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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오디오 회사들의 이력을 조사하다 보면, 거의 100년에 가까운 연혁을 자랑하는 회사들을 만나게 된다. 엘락은 그런 흔치 않은 회사 중의 하나다. 말이 100년이지, 그 사이에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나. 두 번의 세계대전은 그렇다 치고, 20세기 말에 불어 닥친 무한 경쟁의 시대에 살아남은 것만 해도 감지덕지인데, 엘락은 이에 그치지 않고 현재 독일 최대의 스피커 메이커로 자리매김했을 뿐 아니라, 전세계 72개국에 수출하는 당당한 일등 기업이 되었다.

이런 엘락의 장수 비결이 뭐냐고 묻는다면, 역시 탁월한 기술력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긴 세월 동안 업계를 선도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 바로 기술력인 것이다. 그것도 남보다 최소한 한 두 걸음 정도 앞서야 한다. 쉬운 말 같지만 절대 쉽지 않다.

오디오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CES나 뮌헨 쇼 같은 곳을 가서 보면 그 규모와 사이즈에 놀라게 되는데, 정말로 세상에는 이렇게 많은 오디오 업체들이 있구나 탄성을 지르게 된다. 이런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오랫동안 살아남은 업체는 일단 그 내공을 인정해야 한다. 과거에는 그저 브랜드의 이름값 갖고 애호가들이 사주는 경우도 많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조금만 뒤쳐지면 바로 밑에서 치고 올라온다. 어디서 어떤 회사가 어떤 기술로 들이닥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므로 엘락의 긴 역사는 그 자체만으로도 칭송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엘락은 독일의 키일 지방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베를린의 북쪽, 그러니까 발틱해에 면해 있는 항구 도시다. 덴마크 및 북구 3국과 접경하고 있으므로, 지정학적 가치도 큰 곳이다. 기본적으로 경관이 수려하고, 무역을 통해 많은 부를 축적했으며 또 대학 도시로서의 위상이 높은 만큼, 예전부터 문화 예술 분야에 큰 업적을 이뤘고, 또 장인도 많다. 이런 예술적이고, 학구적인 도시 분위기가 엘락의 제품들에 반영되어 있다면 지나친 상상일까? 그래도 엘락이 연구 분야에 많은 정성을 기울이는 것을 보면, 이런 대학 도시를 배경으로 한 점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엘락의 역사는 음파 공학과 음향학 쪽의 연구로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정확히 100년 전인 1908년, 당시 개발 중이던 독일의 U-보트에 사용할 기기를 만들기 위해 출범한 것이다. 이 연구가 기반이 되어 1차 대전이 끝난 후인 1926년, 본격적인 엘락을 창업하기에 이른다. 이후 70~80년대를 지나면서 메이저 오디오 회사로 성장,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엘락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사건은 1985년에 일어난다. 원래는 81년부터 스피커 부문에 집중하기로 하고 연구에 박차를 가하던 중, 이 시기에 '4PI Technology'를 개발했던 것이다. 이것은 마치 빵모자를 쓴 형상을 취하고 있는데, 그 모자 아래에 알루미늄으로 테두리가 둘러진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부분에서 음이 나온다. 말하자면 지향성을 갖지 않고 360도 전부에 음을 방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물론 본기 FS 609X-PI에도 이 4PI의 최신형이 쓰였다. 그간 개량에 개량을 거듭, 무려 0.006mm의 알루미늄을 진동판으로 채용해서 제작했을 뿐 아니라, 네오디뮴 자석까지 동원해서 능률을 한껏 끌어올렸다. 무려 50kHz까지 커버하는 주파수 대역폭은, SACD나 LP 재생에 큰 강점을 갖는다.

아마 엘락 하면, 떠오르는 것은 이른바 'JET Tweeter'일 것이다. 일종의 리본 형식으로 만들어진 이 트위터는 90년대에 제작되어 일약 엘락을 스타덤으로 올린 일등 공신이기도 하다. 매우 투명하고, 반응이 빠르며, 왜곡이 없어서 이상적인 트위터의 하나로 각광받고 있다. 여기에 링 라디에이터 방식으로 그 주변을 빙 둘러싼 미드레인지는 결국 중고역의 통일성을 가져와 보다 정확하게 음상이 맺히도록 한다. 물론 본기에도 이 트위터가 동원되는데, 'X-JET'라고 해서 한층 개량된 형태로 선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해서 4PI라는 슈퍼 트위터, X-JET이란 트위터 그리고 링 라디에이터 방식의 미드 레인지의 3웨이가 완결된 가운데, 여기에 3발의 우퍼가 더해진다. 물론 이 우퍼에도 엘락만의 신기술이 가득하다. 이것은 이른바 알루미늄 샌드위치 기술이라고 하는데, 원뿔형 콘 안에 0.2mm 두께의 알루미늄 막을 정교하게 접합시키는 공정을 통해 탄생한다. 이럴 경우 우퍼에서 발생하는 공진을 최대한 억제하고, 왜곡을 현격하게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여기에 고무 에지를 달아 전후 15mm의 진동 운동을 가능케 했다. 이런 움직임의 결과, 180mm의 우퍼 사이즈를 훨씬 상회하는 무려 25Hz에 이르는 저역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 세 발의 우퍼 유닛을 교묘하게 컨트롤해서 일종의 1.5웨이 형태로 조율한 점이다. 실제로 이 우퍼들은 일부는 150Hz에서 끊었고 일부는 400Hz에서 끊었다. 이렇게 상한선을 다르게 해서 절묘하게 포트와 엮어 양감이나 저역 리스폰스의 한계를 신장시킨 것이다. 실로 교묘한 솜씨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바로 인클로저다. 손으로 툭툭 두들겨보면 나무 재질이 아니다. 어딘가 딱딱하면서 단호하다. 일체의 공진이나 왜곡을 느낄 수 없다. 알고 보니 알루미늄 소재를 이용한 것이다. 물론 내부에는 MDF를 사용해서 만들어진 뼈대가 있다. 이 위에 알루미늄을 덮은 형국인데, 그 형상이 그냥 미적인 기준으로 제작된 것은 아니다. 음의 회절이나 감쇄 특성 등을 고려해서 음질상의 메리트를 추구한 끝에 이런 디자인에 도달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것은 바이와이어링 단자. 정평 있는 WBT사의 최고급 14K의 바인딩 포스트를 장착했다. 전도율이 높아 이런 단자로는 이상적인 형태라 칭송받는 제품이다. 말굽이나 바나나 단자 모두에 대응하므로, 범용성이 높은 것도 큰 장점이라 하겠다. 또 싱글와이어링을 할 경우를 대비해, 반 덴 헐에서 제작한 바이와이어링 케이블을 별도로 제공한다고 하니, 이 부분은 횡재한 기분까지 든다.

군수 산업체로 시작한 엘락답게, 본 기의 만듦새를 보면 매우 꼼꼼하고, 세심하며, 일체의 낭비가 없다. 무엇보다 과학과 연구를 기반으로 응당 그래야 하는 결론을 만들어낸 후, 일체의 타협 없이 구체화시키고 있다. 그 점이 본 기가 갖는 최대 장점이 아닌가 싶다.

필자는 엘락의 스피커와 인연이 좀 있다. 직접 사용해본 적은 없지만, 여러 번 리뷰도 담당했고, 애호가의 탐방이나 오디오 쇼를 통해 익히 들어본 바 있다. 그때의 경험으로 말하면, 일체의 스트레스가 없는 투명하고 깨끗한 음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이게 일반적인 엘락 스피커에 대한 인상이다.

예를 들어 엘락의 작은 모델은 오라 노트와 연결했을 때 마치 청명한 공기를 들이키듯 아기자기하고 담백한 음이 나왔고, 좀 큰 모델은 오라클의 인티 앰프를 걸었을 때 더 없이 맑고 청량한 기운을 시청 공간에 뿜었다. 일체의 더러움이나 거침을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스피커라는 인상이었던 것이다. 또 앰프의 성격을 너무나 정직하게 반영해서, 역으로 조금이라도 허접하거나 얼렁뚱땅이면 그 결점을 일체 허락하지 않는다.

고출력을 요하지는 않지만, 양질의 파워를 원하는 것이다. 본기 FS 609X-PI 역시 메이커에선 최소 100W 정도면 구동이 가능하다고 적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선 대출력 파워에 대한 부담이 덜어지므로 꽤 다행스런 일이다.

이번 시청은 다질의 프리 파워를 동원한 가운데, 소스는 코드의 레드 레퍼런스로 했다. 이런 라인업에서 상상할 수 있는 아름답고, 투명한 음을 기대했는데, 여기에 덧붙여 상당히 야성적이고 혈기왕성한 표현도 가능해서 깜짝 놀랐다. 이 부분은 이하 시청평에서 집중 소개하겠다. 참고로 이번 시청에 사용한 CD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Beethoven " Piano Concerto No.3 " Serkin(p) & Bernstein & NY Phil.

-Diana Krall " All or Nothing at All "

-John Coltrane " Bakai "

-Grateful Dead " Crazy Finger "

우선 베토벤의 협주곡을 들으면, 일체의 스트레스 없이 기분 좋게 오케스트라가 전개되는 가운데 사뿐히 피아노의 음이 얹힌다. 매우 스피디하고 탄력이 있는 음이다. 정확한 음장으로 사운드 스테이지를 형성하고, 음 하나하나가 무척이나 예쁘며, 울림도 적절하다. 일종의 완벽주의자인 제르킨의, 평생에 걸쳐 조탁한 심오한 테크닉의 향연이 상당히 우아하게 펼쳐진다. 이런 고고한 재생은 역시 엘락이 갖는 최대 장점이 아닐까 한다.

다이애나 크롤은, 처음 시작하는 더블 베이스의 인트로부터 심상치 않다. 이윽고 중앙에 자리 잡은 약간은 경질이면서 섹시한 크롤의 음성이 강한 마력으로 뿜어지는데, 그 기세가 대단하다. 다질의 파워에서 넉넉하게 제공되는 에너지를 바탕으로, 여성 보컬이 갖는 아름다움이 한껏 우아하게 펼쳐진다.

한데 콜트레인을 들으면, 이런 소스가 갖고 있는 거침이나 야성이 낱낱이 드러나 깜짝 놀랐다. 결코 고상하지 않다. 그러나 이런 CD는 이렇게 재생되어야 한다. 참으로 교과서적인 정공법으로, 이런 음악의 정수를 타협 없이 재현하고 있다. 테너 색소폰은 휙휙 강속구를 뿌리는 것처럼 파워 만점이고, 더블 베이스의 약동감이나 현란한 드러머의 손발 놀림이 무대를 가득 장악한다. 다질 & 엘락의 조합에서 이렇게 끈끈한 재즈가 나온다는 것은 참 대단한 발견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그레이트풀 데드. 일종의 레게 리듬을 바탕으로, 좀 코맹맹이 소리를 내는 제리 가르시아의 음성이 매력인데, 그 배후에 흐르는 올갠의 음이나 쫄깃쫄깃한 베이스 라인 등이 제맛을 낸다. 결코 흥겨운 음악은 아니자만, 리듬감이 넘실넘실 살아있어, 미소를 지으며 감상할 수 있다. 이 음악은 맨 처음 이른바 빽판으로 들었는데, 20년이 지나 리마스터링 CD로 들으니 과연 원래 이런 음악이었구나 새삼 탄복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다질과의 조합은 상상 이상의 매력과 퀄리티를 갖고 있다. 물론 이보다 저렴하고 또 개성 있는 앰프들도 많으니까 얼마든지 본기의 매력을 추궁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스피커 자체가 별로 억세게 주장하거나 뭘 납득시키기 보다는 소스의 장단점을 착실하게 재현하는 쪽인 만큼, 여기서 운영자의 내공과 실력이 상당히 발휘될 것이다. 액세서리나 케이블로 많은 효과를 볼 것도 같다. 별로 크기 않은 사이즈지만, 이 안에 담긴 내용은 결코 작지 않다. 역시 오랜 경력을 지닌 회사의 간판격다운 만듦새라 하겠다.