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브랜드 마란츠를 찾아서
Marantz


럭셔리 마란츠의 탄생

최근에 나는 마란츠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보고 있다. 그 이유는 리뷰를 위해 만난 두 종의 제품이 워낙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은 모델 30과 SACD 30n이다. 물론 동사는 그간 꾸준히 인티 앰프와 SACD 플레이어를 생산해왔다. 품질도 좋았고, 시장 반응도 꾸준했다. 하지만 이번 모델은 그간의 제품들과 형번도 다르고, 디자인도 일신했다. 무엇보다 럭셔리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고품위한 음색과 빼어난 퍼포먼스를 자랑하고 있다.

일단 모델 30을 보자. 전통의 HDAM 회로를 기반으로, 수려한 외관과 사운드를 자랑한다. 특히 포노단에 신경을 써서, MM은 물론 MC단도 제공한다. 즉, 전문적인 헤드 앰프가 내장되어 있는 것이다. 거기다가 MC 카트리지의 까다로운 특성, 즉 출력의 다양성을 포괄하고 있다. 말하자면 “Low/Mid/High”라는 선택 스위치가 있어서 자신이 소장한 MC 카트리지의 성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SACD 30n은 기존의 SACD 플레이어의 성능을 업데이트하면서 동시에 네트워크 플레이어를 담은, 말하자면 완전한 디지털 플레이어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이미 동사는 CD의 탄생에 일조했고, 따라서 1982년에 CD-63라는 기념비적인 모델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면서 이후 SACD의 개발과도 관련되어 있어서, 이쪽 트랜스포트 메커니즘이나 독자적인 DAC부의 기술력을 배양한 바 있다. 바로 여기에 최신의 스트리머 기술까지 투입해서 명실공히 과거의 명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제품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이로써 마란츠는 일종의 럭셔리 오디오라 부를 수 있는 제품들을 탄생시켰다. 기존의 “더 레인지”와 “프리미엄 시리즈” 그리고 “레퍼런스 시리즈” 중 제일 나중의 레퍼런스에 들어갈 만하다고 보는데, 이로써 보다 하이엔드 지향의 제품들이 향후에 계속 런칭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과연 마란츠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두 제품의 출시에 관련해서 마란츠의 역사를 정확하게 되짚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물론 이번 작업은 내게도 마란츠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KI가 의미하는 찬란한 업적

얼마 전 마란츠는 영광과 상실을 동시에 맛보는 경험을 했다. 정확히는 2019년에 벌어진 일이다. 우선 영광부터. 바로 5월에 영국의 저명한 오디오 전문지 왓 하이파이에서 특별한 이벤트를 개최했다. 오디오 역사에 큰 공헌을 한 인물을 선정해서 그 업적을 기리는 상을 수여하는 자리인 것이다.

정식 명칭은 “탁월한 기여(Outstanding Contribution)”이다. 야구나 로큰롤을 보면 명예의 전당이라는 시상식이 있는데, 바로 그런 성격이라 보면 된다. 아니면 오스카 시상식에서 수여하는 평생 공로상에도 해당된다.

왓 하이파이(What Hi-Fi?) Outstanding Contribution 2019에 선정된 켄 이시와타

바로 이 자리에 아시아 사람이 선정되었다. 바로 켄 이시와타(Ken Ishiwata)라는 분이다. 일본 국적이지만 주로 유럽에서 활동했으므로 영국 쪽 오디오 저널과는 친분이 두텁고, 나 역시 뮌헨 오디오 쇼에서 인터뷰를 한 경험이 있어서 낯설지 않다. 일본보다 유럽에서 더 알려진 인물인 것이다.

그럼 대체 그가 누구냐, 이런 의문이 나올 법하다. 실은 마란츠를 대표하는 두 명의 설계자로 창업자인 소울 마란츠와 그 후임으로 오랜 기간 동사를 지켜온 켄 이시와타를 꼽을 수 있다. 우리에겐 소울 마란츠가 유명하긴 하지만, 실제로 많은 제품을 개발하고 설계한 켄의 업적 또한 꼭 기억해야 한다. 이런 잡지에서 영광스러운 상을 수여한 데엔 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마란츠 KI 시리즈 중 SA-KI Ruby. 제품 상단에 켄 이시와타의 서명이 레이저로 새겨져 있다.

단, 정말 애석하게도 그해 11월 25일, 켄 이시와타씨는 타계하고 만다. 우리나라 나이로 72세. 1947년에 태어나 줄곧 오디오 특히 마란츠를 중심으로 한 길을 걸어온 그의 발자취는 당연히 의미가 깊다. 이번 기회에 우선 그에 대한 조명을 간략히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마란츠에서 특별히 만든 KI 시리즈가 실은 그의 이름을 이니셜로 한 기획이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그의 존재는 찬란하고 또 위대한 것이다.


켄 이시와타에 관하여

개인적으로 이분을 만났을 때, 단순한 오디오쟁이가 아니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실은 오디오를 넘어서는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분이고, 특히 서구에서는 빼어난 지성인으로 대접하고 있었다. 국적만 일본이지, 실은 일종의 코스모폴리탄이라고나 할까? 인터뷰 내내 다양한 부분에 대한 관심과 전문적인 식견에 시종 탄복했던 기억이 난다. 개인적인 친분을 쌓지 못한 것이 지금도 애석한 마음을 갖게 한다.

아무튼 이 기회에 켄 이시와타에 대해 좀 설명할 필요가 있다. 소울 마란츠가 탄생시킨 마란츠라는 브랜드가 이후 필립스로 넘어가고 그다음에 마란츠 재팬으로 통합되고 나중에 데논과 연결되는 숨 가쁜 M&A의 와중에서 기술적인 백그라운드와 내공을 꿋꿋이 쌓아올린 분이 바로 이 분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실제로 접한 많은 마란츠의 제품의 이면에는 그의 손길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켄은 1947년에 출생했다. 어릴 적부터 바이올린을 연주한 바 있으며, 오디오에도 관심이 많았다. 열 살 무렵 자작 앰프에 도전할 정도였으니, 이쪽 분야에 대한 재능은 정말 특별하다 하겠다.

고교 시절에 알게 된 친구의 부친이 열렬한 오디오파일이었으므로, 자연스럽게 방문하게 되었다.

“바이올린을 연주한다면서? 그렇다면 좋은 오디오로 음을 들어봐야지.”

마란츠 7C

그러면서 오디오를 틀어줬다. 당시 그가 소장했던 앰프가 바로 마란츠 7C. 1960년대 초 이 제품의 가격이 집 한 채 이상이었으니 이런 제품을 만난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었다. 여기서 그는 처음으로 오디오에 따라 음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두 번째 행운도 따라왔다. 그는 어떡하든 그 내부를 보고 싶었다. 그리고 카피도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분께서 순순히 제품을 빌려준 것이다. 그는 이것을 테스트 삼아 내부를 열어보고, 당시의 첨단 기술을 직접 접하게 되었다. 여기서 그는 진동이 끼치는 영향을 처음을 알게 되었다. 또 배선의 기법이나 빼어난 납땜 솜씨에도 큰 인상을 받았다.

이렇게 7C를 통해 마란츠의 음향 철학을 접한 그는 후일 소울 마란츠의 공식적인 후계자라 해도 좋을 정도로 이 브랜드의 가치와 내용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하지만 켄은 엔지니어이면서 또한 음악인이었다. 결국 최종적으로 제품을 만들 때 중요한 변수는 계측기가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고 있었다. 계측기라는 것은 음의 변수만 정적으로 체크할 뿐이다. 순간적인 측정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무용수를 스틸 사진으로 가둬놓은 것에 불과하다. 그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속도, 리듬은 다 무시된 것이다. 음악이 가진 역동성, 연속성, 음색, 음량, 음조 등을 이해하려면 계측기만 갖고는 불가능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신이 잘 아는 음악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굳이 이것을 원음으로 표현한다면, 이것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이것이 어떻게 오디오에서 재생되는지 알게 되면 결국 어떤 방향으로 튜닝해야 하는지도 알게 된다. 그런 것이다.

어쨌든 켄이 관여한 덕분에 마란츠는 CD-17. PM-14M, PM-700, SA-7001 등 무수한 걸작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죽음에 즈음하여 새롭게 럭셔리 오디오로 탄생한 모델 30과 SACD 30n이 나오게 되었다. 정말 한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개막하는 순간이라 해도 좋다.

그러므로 이번 기회에 이런 마란츠의 변화에 즈음해서 과거를 돌아보는 것도 뜻깊다고 하겠다. 그럼 소울 마란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서 차근차근 현재에 이르는 과정을 살펴보기로 하자.


클래식 마란츠 시대의 개막

마란츠의 역사를 되짚어 볼 때, 바로 소울 마란츠가 관여했던 1953년부터 수퍼스코프에 매각된 1964년까지 약 11년에 해당하는 시기가 바로 클래식 마란츠라 불릴 만하다. 이 시절에 전설적인 모델 7, 8B, 9, 10B 등이 나왔으므로, 아무래도 이 부분에 대한 고찰이 필요할 듯싶다. 그리고 이때 쌓아올린 업적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여기서 잠깐, 마란츠가 창업한 1953년이라는 시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전이 끝나면서 미국은 본격적으로 민간 부문에 대한 투자가 이뤄졌고, 비약적으로 소비 지수가 향상하게 된다. 그에 따라 오디오 역시 중요한 엔터테인먼트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1945년 종전 직후 미국에서 전체 소비 지수 중 가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40%였지만, 1960년에 이르면 60%에 도달하게 된다. 신축 아파트와 타운하우스, TV, 승용차 등이 보급되면서, 오디오 역시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했던 것이다.

실은 1945년부터 약 10여 년의 시기는 음악과 오디오 양쪽에서 정말 숨 가쁘게 빠른 변화와 혁신이 이뤄졌다.

암펙스(Ampex)사의  테이프 레코더 1호기, Model 200 

일단 오디오부터 보자. 1947년에 미국 암펙스사에서 테이프 레코더 1호기가 출시되었다. 이후 녹음 현장에서 본격적으로 테이프가 쓰이기 시작한다. 이듬해인 1948년에는 LP가 출시되었고, 트랜지스터도 개발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1950년대에 오면, 원음을 충실하게 재현한다는 의미에서 하이파이라는 말이 통용되기 시작한다. 이것은 하이 피델리티(High Fidelity)의 준말이다.

한편 이 시기엔 대전 전의 대가였던 푸르트뱅글러, 토스카니니, 브루노 발터 등이 건재한 가운데 카라얀, 솔티, 번스타인 등이 차례로 데뷔해서 이른바 클래식 음악계는 황금기에 들어선다. 재즈의 경우 모던 재즈라고 해서, 비밥을 시작으로 다양한 형태의 세련된 음악이 자리 잡기에 이른다.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가 길을 닦아놓은 가운데 마일스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 빌 에반스 등이 한꺼번에 출현한 시점이기도 하다.

로큰롤 시대의 개막을 알린 빌 헤일리(왼쪽)와 엘비스 프레슬리(오른쪽)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혁명은 바로 로큰롤의 탄생. 1955년에 공개된〈폭력 교실〉이라는 영화에 삽입된 빌 헤일리의〈Rock Around the Clock〉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본격적인 로큰롤 시대의 개막을 알린다. 그 이듬해에 엘비스 프레슬리가 등장했으므로, LP와 하이파이 시장은 함께 고도의 성장을 이루게 된 것이다.

이런 변화의 물결을 타고, 1949년에 매킨토시, 1953년에 마란츠 등이 각각 창업해서 당시 최고의 기술과 스펙을 갖춘 메이커로 도약하기에 이른다. 특히 마란츠는 몇 개의 전설적인 제품을 내놓으며 매킨토시와 멋진 라이벌 관계를 연출해서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는 브랜드가 되었다. 그 외에 피셔, 스코트, 리크 등 여러 진공관 앰프 메이커도 등장해서, JBL, 알텍, KLH, AR, 보작, 일렉트로 보이스, 젠센 등 명 스피커 브랜드들과 더불어 한편의 웅대한 서사시를 엮어냈다. 정말 흥미진진한 시대의 개막이었다.


소울 마란츠에 대해서

마란츠의 창업자 소울 마란츠(Saul B Marantz)

마란츠라는 브랜드명은 창업자 소울 마란츠의 이름에서 따왔다. 당연하다. 그런데 이 분에 대한 정보는 그리 많지 않다. 이번 기회에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려고 한다.

이 분은 1911년, 뉴욕에서 출생했다. 상당히 다재다능하고, 또 깊고도 넓은 취미와 감식안을 가진 분이다. 원래는 인더스트리얼 디자이너였다. 마란츠의 제품에 흐르는 세련되면서 미니멀한 디자인은 전적으로 이 분의 감각과 심미안에서 비롯된 것이다.

원래는 음악 애호가로 어린 시절부터 첼로와 클래식 기타를 연주했다. 나중에 사진에도 취미가 있어서 수준급의 솜씨를 발휘했던 모양이다. 음반 수집에도 열심이어서, 당시로서는 귀한 아이템을 많이 소장했다고 한다. 또 미술품 애호가이기도 해서, 특히 중국과 일본의 작품을 많이 모은 모양이다.

사실 마란츠 7만 해도, 지금도 연구가 되고 또 새로운 컨셉이 나올 만큼 전설적인 명기인데, 어떻게 전자 공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은 소울 마란츠씨가 개발했을까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아니 오디오계 전체로 봐도 최대 미스터리에 속한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자작을 하고, 다양한 분야에 대한 식견을 갖춘 것이 기반이 되어 시대를 빛내는 명기로 탄생시킨 점에 대해서 새삼 그의 천재성에 탄복하게 된다.

아무튼 산업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도 오디오 자작에 대한 취미는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이것이 점차 발전되어 당시 뉴욕에서 창업한 하비 일렉트로닉스(Harvey Electronics)라는 오디오 전문점을 알게 된다. 이곳은 1946년에 창업되어 지금도 영업 중인, 미국 최고의 하이파이 숍이다.

처음에는 오디오도 구하고 또 부품이며 진공관 등도 샀다. 이래서 만든 자작 앰프가 1951년에 탄생하기에 이른다. 실질적으로 마란츠의 효시가 되는 이 제품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포노 이퀄라이저까지 장착한 이 제품은 프리앰프의 형태로, 무척이나 복잡한 내용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고도의 수학과 연산이 필요했다.

진 여사와 소울 마란츠

마침 그의 아내 진 여사가 이쪽 분야의 수재였다. 원래는 뉴욕 인근의 명문 여대인 바사 칼리지 출신으로, 그 배경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덕분에 이 제품에 필요한 여러 수학적인 계산을 도맡아 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마란츠 씨는 대단한 행운아인 셈이다. 이렇게 아내의 도움까지 받아서 만든 제품을 하비에 가져가서 들려줬다.

당시 세일즈 담당이었던 마이크 브람 씨는 특별히 숍에 비치된 파워 앰프와 스피커 등을 동원해서 전문적인 시청에 임했다. 그 결과는 믿지 못할 정도였다. 그 자리에서 바로 100대를 주문하기에 이른다!


시드니 스미스의 가세

아무튼 자택의 지하에서 열심히 100대 분을 소화한 마란츠 씨는 이내 추가 주문을 받게 되었다. 심지어는 처음에 제품 이름도 없었다. 그래서 하는 수없이 일단〈오디오 콘솔레트(Audio Consolette)〉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것은 결국 400대까지 판매하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이를 기반으로 1953년에 마란츠를 창업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 이듬해에 마치 유비가 제갈량을 품듯 엄청난 엔지니어를 초빙하게 된다. 그 이름이 바로 시드니 스미스.

1923년생인 그는 마란츠와는 12살이 어린 띠동갑에 해당된다. 당연히 궁합이 좋았을 것이다. 원래는 오페라 가수 출신으로, 그 한편으로 전자 공학에도 관심이 많았다. 라디오와 레이다 기술 등에 몰두한 결과 2차 대전 때에는 군에서 각종 군용 기기를 다루고 또 수리했다. 이후 마란츠와 연이 되어 입사한 것이다.

마란츠 모델 1 프리앰프

스미스와 팀이 되어 이룬 첫 작업은 오디오 콘솔레트를 마이너 개량해서 모노럴 구성으로 만든 모델 1이라는 프리앰프다. 당시 가격은 168달러. 요즘으로 치면 한 15만 불 정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마어마한 가격이지만 그에 상응하는 퀄리티로 마란츠 신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후 1958년에 LP 재생의 표준 방식인 RIAA가 제정되고, 그에 기반한 모델 7이 나오게 되었다. 이듬해에 모델 8B, 그다음 해에 모델 9 등이 차례로 나와, 비단 마란츠뿐 아니라 오디오 역사에 찬란히 빛나는 명기들이 연속해서 출시되었던 것이다.

왼쪽부터 마란츠 모델 7, 모델 9

1960년대 초반 일본 기준으로 마란츠 7과 9의 조합은 765,000엔이었다. 당시 대졸 초임이 1만엔 안팎이었던 현실을 생각하면, 정말 어마어마한 가격이었다. 요즘 일본의 대졸자 초임이 30만~40만 엔 정도 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현재 물가로 계산해도 2억이 훌쩍 넘는다. 2억 5천만 원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정말 한숨이 푹푹 나오는 가격표지만, 당시 최고의 음질과 퍼포먼스를 자랑했으니 오디오 애호가들은 마란츠 생각으로 밤잠을 많이 설쳤을 것이다.

마란츠 모델 10B

그러나 이런 지나친 승부욕과 개발욕은 1963년에 나온 모델 10에 이르러 큰 화근이 된다. 이것은 지금도 명기로 대접받는 튜너다. 모델 10은 93대까지 만들었고, 이후 10B로 바뀌어 생산했다. 당시 가격이 550~650달러. 대체 답이 나오지 않은 가격표다.

1963년이라고 하면 케네디가 암살당하고, 동시에 비틀즈가〈Please Please Me〉라는 앨범을 내면서 인기를 얻을 때였다. FM 방송의 수준이 높아져 갔으므로, 그에 상응하는 최고 사양의 튜너를 만들겠다는 포부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역사적 명기를 낸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게 문제가 되어 결국 도산에 이른 것이다. 이후 마란츠를 인수한 수퍼스코프에 의해 동사는 새로운 도약의 시기로 이어지게 된다.


수퍼스코프 시대

1964년에 마란츠를 사들인 수퍼스코프라는 회사는 좀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이 회사의 사주는 조셉 타신스키라는 분이다. 원래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2차 대전 전에는 폴란드에서 영화관을 운영했던 가문 출신이다. 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으로 피신 오면서 서부에 안착, LA에서 다시 영화 사업에 뛰어들었다.

조셉 자신은 NBC 교향악단에서 일한 이력이 있는 전문 연주인이다. 그러다 당시 TV에 대항해서 스크린이 커지는 상황을 파악, 일종의 와이드 스크린을 제작해서 특허를 취득했다. 회사 이름이 수퍼스코프라는 것은 실은 영화관 비즈니스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사실 조셉은 음악가이면서, 발명가이고 또 영화에도 관심이 많았다. 몇 편의 시나리오도 쓴 모양이다. 이렇게 보면, 마란츠의 역사를 대표하는 여러 인물들의 면면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역사와 내공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아무튼 당시 뜨겁게 시장이 타오르던 일본에 와이드 스크린을 소개하면서 큰 전기를 맡게 된다. 일본에서 톱을 다투는 극장 체인인 토에이, 다이에이 등에 납품하면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이다.

하지만 당시 일본 정부는 달러를 모으는데 혈안이 되어 있으므로, 외환 관리가 무척 엄격했다. 따라서 조셉은 돈 대신 당시 인기 상품으로 떠오르던 소니의 테이프 레코더를 독점적으로 공급받기로 한다. 이 제품이 미국에서 어마어마하게 팔림에 따라 조셉은 돈방석에 앉게 된 것이다.

원래 음악가 출신이고, 영화 관련 사업을 하는 조셉에게 마란츠라는 매물은 무척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매입한 것이다.

마란츠 7T

수퍼스코프 시대에 진입한 마란츠는 클래식 시대와 달리 적극적으로 트랜지스터 소자를 다루게 된다. 사실 초고가의 하이엔드 제품을 팔 만한 시장은 지금도 그리 넓지 않다. 보다 대중 친화적인 제품군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모델 7을 TR 버전으로 만든 7T가 1965년에 나오게 된다. 물론 이 제품도 7만큼은 아니지만 꽤 비쌌다. 당시 일본에 소개될 때 16만 엔. 대졸 초임이 2만 엔 안팎이었을 시기다. 지금 물가로 계산하면 5천만 원 이상이다.

이후 TR로 된 파워 앰프 모델 15가 이듬해에 나왔다. 8 옴에 60W 사양이다. 약 20만 엔이나 했다. 이 제품도 인기가 좋아 1969년에 100W로 출력을 높인 제품도 나왔다. 그게 바로 모델 16. 또 이에 커플링되는 프리앰프도 1970년에 개발된 바, 바로 M 33이다. 이것은 나중에 3300, 3600 등으로 진화되어 큰 인기를 얻었다.

마란츠 모델 18

그러나 마란츠가 진정한 황금기로 접어든 것은 1967년이다. 클래식 마란츠 시대를 되돌아보면 이미 프리, 파워 그리고 튜너에서 각각 기념비적인 제품을 만든 바 있다. 이것을 TR 시대에 하나의 몸체로 통합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바로 리시버 타입이다. 이래서 개발된 것이 바로 모델 18. 이것은 비단 마란츠뿐 아니라 오디오계 전체에 지각 변동을 일으킨 사건이 된다.


스탠다드 무선 공업과 제휴

흔히 리시버 타입, 특히 1970년대를 관통했던 수많은 일제 리시버에 대한 추억은 모두 갖고 있을 것이다. 마란츠를 비롯해서 소니, 켄우드, 파이오니어, 산수이 등에서 내놓은 전설적인 제품이 많다. 그중 넘버 원의 자리는 마란츠가 갖고 있고, 지금도 중고 시장에서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다. 그럼 미국에서 만든 마란츠 리시버가 어떻게 일본에 연결이 되고, 그게 기폭제가 되어 숱한 일본 메이커들이 어떻게 이 시장에 뛰어들게 되었는지, 이 부분에 대한 고찰이 흥미진진할 것 같다.

여기서 잠시 한국전 이후에 벌어진 일본의 전자 산업계에 대해 간략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당시 한국전 특수로 인해 일본의 경제가 비약적으로 도약한 것은 주지의 사실. 종전 후 이런 군수 산업이 빠르게 민생용으로 전환함에 따라, 가전제품도 일종의 양산 체제에 돌입하게 된다.

이 무렵에 창업한 스탠다드 무선 공업은 이른바 돈이 되는 냉장고, 선풍기, 세탁기 등 가전 시장으로 가지 않고 오디오 쪽으로 집중하기에 이른다. 특히 1959년에 만든 테이프 레코더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1966년에 이르면 무려 1,50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회사로 성장한 것이다.

왼쪽부터 마란츠 모델 18, 모델 19

바로 이때 조셉이 일본을 방문하기에 이른다. 모델 18의 뒤를 잇는 모델 19를 구상하면서 원가 절감을 위해 섀시 정도는 일본에 OEM 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온 것이다. 이때 스탠다드는 이미 피셔에 부품과 섀시를 납품하는 중이었고, 자체적으로도 리시버를 개발한 상태다. 조셉이 바로 그 프로토 타입을 듣고 그 높은 완성도를 인정하게 된다.

이후 미국 본사에서 설계하고, 일본에서 생산하는 체제가 이뤄지게 되면서 본격적인 마란츠 리시버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은 1970년대까지도 이어지는 협업 체계로 발전하게 된다. 한편 이 제품이 워낙 인기가 높았으므로, 다른 일본 메이커도 뛰어드는 형태가 된 것이다.

바로 이게 기반이 되어 1975년, 정식으로 일본 마란츠가 창업하기에 이른다. 현 마란츠의 실질적인 출발인 것이다.


필립스의 등장

한편 1970년대 후반의 미국을 보자. 2차 오일 쇼크로 인해 큰 타격을 받았고, 심각한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이런 불황은 1980년대까지 이어졌다.

그 결과 수퍼스코프는 큰 결단을 하기에 이른다. 미국과 캐나다를 포함한 북미 영업권을 제외한 모든 권리를 필립스에 판 것이다. 그게 바로 1980년. 존 레논이 타코타 맨션 앞에서 피살된 시기에 오디오 쪽에서도 엄청난 변화가 이뤄진 것이다.

라이 쿠더의〈Bop Till You Drop〉앨범과 도널드 페이건의〈Nightfly〉앨범

사실 1980년대 상황을 보면 본격적인 디지털 녹음이 시작된 것이 특징이다. 이미 1979년에 라이 쿠더가〈Bop Till You Drop〉앨범을 디지털로 녹음하면서 점차 기술이 발전되어, 1982년에 이르면 도널드 페이건이 무려 24트랙을 동원해서〈Nightfly〉앨범을 제작하기에 이른다. 이 앨범은 지금도 오디오파일용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우주 통신 기술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이 음악계에 엄청난 지각 변동을 몰고 온 것이다.

한편 당시 필립스라는 회사를 보면, 요즘의 삼성이나 LG를 연상하면 된다. 전 세계에 무려 40만 명이 넘는 직원을 두고, 매상도 365억 불이나 올리고 있었다. 현재 환율로 40조 원 이상이다. 자체 음악 레이블도 갖고 있었고, 다양한 가전도 만든 가운데, CD라는 포맷을 개발하면서 오디오 회사를 품기에 이른 것이다.

마란츠 CD-63

1982년은 본격적으로 CD가 탄생한 시기다. 바로 이해에 마란츠는 CD-63을 발표해서 하나의 이정표를 세우게 된다. 이때부터 일본 마란츠는 적극적으로 필립스에 협력하면서, 심지어 많은 직원을 네덜란드 본사로 보내서 교육하기에 이른다. 이런 양사의 공조는 일종의 시너지 효과를 이루게 된다.

왼쪽부터 필립스 LHH-2000, 마란츠 CD-94

당시 필립스는 LHH-2000이라는 하이엔드 CDP를 발매하기에 이르는데, 무려 160만 엔이나 했다. 이런 필립스의 높은 기술력을 이양 받아 그 1/10 가격으로 발매한 CD-94는 큰 성공을 거뒀다. 필립스의 CDM 1 메커니즘을 기반으로 해서 상당한 퀄리티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를 기반으로 마란츠는 차곡차곡 하이엔드 시장을 공략하기에 이른다. 사실 마란츠라는 브랜드는 원래 하이엔드 메이커가 아닌가? 수퍼스코프 시절에 등한시했던 시장을 다시 정복하기 위해 여러 역사적 제품이 나오게 된다.

왼쪽부터 마란츠 CD-15, SA-1

그중 이 대목에서 언급할 것은 CD-15라는 제품이다. 1992년에 나왔다. 필립스와 교류하면서 얻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야심차게 만든 것으로 발매 당시의 가격이 39만 엔. 이후 필립스와 소니가 제휴해서 만든 SACD 플레이어 시장에도 적극 개입해서, 저 유명한 SA 시리즈가 나왔다. 1999년에 나온 SA-1은 무려 55만 엔이 책정된 제품으로 지금도 명기로 대접받고 있다. 이후 12, 14, 17 등이 나왔고, 나중에 11, 7 등이 나왔다. 이것이 최신의 SACD 30n으로 계승된 것이다.


명가의 향기

사실 2001년에 일본 마란츠가 필립스에서 모든 판권을 사들여, 명실공히 월드 와이드한 영업권을 확립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전 주인이었던 수퍼스코프와 필립스는 오디오 외의 분야에도 활동하고 있었으므로, 주력 산업의 흥망성쇠에 따라 오디오 부문이 흔들리는 일이 잦았다.

그러므로 오로지 오디오 외길을 걸은 일본 마란츠는 스탠다드 무선 공업 시절부터 차곡차곡 쌓아올린 내공을 점진적으로 확장시켜 드디어 마란츠 자체를 품기에 이른 것이다.

한편 이 시절에 켄 이시와타의 존재도 꼭 기억해야 한다. 일본 마란츠로 천하통일이 이뤄지고 이후 데논과 제휴하면서 새로운 도약을 이루는 과정에서 주요 기기는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이런 거장이 뒤에 있었기에, 지금까지 마란츠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존재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일본 마란츠 시대에 즈음한 여러 명기들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여기엔 진정한 일본 오디오의 황금기 1990년대~2000년대 초반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시절의 일본은 비록 거품 경제가 꺼지고는 있었지만, 그 여운이 남아 있어서 일본 오디오 메이커도 일종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따라서 많은 메이커들이 대형 스피커와 대출력 앰프를 앞다퉈 생산했다. 지금 봐도 탄성이 나오는 명기들이 이때 많이 나왔다. 소니, 야마하, 데논, 파이오니어, 아큐페이즈, 레이 오디오 등이 한 시대를 풍미한 명작들을 다수 배출했다. 우리에겐 다소 생소하지만, 이 시절에 자주 일본을 방문하면서 간접적으로나 체험한 내게는 뭔가 아련한 추억도 있다.

마란츠 T-1

바로 이 시기의 마란츠에 집중해보면 꼭 언급해야 할 명기들이 있다. 첫 번째로 떠오른 것이 95년에 나온 프로젝트 T-1. 진공관식 모노럴 파워 앰프로 발매 당시 500만 엔이나 했다. 풀 밸런스에 클래스 A 설계로, 300B를 드라이브단에, 845를 출력단에 넣은 명작이다.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바 있다. 단, 이에 커플링 되는 프리가 없다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이 즈음 마란츠 7, 8B, 9 등이 복각되어 나왔으므로, 7과 연결해도 무리가 없다고 본다.

마란츠 SC-7S1 프리앰프와 MA-9S1 모노블럭 파워앰프

한편 본격적인 천하통일의 마란츠 시대가 열린 2000년대를 보자. 2002년에 그 상황을 축하하는 하이엔드 클래스의 제품이 나왔으니, 바로 SC-7S1과 MA-9S1이 그 주인공이다. 7과 9라는 숫자를 쓴 점에 주목해야 한다. 전자는 프리앰프로 70만 엔을 받았고, 후자는 모노럴 파워 구성에 300W 사양으로 130만 엔을 받았다. TR 앰프로 대출력이면서 마란츠 특유의 음색과 향기를 갖춘 명작이다.

이 즈음 SACD를 품은 SA 시리즈도 아울러 나와서 명실공히 소스기와 앰프 쪽에 대표적인 제품군을 망라하게 되었다. 현재는 그 흐름이 모델 30과 SACD 30N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 럭셔리 오디오를 표방한 만큼 본격적인 분리형 앰프라던가 보다 스케일이 큰 소스기도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현행 마란츠는 여러모로 변혁기에 있다. 켄 이시와타의 죽음으로 인한 공백도 우려되지만, 매번 시련을 겪을 때마다 오히려 그것을 자양분으로 삼아 새롭게 도약한, 말하자면 오뚝이와 같은 모습을 보인 것이 바로 마란츠다. 최신이 30 시리즈가 갖는 높은 퀄리티와 품격을 감안할 때 오히려 더 큰 기대를 가져도 좋을 것같다.

아무튼 마란츠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설계자부터 여러 소유주들 모두가 결코 호락호락한 인물들이 아니었다. 단순히 돈만 보고 비즈니스를 한 것도 아니었고, 과거의 유산을 소중히 생각하면서도 시대를 앞선 발상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마란츠의 역사를 훑어보면서 새삼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 종학(Johnny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