비해서는 무대의 개방감이라든가 탁 트인 느낌에서 밀리는 것 같습니다. 'Elegie' 역시 스피커의 꼿꼿한 자세는 마음에 들었지만 음의 풍성함에서 컨투어 20에 밀리는 모습이 파악됐습니다. 하지만 특별히 들어본 나윤선의 '베사메 무초'는 기름기가 싹 가시고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깨끗한 보컬에 베이스 연주까지 잘 들리는 등 반전 매력을 뽐냈습니다. 역시 이 스피커에는 보컬곡에서 유난히 강한 BBC LS3/5A의 DNA가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4. Penaudio Charisma Signature

'베사메 무초'는 그야말로 스피커 크기를 배반하는 넓은 무대가 펼쳐지고 해상력 역시 '자글자글'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를 만큼 일취월장한 모습입니다. 'Eligie'는 피아노와 바이올린 음 모두 대형기 느낌이 들 정도로 풍성하게 들렸고, 소릿결 역시 4기종 중 최고라는 생각이 들 만큼 매끄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한 회원분은 "저역이 잘 나온다"라고 즉석에서 멘트를 하시기도 했습니다. 'Dead Already' 역시 다이내믹스와 해상력 등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 이와 관련한 오디오적 쾌감이 상당했습니다. 음이 깨끗하고 무대가 투명한 점도 돋보였습니다. 

매칭 스피커 현장 선호도 조사

이렇게 스피커 4종과 W슬림 라이트를 번갈아가며 매칭을 해본 후, 거수 방식으로 4개 매칭에 대한 선호도 조사가 있었습니다. 4종 스피커 모두 만족스러운 사운드를 들려줬지만, 집계 결과 802 D3 프레스티지 에디션이 38.5%로 인기가 가장 높았고, 이어 로저스 LS3/5A Classic(30.8%), 다인오디오 Contour 20과 펜오디오 Charisma Signature(15.4%) 순이었습니다. 

2020년의 또다른 기대작,

BOP Quantum Field 깜짝 등판

시청회가 마무리되어갈 무렵, '무서운 신인' 소개가 있었습니다. 이번 W슬림 라이트 시청회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해줬던 BOP Quantum Field(퀀텀 필드)라는 전원 장치였습니다. BOP 퀀텀 필드는 하이파이클럽이 자체 개발한 액티브 마그네틱 쉴딩 및 접지 전원 장치로, 몇 년 전부터 몇 차례 하이파이클럽 시청회를 통해 그 매직에 가까운 음질 변화를 선사해오다 이날 마침내 완전체 외관을 공개한 것입니다. 

BOP 퀀텀 필드는 안에 리튬이온배터리가 들어간 DC 전원 장치로, 총 4개의 DC 케이블을 연결할 수 있습니다. 이날 시청회의 경우 W슬림 라이트의 파워케이블에 BOP 퀀텀 필드에서 출력된 DC 케이블 하나가 나선형 모양으로 감겨 있었습니다. 솔레노이드(Solenoid) 형태로 감긴 이 DC 케이블이 액티브 마그네틱 쉴딩 역할을 함으로써 주위 전원에서 방사되는 고조파와 EMI 노이즈를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원리입니다.

Esa-Pekka Salonen, Oslo Philharmonic Orchestra

Peer Gynt: In the Hall Of The Mountain King

즉석에서 이뤄진 AB 테스트에서 BOP 퀀텀 필드가 펼쳐 보인 사운드 개선 효과에 크게 놀라시는 눈치였습니다. 출시 가격과 시기, 사용법 등에 대한 질문이 시청회가 끝난 후 빗발쳤던 이유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에사-페카 살로넨이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페르귄트 중 'In The Hall Of The Mountain King'이었는데, BOP 퀀텀 필드를 투입했을 때 오케스트라가 밑으로, 합창단이 무대 위로 올라서는 모습이 두드러졌습니다. BOP 퀀텀 필드를 빼자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중간에서 마구 엉키는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Michael Jackson - Billie Jean

마이클 잭슨의 'Billie Jean'(Billie Jean) 초반 드럼 연주에서는 드럼 비터가 헤드를 때리고 쉘을 진동시키는 모습 하나하나가 잘 관찰됐습니다. 트랜지언트 능력이 크게 개선됨으로써 그 아주 세세한 음의 변화와 뉘앙스를 모조리 들려준 것이지요. 코드나 스펙트랄이 음의 피치와 음색, 사운드스테이지 내 이미지 등을 결정짓는 팩터로서 무엇보다 이 트랜지언트 능력을 강조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이 밖에 원 음악 신호를 일절 건드리지 않는 모습 등 유의미한 장점이 많아 새해 큰 화제를 모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시청회를 마무리하며

숨 가쁘게 진행된 305회 시청회였습니다. 웨이버사의 W슬림 라이트는 소문대로 강력한 드라이빙 능력을 뽐냈는데, 이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PPBPL의 낮은 출력 임피던스 설계가 일등공신 역할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300B처럼 맑고 투명하며 편안한 음색이 나온 것은 WAP/X 칩 덕을 봤겠지요. 어쨌든 이 얇고 가벼운 인티앰프가 룬 레디까지 지원하면서 802 D3를 부족함 없이 드라이빙하는 광경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이는 즉석에서 이뤄진 선호도 조사에서 당당히 1등 매칭으로 꼽힌 결과가 그대로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날 막판에 모습을 드러낸 BOP 퀀텀 필드는 새해 돌풍의 주인공이 될 예감이 들 만큼 강력한 사운드 업그레이드 효과를 보여줬습니다. 새해, 새 기기들과 함께 해서 더 즐거웠던 시청회였습니다. 시청회에 참석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