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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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와 20년이 넘게 알고 지내는 고객께서 두 세트의 오디오를 갖추고 잘 사용하시다가
손자가 태어날 때가 되었다고 손자가 혹시나 다칠까봐 하나로 통합하고자 로얄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먼저 사용하시던 모델은 아발론 아이돌론 다이아몬드, 탄노이 레드 모니터 오토그라프였습니다.
앰프도 그에 상응하도록 잘 갖추었는데 로얄이 들어가면서 한 세트로 줄이게 되었습니다.
고객께서 사시는 집은 경사진 곳에 지은 전원주택으로 커다란 호박돌이 박힌 징검다리 잔디밭과
몇 개의 계단으로 이어진 데크가 있는, 아기자기하게 꾸민 곳입니다. 살기는 좋아도 무거운 것 배달,
설치는 아주 힘든 곳입니다.
로얄을 배달하기 앞서 前모델인 SE 버젼쯤으로 생각하고 가보았는데 GR 버젼은
더 무거운데다 포장을 아주 단단하게 하여 전체 무게가 192Kg이나 되는 초대형
슈퍼헤비급의 스피커입니다. 물론 포장 무게를 빼면 140kg 정도이지만요.
수입원에서 배송을 담당하는 이강원부장님께 쉬시는 날 도와주실 수 있는지 물어보고
약속하여 손님 댁 배송을 도와주시기로 했습니다. 도착한 스피커를 보니 중량과 덩치에
거의 절망적이었는데 부장님의 초능력으로 세 명이서 옮겨 설치할 수 있었습니다. 한 쪽은
저와 직원이 들고 반대편은 이부장님이 두 사람 몫을 하면서 옮길 수 있었습니다. 이부장님은
풍채가 아주 좋아 힘도 좋았으며 마음도 따뜻하여 4~5 시간에 걸쳐 설치하는데 전혀 싫은 내색
하나 하시지 않고 도움을 주셨습니다. 징검다리 같은 호박돌 위를 작은 바퀴 달린 카트에 스피커를
싣고 터덜터덜 옮겨서는, 비록 2~3 계단이지만 어마무시한 스피커를 들어올려서, 데크에서 커버를
벗긴 후 밑의 받침대에 의지하여 세 명이서 현관까지 옮겼습니다. 현관에 들어서서는
이불을 깔아 이불 위에 놓고 끌어서 스피커 놓을 위치까지 옮겼습니다. 이렇게 몇 자로
적지만 어마어마하게 힘든 일이었습니다.
어려움을 같이 겪고나면 관계가 더욱 돈독해집니다. 마치 전투에서 생사고락을 같이 한
전우처럼요. 이는 생활 전선에서 같이 (생사)고락을 같이 한 전우입니다. 생활 전선의
전투는 더 치열하고 스트레스 만빵이기도 한, 총칼만 들지 않은 전투이지 이도
치열한 전쟁터입니다. 이런 고락을 같이 했으니 돈독한 정이 싹트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모든 설치가 끝나고 인수하는 스피커도 다 운반해주신 부장님께 차비는 얼마를 드릴까
물으니 말씀하시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도 소박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신 일에 비하여, 부장님이 아니면 절대 할 수 없었던 일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적게 받으시면 어떡하시냐고 두 배 가까이 드렸습니다. 말씀하신 부장님도 기분이 좋았을
것이나 드린 저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 후로는 부장님은 언제나 치열한 전투를 치른,
생사고락을 같이한 전우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간혹 옆집에 배달을 오셔도 저희 점방으로
오시라고 해서 차라도 한 잔 드리며 지내는 중......
그리고 1년여 지난 어느 날 옆집에 물건 배달을 오셨는데 안색이 그리 좋아보이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지 묻지는 않았습니다. 나중에 오셨을 때 물으니 별 것 아니라고만
했습니다. 눈썹도 다 빠지고 머리가 거의 빠졌으며 갑자기 늙어 보였습니다.
수입원 영업담당 직원한테 물으니 전립선암 수술을 하셨다고 합니다. 다음에 만났을 때
속히 잘 치료하시라고 했더니 걱정하지 말라고 곧 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얼마 후
입원하셨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그래서 통장으로 식사나 한 번 하시라고 약간의
비용을 입금했더니 나중에 통장을 보시고는 전화를 주셨는데 목소리가 영 좋지 않았습니다.
속히 쾌차하시라는 말씀만 드렸습니다. 그리고 수입원도 일을 해야해서 배송하는 분이
새로운 분으로 바뀌었습니다.
탄노이 웨스민스터 로얄 GR을 서류상으로 출고받고 너무 커서 창고에 둘 수 없어
수입원에 보관해 두었다가 오늘 정식 출고 받았습니다. 가을 태풍이 지나는 오늘,
비가 내리는 가운데 젖지 않도록 포장을 단단히 하여 새로운 배송직원께서 가져다주어
직원과 함께 내렸습니다. 며칠 후 매장에 설치하기 위하여 여러 준비를 하면서요.
그런데 오늘 수입원 직원으로부터 이강원부장님께서 운명하셨다는 얘기를 전해들었습니다.
마음이 많이 허전해집니다. 가을 태풍이 허허롭게 지나는 날 전우 한 분을 잃었습니다.
부디 좋은 세상으로 가셔서 행복하시길 두 손 모아 빕니다.
웨스트민스터 로얄 GR을 생각하면 마음 따뜻한 이부장님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
원래 탄노이는 따뜻한 스피커이기도 하지만요.
부장님 가신 날 로얄이 와서 부장님을 더욱 생각하게 만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