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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중순, 서울 송파구 잠실동 아날로그라운지 시청실을 찾았다. 1년에 몇 번씩 들르는 곳인데, 이날은 베르그만 오디오(Bergmann Audio)의 플래그십 갈더(Galder) 턴테이블과 오딘(Odin) 톤암 소리를 들으러 왔다. 이 덴마크 브랜드는 몇 년 전 제작자 자니 베르그만 라스무센 씨를 이곳에서 인터뷰한 적이 있어서 꽤 친숙한 편. 갈더와 오딘 조합도 이제는 익숙한 판타스틱 듀오다. 베르그만 오디오와 갈더, 오딘의 핵심은 이것이다. 

베르그만 오디오

에어 베어링(air-bearing) 턴테이블과 리니어 트래킹(linear-tracking) 톤암으로 일가를 이룬 덴마크 제작사.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고 기계 관련 회사에서 일을 하던 자니 베르그만 라스무센(Jonnie Bergmann Rasmussen) 씨가 2008년에 설립했다. 라인업은 갈더(Galder) & 오딘(Odin), 모디(Modi) & 토르(Thor), 마그네(Magne) TT.  

갈더 턴테이블

플래터를 압축 공기로 부양시켜 이론상 가장 이상적인 회전 환경을 제공한다. LP를 압축공기로 플래터에 완전히 밀착시키는 베큠 홀드 다운(Vacuum Hold Down) 기술도 자랑거리. 플래터가 알루미늄인 시청기 말고도 스테인리스 스틸 플래터와 풋을 쓴 시그니처(Signature) 버전, 곳곳을 24K 금 도금으로 장식한 골드(Gold) 에디션도 있다.

오딘 톤암

일반적인 피봇 방식의 래디얼 톤암과 달리, 톤암이 직선 운동을 하며 카트리지가 LP 그루브를 추적하는 리니어 트래킹 톤암이다. 때문에 원호 운동을 하는 래디얼 톤암의 트래킹 에러가 발생하지 않는다. 이 톤암에도 에어 베어링 기술이 적용, 카트리지가 연결된 톤암 파이프 이동 과정에서 그 어떤 마찰이나 공진이 일어나지 않는다.  

갈더 메카닉 탐구

갈더 턴테이블과 오딘 톤암을 직접 보면 단정하고 심플하며 모던한 디자인이 일단 멋지다. LP를 최적의 상태로 돌리고 읽어들이기 위해 필요한 것만 남겨놓았다는 인상. 말 그대로 FFF(Form Follows Function) 미학이다. 크기(WHD)는 485 x 190 x 365mm, 무게는 38kg. 참고로 시그니처 버전은 투 피스 스테인리스 스틸 플래터 채택으로 무게가 61kg이나 나간다.

자니 베르그만 라스무센 대표에 따르면 갈더는 “리니어 트래킹 톤암 말고도 일반 톤암도 장착할 수 있는 턴테이블을 만들어달라"라는 요청에 의해 탄생했다. 기본 세팅인 오딘을 포함할 경우 오딘의 리니어 트래킹 톤암 구조상 2개의 래디얼 톤암을 추가할 수 있고, 오딘을 빼고 래디얼 톤암만 장착하면 최대 4개 톤암을 쓸 수 있다. 턴테이블 상판 3개 귀퉁이에 마련된 둥근 디스크를 떼어내고 추가 톤암 보드를 설치하면 된다. 

갈더는 2개 부분으로 나눠졌다. 플래터와 톤암보드가 올라가는 메인 파트(플린스)와 DC 모터 및 속도(33.3, 45 rpm), 피치 조절 버튼이 있는 서브 파트(모터 베이스)다. 두 파트 모두 다이캐스트 솔리드 알루미늄 재질이고, 알루미늄 플래터와 DC 모터는 벨트로 연결된다. 모터는 타코(Tacho) 제너레이터가 0.0027% 오차 범위에서 속도를 제어하는 타코 DC 모터. 턴테이블 전체는 알루미늄과 세라믹 볼 조합 풋에 의해 3점 지지된다. 

갈더 후면을 보면, 왼쪽에 LEMO 전원 입력단자와 스위치가 있고, 오른쪽에 에어 입출력 단자가 있다. 전원과 압축 공기는 외장 에어 서플라이 겸 파워 서플라이에서 공급받는다. 갈더와 오딘 시청을 하며 깜짝 놀랐던 것이 이 에어 서플라이 겸 파워 서플라이였는데, 워낙 조용해서 이것이 옆에 있는지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크기(WHD)는 225 x 235 x 465mm, 무게는 15.6kg. 

흥미로운 것은 갈더 & 오딘 시그니처 버전의 에어 서플라이 겸 파워 서플라이가 덩치(420 x 210 x 390mm)와 무게(30.0kg) 모두 늘어난 점. 이는 시그니처 버전의 플래터가 훨씬 무거운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져 보다 센 압축공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그니처 버전의 플래터는 36kg, 이번 시청기의 알루미늄 플래터는 11.8kg. 

에어 입출력 단자는 오른쪽부터 파란색의 메인 에어 입력단자(Air), 톤암 에어 출력 단자(Air tonearm), 베큠 홀드 다운 에어(Vacuum) 입력단자 순이다. 즉, 외장 에어 서플라이는 2개의 에어 튜브를 통해 갈더 본체에 압축 공기를 메인(플래터용)과 베이컴 홀드 다운(LP 흡착용)에 각각 공급하고, 메인은 자신이 받은 일부 압축 공기를 톤암에 나눠주는 구조다. 중간에 보이는 밸브 2개로는 플래터와 톤암에 들어가는 압축 공기의 양을 조절한다.

플래터를 자세히 보면 가장자리 쪽에 작은 구멍이 돌아가며 6개가 나있는데, 이 구멍들이 공기를 빨아들여 LP를 압착시키게 된다. 별도 스위치 없이 LP를 놓고 클램프를 체결하면 자동으로 압착된다. 웬만해서는 LP를 플래터에서 떼어내기가 힘들 정도로 압착 강도가 세다. 물론 이에 필요한 압축 공기는 외장 에어 서플라이로부터 전용 튜브를 통해 공급받는다.

​플래터는 스테인리스 스틸 스핀들과 폴리머 베어링에 의해 중심축이 고정된 상태에서 살짝 공중부양돼 회전한다. 물론 외장 에어 서플라이에서 공급받은 압축 공기 덕분이다. 회전 선택 버튼을 한 번 터치하면 공기가 들어오고 두 번째로 터치하면 플래터가 돌기 시작한다. 이 같은 에어쿠션에 의해 플래터가 도는 것, 이로 인해 메인 베어링의 물리적인 회전 노이즈와 진동 전이를 차단한 것, 이것이 갈더 턴테이블의 최대 시그니처다.

오딘 메카닉 탐구

오딘은 리니어 트래킹 톤암이자 에어 베어링 톤암으로, 에어 파이프, 슬라이딩 파이프, 톤암 파이프로 구성됐다. 앞에서 봤을 때 가로축의 두터운 검은색 에어 파이프가 12개의 작은 구멍을 통해 압축공기를 내뿜어 흰색 알루미늄 재질의 슬라이딩 튜브를 밀쳐낸다. 에어 파이프와 슬라이딩 파이프는 0.05mm 간격으로 이격되어 톤암 이동 과정에서 그 어떤 마찰이나 공진도 일어나지 않는다.

헤드쉘과 포노 카트리지가 장착되는 톤암 튜브는 이 슬라이딩 튜브에 직각으로 장착돼 LP 중심을 향해 직선 운동을 한다. 일반 래디얼 톤암의 카트리지가 톤암이 원호를 그리는 바람에 LP 바깥쪽 트랙과 안쪽 트랙을 트래킹하는 각도가 달라지는 것과는 큰 차이. 그래서 리니어(linear) 트래킹 톤암이다. 헤드쉘은 알루미늄, 톤암 튜브는 카본 재질. 톤암 튜브의 유효 질량은 미디엄 매스라 할 14g, 알루미늄 암보드를 포함한 전체 톤암 무게는 1.180kg이다.

오딘 톤암을 뒤에서 보면, 톤암 와이어는 리츠 동선을 썼고, 포노케이블 연결단자는 5핀 DIN 단자를 채용했다(5핀, 60도, 240도). DIN 단자 위에는 에어 파이프에 압축공기를 공급하는 에어 입력단자가 자리 잡고 있다. 물론 턴테이블 본체에서 받은 메인(플래터용) 에어 중 일부를 건네받는다.

오딘 톤암은 또한 스태틱 밸런스 방식이기 때문에 톤암 튜브 뒤에 카운터 웨이트가 장착됐는데 안쪽에 3개의 고무 스트링에 의해 톤암 튜브로부터 사실상 디커플링됐다. 톤암 보드 위에는 톤암 오버행을 조절할 수 있는 볼트 2개, 그 뒤쪽 옆에는 헤드쉘이 연결된 톤암 파이프를 내리고 올릴 수 있는 리프트 핸들이 마련됐다. VTA와 아지무스 조절도 가능하다.

시청

자니 베르그만 라스무센 씨에 따르면 ‘갈더'는 북유럽 신화에서 ‘마법을 걸다'(enchant)는 의미로 사용되고, ‘오딘'은 북유럽 신화의 톱 티어 신(a master of magic)이다. 아날로그 라운지 시청실에서 진행한 이번 시청에서 과연 이 마법 신은 어떤 소리를 들려줬을까.

시청에는 에어타이트의 1.7옴, 0.5mV 스펙의 PC-1 Coda MC 카트리지를 비롯해, 크로노스 오디오의 크로노스 레퍼런스 포노, 에어타이트의 ATC-5 진공관 프리앰프와 ATM-3211 모노블록 진공관 파워앰프를 동원했다. 스피커는 대구경 우퍼와 혼을 단 블루멘호퍼의 Genuin FS1 MKIII. 

아티스트   Seong-Jin Cho
곡   Suite for keyboard Vol.1, No.2 in F major, HWV 427
앨범   The Handel Project

LP를 올려놓고 클램프를 체결하자 ‘빠지직' 소리를 내며 LP가 곧게 펴진다. 사람 눈으로 보기에는 LP가 플랫한 것 같지만, 갈더 턴테이블이 보기에는 요철 덩어리가 아니었나 싶다. 매번 놀라는 것이지만 베르그만 오디오의 이 베큠 홀드 다운 기술은 그야말로 ‘평평한 운동장'을 선수들에게 제공해 주는 숨은 공신이다. 

처음 들리는 피아노 소리부터 맑고 결이 고우며 무대 앞은 투명하다. 이것이 바로 LP 재생에서

기대했던 바로 그 감촉이다. 느낌상으로는 LP라는 소스에서 신호를 가져오는 데 있어서 그 어떤 마찰이나 저항이 없다. 음수가 폭발적으로 많다? 스피커가 진작에 사라졌다? 안 들리던 소리가 들린다? 이런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거의 실물 사이즈 피아노에서 나올 법한 풍성하고 다채로운 음들이 시청실 곳곳에서 만발했다. 

아티스트   Arnette Askvik
곡   Liberty
앨범   Liberty

보컬의 이미지는 무대 가운데에 또렷이 맺히고, 풍성한 반주음은 아주 넓게 그녀를 감싼다. 감탄한 것은 무대의 위아래 사이즈가 무척 크다는 것. 혼 스피커 크기가 그리 높지 않은데도 음들이 상당히 위에서 들린다. 리니어 트래킹 톤암이 작정하고 ‘긁으면' 이 정도로 무대 사이즈가 위아래로 확장되는구나, 다시 한번 무릎을 쳤다. 

브라스 악기들이 주도한 저음도 과장되지 않게 잘 뽑아낸다. 넉넉하고 습한 기운마저 풍기는 이 음들이 어떻게 그 가느다랗고 얕은 LP 그루브에 숨어있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 하여간 이렇게 한 음 한 음을 집중력 있게 캐내고 재생하는 솜씨야말로 아날로그 재생의 독보적 영역이다. 덕분에 숨어있던 음, 그냥 지나쳤던 음이 계속해서 잘 포착됐다.

아티스트   Aaron Neville
곡   If Feels Like Rain
앨범   Warm Your Heart

개인적으로 애정하는 LP인데도 갈더와 오딘을 만나니 등에 소름이 돋았다. 악기들 소리가 무대 이쪽저쪽에서 홀로그래픽하게 창궐하기 때문이다. 애런 네빌은 이날따라 리퀴드한 목소리를 뽐내고, 악기들은 그의 앞과 뒤에서 저마다의 존재감을 과시한다. 일렉 기타의 연주음은 그 기탓줄의 떨림까지 그려질 정도로 해상력이 높다. 그야말로 현기증이 날 만한 3D 무대다. 

짐작건대, 이번 갈더 & 조합의 핵심은 베큠 홀드 다운 LP 흡착 기술과 톤암의 리니어 트래킹 능력이고, 그 판은 에어베어링 플래터와 톤암이 깔아놓았다. 음의 부드럽고 촉촉한 촉감은 에어타이트 카트리지 덕분. 굳이 비교하자면 고해상도 음원을 DSD로 듣는 것 같은데, 이번 갈더 & 오딘은 여기에 에너지와 공간감, 그리고 투명함을 보탰다. 

아티스트 ​  The Doors 
곡   Riders On The Storm
앨범   L.A.Woman

이상하게 아날로그 라운지 시청실에 가는 날이면 비가 오고, 그래서 자주 듣는 앨범의 최애 트랙이다. 아니나 다를까, 곡 초반 들리는 빗소리가 리얼하고 신시사이저 음은 강력하다. 거의 모든 음들을 꾹꾹 눌러 담아 연주한다는 느낌. 곱상한 외모와는 달리 힘쓰는데도 일가견이 있는 톤암이자 턴테이블이다. 절대 얌전하기만 한 조합이 아니다. 

끝으로 이 곡에서 짚고 넘어갈 것은 각종 빗소리와 천둥소리 속에서도 악기들의 앞뒤 레이어가 잘 펼쳐졌다는 것. 이는 무대의 뎁스가 상당했다는 뜻인데, 이는 결국 카트리지가 LP 그루브에 담긴 스테레오 음악 신호를 최대한 많이, 그리고 최대한 정확하게 긁어온다는 증거다. 참고로 이 곡은 카트리지 침압을 1.95g에서 2.05g으로 살짝 높여 다시 들었는데, 해상력은 약간 떨어지지만 살집과 파워가 붙었다. 참고하시기 바란다. 

총평

지금까지 리뷰를 해오면서 메카닉과 디자인, 그리고 소리에 매료된 오디오 기기가 몇 가지 있다. 첫째는 아이소배릭 우퍼가 빛나는 윌슨베네시의 인데버이고, 두 번째는 한때 하이파이클럽 시청실의 터줏대감이었던 다질의 NHB-108 Model One 파워앰프, 세 번째는 예전에 내돈내산해서 썼던 에이프릴뮤직의 올인원 오라 노트 V2다. 이 밖에 KEF의 플래그십 스피커 블레이드, 매지코의 거대 기함 M6, 마크레빈슨의 50주년 한정판 ML-50도 기억에 남는다.

이제 턴테이블과 톤암 쪽에서 갈더와 오딘을 추가하고 싶다. 일단 곳곳에 숨어든 에어 베어링과 리니어 트래킹 디자인이 놀랍고, 이를 간결하게 시각적으로 구현해낸 제작자의 안목과 기술력도 놀랍다. 오딘 톤암의 슬라이딩 파이프를 직접 손으로 밀었을 때의 무중력 촉감이나, LP가 아이스링크 빙판처럼 좌악 펼쳐지며 내는 빠지직 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 무엇보다 도어스 무대를 직관한 듯한 이 쾌감은 결코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LP 애호가분들의 진지한 청음을 권해드린다.

by 김편 오디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