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스가 다른 메이커 클라세의 드라마틱한 여정
Classe


차원이 다른 앰프의 출현

마이크 비글라스(Mike Viglas)

때는 1980년대 초.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어느 대저택. 한 중년의 사업가가 자신의 성공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성대한 파티를 열고 있었다. 그 이름은 마이크 비글라스(Mike Viglas). 원래 그는 캐나다가 아닌 그리스 태생이다. 가난하고, 살기 힘든 고국을 떠나 부푼 꿈을 안고 1950년대에 캐나다에 온 그는 이후 60년대부터 70년대에 이르기까지 자동차 세일즈 분야에서 혁혁한 성과를 거뒀다. 특히, 포드 트럭에 관한 한 압도적인 실력을 뽐내 전 캐나다 딜러 중 톱에 속할 정도였다. 말 그대로 자수성가한 분이다.

사실 포드라는 브랜드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승용차 부문에서 신통치 않기 때문이다. 대신 픽업트럭 쪽에서는 압도적인 강자다. F150과 F350 시리즈는 지금 서서히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데, 험지를 가볍게 주파할 수 있는 능력에다가 캠핑카 시장에서도 중심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픽업트럭 위에 얹는 캠핑 박스는 랜스라는 회사가 최고인데, 모두 포드를 기반으로 한다. 또 포드 트럭을 개조해 모터 홈으로 성공한 코치맨 역시 미국 최고의 판매량을 자랑하고 있다. 단순한 차박을 넘어서서 캠핑카로 뭔가를 해보려는 분들에게 포드의 픽업트럭은 선택이 아닌 필수인 것이다.

하지만 이날 밤에 불운한 사고가 터진다. 한참 잘 작동하던 진공관 앰프가 과열되어 그만 불이 나고 만 것이다. 결국 음악이 없이 파티를 마무리 짓는 참담한 결과가 이어졌다. 마이크는 절망한 끝에 이제는 이런 트러블이 없는 앰프를 구하겠다고 다짐한다. 그 결심은 결국 당시 참신한 아이디어와 기술로 주목을 받던 클라세(Classe) 앰프와 연결된다. 이 만남은 클라세뿐 아니라 마이크 또 클라세의 창업자이자 메인 디자이너인 데이빗 리치(David Reich)의 삶까지 송두리째 바꿔버리고 말았다. 이날 밤의 비극적인 파티는 또 다른 탄생과 축복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사건이라 하겠다.


데이빗 리치, 댄 다고스티노 그리고 넬슨 패스

왼쪽부터 데이빗 리치(David Reich), 댄 다고스티노(Dan D'Agostino), 넬슨 패스(Nelson Pass)

클라세의 초기 역사를 추적하면 두 명의 인물을 필연적으로 만나게 된다. 한 명은 전술한 마이크로, 실질적으로 클라세를 이끌면서 2010년까지 꿋꿋하게 회사를 지킨 인물이다. 또 한 명은 데이빗 리치. 클라세를 창업해서 초기 걸작인 DR 시리즈를 발표한 전설적인 엔지니어다. 이제 데이빗에 관해 알아보기로 하자.

원래 리치는 대학에서 전자 공학을 전공했다. 당연히 오디오에도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졸업 무렵이던 1970년대에 캐나다의 오디오 산업은 신통치 않았다. 그중 퀘벡에 자리한 데이튼 라이트(Dayton Wright)라는 스피커 회사가 꽤 유명했다.

사실 어지간한 유명 오디오 브랜드는 우리나라에 대부분 소개되어, 이 회사 이름이 낯설지 않아야 하지만, 정작 그렇지는 못하다. 왜냐하면 이 회사의 주력 모델이 모두 정전형이었기 때문이다.

정전형? 그렇다. 쿼드나 아포지를 생각하면 된다. 특히, 이 회사는 강력한 구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일정하게 전기를 흘려 넣는 장치가 필수였다. 이 부분을 개발하기 위한 엔지니어로 데이빗이 발탁된 것이다.

하지만 70년대 말이 되어 회사는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고, 그래서 결국 데이빗은 퇴사하게 된다. 한데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여기에서 근무하던 또 다른 천재가 한 명 있었으니, 바로 댄 다고스티노다. 둘은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나와서 각각 캐나다와 미국 코네티컷에서 별도의 회사를 차리게 되었으니 그게 바로 클라세와 크렐이었던 것이다.

두 회사는 공통점이 많다. 일단 구동이 까다로운 정전형 스피커를 다루면서, 앰프에 가해지는 혹독한 환경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얻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앰프 설계자들이 그냥 앰프 자체의 기술 개발에 머문다고 한다면, 이들은 스피커와 연결했을 때의 문제나 구동력까지 감안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그 답안으로 클래스 A 설계를 추구했다는 것이다. 정공법으로 제대로 설계하면 클래스 A 앰프는 어떤 혹독한 저 임피던스의 환경에서도 견딘다. 물론 발열이라던가 사이즈 문제 등이 있지만, 1980년대 당시 아포지라던가 마틴 로건과 같은 정전형이 큰 인기를 얻고 있었고, 일반 박스형 스피커도 저 임피던스 문제가 따라붙던 시절이었다. 거기에 클라세와 크렐은 모범 답안을 내놓은 것이다.

한편 이 시기에 클래스 A 앰프의 강자 넬슨 패스도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아직 자기 회사는 품지 못했지만, 포르테 오디오 및 스레숄드에서 착실히 실력을 쌓고 있었다. 1980년대의 앰프 이야기를 할 때 당연히 스타는 마크 레빈슨이지만, 이 세 사람 역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다.


DR 시리즈의 성공이 가져다 준 빛과 그림자

예나 지금이나 오디오 회사는 엔지니어가 시작하지만, 결국 전문 경영인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특히, 자금력이 풍부한 스폰서를 만나게 되면, 저절로 기량이 일취월장하게 되고, 브랜드의 파워도 커진다. 그렇지 않은가?

왼쪽부터 클라세 DR-2, DR-3 파워앰프, DR-6 프리앰프

그러므로 클라세가 1980년에 문을 열었지만, 마이크가 본격적으로 경영을 담당한 85년이 되어서야 두각을 나타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때 DR 시리즈가 나왔다. DR-2, DR-3 등의 파워와 DR-6 프리는 큰 인기를 거뒀다.

이때 미국에서는 크렐과 쓰레숄드 등이 클래스 A 설계로 주목을 받았으며, 그런 흐름 덕분에 클라세도 성공적으로 북미 시장에 안착하게 된다. 무엇보다 당시 꿈의 앰프였던 마크 레빈슨 못지않은 퍼포먼스를 갖고 있으면서 가격은 그 절반 아니 30%에 불과했으니, 애호가 입장에서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DR 시리즈의 성공은 회사에 분열을 몰고 오기도 했다. 전문경영인으로 사업이 뭔지 않은 마이크는 사세의 확장을 원했고, 골수 엔지니어인 데이빗은 보다 기술 전문적인 회사로 키우려고 했다. 둘 사이에 결국 다툼이 일어난 끝에 데이빗은 1991년에 퇴사하고 만다. 이후 그는 2000년에 세타 디지털의 칩 엔지니어로 부활하게 되는데, 언제 기회가 되면 그에 대한 기사를 쓰고 싶다.

그럼 이렇게 엔지니어를 잃어버린 클라세는 어떻게 되었을까? 실은 마이크에게 대안이 있었다. 너무나 대범한 아이디어라 당시로써는 누구도 납득하지 못했지만, 이후의 역사가 증명하듯 그 결정은 옳았다. 역시 큰 사업가는 사람을 보는 안목도 남다른 모양이다.


베트남계 엔지니어의 대활약

낭 응우엔(Nang Nguyen)

1987년에 클라세에 입사한 낭 응우엔(Nang Nguyen)이라는 분이 있다. 오디오를 잘 모르고, 당연히 설계도 서툴렀던 인물이다. 하지만 사람 보는 안목이 탁월했던 마이크는 생각이 달랐다. 될 성싶은 떡잎이라고 본 것이다.

그래서 본인이 앞장서서 낭으로 하여금 엔지니어 수업을 받게 하고, 전문적인 대학 교육까지 시켰다. 그런 노력이 결국 제2기 클라세를 이끌면서 진짜 황금기를 맞이하게 된다. 즉, 데이빗 리치라는 탁월한 엔지니어를 잃었지만, 그 대안으로 역시 빼어난 실력자를 확보한 것이다.

왼쪽부터 클라세 CP-60, CA-400

이래서 나온 것이 바로 CA 시리즈. 클라세 오디오의 준말이다. 중급대의 가격이지만, 성능이  뛰어났다. 90년대에 동사가 하이파이 업계를 주름잡는 브랜드로 자리 잡게 한 효자 상품이었던 셈이다.

디자인도 심플하고, 다양한 가격대의 모델도 있으며, 가성비도 좋았으니 어찌 시장에서 환영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금 돌이켜보면, 이런 중가의 강자가 결국 실질적인 오디오파일의 동반자가 아니었나 싶다. 현재는 아주 고가던가 아니면 아예 저가던가, 아무튼 중간 지대의 제품들이 설 자리를 잃은 상황이다. 그러므로 90년대의 찬란한 오디오 시장을 되돌아보면 역시 중가의 제품들이 가진 역할이 새삼 그립기는 하다.

하지만 클라세가 이런 중가 정도에서 그쳤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드디어 창업 때부터 쌓아놓은 실력을 한껏 발휘할 제품이 나왔으니 바로 오메가 시리즈다. 일명 오메가 프로젝트로 불린 이 시리즈는 본격적인 하이엔드 시장을 공략하는 제품이 되었다. 덩치도 크고, 출력도 높으면서, 왜곡이 극히 적은, 전형적인 하이엔드용 모델이었다.

클라세 오메가(Omega) 파워앰프

특히, 1998년에 나온 오메가 파워는 당시 인기 있었던 윌슨의 와트퍼피 5 시리즈와 이글스톤웍스의 앤드라 등과 잘 어울렸다. 일본 <스테레오 사운드>의 필자 미우라 상이 자택에서 애용한 것을 계기로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바 있다. 이것은 후일 오미크론 시리즈로 진화하면서 90년대 말을 멋지게 마무리한다.

한편 이 시기에 크렐은 FPB 시리즈를 냈고, 넬슨 패스는 독립해서 패스 랩을 설립, 저 유명한 알레프 시리즈를 런칭한다. 클래스 A 방식에 대한 다양한 접근은 시장을 정말 풍요롭게 했다. 지금도 중고 시장에서 이런 제품들은 높은 인기를 구가 중이다. 하이엔드 오디오의 로망이 한껏 충만했던 시절이 아닌가 되돌아보게 된다.

그런 와중에 아발론과 교류도 이어진다. 이 회사를 주재하는 닐 파텔씨는 기본적으로 엄청난 오디오파일이다. 스피커뿐 아니라 앰프와 소스기에도 조예가 깊고, 음악에 대한 지식도 방대하다. 당연히 콧대도 높다.

그런 닐이 클라세에 직접 연락한다. 당시 그는 새 천년을 맞이하여 센티넬이라는 거대한 스피커를 구상 중이었다. 너무 큰 나머지 차라리 우퍼는 파워를 따로 장착한 모델이 좋지 않을까 고민하던 중이었다. 그러자면 전문적인 앰프 제조사와 협력이 필요했다. 당시 그의 감식안으로는 클라세가 제일 좋았다. 그래서 연락한 것이다. 결국 양사의 협력으로 이 프로젝트는 보기 좋게 성공한다.


B&W의 인수

이즈음 클라세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당시 B&W는 노틸러스 시리즈를 발표하면서 스피커 업계의 강자로 우뚝 서기에 이른다. 그 위상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당시 그 회사를 인수한 분은 조 앳킨스(Joe Atkins)였다. 캐나다 출신이다. 그러므로 같은 캐나다 출신의 클라세를 눈여겨 봐왔다. 그가 생각하기에 앰프 회사까지 인수하면 B&W와 좋은 시너지 효과를 거둘 것이라 봤다.

데이브 노버(Dave Nauber)

이래서 2001년에 본격적인 지분 참여가 이뤄진다. 하지만 마이크의 체제는 유지하는 조건이었다. 그러면서 경영을 돕기 위해 데이브 노버(Dave Nauber)라는 분을 영입하기에 이른다.

개인적으로 데이브 노버와는 몇 번 만난 적이 있다. 무척 젠틀한 분으로, 함께 차 한잔하면 절로 미소가 나온다고 할까? 상대방을 늘 배려하고, 어떤 주제든 알기 쉽게 설명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클라세 때문에 인터뷰했다가 나중에 수차례 만나면서 일종의 지인 관계가 형성되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보다 심도 있는 인터뷰를 해보고 싶기도 하다.

여기서 잠시 그에 대해 소개해보면, 원래 캐나다 인이 아닌 미국인이다. 시카고 인근에 있는 일리노이 주립대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오디오와 음악에 관심이 많았으므로, 이 지역의 커다란 오디오 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본격적인 오디오 경력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참고로 이 숍의 운영자는 후일 B.A.T.(Balanced Audio Technology)의 창업에 관여한 바 있다. 실질적으로 재정을 담당했던 것이다. 그 정도로 안목이 있고 또 실력이 있는 숍이었다.

여기서 데이브는 마케팅 분야에서 큰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오디오와 비디오 쪽 인스톨에서 탁월한 성과를 이뤄냈다. 졸업 후, 당대 최고의 앰프 메이커인 마크 레빈슨에 입사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었다.

여기서 그는 마케팅뿐 아니라, 엔지니어링, 세일즈, 리서치 등 여러 분야에서 두루두루 활약한다. 이런 경험은 후일 클라세에도 큰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는 마크 레빈슨뿐 아니라 프로시드에서도 활동하면서 홈과 스튜디오 양쪽에서도 넓은 경험을 얻게 된다.

아무튼 데이브가 오면서, 차곡차곡 클라세는 보다 메이저 회사다운 면모를 갖추게 된다. 특히, 디지털과 CD, DAC 분야에 과감한 충원이 이뤄진다. 앰프 부문에는 이미 낭 응우엔이라는 최고의 엔지니어가 있었으므로, 부족한 부분에 대한 보강이 이뤄진 것이다.

그 결과 일단 데이브를 통해 마크 레빈슨에서 전설적인 CD, DAC인 31.5/30.6을 디자인한 톰 칼라타이어트가 영입된다. 어디 그뿐인가? 개인적으로 단품 CDP로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고 평하고 싶은 린의 CD12를 디자인한 앨런 클락도 들어온다. 거의 드림 팀에 가까운 수준이다.

모튼 워렌(Morten Warren)

앰프의 외관도 절로 업그레이드되었다. 그 디자이너가 바로 모튼 워렌. 이미 B&W의 노틸러스 800 시리즈라던가 시그너처 800을 디자인했으며, 후일 제플린에도 멋진 솜씨를 발휘했다.

그 덕분에 2003년, 클라세는 완전한 탈바꿈을 하며 대망의 델타 시리즈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여기서 델타는 “difference”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즉, 타사의 제품과 차별화되는, 우수한 품질과 내용을 자랑하는 제품이라는 뜻이다.

당연히 프리, 파워뿐 아니라 CDP, DVD 플레이어, 멀티채널 프로세서 등 오디오와 비디오 모두를 아우르는 제품군을 확보하기에 이른다.

사실 2000년대 초반은 이른바 홈시어터의 전성시대로 기억해도 좋다. DVD가 런칭되고, 본격적인 디지털 기술이 도입되면서 5.1 서라운드 음향이 보급되고, 리어 스피커와 센터 스피커의 존재가 낯설지 않은 시대에 돌입한 것이다. 단, 그 시장이 주로 일제 AV 리시버로 커버되는 현황이었으니, 하이엔드급 제품으로 무장한 클라세는 정말 절묘한 포지션을 확보한 셈이다.

사실 이 시기엔 여러 하이엔드가 이쪽 시장에 뛰어들기도 했다. 크렐과 마크 레빈슨 등이 대표적이다.

한편 클라세는 B&W 노틸러스 800 시리즈와 매칭도 좋아서, 이 스피커들이 전문 스튜디오에 납품될 때 클라세는 당연히 파트너로 소개되어 따라갔다. 애비 로드 스튜디오가 대표적이다. 지금도 그때 사진을 쉽게 접할 수 있을 만큼, 이 시리즈의 전성기에 멋진 동반자가 되었다.

B&W 제플린(Zeppelin)

이런 협업의 절정은 바로 제플린에서 발휘된다. 당시 애플에서 아이팟이 소개되면서 휴대용 뮤직 디바이스가 인기를 끌었고, 그것을 본격적으로 재생하는 제품으로 런칭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클라세는 앰프, DAC 등을 설계했고, B&W는 스피커를 담당했다. 말하자면 이 작은 몸체 안에 B&W, 클라세, 마크 레빈슨, 린 등의 고급 기술이 투입된 것이다. 당연히 시장의 반응이 뜨거웠고, 지금도 제플린은 업그레이드를 이뤄가며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

2010년이 되면, B&W는 마이크에게서 클라세에 대한 지분을 100% 사들인다. 이즈음 마이크는 고령이 되어 더 이상 경영에 관여할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은퇴 수순이 이어지고, 그 후임으로 데이브 노버가 운전대를 쥐게 된 것이다.

이 시기에 델타 2 시리즈가 런칭되어 B&W의 800 시리즈를 커버하는 대신 시그마 시리즈도 함께 출시해서 600과 700 시리즈와 매칭한다는 전략을 내세운다. 하지만 B&W 외에도 다양한 스피커와 좋은 매칭을 보였으므로, 클라세의 성가는 계속 올라갔다.


소유권의 혼란과 찬란한 부활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클라세에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들려온다. 그 시기가 바로 2016년. 당시 미국의 IT 벤처 기업이 B&W를 인수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 주역은 우리의 LS 그룹 가계의 일원인 구본웅 씨가 관여한 포메이션이라는 벤처 그룹이다. 여기에 속한 에바 오토메이션에서 당시 2,500억이라는 거금을 들여 B&W를 사들인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보기에 클라세는 별로 매력이 없었다. 결국 2017년 10월 클라세를 없애기로 결정한다. 졸지에 뿔뿔이 흩어진 상황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 배의 선장인 데이브는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여러 채널을 통해 인수자를 찾은 바, 다행히 3개월 후 사운드 유나이티드라는 새 주인을 만날 수 있었다. 이 회사는 이미 마란츠, 데논 등이 포진한 D&M 홀딩스를 사들인 바 있으니, 클라세와 같은 알짜 기업을 놓칠 리 없었다.

이후 2018년에 회사는 캐나다 몬트리올 인근으로 이사한다. 대신 철저하게 R&D 중심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일종의 연구소라고나 할까? 대신 생산은 일본의 D&M 홀딩스가 운영하는 공장에서 담당하기로 한다.

클라세 델타(Delta) 시리즈

이렇게 주인이 바뀌고, 회사 체계가 바뀌면서 어수선한 가운데, 여러 루머도 많았다. 실질적으로 클라세가 공중분해된 것이 아니냐, 라는 수군거림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비웃기라도 하듯, 드디어 2020년 초에 3세대 델타 시리즈를 런칭하며 찬란한 부활에 성공한다.

클라세 델타 프리

현행 델타 시리즈의 제품은 3종이다. 프리와 스테레오, 모노 블록 파워가 그 주인공이다. 프리로 말하면 전통적인 아날로그 프리에 MM, MC 카트리지를 커버하는 충실한 포노단을 달았고, 아울러 DAC 부도 장착했다. 이로써 다양한 디지털 입력을 확보했으며, 특히 스트리밍의 빼어난 기능은 주목할 만하다. 확실히 이 시대에 필요한 프리앰프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클라세 델타 모노

한편 파워 앰프는 일정 부분을 클래스 A 방식으로 작동되게 한 점이 흥미롭다. 요즘 시대에 풀 클래스 A 방식은 힘들더라도 일부분만 처리하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클라세의 오랜 라이벌인 패스가 X 시리즈에서 이런 수법을 사용하는 것도 흥미롭다.

클라세 델타 스테레오

덕분에 스테레오의 경우 8 옴에 채널당 250W를 내지만, 12.5W까지는 클래스 A 방식으로 작동한다. 한편 모노의 경우 300W 출력에 클래스 A는 35W까지 처리한다. 과거 클래스 A 방식으로 시작한 회사의 아이덴티티를 지금도 잊지 않은 부분이라 하겠다.

사실 클라세처럼 다사다난한 역정을 겪은 메이커가 또 있을까? 하지만 완전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포르테, 스레숄드, 카운터포인트 등과 비교하면, 절대로 불행하지 않다고 본다. 이번 기회에 재탄생하면서, 아무리 강한 펀치를 맞고 쓰러져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는 의지는 여러모로 귀감이 된다. 아무쪼록 다시 우리 곁을 찾은 클라세가 앞으로 많은 애호가의 사랑을 받는 브랜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해본다.

이 종학(Johnny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