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회 시청회 후기
슬림 라이트를 위한 강력한 아날로그 솔루션, 웨이버사 W Slim DS
두께가 2cm에 불과한 앰프가 B&W 802 D3를 찰지게 구동하는 모습에 다들 놀랐습니다. 80W 출력의 이 디지털 앰프는 게다가 소스기기가 따로 필요 없었습니다. 랜케이블 하나 꽂고 스피커 연결하면 요즘 유행하는 타이달이나 코부즈 같은 스트리밍 음원을 마음껏 들을 수 있는 것이죠. 웨이버사 시스템즈(Waversa Systems)의 스트리밍 인티앰프 W Slim Lite 얘기입니다.
그런데 슬림 라이트는 아쉬운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디지털 입력단자만 갖춘 탓에 CD플레이어나 포노 스테이지로부터 아날로그 출력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이죠. 웨이버사는 이러한 아쉬움과 요구를 즉각 수용, 새 제품을 내놓았습니다. 최근 하이파이클럽 리뷰를 통해서도 소개가 된 W Slim DS입니다. 과연, 슬림 DS에는 어떤 기능이 포함됐고, 그 성능은 또 어느 정도일까요. 제315회 하이파이클럽 시청회는 이 슬림 DS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W Slim DS의 탄생
W Slim DS는 DS(Docking System)라는 뜻 그대로 슬림 라이트와 연결을 전제로 탄생한 보조 장치입니다. 사이즈가 둘이 똑같아 둘을 포개놓으면 완전 깔맞춤입니다. 이를 위해 슬림 DS 상판 네 귀퉁이에는 슬림 라이트 고무발을 올려놓게끔 둥근 홈이 파여있죠.
웨이버사는 ‘아날로그 입력단을 갖춘' 도킹 시스템이라는 큰 그림을 그린 후, 몇 가지를 더 추가했습니다. 웨이버사가 이미 일가를 이룬 MM/MC 포노스테이지를 아예 슬림 DS 안에 마련한 것이죠. 어차피 밸런스(XLR)와 언밸런스(RCA) 입력단자를 마련하는 만큼, RCA 단자가 포노 단자를 겸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던 것이죠.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웨이버사의 신준호 대표는 HDD 혹은 SSD를 장착해 슬림 DS에게 뮤직서버 역할까지 맡겼고, 크롬캐스트나 TV와 연결할 수 있는 HDMI 입력단자와 HDMI 출력 단자를 집어넣었습니다. 게다가 요즘 유행하는 HDMI ARC(Audio Return Channel) 프로토콜까지 지원키로 했습니다.
슬림 DS에는 웨이버사가 자랑하는 고해상도 업샘플링 및 클럭 관리, 원본 신호 추정 프로세서 WAP(Waversa Audio Processor), 재생음에 진공관 배음 특성을 가미해 주는 프로세서 WAP/X가 보다 강력한 스펙으로 장착되었습니다. 여기에 프리아웃 기능과 6.3mm 헤드폰 잭까지 마련한 팔방미인이 바로 슬림 DS입니다.
W Slim Lite와 W Slim DS의 연결
두 제품은 3개 케이블로 연결됩니다. USB A(슬림 라이트)-USB C(슬림 DS) 케이블, 동축 케이블, 전원 케이블(슬림 라이트 In, 슬림 DS Out)입니다. USB 케이블은 컨트롤용이고, 동축 케이블은 디지털 음악 신호 전송용이죠. 그리고 메인 전원은 어댑터를 통해 슬림 DS에만 공급됩니다. 3개 케이블은 기본 제공됩니다.
슬림 DS 후면을 보면 둘의 연결 관계 및 DS의 실체를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왼쪽부터 개발 및 서비스용 USB A 단자, HDMI IN 단자, HDMI OUT(ARC) 단자, 컨트롤용 USB C 단자, 동축 IN/OUT 단자, XLR 입력단자, RCA 입출력 단자, 포노 접지단자 순입니다. HDD 또는 2.5인치 SSD는 하단에 장착하게끔 돼 있습니다.
슬림 DS 포노단 성능은?
하이파이클럽 제1시청실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된 슬림 DS 시청회에는 제 짝인 슬림 라이트와 함께 클리어오디오(Clearaudio)의 오베이션(Ovation) 턴테이블, B&W의 802 D3 스피커가 동원됐습니다. 오베이션 턴테이블에는 역시 클리어 오디오 제품인 9인치 클래리파이(Clarify) 톤암과 탈리스만 V2 골드(Talismann V2 Gold) MC 카트리지가 장착됐습니다.
슬림 DS는 기본적으로 자신에게 들어온 아날로그 입력신호를 모두 디지털 신호로 컨버팅해 슬림 라이트에 보내줍니다. ADC(Analog Digital Converter)가 내장된 것이죠. 디지털 신호로 컨버팅된 후에는 다시 24비트, 176.4kHz로 업비트, 업샘플링됩니다.
슬림 DS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끝난 후 곧바로 LP 시청에 들어갔습니다. 가장 궁금했던 것이 바로 슬림 DS의 포노단 성능이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시청회에 참석하신 회원분들 중에는 슬림 라이트 자체를 처음 접한 분도 계셔서 그 화끈한 구동력에 깜짝 놀라신 표정이었습니다.
WAP/X AB 테스트
포노단을 갖춘 슬림 라이트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WAP/X 레벨을 총 3단계 모드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디폴트인 MD1을 비롯해 MD2, MD3이죠. 시청회에 앞서 테스트를 해보니 MD3을 선택했을 때 가장 편안한 소리가 나왔고 무대의 입체감이라든가 음상의 정교함이 두드러졌습니다. 다만 게인은 상대적으로 낮아진 듯했습니다. WAP/X와 관련해 신준호 대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WAP/X는 음원에 포함된 배음을 증대시키는 알고리즘이다. 이러한 과정이 필요한 이유는 녹음과 디지털화 과정에서 소실된 배음을 살려야 실제와 같아지기 때문이다. 없는 배음을 단순히 넣으면 이는 노이즈다. 현재 WAP/X는 32차 배음까지 구현할 수 있는데, 통상 진공관의 2차 배음 구조를 보면 2차에서 4차로 넘어갈 때 큰 폭으로 떨어진다. 4차 배음이 상대적으로 심하게 소실된다는 이야기다."
슬림 DS에 적용된 WAP/X 각 모드는 다음과 같습니다.
MD1 : 웨이버사가 사전에 세팅한 2~32차 배음 그래프로 작동합니다.
MD2 : MD1에서 2차와 4차 배음을 증폭한 세팅입니다.
MD3 : MD2에서 4차와 8차 배음을 추가 증폭한 세팅입니다.
슬림 DS는 이처럼 음질에 큰 변수로 작용하는 WAP/X를 3단계 모드와 오프(OFF) 모드 중에서 선택할 수 있지만, 슬림 라이트는 WAP/X를 온 또는 오프만 선택할 수 있습니다.
Diana Krall - California Dreamin
Wallflower
시청회 첫 곡은 이러한 WAP/X 효과에 대한 AB 테스트로 시작했습니다. 먼저 WAP/X MD3으로 들어보면, 일단 슬림 DS의 포노단이 제 몫을 해준다는 인상입니다. 온기가 베어 있으면서도 음수가 풍성하고, 여기에 해상력까지 갖춘, LP 재생에서 기대하는 거의 모든 덕목들이 차분하게 펼쳐집니다. 음 끝이 오래가는 점도 눈에 띄네요. 이어 WAP/X 기능을 꺼버리면, 음들이 억세지고 단조로워지는 모습이 확연합니다. 일부 음들은 대열에서 상당히 많이 이탈했다는 느낌도 듭니다. 배음을 건드리면 이 정도로 재생음의 느낌이 달라진다는 사실이 놀랍고, 이런 음질 변화를 디지털로 구현하려 했다는 발상이 더 놀랍습니다.
다이내믹 레인지 AB 테스트
슬림 DS 포노단에는 또한 게인 세팅을 세밀히 할 수 있는 기능이 있습니다. 디지털 신호로 바뀐 포노 카트리지 신호를 상대로, WAP를 통해 노이즈를 낮추고 세세한 게인 세팅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한 것이죠. 게인 설정의 경우 '다이내믹 레인지' 값을 -6dB, -4.5dB, -3dB, -1.5dB, 0dB, +1.5dB, +3dB, +6dB 중에서 고를 수 있습니다. 통상 MM 게인이 40dB, MC 게인이 60dB인 만큼 해당 값을 선택하면 그만큼 가감이 되는 구조입니다.
이와 관련한 팁으로, 신준호 대표는 "클리핑이 발생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장 높은 게인을 유지하면 디지털화 과정에서 최대한의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Dire Straits - Sultan of Swing
Dire Straits
시청회 2번째 곡인 '술탄 오브 스윙'으로 이러한 다이내믹 레인지 값의 변화에 따라 소리가 어떻게 바뀌는지 짚어봤습니다. 먼저 디폴트인 3단계(-3dB)인 상태에서 들어보면, 이 곡 특유의 에너지와 톡톡 맺고 끊는 느낌이 잘 살아납니다. 확실히 슬림 라이트는 이번 슬림 DS를 통해 '포노스테이지'라는 날개를 얻었습니다. LP 음원 특유의 매끄러움과 음악적 흥겨움이 가득한 재생이었습니다. 이어 다이내믹 레인지를 '+3dB'로 바꾸면 에너지감과 라이브 연주의 생생함이 몇 곱절 늘어나네요. '+6dB'로 높이면, 음들이 거의 앞으로 다 튀어나오는 듯합니다. 취향이나 곡 장르에 따라 선택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전원부 깜짝 AB 테스트
이번 시청회에는 '작은 초대 손님'이 있었습니다. 슬림 라이트와 슬림 DS 옆에 자리 잡은 작은 전원 장치인데, 웨이버사가 시청회 바로 전날 투입시킨 히든카드입니다. 아직 정확한 스펙이나 내부 설계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배터리 전원부가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원래 어댑터 대신 이 전원부 출력 케이블을 슬림 DS에 꽂으면 됩니다.
방탄소년단 - Dynamite
Dynamite
지금까지 시청곡은 모두 이 전원부가 투입된 상태에서 들었습니다. 방탄소년단의 '다이너마이트'도 마찬가지였죠. 하지만 이 곡은 LP가 아니라, 그러니까 슬림 DS를 이용하지 않고 슬림 라이트만을 이용해 룬(Roon) 스트리밍 음원으로 들었습니다. 번개가 내리치는 듯한 엄청난 다이내믹스와 802 D3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화끈한 구동력이 역시 슬림 라이트답습니다. 음이 펄펄 살아있습니다. 이 상태에서 전원부를 빼고 원래 어댑터를 투입하면, 음이 갑자기 뭉뚝해지고 고역의 깨끗한 맛이 줄어듭니다. 저역 역시 탁해지고, 전반적인 해상도가 크게 주저앉네요. 다시 전원부를 투입하면 음의 윤곽선이 선명해지고 파워가 늘며 노이즈가 줄어드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습니다.
시청회 조연 : 클리어오디오 Ovation 턴테이블
시청회 내내 슬림 DS에 물렸던 오베이션 턴테이블은 DC 모터가 서브 플래터를 플랫 고무벨트로 돌리는 리지드 타입 턴테이블입니다. 외관을 보면 가격대에 비해 수수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군더더기 없이 다부진 모습입니다. 메인 플래터는 두께 40mm의 POM(폴리옥시메틸렌. Polyoxymethylene), 서브 플래터는 알루미늄 재질을 썼습니다. 관성 모멘텀을 늘리기 위해 서브 플래터 둘레(rim)를 더 무겁게 한 것이 특징이죠. 메인 베어링은 클리어 오디오의 시그니처라 할 세라믹 마그네틱 베어링(CMB)입니다.
CMB(Ceramic Magnetic Bearing)는 클리어 오디오가 고안, 2003년에 특허를 받은 베어링 설계로 자석의 반발력을 이용해 플래터를 플린스로부터 사실상 공중부양하는 구조입니다. 섀시는 알루미늄 상판과 하판 사이에 방탄 나무라고 불리는 팬저홀츠(Panzerholz)를 집어넣어 공진을 최소화하고 있습니다.
오베이션에는 역시 클리어 오디오 제품인 9인치 클래리파이(Clarify) 톤암과 탈리스만 V2 골드(Talismann V2 Gold) MC 카트리지가 장착됐습니다. 클래리파이는 톤암 베어링이 비접촉 마그네틱 방식인 점이 가장 눈길을 끌며, 탈리스만 V2 골드 카트리지는 24K 금 코일을 요크에 좌우 대칭 형태로 감아 채널 분리도를 높였습니다. 출력은 0.6mV, 권장 침압은 2.8g, 내부 임피던스는 50옴을 보입니다.
LP vs 스트리밍 비교 테스트
오디오 애호가라면 한 번쯤 해보셨을 것입니다. 같은 곡을 LP와 디지털 음원으로 비교 청취하는 것이죠. 시청회 2부는 바로 이러한 맞비교 시청으로 진행됐습니다. 슬림 DS의 포노단을 이용한 LP 소리와, 슬림 라이트만을 이용한 스트리밍 음원 재생은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요?
Arne Domnerus - High Life
Jazz At The Pawnshop
먼저 LP로 들어보면, 생기가 넘치고 발랄한 무대가 확 펼쳐집니다. 무대를 메운 악기들의 앞뒤 레이어감과 에너지가 돋보이며, 음들 하나하나가 말쑥하고 깨끗한 점이 눈길을 끕니다. 건조하고 까칠한 것과는 거리가 먼 재생음이네요. SN비도 높습니다. 이어 룬(Roon) 스트리밍 음원으로 들어보면, 의외로 무대가 넓고 저음의 타격감이 생생해집니다. 탬버린 소리도 더욱 선명하게 들립니다. 디지털 음원이 무척 선전하고 있다는 인상이며, 이러한 음과 무대를 더 좋아하실 분들도 많으실 것 같습니다. 다시 LP로 들어보면, 무대의 좌우 폭은 상대적으로 좁아지지만 뎁스는 살아나며 악기들의 레이어가 보다 촘촘하게 펼쳐지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총평
시청회에서 여러 LP를 들어보면서 2020년 화제작 W 슬림 라이트가 W 슬림 DS라는 천군만마를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날로그 입력단이 추가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MM/MC 포노스테이지까지 생기고, WAP/X와 게인 조절을 통한 자신만의 마스터링 음원을 만들 수 있는 재미까지 얻게 되었으니까요. 시청회에서 직접 테스트는 못해봤지만 W 슬림 DS에는 헤드폰 앰프와 HDMI 인터페이스까지 갖췄습니다.
시청회를 마무리하면서 변진섭의 '희망사항'을 LP로 들었습니다. 1989년에 나온 LP인데도 보컬과 악기의 분리도가 뛰어나고 고음이 활짝 열려 음악을 듣는 맛이 대단했습니다. 피아노의 건반 음마저 생생하게 들리더군요. 시청회에 참석하신 50, 60대 회원분들은 어느덧 회상에 잠기시는 모습이었습니다. 디지털 음원에서는 좀처럼 맛볼 수 없는 '그때 그 촉감'을 맛볼 수 있다는 점이 아날로그 음원이 전해주는 최대의 매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시청회에 참석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